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모 교수는 교육이라는 현상을 규정하는 견해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교육은 인간행동의 계획적인 변화" 라고 정의하고 있다. 교육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생성에 관심을 갖는 역동적인 작업이며, 특히 인간의 성장·발달·조성 등 변화의 길이 개인에게 선천적으로 결정되어 있지 않다고 전제하는 데서 그 존재 이유가 선다고 하고 있다. 왜냐하면 교육은 인간행동이 자연적으로 변화해 가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의도적으로 변화시키는 데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정범모 교수가 말하는 교육의 정의는 "인간행동", "변화", "계획적" 이라는 세 개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각 요소를 간단히 살펴보면, 먼저 "교육은 인간을 다룬다" 는 것이다. 교육이 정치나 경제, 문화 등 사회의 여러 기능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교육은 그런 사회적 기능에 직접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능을 수행하는 인간을 만드는 일에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 "인간행동"에서의 "행동"이라는 것은 일상적인 용어로서 보기 보다는 과학적인 의미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다. 즉 과학적 의미에서의 행동은 동작이라는 형태의 외현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지식, 사고, 가치관, 동기체제, 성격특성, 자아개념" 등 인간의 모든 심리적 특성을 포함하는 것이다. 둘째, "교육은 인간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데에 관심이 있다." 여기서 "변화"라는 것은 "육성, 조성, 함양, 개발, 교정, 개선, 성숙, 발달, 증대"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교육이 인간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활동이므로 교육과 교육학은 인간행동의 변화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가정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인간 행동이 선천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믿는다면 교육은 불필요하고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인간행동의 의도적 변화 가능성은 교육이라는 활동과 교육학이라는 학문의 성립 기반임과 동시에 그 존재 이유가 된다. 여기서 인간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실제적 관심은 "교육"의 영역이며, 인간 행동의 변화에 관한 법칙을 발견하는 이론적 관심은 "교육학"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간행동의 변화는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하여 일어날 수 있지만, 그것이 교육의 경우에 속하기 위해서는 그 변화가 "계획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의 정의에 포함되는 요소로서의 "계획"은 간단히 말해서 "교육프로그램"(교육과정)을 뜻한다. 이처럼 정범모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교육이 제 본래의 임무를 다할 수 있을 때, 즉 교육이 실제로 "인간행동을 계획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때", 교육은 가공할 힘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육이 그것에 맡겨진 일을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은 곧 확실한 이론에 터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어떤 인간 행동이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홍우 교수는 정범모 교수의 "인간행동의 계획적인 변화"를 교육의 공학적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학습은 우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그 우연적 학습이 성장에 기여할 수도 있지만, 교육은 의미상 학습의 기회와 과정을 의도적으로 혹은 계획적으로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혹은 계획적으로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 과정을 통제하는 행위가 바로 "교육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교육의 개념이 의도성을 내포한다는 것은 달리 말해서 어떤 가치를 지향한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체계적인 교육은 어떤 판단의 기준에 의해서 가치있는 지식, 사상, 신념, 기술, 감정, 태도, 행동을 엄격히 선정하여 조직하고, 학습의 과정이 최대한의 효율성을 꾀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고 여건을 조성하면서 실시된다. 그 판단의 기준은 궁극적으로 교육의 이념으로 부터 도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은 바로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어떤 가치를 실현코자 하는, 어떤 가치체제에 의해서 통제되는 것이므로 교육의 모든 현상에서 이루어지는 판단은 가치의 판단이며, 교육의 과정은 성격상 그 자체로서 규범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교육학이란 무엇인가?
정범모 교수는 "교육학은 인간 행동의 계획적인 변화에 관한 과학"이며, 교사·내용·학생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상황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영역을 교육학의 영역이라고 보고 있고, 철학적·정치학적·심리학적인 영역을 교육 주변의 학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교육학은 교육 자체는 아니며, 교육현상 전반을 객관적인 대상으로 보고, 객관자로서 그 현상을 기술, 설명, 예언하려는 경험과학이라고 보았다. 정범모 교수는 교육학이 곧 교육이 아닌 것은 경제학이 곧 경제가 아닌 것과 같이, 교육학자가 반드시 교육자는 아닌 것은 경제학자가 반드시 경제가가 아닌 것과 같다고 했다. 특히 정범모 교수는 교육학과 교육의 차이를 몇 가지 면에서 혼동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이론과 실제의 혼동은 교육학과 교육의 경우에 많다고 지적하면서, "교육학은 교육에 관해서 알려는 일이며, 교육은 교육을 하는 일" 이라고 했다. 또한 교육학을 교육을 잘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 절차의 제안과 혼동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교육학의 기능은 교육현상에 관해서 개념, 법칙, 이론을 구성하고, 그것으로서 교육현상을 기술, 설명, 예언하는 데 있다. 즉 이론 속의 개념들이 명확한 사실적 근거를 가지고 출발하고, 그것들이 법칙을 구성하고 그것들이 논리적 구조인 이론을 구성할 때, 이론은 도리어 실제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에서 무엇보다 유용하고 유익할 수가 있는 것이다. 결국 교육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교육학자와 교육자의 임무에 대한 비교를 통해서 얻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즉 교육학자는 교육과 그것에 관련된 현상들에 관한 법칙과 이론을 구성함으로써 이러한 현상을 기술하고 설명하고 예언하려는 데에 그의 교육학자로서의 전문적 임무는 시작하고 끝이 난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교육학자에게는 그의 이론이 교육 실제에서 응용되건 안되건 간에 관심이 없다. 반면에 교육자·교사는 인간행동을 계획적으로 변화시킬 줄 아는 전문가인 것이다. 이상적인 교육자·교사는 철학자, 과학자, 예술가의 종합인일 것이 요구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교육이라는 활동 자체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정치 경제 등 모든 사회 활동이 그렇다시피 동시에 철학이고 과학이고 예술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철학없이는 김이 빠지고, 과학없이는 맥이 빠지고, 예술없이는 맛이 빠진다."는 말은 교육의 복잡성을 대변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든지 간에 교육자는 교육적 효과를 생산해야 할, 바라는 방향으로 인간행동을 육성, 개선해야 할 실무적 책임의 소유자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행동 육성의 응용과학자로서의 면모와 실력만 있다면, 그것으로 교육자·교사로서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결국 교육과 교육학은 서로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위하여 구별되어야 하고, 교육실제와 교육이론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위하여 우선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 "교육과 교육학"에 관한 정범모 교수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