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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 불자 대은 卍
 
 
 
카페 게시글
卍 마음속의 아름다운글 스크랩 영혼은 취하고...육신은 깨어난다...
무소(無所) 추천 0 조회 35 09.09.04 01: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영원은 취하고 육신은 깨어난다
“봄 길 어때요? 봄 길 좋~다. 어서 와요. 봄 길 떠날 때 먹으면 좋을 도시락 싸놓을 테니.” 자연 요리 연구가 산당 임지호에게 봄 요리 취재하러 가고 싶다고 전화를 거니, 일면식도 없는 기자에게 흥에 겨운 환대를 선뜻 건넨다. 음식 얘기만 나오면 저절로 흥에 취하는 남자, 그 요리사가 만든 봄맛을 보러 우리는 룰루랄라 양평으로 떠났다.


(왼쪽) 날 선 마음이 가라앉는 듯한 양평 두물머리의 노을 지는 모습.
(오른쪽) 자연 요리 연구가 임지호는 수탉 모양의 모자를 쓰고 요리한다.

아늑한 양평 산자락 아래 몽글몽글 연기가 피어오른다. 새벽녘 뽀얗고 무거웠던 안개가 걷힌 하늘 위로 양 떼가 옮겨가는 듯한 모양을 그리며 피어오르는 연기도 흐뭇하지만, 잠시 후 밥 짓는 냄새가 코끝을 스치기 시작하자 위가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 밥 냄새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산당’ 안으로 들어섰다. 따스한 봄 햇살이 들어찬 실내에는 어느새 음식 냄새가 가득 번져 있다. 밥 짓는 구수한 냄새, 생선 굽는 비릿한 냄새, 나물 무치는 고소한 냄새, 고기 굽는 단 냄새 등 주방은 구석에 숨겨져 있지만 그곳에서 만드는 음식들을 ‘그려낼’ 수 있을 만큼 ‘산당’ 안은 냄새만으로도 이미 진수성찬이었다.
“왜 이리 빨리 왔어요. 지금 한창 준비 중인데. 우선은 실내 사진부터 좀 찍고 배고플 테니 어서 앉아서 밥부터 먹어요.” 주방에서 한창 음식을 준비하던 임지호는 통성명도 없이 우선 밥부터 권했다. 듣던 대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한테 ‘어떤 음식을 만들어줄까’라는 생각밖에 안 난다는 그의 별스러운 사람 사귀기가 과장이 아님을 알았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TV 다큐멘터리에서 5부작으로 방영된 <요리사, 독을 깨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지붕 아래 머무는 삶을 죽음처럼 여겨 거의 마흔이 될 때까지 전국 방방곡곡의 산과 섬을 떠돌며 ‘맛’을 찾아낸 한 사나이의 인생 이야기는 가슴이 뻐근할 만큼 감동적이고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뒤늦게 그의 요리 솜씨를 아끼는 지인들이 마련해준 양평 산자락 아래에서 그의 호인 ‘산당’이라는 이름의 집을 짓고 생애 최초로 자신의 음식점에서 자연 요리를 하며 정착하게 된 그의 요리 이야기는 혀와 관련한 온갖 감각들을 자극하며 보는 사람을 시험에 들게 했다. 그런 감동과 시험의 경험을 나만 느낀 것이 아닌지, 그사이 그는 꽤나 알려진 유명인사가 되었고 모텔로 빽빽한 양평에 새로운 요리의 숨결을 불어넣고 있었다.

우리는 ‘봄 길’ 요리 전에 ‘산당’의 정식을 먼저 맛보았다. 제일 먼저 조그만 사발에 단정하게 나온 것은 현미와 좁쌀로 쑨 죽이었다. 좁쌀의 깔깔한 질감과 현미의 구수한 맛이 섞여 식도를 타고 위를 감싸는 느낌이 부드럽게 식욕을 자극했다. 다음으로 나온 구절판은 무엇보다도 매실 소스가 일품이었다. 매실 소스는 임지호가 자주 사용하는 소스로 그의 음식 맛의 뿌리가 되는 재료 중 하나다. 이어 나온 회 접시는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레이아웃’이었다. 전복과 몇 종류 바다 생선회가 소담스럽게 담긴 더미 옆에는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듯한 초록색 소스가 있었는데, 바로 측백나무 소스였다. 조금 곁들여진 소스일 뿐인데 빽빽한 소나무 숲에 들어간 듯한 진한 소나무 향이 코를 찌른다. 고추냉이 대신 조금만 찍어 회와 함께 먹으면 온 입 안에 소나무 향이 번져 아찔할 정도다. 향에 취해 측백나무 소스 양을 늘리다 보면 회의 맛을 몽땅 잃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회를 먹은 후에는 꼭 이 산초 장아찌를 먹어야 해요. 그래야 해독이 되니까. 회는 싱싱하지만 그래도 사람에 따라서는 탈이 날 수도 있으니.” 아하, 접시 위에 장식처럼 놓여 있던 작은 열매가 바로 산초였다. 이름만 들었지 이렇게 실물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1 흥이 나면 장독대의 독을 깨서 접시로 쓰는 그에게 그릇은 제2의 요리다.
2 향이 진한 측백나무 소스에 찍어 먹는 싱싱한 회. 
3 모든 정식에는 김이 솔솔 나고 뜨끈한 솥밥이 나온다.
4 고구마와 무말랭이가 섞인 듯 오묘한 맛을 내는 고구마 요리.
5 풋 보리순에 사과 간 것을 넣고 만든 양갱. 
6 황포와 청포, 머루, 다래, 오미자를 넣어 알록달록 예쁘고 맛있는 두부.

임지호의 요리에는 다 이런 절묘한 궁합이 있다. 이어서 나온 돼지 목살 바비큐에는 돼지와 궁합이 맞는 마른 새우젓이 함께 나오고, 돼지 목살은 해초 가루와 녹차 가루에 이미 몸을 적신 후다. 생강을 실처럼 채썰어 튀겨내 문어와 모차렐라 치즈를 섞어 만든 완자 위에 얹은 요리는 접시 위 한 점의 그림처럼 아름답지만 그 재료들 사이에는 다 자연의 궁합이 녹아 있다. 정식 코스가 끝날 즈음 드디어 ‘봄 길’ 요리가 나오기 시작했다며 어서 사진을 찍자고 임지호가 서두른다. 그가 준비한 ‘봄 길’ 도시락은 촬영 후에도 쉽게 젓가락을 댈 수 없을 만큼 소담하고 예뻤다. 오래된 나무 도시락에 담긴 다섯 가지 요리는 이랬다. 풋보리 순으로 만든 양갱, 냉이를 넣은 찹쌀 크로켓, 황포와 청포·머루·다래·오미자를 넣은 두부 케이크, 그리고 레몬 껍질을 튀겨서 만든 만두 등. 재료와 요리법은 다 다르지만 요리마다 한입 베어 물면 봄 내음이 확 퍼졌다. 특히 풋보리 순으로 만든 양갱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 경험한 맛이다. 보통 양갱은 팥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는 특이하게도 풋보리 순으로 초록색 양갱을 만들었다. 거기에 사과 간 것을 몰래 집어넣어, ‘쑥 맛이려나’ 하고 짐작한 혀에 ‘반전’을 선물한다. 풋풋하면서도 새콤한 양갱. 오물오물 씹어 먹고 있으면 ‘세상에 이런 맛도 있구나’ 하고 내심 감동하게 된다.

“이런 재료는 다 어디서 얻으세요?” “천지가 밥이에요. 자연이 주는 모든 게 내 요리의 재료죠. 풀 한 포기, 씨앗 한 알까지도요. 저기 뒷산 있죠? 저기가 내 보물 창고예요. 봄이면 봄대로, 여름이면 여름대로. 또 겨울은 겨울대로 구할 게 많은 곳이에요.” 장독대 역시 임지호의 반찬 창고다. 손수 담근 된장, 고추장, 간장, 매실 장아찌, 그리고 사계절 내내 산과 바다를 누비며 모아놓은 나물과 풀들. 조심스럽게 장독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보고 있자니 무슨 음식 백과사전 같다. 산당에서 흘러나온 밥 짓는 연기가 왜 그리 구수하고 달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모든 마음의 짐과 죄를 다 내려놓아도 좋은 수평의 도시 양평에 가게 된다면 꼭 이 ‘산당’에 가보시라. 그곳에 가면 천지가 왜 달디단 밥인지 알게 될 것이다.
산당에는 단품 요리는 없고 한정식 메뉴만 있다. 가격은 메뉴에 따라 3만3000원, 5만5000원, 7만7000원이다. 문의 031-772-3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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