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소소개
보문산 공원은 중구 대사동 외 11개동 일원으로, 해발 457.6m인 보문산(寶文山)은 대전의 남쪽시 중심부에 근접해 있는 곳으로 보물이 묻혀있다 하여 '보물산'으로 부르다가 보문산으로 되었다는 유래가 있으며, 대전시민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대전의 대표적인 공원이며, 또한 공원 내 약수터가 많고 봄에는 진달래와 벚꽃이 많이 피어나고, 가을에는 그간 단풍림 조성으로 고운 단풍을 구경할 수 있는 시민보건, 휴양지로서의 대표적인 명소라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보문산성과 보문사지, 야외음악당, 전망대가 있으며, 시루봉길 등 10여 개의 등산로와 20여곳의 약수터가 골짝마다 있어 시민들이 즐겨 찾습니다.
특히 보문산성은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 9호로 지난 1992년 12월 백제시대 산성 중 전국 최초로 복원되었습 니다. 둘레가 280m인 테뫼식 석축 산성으로 성안에 있는 장대루에 오르면 광활한 시가지의 발전상이 한눈에 들어와 장관을 이룹니다.
보문산에서는 등산과 함께 위락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데 사정공원의 실내 롤러스케이트장, 축구장을 비롯한 각종 레포츠 시설, 야외음악당, 청년광장 등이 있으며, 시루봉 아래 고촉사에는 미륵상을 닮은 자연 암석이 있습니다.
명소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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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민의 휴식처로 사랑 받고 있는 보문산은 다음과 같은 전설들에 의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첫째 전설로는 우화형인데, 옛날 지금의 보문산 기슭에 아들 오형제를 둔 한 농부가 살았습니다.
장성한 아들들은 각각 자기 뜻대로 직업을 달리하여 분가를 하게 되자, 늙어 노인이 되도록 혼자 살게 되었습니다. 어느 해에 몹시 가뭄이 들어 연 못에 한 방울의 물이 없도록 마르자, 그곳에서 두꺼비 한 마리가 나와 농부 앞에 나타났습니다.
농부는 두꺼비에게 물을 떠다 주었더니 두꺼비는 물을 마신 뒤에 어디론지 사라졌습니다.
그 다음해도 가뭄이 계속되었는데, 연못에 나가보니 작년의 그 두꺼비가 접시를 가지고 와서 농부 앞에 놓고 사라졌습니다. 집에돌아와 그 접시에 담뱃재를 떨었는데 다음에 보니 접시에 재가 가득 담겨져 있었다. 이상한 조화라고 생각한 농부는 동전을 놓아 보았습니다. 이튿날 보니 동전이 또 한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큰 부자가 되었는데, 이 소문을 들은 아들들이 다투어 접시에 탐을 내게 되었습니다. 아들들의 욕심과 시기를 염려한 농부는 그 접시를 몰래 뒷산에다 묻고 돌아오다가 숨이 차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그 접시를 찾았으나 영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보물이 묻혔다하여 보물산, 다시 변하여 보문산이라 하였습니다.“
'둘째 전설은 효자형 전설인데, 옛날 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착한 나무꾼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그 소문이 이웃 마을까지 퍼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꾼에게는 술만 먹고 주정을 일삼는 형이 하나 있어 부모와 동생을 몹시 괴롭혔습니다. 어느날 나무꾼은 나무를 한짐 해가지고 내려오는 길에 조그마한 옹달샘 옆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그때 샘 옆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죽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무꾼은 재빨리 물고기를 샘물 속에 넣어 주었습니다. 물고기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듯 까불까불거리면서 사라졌습니다.
조금 후에 눈을 돌려보니 물고기가 놓여 있던 곳에 하나의 주머니가 놓여 있었습니다. 주머니를 집어보니 그곳 에 '은혜를 갚는 주머니'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신기해서 나무꾼은 집에 돌아와 주머니에 동전 하나를 넣었더니, 순식간에 주머니에 동전이 마구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무꾼은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 을 안 형이 그 보물주머니를 빼앗을 욕심으로 동생에게 주머니를 한번만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착한 동생이 주머니를 형에게 보여주자 형은 주머니를 가지고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동생이 알아차리고 형을 쫓아 주머니를 도로 찾으려 옥신각신하는 가운데 주머니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화가 난 형이 주머니를 발로 짓밟는 통에 그 주머니 안에 흙이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주머니에 흙이 걷잡을 수 없이 계속 쏟아져 나와 쌓이고 쌓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쌓인 흙이 드디어 큰산을 이루니, 그 산 속에 보물주머니가 묻혀 있다 하여 보물산이라 하였고, 그후 보문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셋째로는 도승형 전설인데, 옛날 한 대사가 소제동 방죽을 지나다가 해가 저물었는데 갑자기 논두렁에서 '우리 백성이 3년 가뭄으로 다 죽겠으니 우리 성을 살려주시오'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자세히 알아보니 용궁의 왕이었습니다. 이에 대사는 물고기를 모아 가뭄으로부터 구해줬습니다. 그러자 용궁의 왕이 그 은혜로 복조리 하나를 대사에게 주었습니다. 대사는 복조리를 망태에 다 간직하고 보문산 근처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날이 어두워 불빛이 나는 집을 찾아가니, 단칸방에 일곱 자식을 데리고 사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부인이 대사 의 저녁으로 진수성찬을 차렸으나 아이들에게는 시래기죽을 주었습니다. 부인의 간청으로 저녁을 먹고 아랫목에서 하룻밤믈 잘 지낸 대사는 이튿날 부인에게 복조리를 건네주었습니다. 부인이 복조리에 쌀과 엽전을 넣었더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쌀과 돈이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큰 부자로 소문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 복조리의 신통함을 알게 된 자식들이 그 복조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을 하였습니다. 부인은 복조리를 강변 모래에 묻었습니다. 그때 복조리에 모래가 들어가자 다시 모래가 쏟아져 나와 점점 늘어가 더니 큰 산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이 산은 보물산, 곧 보문산이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등산로안내
등산로는 십여 개의 코스가 있는데 야외음악당에서 시루봉으 로 오르는 길은 시루봉 길이라고 합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다닙니다. 청년 광장에서 시루봉에 오르는 길은 문필봉길이라 고 합니다. 옛날 호랑이가 다녔다는 길로 호동에서 가늠골을 거쳐 보문산성에 이르는 길이 있습니다. 범바윗길이라고 부릅 니다.
또 찬샘길은 남보살 약수터에서 산성동 탑골로 이르는 코스로 약수도 있고 전설도 있는 길이라 정취가 있습니다.예날의 케이블카에서 전망대에 이르는 길은 한적골길, 남대전고에서 전망대에 이르는 길은 부용길, 전망대에서 산성에 이르는 길은 산성길.
무수동길 (약 1시간30분 소요)
- 무수동여경암 → 산등성이 → 시루봉
- 무수동 → 배나무골 → 구완동고개 → 산등성이 → 시루봉
윗범골길 (약 2시간소요)
이사동길 (약 2시간소요)
보문산 내 명소
보문산 야외음악당
1961년 군사혁명 직후 당시의 대전시장 배무남(裵武男) 육군대령은 헐벗은 보문산을 산림녹화할 목적으로 당시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동원하여 대대적인 나무심기를 하였습니다. 주로 오리목나무와 아카시아 등 속성수를 심도록 하면서 이곳을 공원으로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사업이 지금의 야외음악당 건립과 전망대 건립이었습니다. 중구 대사동의 보문산 중턱에 세워진 이 야외음악당은 지금 각종 시민을 위한 연예행사 뿐 아니라 매일아침 6시에는 에어로빅까지 무료로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단체가 있어 시민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보문산 전망대
한밭종합운동장에서 서편으로 높이 올려다보이는 보문산의 중턱에는 대전의 전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전망대가 우뚝 서 있습니다. 대전시에서는 보문산을 공원으로 개발하면서 1960년대에 이곳에 전망대를 세우고 넓게 운동장을 깎아 그 전망대 앞에다 시민헌장비를 세웠으며, 비둘기 사육과 함께 쾌적한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도록 하였습니다. 최근에 이르러 이 전망대가 비좁고 낡아 새로이 확장하여 이층으로 세우니 그 시야가 넓어 시민의 전망대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또한 야간에도 시가지의 야경을 감상하는데 더없이 좋아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보문산문화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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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산성 보문사지와조 보문산마애여래좌상 봉소루
첫댓글거운 산행되시기 바랍니다.
참여하고픈 마음은 간절하나...거리가 머네요
안산하십시요
즐거운 산행되세요,,,수고많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