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평범한 가정의 막내딸로 태어나 엄하신 아버지와 가정 적이신 어머니와 든든한 큰오빠 친구 같은 언니들과 함께 자랐습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많은 형제들과 함께 자라면서 남을 배려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 지금껏 저의 대인 관계에 형성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평소 엉뚱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엉뚱하다는 말은 자주 듣는 다는 것은 남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자주 한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의 이런 점을 최대한 살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평소 관심 있어 하던 생활 과학 부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에서도 의류 학을 전공하고 싶습니다. 의류 학 전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의류는 우리가 생활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도 하고 가장 다양한 종류를 지니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의류를 만드는데 있어서는 단순한 지식이 아닌 여러 가지의 지식이 하나로 묶어져 그것이 의류 학의 기본이 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이곳에 입학하게 된다면 첫째로 기본을 든든하게 쌓기 위해서 1학년과 2학년 때는 다양한 경험을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패션쇼나 전시회도 많이 접해보고, 다양한 독서 그리고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기본이 되는 컴퓨터와 영어도 꾸준히 배울 것입니다.
그리고 방학기간 동안에는 다른 여러 나라에 가서 그곳의 문화를 직접 느낄 수 있다면 다른 어떤 공부보다도 제 자신에게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중기적으로 2,3학년 때는 의류 학에 있어서 좀더 전문적인 기식 습득과 학과 공부에도 전념 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4학년 때는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바탕으로 제가 직접 의류를 디자인하고 만들어서 각 지방의 패션 경진 대회에도 참가하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업계로의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의류 디자인 분야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에서도 저는 '의류복식디자인' 이라는 분야에 대해 더 깊게 연구하고 개발하는데 노력 할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중국에는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중국음식 하면 떠오르는 자장면이 있듯이 우리나라 것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그것에 서양의 의류 디자인 즉 현대적인 의류 디자인을 적절하게 복합시켜 '세계 속의 한국' 이 아닌 '한국 속의 세계' 하는 말이 어울릴 만한 그런 의류를 디자인하고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 2. 식품과학부(학과) )
저는 광주에서 부모님 여동생과 남동생을 둔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저희 아버지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하고 진실 되게 살라는 말씀을 해 주셨고 어머니께서는 항상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봉사 정신을 제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런 가르침 속에서 타인에게 모범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께서 음식을 만들어 식구들이나 친구들에게 대접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고1때는 제가 요리에 남달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신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광주 김치 대축제 전국 중, 고등 학생 김치 경연대화에 참가하여 최우수상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이일이 서양의 음식문화에 관한 지식과 조리기술을 익힌 조리사를 꿈꾸게 된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의 장점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정이 많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일을 할 때 대충하지 않고 꼼꼼하게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단검은 행동이 조금 느리다는 것입니다. 이 단점은 제가 대학 다니면서 동아리 활동을 활발히 함으로써 고쳐 나갈 것입니다.
제가 본교에 입학하게 된다면 1학년 때 조리용어, 식품학 제과제빵이론 등 여러 기본 이론을 배우고 2학년 때는 한식, 일식, 양식 등의 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노력하여 국제화시대에 맞게 세계화를 선도하는 전문 조리인이 되기 위하여 영어와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3학년 때는 4월에 있는 국제 식품 기술전 KOEX와 10월초 열리는 남도 음식 축제를 통해 전통 개발 음식 전시를 보고 우리나라 전통음식과 외국음식을 비교해보고 우리나라 전통음식의 우수성을 알리고 조리에 대해 보다 많은 견문을 넓히고자 해외에 나가 공부를 할 계획입니다. 4학년 때는 그동안 배웠던 공부를 토대로 조리산업기사와 조리기능장 등의 여러 가지 자격증을 취득하고 졸업 후 호텔에 들어가 그동안 순천대에서 갈고 닦았던 제 실력을 마음껏 발휘 해보고 싶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겠지만 저희 아버님 말씀대로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한다면 저의 꿈을 꼭 이룰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3. 환경농업과학부(학과) )
저는 1984년 1월 2일 광주광역시 오치동에서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인자하시고 따뜻한 성품의 아버지와 친구 같은 편안함과 자상함으로 감싸주시는 어머니 아래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가치관 속에서 자주적인 삶의 자세를 익히며 성장해 왔습니다.
이러한 가정 분위기가 자유로운 생각을 가능하게 해 주었고 문제에 직면했을 때 여러 각도로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애 주었습니다.
전 인간에게 의식주란 참으로 중요한 삶의 기본적인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본바탕 중 시각, 후각, 미각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식' 이라고 생각하던 중에 생물 선생님께서 우리나라가 큰 재난을 당하게 되면 컴퓨터 한 대가 쌀 한 톨보다 못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 농업은 사양사업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국가 개발사업을 하고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전통 농업보다는 소비자 기대에 호응하게 끔 수렵재배나 무공해 제품을 다용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의 바램을 바탕으로 환경농업과학부에 입학하게 된다면 환경농업에 대한 소양을 습득하고 깊은 이해를 하기 위해 학교 교육과정에 충실할 것입니다.
제가 이곳에 입학하게 된다면 기본을 든든하게 쌓기 위해서 1학년 때는 간접적으로나 직접적으로 농촌 봉사활동을 체험하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어학(영어)을 토플이나 토익 중심으로 할 것입니다. 2학년 때는 전공보다 더 열심히 하고 꾸준히 회화를 공부할 것입니다. 3,4학년 때는 환경 친화적인 농촌 하수 처리 시스템을 연구하고 지금 비료가 화학비료인데, 편리한 자연 비료를 연구하면서 대학원까지 연구를 계속 할 것입니다.
저의 인생관은 "패기 있고 남에게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자!"입니다.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도전한다면 성공의 계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기주의가 아닌 남을 생각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황토땅 결합 생산에 관심을 가지고 농약이 땅과 환경에 나쁜 영향을 끼치므로 농약대체 방법을 연구하고 싶습니다.
나라의 양식을 책임지는 중요한 일인만큼 중요한 인적 자원으로서 제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4. 시각디자인학부(과))
예로부터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있듯이 저는 외가쪽에 손재주를 이어받아 어렸을 적부터 미술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습니다. 저희 외가쪽 분들은 미술학원을 운영하시는 분과 강사를 맡고 계시는 분이시고 저의 어머니께서는 그 손재주를 발휘하셔서 방안을 언제나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여 주시고 저의 예술계통에 타나난 소질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이러신 어머니와 자상하신 아버지 사이에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나 어린 동생을 바쁘신 어머니 대신에 제가 가르치고 돌보았고 장녀로서 맡은 직분을 다 하기 위해 항상 노력해 왔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저의 자립심과 항상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습관을 기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림에 대한 열정을 더 불타오르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열정의 결실로 저는 2학년 때 교내에서 미술학업우수상을 받게 되었고 교외에서는 최우수상, 동상 등 분에 넘치는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최선을 다하여 저의 전공에 관하여 꾸준히 연구하고 이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도록 남보다 한 발 앞서서 바라보는 눈을 키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저의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다고 믿는 조선대 시작 디자인 학부에 지원하였습니다.
제가 만약 시각디자인 학부에 입학하게 된다면 우선 처음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것이므로 가장 친근감 있는 동아리 활동으로 코스프레, 행사활동 등 여러 가지를 할 계획입니다.
그리하여 폭넓은 사회생활을 해볼 것이며 유학을 통하여 바라보는 시야를 좀더 넓혀서 세계를 볼 수 있는 지식을 쌓고 그에 걸맞게 실기 또한 체험을 비롯해 이론적인 것만이 아닌 느끼고 깨닫는 식으로 공부해 보고 싶습니다. 1,2 학년 때는 손으로 하는 표현의 한계가 있으므로 포토샵을 배워서 그래픽 자격증을 취득해 표현의 폭을 넓힐 생각입니다.
그리고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고 열심히 하여 장학금을 받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3,4학년 때는 인턴 경험을 쌓고 취업준비에 열의를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개인 전시회를 열어 저의 실력을 평가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 광고디자인실에서 현장실습을 쌓고 싶습니다.
저는 조선대가 제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곧은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5. 중국어학부(부) )
사람이 여러 발전을 거듭하기 위해서는 시야를 어느 한 곳에 두지 않고 넓은 세상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급격히 변화를 겪고 있는 지금 저는 그런 능력을 기르기 위해 조선대 중국어과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저에게 당부해주시는 아버지와 항상 포근한 맘으로 우리 가족을 감싸시는 어머니 아래서 태어났고, 평소에 동생에게 아끼지 않는 충고로 도움을 주는 형들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족보에 관심이 많았고 한자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저는 역사탐구반이란 동아리에서 역사유물을 많이 알게 됐고, 자연스레 우리나라 고유문화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또한 그때부터 저는 문화유적답사를 가기 시작했습니다. 몇 번 유적 답사를 다녀보니 우리나라 유물이 중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우리나라 문화유물도 중국에 많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다음에 꼭 한번 중국에 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굳은 다짐을 하고 잇는 사이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지금의 고등학교에 중국어 회화 반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고등하교 3년 동안 중국어를 공부했고 그 결과 광주시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고등학생 외국어 경시대화에서 입상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만약 조선대 중국어과에 입학하게 되면 1학년 때는 중국어를 열심히 하기 위해 한문과 어학의 필수인 영어를 공부하고 또한 동아리 활동을 하여 여러 가지 체험을 통해 중국 문화에 대한 지식을 넓히겠습니다. 저는 어학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나라의 정신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2학년 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중국의 각 지방을 돌면서 중국의 정신 문화를 느껴보겠으며 더불어 저의 중국어 실력도 점검해 나가겠습니다. 3,4학년 때는 저의 중국어 실력을 높이기 위해 한어수평고시에 도전하여 반드시 높은 급에 자격시험을 합격하겠습니다.
제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중국의 문화를 익히고 능숙한 중국어를 바탕으로 13억 중국 대륙에 우리나라를 소개하고 한. 중 무역교류를 담당하겠습니다.
( 6. 역사철학학부(과) )
상선약수란 말이 있습니다. 흐르는 물처럼 의미 있는 인생을 찾고자 역사 철학 부에 지원한 김건입니다.
저의 어머님은 모든 어머니와 같은 의미 이상의 존재이십니다. 아버지는 제가 중3때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님의 죽음이란 큰 불행을 어머니께서는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이겨내셨고 아버지가 없는 빈자리를 사랑으로 메워주셨습니다. 오늘도 저와 동생을 위하여 현장에서 고생하시는 어머님을 생각할 때 반드시 합격을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인문학에 큰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동안 수시 1차 때도 인문학부만 지원을 했었습니다. 왜냐면 혼돈의 현대인들에게 인문학이야말로 삶의 중심을 주는 소중한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저는 철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가 만약 조선대학교 역사철학 부에 합격된다면 1학년 때에는 한문공부와 함께 고전도서를 탐독하여 참된 지식을 습득할 것입니다.
또한 동아리 활동 중 봉사활동을 중심으로 이웃의 삶을 체험해보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우리사회에 꼭 있어야 할 사람으로 성장하겠습니다. 2학년 때에는 영어를 회화중심으로 공부하여 세계화 흐름에 발맞추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확실한 전공이 정해지면 본격적인 전공공부를 시작할 것입니다. 3학년에는 제가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노자의 윤리사상을 공부할 것입니다. 한국사회에는 철학이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4학년 때에는 우리나라에 필요한 철학이 무엇인지 공부 해볼 것입니다.
저는 이모든 것의 첫발을 조선대학교에서 디딜 것입니다.
(7. 수학. 전자통계학부(과))
저에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이번에 조선대학교에 응시한 임형기입니다.
1983년 10월27일 광주에서 1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정직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가훈아래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자동차회사에 근무하시는 아버지의 성실한 모습과 정이 많으시고 사랑이 넘치시는 어머니 아래서 자라왔습니다. 제가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수학은 끈기가 필요한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풀어 보고싶고 도전해 보고싶은 비전이 생긴 것입니다. 이로 인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일어나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많은 생각을 하는 사고력이 형성되었습니다. 때로는 한 문제에 너무나 집착하는 단점이 있지만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해결해 가고 있습니다.
제가 불교 수학전산통계학부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 제가 수학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시는 아버지께서는 하고싶은 것을 하고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고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여 제가 하고 싶은 수학공부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1학년 때는 동아리 활동을 통하여 대인 관계도 넓히겠고 한편 학업에 소홀히 하지 않고 수학공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서 훗날 교직인수를 하여 교사자격증을 받아 중.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제 소망입니다. 2학년 때 군대를 갔다와서 좀더 깊은 수학을 배우며 수학자로써 대학원에 학위도 따보고 싶기도 합니다. 제가 욕심이 많아서 다해보고 싶지만 기회가 되어 한가지라도 제가 하고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살기 위해 이 조선대학교에서 기본적 토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 8. 법 학 부(과) )
저희 어머니께서는 뉴스에서 정치가들의 경쟁을 보시면서 링컨의 말에 빗대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를 하고 있는 걸까? 란 말씀을 하십니다. 전 PD 수첩이나 추적 60분의 TV프로그램을 보면서 법이 '국민의 법 국민에 의한 법이 되어 가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저는 이러한 의문을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가치관인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사고를 하자'라는 교육관 아래 저의 자율적 사고와 다양한 의문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태어난 지 25개월 때 간암으로 돌아가셔서 아버지의 교육관과 가치관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어머니께서 저에게 힘이 되어 주는 남동생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 저희 가족들과 같이 사회에서도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사회에선 법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능력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변호사가 꿈이지만 되지 못해도 법을 바르게 이해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법의 정신을 알게 해줄 수 있다면 제 삶은 보람 있을 것입니다. 제가 조선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한다면 1,2학년 때는 영어와 한문능력을 키우겠으며 법학에 필요한 여러 신문사건을 접해 견해를 넓혀 가겠습니다.
또한 법학연구 모임에 들어가 저의 법에 필요한 부족한 지식과 다양한 견해와 사건을 접해보면서 법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에도 동일 대학원에 진학해 법에 대한 이해와 법학을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원을 마친 후 법원직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싶습니다. 내년 3월에 조선대학교에 진학대학교에 진학하여 더 넓은 법학의 바다를 마음껏 헤엄 칠 수 있도록 기회를 얻어 수업에 열중하고 있을 저의 모습을 가득히 소망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 9. 일본어학부(과) )
우리나라를 둘러싼 일본은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우리 민족의 운명과 불가분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일본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만족의 장래와 직립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일본문화에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일본의 말과 문화를 알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일본어과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고, 이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두 부모님과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릴 적 6.25를 겪고, 월남전 참전 용사이신 자랑스런 아버지와 자식을 위해선 어떤 고난이라도 달게 받으신 어머니께선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힘을 저에게 길러 주셨습니다.
정이 많고 소탈한 성격으로 친구들이 많은 것은 저의 장점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눈물이 많고 급한 성격은 주위사람들을 가끔 불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요즘, 저의 우상인 국제회의 통역사 양미선 언니는 국제화 시대에 꼭 필요한 능력을 갖춘 제가 존경하는 사람 중 한사람이기도 합니다.
저도 언니처럼 한일 관계를 연결할 수 있는 끈이 되고자 합니다.
만약 제게 일본어과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장 먼저 일본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고 두 번째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고 세 번째는 이러한 능력을 취득할 계획입니다. 첫 번째 일본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에 관련된 문화서적과 영상매체와 일본 여행을 통한 체험 학습을 할 계획이며 유학이라는 과정을 밟을 예정입니다. 두 번째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은 꾸준한 언어학습을 하여 밟을 예정입니다. 두 번째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꾸준한 언어학습을 하여 단지 의사소통만 하기 위한 학습이 아니라 우리말과 일본말을 비교하며 기초가 탄탄한 언어를 학문적으로도 연구하고 싶습니다. 세 번째는 내가 노력하고 준비한 학습내용과 경험으로 자격증을 취득하여 한일 문화 교류에 한국어와 일본어의 학부네 일조를 하고 싶습니다.
(10. 인터넷소프트웨어공학부(과))
저는 1984년 1월1일 전라남도 진도군 조포면이라는 작은 섬에서 1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이해심 많으신 아버지와 인자하신 어머니 아래 자율적인 가치관 속에서 능동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 왔습니다. 그런 나에게 아버지는 항상 훌륭한 조언자가 되어 주셨고 자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시고자 우리 5남매를 각지에 보내시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하고 계십니다. 저 또한 부모님의 생전에 부응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광주에 살면서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한때 컴퓨터에 중독되어 중학교 시절을 남들보다 보람되고 알차게 지내지는 못했지만 인생에 있어서 삶의 방향을 제시해준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친구들의 컴퓨터를 고쳐주면서 좋은 대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고, 자신감도 얻게 되었으며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을 장래희망으로 갖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 동기도 컴퓨터에 대한 열의는 변함이 없었고 학교생활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2,3학년 때에는 대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리더십을 기를 수 있었으며, 독학으로 2학년 때 워드1급을 취득했고, 인터넷에 흥미를 느껴 홈페이지도 만들어 봤습니다.
또, 컴퓨터에 관련된 단원에 있어 기술과학에서는 학업우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고3이 되면서 입시에 대한 압박감에 컴퓨터 공부에 소홀하였으나 관심은 여념이 없었고 대학진학에 있어서 인터넷소프트웨어공학부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을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조선대학교에서의 대학생활이 주어진다면 몇 가지하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 영어회화를 배워 국제화 사회를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게 할 것이며, 대학생으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철학, 심리학, 문학 등 기본적인 소양을 쌓은 것입니다. 다음으로 동아리활동을 통해 취미생활을 키워나가고 더 나아가서 취미생활을 키워 나의 특기로 만들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동아리활동을 함께 하는 선. 후배와도 많은 인간관계를 형성해 가며, 나에게 부족한 면들을 채워 나갈 것입니다. 제 삶의 신조는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항상 도전하자'입니다. 아직도 정보화 사회에는 문제점이 많습니다. 특히 인터넷에서는 타인의 정보를 유출하고 약용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저는 보안을 제가 도전할 분야로 정했습니다. 이 분야의 최고권위자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