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리 찌 바 시의 녹지정책”
꾸리 찌 바 시내를 둘러보면 널찍한 잔디 축구장과 숲이 우거진 공원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오늘날 꾸리 찌 바시가 이처럼 많은 공원과 녹지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이면에는 시의 체계적인 녹지정책과 시민 노력의 결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꾸리 찌 바 시는 1인당 녹지면적이 52㎡ 우리나라 안양 평 촌(4.1㎡)의 13배이며, 세계 보건기구 권고기준치(12㎡)의 4배에 달한다고 할 수 있다.
도심곳곳에 바리기 공원, 탕구 아 공원 군데군데에 펼쳐진 잔디 축구장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각종 공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넓은 면적의 녹지와 공원을 만들어 오게 된 것은 대규모 토지조성 사업 등을 시행할 때는 일정 면적을 시에 기부하도록 하고 시는 기부된 토지를 자연적 지형조건 등을 고려하여 공원 및 숲을 조성함으로서 많은 공원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산업단지 및 기타 유사 단지를 조성할 때에도 일정면적의 녹지공간을 먼저 확충하도록 하는 동시에 주변 지역에 있는 원시림을 비롯한 자연녹지공간을 그대로 보존시키는 정책을 지속하여 옴으로서 가능할 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현재 꾸리 찌 바 시내에는 14개의 공원과 16개의 광장, 11개의 자연공원 등을 보유하여 전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희망의 도시, 숲의 도시로 가꿀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시민들이 소유하고 있는 집터에 30%이상의 녹지공간을 확보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경감시켜 주는 정책도 함께 시행 했다. 더러운 도시를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방법은 나무를 심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 꾸리 찌 바 레로너 시장의 환경정책 속에 시장 재임 초기부터 150만 그루의 나무묘목을 시민들이 심고 돌보도록 운동을 전개했다는 사실이 오늘의 꾸리 찌 바를 탄생시킬 수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도시의 허파인 도시 숲이 오히려 4년 간 무려 298만㎡이 사라졌다고 하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 시내에서 1996년부터 2000년말 까지 4년 간 사라져 버린 산림의 면적이 여의도면적인 298만㎡나 된다고 하니 우리나라 산림보호정책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산림파괴의 원인은 대부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인․허가가 있어야 되는 택지개발, 아파트 재개발, 재건축, 골프연습장, 위락시설 및 도로건설 등에 의한 훼손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보아 산림보호와 단속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나 정부가 앞장서서 도시 숲 을 훼손하고 있었다고 하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선거 때마다 그린벨트해제라는 선심성 공약들을 정당별로 마구 쏟아놓고 그것이 볼모가 되어 야금야금 그린벨트를 훼손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환경문제의 근원은 개발과 보존의 균형 속에 대대손손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할 수 있도록 기초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개발논리에만 밀려 전 국민의 숨통인 그린벨트가 급속도로 훼손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보면서 우리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의 산림보호정책과 녹지정책에 있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의아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도시인의 생명수와도 같은 생활환경공간이 지금처럼 몽텅 몽텅 잘려 나가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숲과 사람은 인간들이 쓰고 쏟아내는 모든 배설물을 저감시켜주고 순환시켜줄 수 있는 자연의 치료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숲과 산림을 지구환경수비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산림은 목재의 공급기지일 뿐 아니라 국토보존의 뼈대이며 깨끗한 물, 맑은 공기의 공급원이며 오염된 자연을 자연의 한 인자로 다시 치유하는 최선의 방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숲은 희망이고 우리의 미래이며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무를 심고 숲을 보존
하는 것이 자연을 회복하고 생태계를 살려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방법이 될 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생태도시, 꿈의 도시로 잘 알려진 꾸리 찌 바 시에 수많은 공원과 녹지공간들은 그냥 얻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꾸리 찌 바 시민의 끝없는 노력과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녹지 환경정책을 통해서 얻어진 산물임을 우리는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탕 구 아 공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