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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정재필 시집 완사浣紗 가는 길(작가마을)
상실감과 그리움, 그리고 치유의 시학
양 왕 용(시인, 부산대 명예교수,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최근에 작고한 임수생(1940~2016) 시인으로부터 꽤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가 있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반 자기와 교류한 젊은 시절의 문학청년 가운데 가장 시를 잘 쓰는 사람은 동래여고 국어교사인 정재필 선생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직 시단에 데뷔하지 않고 있다면서 정 선생과 어울린 이야기를 꽤 구체적으로 하곤 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정재필 선생을 궁금해 하고 있었다. 2008년 남강문우회(남강문학회 전신)가 인터넷 카페의 모임으로 발족하고 필자도 거기에 참여하면서 드디어 정재필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필자의 고등학교 선배인 성종화 시인과는 진주중학교 동기이고 중학교 시절부터 함께 시작활동을 하여 《학원》과 《학생계》 등에 시를 발표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문학평론가 이유식 선배와도 중학교 동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재필 선생은 진주사범학교에 진학하여 초등학교 교사로 잠깐 근무하다가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 졸업하고는 경남과 부산에서 주로 여자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시작에 전념하지 못하다가 정년 후 계간 《문학예술》에 시인으로 데뷔하여 왕성한 시작활동을 하면서 남강문우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말하자면 시인이자 남강문우회 회장인 정재필 선생을 만나게 된 것이다. 정재필 시인의 뒤를 이어 성종화 시인, 그리고 김상남 동화작가가 각 1년씩 회장을 맡았다. 그러다가 필자가 2011년부터 남강문우회 회장을 맡아 회의 명칭을 남강문학회로 바꾸고 2년 임기의 회장을 연임하여 4년 동안 연간 회지를 내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초대 회장인 정재필 시인의 자문을 받게 되면서 더욱 가깝게 되었다. 그 동안 정재필 시인은 제1시집 『산에서 듣다』(2011, 전망)와 진주중 동기인 성종화 시인, 정봉화 수필가와 3인 작품집 『남강은 흐른다』(2015, 월간문학출판부)를 엮어 내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강희근 시인은 3인집 해설에서 이 세 사람을 일러 그 동안 교직으로 법조인으로 혹은 기업가로 삶을 산 뒤에 문학에 입문하였다는 점에서 “선인생 후문학‘을 줄여 ‘후문학파’라고 명명하였다. 김열규(1932-2013) 문학평론가는 정 시인의 제1시집 해설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일상과 자성自省의 시학>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고 있다. 제1시집에는 발문 형식으로 이유식 평론가가 <50년의 긴 우정 그리고 문정文情의 세월>이라는 제목으로 중고교 시절의 정 시인의 학생문사로서의 활약상과 부산대학교 동문으로서 함께 학창시절을 보내며 ‘간선문학회’를 결성하고 활약한 경위 등을 자세히 적고 있다. 이상과 같은 글들의 연장선으로 제2시집 『완사浣沙 가는 길』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2) 정재필 시인의 시는 절제되어 있지만 촉촉한 감동을 준다. 촉촉하다는 표현을 쓴 까닭은 그의 시가 드라이 하지 않다는 측면을 강조한 면도 있지만 한국인의 전통이라고 볼 수도 있는 한恨의 정서를 간직하고 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 한의 밑바탕에는 상실감과 그로 인한 아련한 그리움이 관통하고 있다. 상실감의 대상은 20대 초반 흠모한 여성일 수도 있고, 20대 후반 정 시인이 장가도 가기 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을 대상으로 그러한 그리움을 형상화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그리움의 정서가 지나치게 절제되지도 않고 지나치게 노출되지도 않고 있다. 말하자면 미학적 용어를 빌리면 제재에 대한 적절한 거리 조정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 보기는 그의 첫 번째 시집 『산에서 듣다』(2011)에서는 일상에 대한 감정이 절제되지 않고 노출된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두 번째 시집인 『완사浣紗 가는 길』은 5년이 지나 그의 연치가 80에 가까워지고 있으면서도 시어에 대한 과감한 생략과 사물에 대한 적절한 거리를 가짐으로써 나이가 많아지면 감정을 절제하지 못해 말이 많아진다는 통념을 깨뜨리고 있다. 이러한 시적 역량은 그의 인격적 수양에서 왔고 어린 시절부터 갈고 닦은 시적 재능에서도 왔다고도 볼 수 있다. 우선 그의 아련한 그리움이 배여 있는 시 한 편을 살펴보기로 한다.
꽃샘추위 속 떨며 돌아서던 당신이 보인다 혼자 외롭고 말겠다던 콧대 높은 갓 스물 당당하던 당신이 보인다
나뭇잎 작은 흔들림에도 목젖 보이도록 크게 웃던 당신이 우산에 듣는 빗방울 소리에도 귀 열던 당신이
어쩌다 토라진 말 한마디 입 닫고 귀 막은 벙어리 되어 허물 수 없는 벽 차라리 매몰찬 강새암 되어
강바람 매서운 남강다리 아침저녁 입 앙다물고 건너던 모습 멀리 타관 하늘 아래서도 보인다 오랜 세월 흘러서도 보인다
-「천리안千里眼」 전문
위의 시 「천리안千里眼」은 어쩌면 정 시인의 이루지 못한 첫 사랑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다. 그러한 추측을 해 볼 수 있는 까닭은 이 시 마지막 연 첫 행 ‘강바람 매서운 남강다리’라는 구체적 공간 때문이다. 정 시인은 진주 장대동이 고향이고 진주중학교를 거쳐 그 당시 남녀공학이던 진주사범학교를 다녔고, 졸업 후 잠시 초등학교 교사를 하였다. 따라서 이 시행과 그의 청소년 시절 머문 공간으로 인하여 구체적인 그리움이라고 유추해 본 것이다. 사실 첫 사랑은 누구에게나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는다. 따라서 이 시는 정 시인의 구체적인 체험으로보다 개연성 있는 그리움으로 독자들, 특히 첫 사랑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시적화자는 오랜 세월 진주로부터 천리나 떨어진 먼 타관에서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추억을 떠 올린다. 그런데 그 추억이 크게 공감되는 까닭은 도처에 등장하는 감각적 이미지 때문이다. 첫째 연의 ‘꽃샘추위’, 둘째 연의‘ 나뭇잎 작은 흔들림’과 ‘우산 에 듣는 빗방울 소리’ 그리고 마지막 연의 ‘강바람 매서운 남강다리’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이미지들은 차가움과 부드러움으로 나누어진다. 이렇게 헤어짐이라는 상처를 대조적 이미지로 대비시키는 솜씨에서 정 시인의 시적 역량을 엿볼 수 있고, 독자들도 상처를 공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가 얼마나 아픈 체험인가는 셋째 연에 응축되어 있으며, 그것이 극대화된 시어가 다소 생소한 ‘강새암’이라는 강한 샘 즉 질투라는 시어이다. 이 시어는 마지막 연의 ‘강바람’ 혹은 ‘남강다리’와 연결되어 미묘한 애매성을 가지게 된다. 이상과 같이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시적 주제가 된 작품들은 이 시집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열거하면, 「가슴 한 쪽」, 「걸어서 그대까지」, 「그대 떠나고서야」, 「모른다」 등이 있다.
다음으로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형상화 된 시 한 편을 살펴보기로 한다.
어머니 당신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명지바람과 다사로운 햇살 라일락 은은한 향기 몰고 우리 곁에 돌아왔습니다
매양 열려있는 당신의 손길 속에서 흔들리는 영혼들 더 흔들리지 않도록 성난 민심 더 성나지 않도록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알맞은 시간의 추錐에 맞추어 화해와 치유 이뤄지게 하소서 모든 것 제 자리 찾게 하소서
-「다시 5월에」 전문
위의 시는 정 시인의 첫 시집 『산에서 듣다』(2011)에 수록된 「5월에」와 함께 읽어 보는 것이 정 시인의 5년 동안의 시적 변모와 상처의 치유 방향의 확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정 시인은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기 전 어머니를 천국으로 보냈다. 그의 어머니의 기일은 5월 5일이다.
당신을 떠나 웃고 즐기는 것보다 당신 곁에 머물러 외롭고 슬프게 하소서 당신을 떠나면 우리는 한갓 눈 어둔 짐승에 지나지 않습니다.
눈부신 날 5월에 매양 열리는 당신의 손은 다사로운 햇살 싱그러운 바람
해마다 5월이면 우리는 당신 곁에 모여 당신의 아픔과 슬픔의 가지 끝에 영글었던 아름다운 시간의 강에 잠시 목을 적십니다
삶의 뜨락 저편에 고이 묻어둔 당신의 하 많은 아픔과 슬픔을 이제는 우리도 알게 하소서 환한 미소로 새기게 하소서
-「5월에」 전문 (제1시집 『산에서 듣다』 수록)
우선 제1시집의 「5월에」는 어머니 ‘당신’의 기일인 5월 5일에 아들과 딸 그리고 손자 손녀들이 어머니 산소에 모여 어머니와 할머니를 생각하는 것으로 시적공간이 설정되어 있다. 시적화자는 첫째 연에서 어머니 떠난 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어머니의 생전의 아픔과 슬픔을 생각하면서 웃고 즐기기보다 외롭고 슬픈 마음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 슬픔이 결코 슬픔으로 끝나기를 소망하지는 않는다. 둘째 연에서는 5월의 계절 감각에 빗대어 어머니의 다사로운 손을 기억하고, 셋째 연에서는 이 순간을 ‘아름다운 시간의 강’으로 감각화한다. 그러다가 마지막 연에서는 어머니의 아픔과 슬픔을 환한 미소로 새기기를 소망한다. 말하자면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자녀들은 돌아가실 때의 슬픈 기억과 어머니에 관련된 추억을 되새기고, 손자 손녀들은 뵙지 못한 할머니의 사랑과 인고의 생애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그러나 「다시 5월에」는 이러한 가족사가 배제되어 있다. 첫째 연에서 화자는 어머니를 부르면서 시를 시작하고 둘째 연에서 감각적 이미지가 등장하지만, 셋째 연에서는 영혼이라는 종교적 관념과 젊은이들의 일자리 문제와 성난 민심이 등장한다. 말하자면 어머니라는 가족사에서 영혼이라는 인간 존재의 근본과 사회 문제로 확대되는 셈이다. 이렇게 어머니의 슬픔에서 가족사가 배제되는 것은 세월이 그만큼 흘렀다기보다 정 시인의 신앙인 가톨릭 즉 가톨릭시즘적 세계관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 시인의 다른 작품 「어머니의 성모상聖母像」에 보면 어머니로부터 그의 신앙을 물러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낮은 데’와 ‘작은 것’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신앙 역시 어머니의 가르침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마지막 넷째 연에서 절제, 그리고 화해와 치유를 지향하는 것 역시 어머니의 신앙에서 왔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결국 슬픔을 주는 것도 어머니이지만 세상에 대한 염려로 끝나지 않고 갈등을 치유하고 화해하라는 가톨릭 신앙의 본질도 정 시인은 어머니와 어머니의 신앙 속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매우 바람직한 신앙의 자세라고 필자는 보고자 한다. 그리고 정 시인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시적 세계 역시 가톨릭시즘을 바탕으로 한 치유의 시학이라 보고자 한다.
다음으로는 자연을 제재로 한 시에서조차 상처에서 오는 그리움과 그 아픔을 승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 시 한 편을 인용해 보기로 한다.
1 어느 결에 그것은 꽃이 되었던가
메아리 메아리로 하여 눈 멀어간 사랑 같은
그것은 어느 결에 회한悔恨의 꽃이 되어 울고 왔던가
손길이 되는 차고 넘쳐서 차고 넘쳐서 저리 사랑으로 균열龜裂진 가슴을 다스리는 손길이 되는
어느 땐가 그것은 지고 있는 꽃보라
하여 그것은 바다같이 설레는 무성한 숲이 되고
또 어느 결에 이리도 체념體念하는 의지가 되었는가
2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해질 무렵 어느 퇴락한 정원에서 은은히 밀려오는 종소리를 듣듯 열린 체념體念의 자세로 무슨 가난한 이의 이름을 생각한다든지 또는 짧은 기도의 한 구절을 외워본다든지 하는 것은
어쩌면 햇살 쏟아지는 어느 하루 베풀으신 이의 충만한 말씀이 없을까 하고 아득한 날로부터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습니다
-「동목冬木」 전문
이 작품은 정 시인의 시 가운데 비교적 호흡이 긴 시이다. 그 까닭은 1과 2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의 경우 1과 2가 어조가 다르다. 즉 2의 경우는 경어체 종결어미를 쓰고 있다. 다만 동일한 대상 즉 동목冬木을 시적 제재로 하여 상상력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한 편의 시로 간주될 수 있다. 1의 경우 시적화자는 잎은 모두 떨어진 채 나뭇가지만 남은 앙상한 동목 즉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시적 상상력을 전개한다. 그런데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발견하는 정서나 관념은 봄날의 잎새나 꽃, 혹은 여름날의 무성한 녹음에서 상식적으로 인식되는 풋풋함과 싱그러움, 그리고 그러함에서 유추되는 젊음과 희망 혹은 성숙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면 겨울이라는 계절이 가지고 있는 죽음과 절망 등과도 거리가 있다. 그가 발견하는 꽃은 메아리로 눈멀어간 이루지 못한 사랑이요, 그것을 회한하는 서러움의 정서이다. 뿐만 아니라 꽃보라나 무성한 숲조차 사랑으로 갈라진 가슴이요, 이러한 아픔들을 체념하는 의지가 된다. 따라서 이 시는 우리의 전통적 정서인 한恨에 연결된다. 그러나 그것이 향가나 고려가요 그리고 조선조 시대의 시가들과 통하는 한의 정서는 아니다. 말하자면 정 시인이 생득적으로 가지고 있는 서러움의 정서가 겨울나무를 제재로 형상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경우 1에서는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해 어조에서 감정의 노출이 심하다. 말하자면 미적 거리가 적절하지 않고 부족하다. 따라서 이 작품이 여기서 끝났다면 바람직한 치유의 시학에 이르지 못하였을 것이다. 2에서는 동목 즉 겨울나무가 그리움이나 서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구도자의 모습을 발견한다. 따라서 그 어조도 자연스럽게 경어체가 된 것이다. 시적화자가 겨울나무의 앙상한 모습에서 발견한 것은 비록 퇴락한 정원에서 은은한 종소리에 귀 기울이는 체념의 자세이지만 가난한 이의 이름을 생각하고 짧은 기도 한 구절을 외는 구도자의 모습이다. 이렇게 그리움 혹은 서러움의 정서와 햇살 쏟아지는 은총을 베푸신 하느님의 충만한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중적 상징성을 형상화하기 위하여 이 시는 1과 2로 나누어져 있다. 결국 이 작품에서 정 시인은 서러움의 정서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은 그가 가지고 있는 신앙을 바탕으로 한 가톨릭시즘이라는 것을 고백하면서 치유의 시학을 전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4편의 작품에서 정 시인의 상실감으로 인한 그리움에서 오는 한의 정서는 그 자신의 어머님으로부터 물러 받은 천주교 신앙을 기반으로 한 가톨릭시즘으로 치유된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3) 정재필 시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또 다른 시적 공간은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일상이며 이러한 경향의 시들은 서러움이나 그리움의 정서와는 또 다른 잔잔한 행복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이 작품들은 감정이 절제된 담담한 어조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들에서는 가족들을 지극히 사랑하고 친구들과는 아픔도 나누어 가지고 있다. 이러한 태도 역시 그의 신앙에서 오는 이웃 사랑의 실천이라고 볼 수 있다.
나이 들어 무릎 관절 안 좋아진 아내 관절 치환 수술 받고 재활 중인데 생후 10 개월 된 손녀 걸음마 시작했다는 연락이 왔다
전송된 동영상 보여주자 아내는 요 녀석 나보다 먼저 걷네 할미 재활 끝나면 누가 잘 걷나 보자
올해 일흔인 아내의 이모작 인공관절 손녀의 일모작 배냇 관절에 턱없이 못 미치겠지만 아무렴 새내기 아기 걸음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이녁 걸음 당할까
터무니없는 흰 소린 줄 뻔히 알면서도 남편 역성 고마운지 아내 얼굴 활짝 펴진다 재활의 걸음마 부지런히 뗀다
-「걸음마」 전문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가족은 인공관절을 한 아내와 생후 10개월 된 손녀이다. 아내는 인공관절에 적응하기 위한 걸음 연습을 하고 손녀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고 있다. 걸음을 배운다는 행위를 매개로 하여 아내 사랑과 손녀 사랑을 한 작품 속에 병치시키고 있다. 아내를 위하여 손녀의 배냇 관절보다 인공관절로 걷는 걸음을 칭찬하는 남편의 아내 사랑이 담뿍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러한 아내 사랑은 다른 작품 「열쇠」에서는 단독주택에 사는 정 시인이 열쇠를 집에다 두고 나와 아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무료함을 달래다가 아내 돌아오는 모습을 ‘저만치 걸어오는 아내의 걸음새 아아/지상에서 아니 우주에서/가장 아름답고 눈부신 모습이 된다’라고 표현한 부분에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부모가 다 돌아가신 정 시인 입장에서 장인어른에 대한 사랑 또한 자상하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장인어른 문병이 시적제재가 된 연작시 「장인어른」 5편에서는 가족 사랑과 노인 문제, 죽음 등이 복합되어 있지만 근원적인 바탕에는 장인어른에 대한 사랑이 깔려 있다.
마지막으로 이 시집의 제목이 되고 있는 「완사浣紗 가는 길」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이 작품이 《남강문학》 5호(2013)에 발표되고 난 뒤에, 필자는 계간지 《문학의 강》 2013년 가을호에 <나의 추천작>으로 소개한 바 있다. 말하자면 발표할 때부터 필자에게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이번 시집에 수록하면서 정 시인은 몇 군데 개작을 하였다.
어려서 진외가陳外家 찾아 완사 가던 길은 개구리 형상으로 엎드린 개굴바위와 너우니 얕은 강물 모세의 기적처럼 가르며 건너던 버스길로 신기하기만 했다
반세기만에 만난 그 무렵 까까머리 적 친구들이 노중路中의 저녁 식탁에 초대되어 대평 내촌리에서 완사까지 잘 닦은 진양호 둘레길 수몰된 개굴바위와 버스길 얘기하며 걷는데
고향집과 유년幼年을 이곳 호수 바닥에 묻었다는 한 친구가 허리까지 물에 잠긴 옥녀봉玉女峰 가리키자 물오리 한 마리 낙조落照 아름다운 호면 위를 열심히 헤엄치고 있었고 “어르신들 완사까지 모셔 드릴까요?” 승용차 멈춰 세운 젊은이의 순박한 인심이 숨 가쁘게 달려온 덕천강의 숨 고름과 어울려 느릿느릿 진양호로 섞여드는 길목쯤
한때 보부상과 객줏집으로 붐볐던 완사가 진양호 댐 수위에 쫓겨 송비산 기슭으로 밀려난 완사가 손수 짠 비단 덕천강에 씻으며 사랑을 기다리던 옥녀의 완사浣紗가 저만치서 한 집 두 집 불을 밝히고
어느 새 송비산 중턱에 걸터앉은 완사의 초승달은 꼬부장한 손길로 보부상들의 왁자한 고함소리를 진양호 호수 바닥에 묻힌 친구의 유년을 옥녀의 애잔한 전설을 혼자서 부지런히 건져내고 있었다
-「완사浣紗 가는 길」 전문
우선 이 시에 등장하는 지명 완사浣紗에 대한 설명부터 하기로 한다. 완사는 경남 사천시 곤명면의 면 소재지 마을이다. 남강과 그 지류 덕천강이 만나는 수계 마을로 조선조부터 물산이 집결하여 번성한 마을이다. 완사라는 지명의 유래는 옥녀봉의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옥녀가 비단을 짜 사랑하는 민 도령을 기다리며 덕천강에서 내려오는 물에 씻었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비단을 씻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완사는 1962년부터 1970년까지 건설된 남강댐 공사로 기존의 마을이 수몰되어 송비산 기슭으로 이전되었다. 최근에는 발달된 교통으로 진주 인근의 먹거리 마을로 각광받고 진양호 둘레길로 역시 수몰되어 이전한 진양군 대평면 마을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말하자면 산업화로 수난을 당하고도 다시 번성한 마을이 바로 완사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화자인 정 시인과 시 가운데 ‘노중’이라는 아호로 등장하는 정봉화 수필가와 ‘고향과 유년을 이 곳 호수 바닥에 묻었다는 한 친구’가 등장한다. 이 한 친구가 고향이 남강댐에 완전히 수몰된 성종화 시인이다. 이 세 사람은 앞에서 언급한 삼인집 『남강은 흐른다』의 장본인이다. 그런데 정봉화 수필가가 원래 고향은 진주시 금산면인데 남강댐의 수려한 풍광 때문에 조상의 산소를 대평면 내촌리로 옮기고 집까지 지어 서울과 진주를 오르내리며 살고 있다. 말하자면 성 시인의 잃어버린 고향에 정봉화 수필가가 살고 있는 셈이다. 내촌리 집에 정봉화 시인이 중학교 시절 두 친구를 초대하여 머물면서 정 시인의 진외가 마을인 완사로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하고 진양호 둘레길을 걷는 데서 이 시는 시작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인연과 사연이 중첩된 공간이니 가면서 세 사람의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대부분의 시가 호흡이 짧은 특색으로 긴장감과 감동을 주는 정 시인의 작품에 비해 다소 서술적인 요소가 개입됨으로써 행도 길고 연도 길다. 그러나 정 시인의 유년시절의 에피소드와 성 시인의 물에 잠긴 고향에서의 추억과 옥녀봉의 전설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결코 지루하지 않다. 게다가 걸어가는 어른들을 태우고 싶은 젊은이의 인심까지 삽입되어 더욱 복합적이고 미묘한 감동을 준다. 필자는 이 세 분들의 후배로 이들의 우정이 부럽다는 말을 종종 한다. 정 시인의 상실감과 그로 인한 그리움에서 오는 결핍이 이러한 우정으로 충분히 채워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시골을 고향으로 하고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수몰지구를 고향으로 한 독자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작품이다. 즉 , 산업화로 인한 인간성 상실을 극복하는데 기여할 작품으로 평가 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시집의 가장 대표작이자 정 시인의 대표작으로 이 작품이 자리 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집의 제 5부에는 정 시인의 유년기의 추억이 제재가 된 연작시 「장대동 이야기」 8편이 편집되어 있다. 이 작품들의 주제는 고향 상실 혹은 부재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정 시인이 더욱 오래 건강하셔서 고향상실감까지 극복하는 치유의 시학으로 많은 작품을 창작하여 다음 시집이 상재될 것을 소망하면서 해설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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