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몽고 연합군 일본열도 강타하다 **
제 목 : 고려 몽고 연합함대 일본원정, 주력은 고려군이었다.
내용 요약 : 13세기 후반 몽고제국의 간섭아래 있던 고려는 몽고와 연합군을 형성, 10년 동안 두 차례에 걸친 일본정벌에 나선다. 고려의 전국력을 쏟아 부어야만 했던 일본정벌은 과연 어떤 전쟁이었는가?
일본열도에 던져진 대충격! '무쿠리고쿠리 귀신'의 실체는 무엇인가? 1274년 고려·몽고 연합군의 1차 일본원정은, 일본역사상 최초로 당한 침입이었다. 격전지였던 하카다에는 당시 전쟁의 충격이 7백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다는데-. 일본열도를 뒤덮었던 전쟁의 공포를 일본현지 취재를 통해 살펴본다.
고려·몽고 연합군의 신무기와 새로운 전술 사무라이 혼 빠지다! 일본각지에서 몰려온 사무라이들은 고려군의 강력한 활과 집단전투라는 낯선 싸움방식에 밀리고, 몽고의 신무기 '자포'는 일본에 결정타를 가하게 되는데... 단 하루만에 큐슈 일대를 쓸어버린 연합군의 압도적인 승리!
일본 타케자키의 전투도인「몽고습래회사」를 통해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고려군의 모습을 복원해보고, 당시 치열했던 공방전을 생생하게 되살려본다
이번 주 역사스페셜, 「몽고습래회사」속에 나타난 고려군의 전투활약상을 통해 일본원정의 주력은 몽고가 아닌 고려군이었음을 밝혀낸다. 5. 세부내용
1) 「몽고습래회사」를 통해 본 고려 몽고연합 일본정벌
현재 우리나라에는 고려의 유물·유적이나 사료가 매우 적다. 그러나 우리역사 최초의 해외정벌인 고려·몽고연합 일본원정 전쟁 당시 고려군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사료가 일본에 남아있다. 바로 「몽고습래회사」라는 두루마리 그림. '몽고습래회사' 는 7백여년전 일본 카마쿠라 막부시대 쿠마코토현의 무사였던 스에나가가 남긴 유물이다. 즉 이것은 고려·몽고연합군에 맞서 싸우는 스에나가의 활약상을 커다란 줄거리로 삼고 있는 것. 1274년 1차 일본원정과 1281년의 2차원정을 자세히 그리고 있는 '몽고습래회사'. 여기에는 주인공인 스에나가 뿐 아니라 이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물체는 놀라울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고려·몽고 연합 일본원정의 내용을 비롯해 고려군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다.
2) 전투법과 무기의 차이- 고려군의 활
당시 전쟁에서 고려·몽고연합군을 승리로 이끌었던 주력무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고려의 활과 몽고의 신무기 자포다. 몽고습래회사의 그림에서도 일본의 활과 고려군의 활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군의 활은 170센티미터에 불과한 단궁인 것에 비해 일본의 활은 240센티미터의 커다란 장궁인 것. 복원된 활을 통해 비교한 결과. 고려의 활은 160m∼190m까지 화살이 날아간다. 그러나 일본 활은 크키에 비해 날아간 거리는 70m∼90m 내외였다. 이러한 차이는 고려와 일본의 활의 제작기법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우리전통 활은 뽕나무, 대나무, 참나무 무소뿔 등을 복합해서 만든다. 그리고 활의 안면에는 소심줄을 잘게 찢어 붙이는데, 이것은 활의 탄력성을 높여 화살을 멀리 나가게 만드는 것. 반면, 일본은 활을 대나무로만 만들었기 때문에 활이 멀리 나가지 못한다. 따라서 일본 활의 강도와 정확성은 고려의 것보다 떨어진다.
3) 고려군의 모습
고려군은 1차 원정때 8천여명, 2차원정 때는 만명이 전쟁에 나가서 싸웠다. 당시로서는 많은 고려군이 전쟁에 투입된 것인데, 현재에는 고려군사의 모습이 어떠했는가를 알 수 유물과 유적은 거의 없다. 과연 고려군의 모습은 어떻했을까? 몽고습래회사 속에 나타난 그림들을 단서로 한번도 알려지지 않았던 고려군의 모습을 우리나라 복식전문가와 함께 찾아본다.
5) 일본원정의 주력은 고려군이었다- 고려의 뛰어난 조선술
주전장터였던 나가사키현 타케시마 앞바다에서 연함군의 함선 한척이 인양됐다. 오랜 부식으로 배의 형체는 거의 알 수 없지만 338킬로에 달하는 두 개의 돌이 달린 목제 닻이 발견되었다. 닻에 달린 돌의 석질은 적색응회암. 이것은 전라남도 장흥 천관산에서 구할 수 있는 석재로 밝혀졌다. 실제로 1차 일본원정에 쓰인 9백척의 배는 모두 고려에서 만들어졌는데, 고려는 3만5천명을 동원하여 불과 4개월만에 9백척의 전선을 만들었던 것이다.
바다를 건너서 싸우는 전쟁에 익숙하지 않은 몽고군 대신 해상전에 강한 고려군이 일본원정에서 맹활약을 벌였다. 전함을 비롯한 각종 전비를 담당할 수밖에 없었던 고려군. 그들은 몽고군보다 적은 숫자였지만 일본본토 상륙전에서도 가장 뛰어난 전과를 올린다. 김방경을 중심으로 한 고려군의 뛰어난 활약은 당시 총사령관이었던 몽고장군 혼도 조차도 격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대함대를 수개월만에 만들어 냈던 고려의 조선술 그리고 고려군의 전투장비 등은 일본원정의 주력은 고려군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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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지만 이전쟁 자체가 패배한 전쟁 아니었습니까? 아니 패배라기 보단 자연재해로 인한 후퇴라고 해야하나..
실제로는 여몽군이 후쿠오카 등을 정복 했지만, 일본이 역사서에서 지워 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