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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여름나기
이 예 훈
으이구, 나 같으면 안 피구 말겠네... 곤한 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심을 한다고 했는데도, 눕기가 무섭게 가볍게 코까지 골던 아내가 그예 잠꼬대처럼 한 마디 하고 만다. 담배를 찾아들고 베란다로 나가는 나를 볼 적마다 잊지 않고 볼멘소리를 던지는 아내의 버릇은 순전히, 끽연 장소가 앞 베란다에서 뒤쪽으로 옮겨지면서 생긴 것이다. 여태껏 당연한 것으로 여겨오던 내 흡연에 아내가 갑자기 짜증을 내는 이유는 그러니까 흡연, 그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내가 그곳을 드나드는 것에 필요 이상으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아내의 태도에 나는 불쑥불쑥 의구심을 품는다. 물론 늘상 시간에 쫓기는 아내가 제 때에 챙기지 못한 온갖 잡동사니들을 있는 대로 늘어놓고 사용하는 장소인지라, 아무리 상대가 남편이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말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내의 잔소리를 들으며 베란다로 나가는 순간만은 왠지 그녀의 그 설명조차도 지나치게 과장된 변명쯤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사실 내 의구심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곳은 지금까지 그녀가 주로 사용해온 그녀의 공간이지 않은가. 어쩌다 들어갔던 내 눈에 띄었다면 그녀도 얼마든지 볼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가 만약 허구한 날 그 창문을 훔쳐보면서도 지금까지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면 그건 여간 놀라운 게 아니다. 내가 알고있는 한 아내는 그 정도로 엉큼한 여자는 못 된다. 아내는 자신과 상관이 없는 일이면 아무리 큰일이 눈앞에서 벌어진다고 해도 그 것을 자신의 의식 안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특이한 재주를 갖은 여자다. 오히려 아내의 그런 성격을 믿는 쪽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집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건 그녀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그것은 그녀가 알 바 아닌 것이다.
아내의 염려대로 뒤 베란다는 두서 없이 어질러져 있다. 나는 아내가 손빨래를 할 때 사용하는 낮은 플라스틱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구석에 쌓아둔 빨래뭉치에서 시큼한 땀내가 끼쳐온다. 짙은 어둠에 가려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나는 발 디딜 틈 없이 늘어 벌려진 잡동사니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떠올릴 수가 있다. 끝내 아무런 일거리도 찾지 못한 채 방학을 맞아 종일 집에서 빈들 거린지가 벌써 한 달을 넘기고있는 것이다. 그렇다. 요즈음의 내 흡연습관에 아내가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굳이 흡연장소에 한정시키려는 것은 일종의 자기도피이다. 아내의 지친 신경에 생선 가시처럼 걸리적거리는 것은 정작 나의 새로운 흡연 습관이 지니고 있는 불길한 징후일게 분명하다. 방학이 시작되기 전 주당 열일곱 시간의 강의를 위해 세 군데의 도시를 떠돌아야 했을 때는, 아내가 거실에 이부자리를 깔기 위해 앞 창문에 두터운 커튼을 친 이후에까지 담배를 피워야 할 필요는 느끼지 않았다. 그 때는 나도 아내처럼 낮 동안의 신성한 노동이 주는 피로를 풀기 위해 밤의 안식을 누릴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커튼을 침으로 해서 우리의 보금자리 밖으로 아득히 밀려난 듯한 앞 베란다를 포기하고 온갖 잡동사니가 널려있는 뒤 베란다를 찾아들기 시작한 것은 결국 내 일시적인 실직 상태가 만들어 낸 부산물인 것이다. 그 것이 비록 일시적이라고 하지만 결혼한 지 십 년이 되도록 안정된 직장을 갖지 못한 내게 닥친 일이고 보면 아내에게 암담한 미래의 모습을 암시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터였다.
그런데 나는 어느새 지금의 생활에 서서히 길들여지고 있는 나 자신을 느낀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늦잠과 나 자신을 적당히 방기한 채 공상에 빠져 지낼 수 있는 충분한 시간, 오후 시간을 긴 산책이나 사소한 볼일로 소비해도 좋은 한적함을 나는 언제부턴가 지겨워하기보다 오히려 누리고 있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그들은 아직 귀가 전인 모양이다. 그네들의 작은 공간이 깊은 어둠에 묻혀있다. 나는 입에 물었던 담배를 다시 셔츠 주머니에 넣는다. 실상 나는 이곳에서는 별로 담배를 피지 않는다. 처음에는 행여 채신머리없는 내 꼬락서니를 누구에게 들키지나 않을까 두려워 감히 담뱃불 붙일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지만 어느 때부턴가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고 어둠에 잠겨 앉아있는 것이 더 할 수없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 때부터 나는 굳이 내 몸을 숨겨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때도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어둠을 허무는 짓은 하지 않았다.
시커먼 어둠이 고여있는 그곳은 무슨 동굴의 입구처럼 웅숭깊어 보인다. 아마 오늘밤 내내 그곳에 불이 켜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동안도 그런 날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튿날이면 영락없이 돌아와 한나절이 다 가도록 침대에서 뒹구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날은 언제고 그녀 혼자뿐이다. 어딘가에서 밤을 지새우고 새벽에야 돌아오는 것이겠지. 아니면 그녀도 어둠의 뒤에 숨어 은밀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을까. 하지만 아닐 것이다.
그들은 뭘 숨기고 싶어하는 이들이 아니다. 오히려 거의 닫는 법이 없는 창문을 통해, 눈부시게 쏟아지는 불빛 아래에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행위를 보고 있으면, 저들은 어쩌면 자신의 내면에 가려진 은밀한 것들조차 투명하게 들어내지 못해 안달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그 날 아침 내가 그 엉덩이를 볼 수 있었던 것도, 그네의 거칠 것 없는 노출증 때문이지 내게 남의 방이나 엿보는 무슨 이상한 습벽이 있어서가 결코 아닌 것이다.
한 주일 내 부족했던 수면을 몰아서 채우기라도 하려는 듯 아내가 느긋한 늦잠에 빠져있던 일요일 아침이었다. 방학 동안 걸핏하면 낮잠으로 시간을 때우다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는 하릴없이 아침잠이 없어져 아내보다 먼저 눈을 뜨는 날이 많아졌다. 그 날도 일찌감치 잠이 깬 나는 언제 일어날지 모를 아내의 옆에서 텅빈 뱃속의 허기증을 달래며 아내가 어서 잠에서 깨어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밤늦게까지 티브이 앞에서 코미디 영화를 보며 희희덕거리던 아이들도 늦잠에 빠져있는 눈치였다. 한 여름의 열기는 진작부터 실내의 공기를 후덥지근하게 덥히고 있는데도 아내는 한밤중인양 곤한 잠을 잤다. 나는 불쑥 아내의 늦잠에조차 열등감이 이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긴 단잠에 빠질 수 있는 것도 고단하게 일한 후에야 누릴 수 있는 혜택인 것이다.
두터운 커텐으로 창문을 가린 거실에는 아직 어둠이 고여있었고, 고즈넉한 그늘이 드리운 아내의 얼굴은 모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작은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두 개뿐인 방은 모두 아이들에게 내주고, 거실에다 부부 침실을 마련해야하는 아내는 아무리 더운 날에도 이부자리를 치우기 전에는 진 녹색의 우중충한 커튼을 열지 못하게 했다. 앞면이 온통 유리로 되어있는 거실은 커튼만 걷으면 밖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게 아내의 생각이었다. 하긴 엎어지면 앞 동의 창턱에 목이라도 걸릴 듯 동과 동 사이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서민 아파트라서, 보자고 들면 앞 동 거실에 앉아있는 사람의 콧구멍 속이라도 들여다 볼 수 있는 지경이긴 했다.
마음 편히 잠에 빠져있는 아내의 여유로운 모습이 문득 오랫동안 잊고 살아온 부부간의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라도 했던 것일까. 나는 서툴게 머뭇머뭇 살아나는 욕구를 느끼며 아내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무슨 짓이에요! 아이들 나와요! 잠결에도 화들짝 놀라며 내 손을 뿌리치는 아내의 태도에,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던 그것은 금세 힘을 잃고 주저앉아 버렸다. 아이들이 제 방문만 열고 나오면 환히 드러날 거실에서의 잠자리가 난들 편할 리 없었다. 하지만 아내의 단호한 거절에 접할 때마다 나는 번번이 소심한 어린아이처럼 턱없는 좌절감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아이들의 눈은 핑계일 뿐 실상 나에 대한 체념을 아내는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일 게다. 살갗에 붙어 굼실거리는 벌레처럼 전신을 떠도는 미미한 열기로부터 우선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으로 불쑥 나선 곳이 베란다였다. 무심코 손에 들고 온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찾았는데 화분대 위에 놓여있어야 할 재떨이와 라이터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재떨이와 라이터만 없는 것이 아니고 화분대 자체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제야 나는 늘 내가 담배를 피우던 앞 베란다는 두터운 커튼이 가려진 그 뒤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나선 곳은 주방 옆에 붙어있는 뒤 베란다였던 것이다. 나는 마치 우리 집에 그런 곳이 있었다는 걸 처음 알기라도 한 듯 낯설어 찬찬히 주변을 살폈다. 바닥에는 주택에 살 때 사용하던 크고 작은 옹기단지들, 찌그러진 양동이와 바닥이 까맣게 타서 더께가 진 낡은 솥 단지, 김장때나 한두 번 사용할까 싶게 크고 투박한 고무 다라이 따위가 한 쪽 구석을 차지한 채 먼지에 절어있고, 그 옆에는 사용한지 십 년이 넘어 여기저기 코팅이 벗겨진 세탁기와 세탁물들이 쌓여있었다. 그뿐인가. 구석구석 거미줄이 진을 친 벽에는 올마다 땟국이 까맣게 달라붙은 플라스틱 바구니가 두엇 포개져 걸려있고, 그 옆에는 한아름은 되게 엉성한 마늘 단에 서너 알이나 될까 싶은 마늘이 매달려 있다. 순간 나는 아내로부터 겨우 도망쳐 와서는 곧바로 아내가 처 놓은 그물에 걸려든 기분이었다. 그곳에 널려있는 그 잡동사니들의 집합체야말로, 네 식구의 생활비와 남편의 학비를 벌어들이느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동분서주하는 아내가, 무능한 남편을 향해 벌이는 적나라한 시위 그 자체였던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결혼 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아내는 뒤늦게 미용 기술을 배워 동네 어귀에서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흡연에 대한 심한 갈증으로 입맛을 다시며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거기에 그것이 있었다. 눈부시게 빛을 쏟아내고 있는 햇살을 받아 뽀얗게 드러난 엉덩이. 나는 빛의 눈부심과 내 시야에 나타난 그 물체의 생경함으로 잠시 눈을 감아야 했다. 그리고는 갑작스레 맞닥뜨린 빛 때문에 내가 뭔가 잘못 봤을 거라고 자신을 안심시키며 다시 눈을 떴다.
우리 집과 정면으로 마주한 뒤 동의 환하게 열려있는 거실 창을 통해 침대의 한쪽 모서리가 반쯤 드러나 있고, 그 위에 말갛게 벗고 엎드려있는 누군가의 하반신이 보였다. 그는 밖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나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태평하게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봉긋이 솟은 엉덩이를 중심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낮아지고 있는 다리와 허리선을 넋없이 바라보며 나는 서서히 그와 내가 환치되는 듯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거실에 쳐놓은 두터운 커튼을 훌훌 뜯어내고 환한 빛 아래에서 시원스레 사랑을 나누는 아내와 나. 거기에 무수히 날아와 꽂히는 시선, 시선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나는 오랫동안의 마취에서 풀려나듯 가슴깨가 뻐근하게 결려오는 통증이 빠르게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근래 들어 나는 마치 감정의 한 부분이 마비된 것처럼 도무지 무엇을 느낄 수가 없었다. 가슴 절인 아픔이든, 뿌듯한 감동이든, 하다 못해 피가 달아오르는 분노라도 맛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면, 어금니를 치료하기 위해 부분 마취를 시킨 볼 따귀처럼 둔탁하고 무감각한 감정의 어느 한 부분이 불쑥 심장에 와 받혔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주술처럼 내게 달라붙은 ‘사는 건 코미디야’ 라는 생각이 팔랑팔랑 살아나는 것이었다. 그 생각이 내게 달라붙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던가. 아, 그랬다. 지난 어머니 제삿날 형수가 슬그머니 날 부엌으로 불러 손에 쥐어 주던 용(茸). 그놈의 용을 받아 쥐는 순간부터 목구멍 아래 숨어있던 온갖 웃음이 캬륵캬륵 한꺼번에 솟아오르며 사는 게 온통 장난처럼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 감정의 마비 현상을 분명하게 의식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였다.
‘저번에 계원들 몇 명하고 사슴 농장에 갔었어요. 우리 나이에는 산 사슴피가 그렇게 몸에 좋다는군요. 같이 간 사람들끼리 아예 한 마리를 사서 나누어 먹었는데 서방님 생각이 나서 내가 이걸 달래 왔죠’
기막힌 보물이라도 되는 듯 냉동실에서 그것을 꺼내 보여 주며 형수가 재기 발랄하게 말했다.
사슴 농장에 찾아가 산 사슴의 목에서 피를 뽑아먹는 게 요즘 유행하는 보양책이라는 말을 나도 누군가에서 듣긴 했었다. 하지만 원 세상에, 그런 얘기를 형수의 입을 통해 듣게 되다니 천만 뜻밖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정도에 ‘사는 게 코미디 같다’ 는 따위의 소리나 주절거리게 된 건 아니었다. 그 맥빠진 주술에 걸려들게 된 건 정작 형수의 말을 듣는 동안 내 안에서 일어난 예상찮은 반응이 불러일으킨 역작용이라고 봐야 옳을 것 같다. 사슴피 운운하는 형수의 윤기 흐르는 목소리와 교태조차 느껴지는 얼굴을 차마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허둥대는, 내 마음의 한구석에, 야! 그렇다면 이건 진짜겠구나, 형수가 사슴 농장에서 직접 가져왔다면 이건 분명 대륙의 평원에서 잡아온 중국산도, 남방의 삼림지대를 떼지어 누비던 순록의 뿔도 아닌 틀림없는 신토불이 국산 사슴뿔이렷다, 라고 외치며 군침을 삼키는 또 하나의 내가 숨어있는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듯 엄지손가락 만한 사슴뿔 하나를 놓고 내 안에서 일어난 생각지 않은 분열이 나를 엉뚱한 주술에 걸려들게 한 것이었다.
형수가 열어 보이는 검은 비닐봉지 속으로 신기한 듯 코를 박으며 들여다보는 내 뒷덜미에다 대고, 쯔쯔쯧, 서방님도 인제 몸보신이나 하며 편히 살 나인데, 원 그놈의 공부는 무슨 그리 오래하느라고... 라고 중얼거리는 형수의 말이 아니었다면 나는 어쩜 끝내 신이 나서 그것을 들고 집으로 왔을지도 모른다. 손가락 길이 만한 각질의 덩어리에 검붉게 엉겨붙은 피를 보며 아주 잠깐, 가냘픈 사슴의 울음소리와, 미처 식지 않은 피를 받아 마시며 키득거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다고 느낀 순간 형수의 혀 차는 소리가 끈적하게 목덜미에 와 달라붙지 않았다면 말이다. 제 처자식도 못 먹여 살리는 그놈의 공부, 쯔쯧쯔... 플라톤의 <이데아> 사려, 쯔쯧쯔...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있습니다, 쯧쯔쯔... <순 토종 사슴뿔>은 어떻습니까, 쯔쯔쯧... 가래와도 같이 끈끈하게 목덜미에 달라붙은 형수의 혀차는 소리는, 비누 거품처럼 한없이 부풀어올라 그 동안 내가 완고하게 믿고 의지해 왔던 가치들을 흐물흐물하게 허물어뜨렸다. 그리고 그 흐물거리는 의식의 어딘가에서, 사는 건 코미디야, 한바탕의 코미디일 뿐만 아니라 환상적인 쇼이기도 하지, 따위의 소리들이 끊임없는 웅성거림으로 울려나왔다. 그 순간부터 정말이지 코미디 같이 엉뚱하면서도 단순 명료한 원리에 따라 돌아가는 세상이 내 의식 안으로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새털처럼 가벼운 혹은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명랑한 모습으로 재빠르게 스쳐 가는 가치들. 아무런 무게도 부피도 지니지 못한 채 고무풍선처럼 세상을 떠돌며 낄낄거리는 삶의 의미들. 그것들은 마치 전원을 넣기가 무섭게 와르르 쏟아져 나와서는 한 순간을 화려하게 수놓고 감쪽같이 사라지는 티브이 화면의 상품광고와도 같았다.
갑작스럽게 내 의식을 잠식해 들어오기 시작한 그런 것들이 가벼우면 가벼울 수록 그 동안 나를 지탱해온 삶의 방식은 더욱 둔중하고 암담한 무게로 나를 짓눌러 왔다. 그 동안 내게 가장 친숙하게 느껴졌으며 늘 뿌듯한 풍만감으로 나를 채워주던 두툼한 원서(原書)들. 하루종일 도서관에 들어박혀 그것들을 읽은 후 어스름이 내리는 교정을 등지고 귀가할 때 느꼈던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충일감. 수백 쪽이 넘는 책 속에서 발견한 단 몇 줄이 주는 감동만으로도 며칠씩 또는 몇 주일씩 행복할 수 있었던 그 견고하고 아름다운 진리와 철학은, 이제 일주일에 열 일곱 시간의 강의를 위해 몇 군데의 도시를 떠돌아야 하는 삶의 무게로 내 어깨 위에 지워져 있을 뿐인 것이다.
나도 세상에 맞게 가벼워지고 싶었다. 쓸모 없는 지식으로 가득 찬 머리를 뒤덮은 모발 하나하나에 풍선을 매달아서라도 두둥실 떠올라 세상의 흐름에 편입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십몇 년 동안 걸신이라도 들린 듯 머리 속에 주워담은 잡동사니들은 쇳덩이 같은 무게로 나를 내리 눌러 바닥에 주저앉힌다. 요즈음 나는 마치 세상에 나올 때 당연히 가지고 태어났어야 할 몸의 기능 중 하나를 갖지 못한 배냇병신처럼 나 자신이 주체스럽다. 나는 어째서 남들이 쉽고 산뜻하게 해치우는 일일수록 도무지 감도 잡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느냐 말이다. 형수가 굳이 손에 쥐어준 그 사슴뿔만 해도 그렇다. 그것을 그렇게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는 게 아니었다. 그 날렵하고 가느다란 사슴뿔을 하루 낮 밤 동안 정성 들여 고아 먹었다면, 어쩌면 나도 머리 속에 와글거리는 비러 먹을 놈의 잡동사니들을 말끔하게 헹구어내고 가볍게 훨훨 날아 오를 수 있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냉동실에서 바짝 얼어있던 그것을 주머니 속에 넣고 형의 집을 나섰을 때 섬뜩섬뜩한 냉기로 내 옆구리를 자극한다거나, 얼었던 것이 녹으면서 축축한 물기가 주머니를 통해 느껴지는 것에 나는 지나친 신경과민이 되어있었다. 검붉은 피가 뚝뚝 흐르는 각질 덩어리를 아내에게 내밀며 그것을 먹겠노라고 말하는 나의 흉물스런 몰골이 떠오를 적마다 그 뒤에는 영락없이 형수의 혀차는 소리가 달라붙어 코미디야, 코미디, 라며 키득거리는 것을 나는 도저히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오늘은 끝내 그 방에 불이 밝혀지지 않을 모양이다. 차라리 잘되었다. 나는 아무 가책, 아니 아무 부끄럼 없이 좀더 여기 웅크리고 앉아 짙은 어둠에 잠겨있는 그 침실의 옆방과 윗방, 그리고 그 옆의 옆, 위의 위, 아래의 아래 방까지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침실의 옆방에서는 무슨 파티라도 벌이는 듯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붉은 불빛 속에 빠른 리듬의 음악과 젊은이들 특유의 구르는 듯한 웃음소리가 섞여 넘어온다. 그리고 그 옆집에는 남편이 중풍을 앓아 반신이 마비된 노부부가 살고 있다. 반신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바깥 노인은 언제 보아도 온 집안을 끊임없이 서성이는 것으로 소일을 삼고 있다. 지금도 안방의 희미한 형광 불빛을 통해 희끗희끗한 대머리 사내의 얼굴이 가끔씩 창가로 다가왔다 사라지곤 한다. 낮이라면, 아니 내가 일어서서 창문너머로 넘겨다보기만 해도 그의 어색하게 들어올린 팔과 서툰 걸음걸이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바깥 노인의 뒤에서는 어김없이 어색한 걸음걸이에 구색이라도 맞추듯 남편을 나무라는 안노인의 잔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자세히 들어보면 그것은 분명히 남편의 어색한 몸짓을 직설적으로 헐뜯는 욕설에 가까운 것이지만, 노인답지 않게 카랑한 목소리로 쉬지 않고 늘어놓는 잔소리는, 그 독특한 운율 때문에 상대방을 도저히 가만히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하는 응원가처럼 들린다. 노인이 살고있는 집 위층에는 쉰쯤 되어 보이는 여인이 살고 있다. 그녀가 남편이나 자식들과 함께 살고 있는지 아니면 혼자서 사는지 창을 통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그 곳은 내 집보다 한층 위라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베란다로 나오지 않으면 누가 사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 것이다. 다만 나는 한밤중에 어둠에 잠긴 자신의 집을 등지고 베란다에 나와 서서 서너 개피씩의 담배를 연거푸 피우곤 하는 그녀를 볼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이렇게 여기에 나와 앉아있는 것이 잃어버린 내 감정의 한 조각을 찾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야말로 갑작스럽게, 남의 침실이나 엿보는 이상한 습벽이 생긴 탓인지 지금으로서는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다만 여기 이렇게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앞 건물의 벌집같이 오밀조밀한 공간에 밝혀지는 불빛들을 바라보는 것이 더할 수 없이 편안하고 즐겁다는 것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형은 결혼을 하고 나서도 꼬박 오 년을 동남아의 건설 현장에서 보냈다. 형이 지닌 공인된 학력은 중학교 졸업이 전부였다. 여남은 마지기의 어우리 땅이나 빌어 부치는 아버지의 농사를 거들며 공무원 공채나, 무슨무슨 기술자격 시험에 필요한 책자들을 사 나르던 형이 처음 외국을 나가기 시작한 건 스무 살 때의 파월 장병 지원 입대였다. 2년 간의 복무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형은 일 년도 채 넘기지 못하고 다시 동남아의 건설현장으로 떠났다. 형의 말대로 이곳에는 형이 맘 붙이고 농사를 지을 만한 땅도, 형을 받아줄 만한 일자리도 없었던 것이다.
형이 사막의 건설 현장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아버지는 마침내 적으나마 당신의 땅에다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형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잠시 돌아와 머물렀다가 훌쩍 떠나곤 했다. 두 번째 출국을 했던 형이 돌아오자 아버지는 서둘려 결혼을 시켰다. 그것으로 형이 집안에 안주해주길 아버지는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을 한 후에도 형은 그런 생활을 끝내지 않았다. 혼례를 올린 후 반년을 겨우 넘기고 형은 다시 집을 떠난 것이다.
형이 떠나고 난 후에도 형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혹은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가족 속에서 함께 살아온 사람처럼 익숙하고 씩씩하게 한 집안의 안주인 노릇을 해냈다. 오히려 형이 떠나고 난 빈자리를 쉬 메우지 못해 허둥대는 건 아버지를 비롯한 우리 삼남매가 아니었던가 싶다. 하긴 형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그 깊디깊은 상실의 자리는 형이 떠나기 훨씬 이전, 어머니의 사망과 함께 우리 집안에 내밀하게 자리잡았던 것이기는 했다.
어머니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꼭 삼 개월을 앓고 세상을 떠났다. 형의 첫 번째 출국이 어머니의 사망과 맞물린 것도 아마 우리 집안을 무덤처럼 삭막하게 하는데 한 몫 했을 터였다. 아무튼 그렇게 어느 정도 기가 죽어있고 세상에 대해 심하게 낯가림을 하는 우리 가족 속에 새롭게 편입된 형수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천부적인 활달함과 붙임성으로 집안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 때의 형수 모습이야말로 내 뇌리 속에 고착된 그녀에 대한 이미지의 전부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요즘도 형수를 생각하면, 창호에 붙인 쪽 유리에 성애가 하얗게 앉은 겨울 아침, 세수를 하기 위해 수도가로 나가면 어느새 더운 물 한 바가지를 들고나와 대야에 부어주며, 춥죠? 라고 말하던 그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형수의 그 건강하고 밝은 미소를 통해 나는 어쩜 힘겹고 침울하게만 여겨지던 세상살이에 대해, 얼마쯤은 밝고 희망적인 무엇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같게 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갓 시집온 스물 세 살의 새댁에게 그 생활이 그리 만만하기야 했을까. 언제나 시원시원한 몸짓으로 수족처럼 아버지의 시중을 들고, 어미 없는 시누이들을 돌보는 젊은 형수의 시린 마음의 갈피를 감지하기에 나는 어쩜 너무 감성이 무디고 성숙치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계약기간을 연장해 놓은 형이 휴가를 얻어 돌아왔을 때 형수가 시도했던 반란들, 일테면 사나흘씩 계속 밥을 굶거나 시누이들 틈에 끼어 새우잠을 자던 각방 사용 따위, 의 의미를 나는 그리 속 깊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 무렵 나는 대학입시 준비에 한창 여념이 없는 고등학교 삼 학년이었다. 단 번에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재수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으리라는 절박감에다, 어차피 형의 신세를 지려면 번듯한 대학에 당당하게 합격해 보여야 할 것 같은 부담 때문에 무작정 공부에 매달리던 때였다. 어쩌면 그 때부터 이미 나는 세상에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공부밖에 없는 바보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는 형수를 두고도 굳이 해외 취업을 떠나던 형이나, 코가 땅에 닿을 듯 허리가 꼬부라들면서도 내가 농사 일 거드는 걸 극구 말리던 아버지에게 내가 해 보일 수 있는 것은 그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뿐이라고 굳게 믿었던 단순한 모범생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그 무렵, 아니 어쩌면 그 후로도 줄곧 공부는 내게 유일한 안식처 였고, 피난처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내게 감옥이 되어버린 그 피난처로부터 도망쳐 나와 여기 이렇게 숨어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굴의 입구처럼 음험한 어둠을 품고 있는 작은 침실은 불이 밝혀지는 순간 거의 도발적인 빛을 쏟아냄으로서 오히려 다른 공간들보다 한치쯤 앞으로 솟아나오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주위의 방들이 대부분 뿌연 형광불빛에 잠겨있는 반면 그 방만은 유독 좁은 공간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크고 화려한 샹들리에를 쓰고 있다는 걸 나는 그 불빛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이는 작은 공간은, 주방과 거실 사이에 쳐놓은 벽 때문에 그 집안의 다른 공간들, 일테면 안방이나 건넌방 혹은 주방과도 분리된 하나의 독립된 공간처럼 보였다.
안쪽으로 벽에 기대어져있는 작은 옷장과 침대 하나가 달랑 놓여있는 좁은 공간은 그 휘황한 불빛으로 인해 무슨 소극(素劇)이라도 하기 위해 꾸며놓은 연극무대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래서 일까. 그 방의 주인이 어떤 이들일까를 상상하면서, 혹은 환하게 불이 밝혀진 침실에서 나누는 사랑의 행위를 보면서도, 나는 실제적인 삶을 떠올리기보다는 어떤 연극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비현실감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주위의 모든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둘만의 사랑을 위해 그 작은 동굴에 보금자릴 꾸민 젊은 연인들이거나, 아니면 그들에게 풍족한 결혼비용을 마련해 줄만한 부모가 없는 가난한 신혼부부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도 저도 아니면 정말 외지에서 온 B대학 학생이 외로움이라도 달래려고, 아니면 성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으로 잠시의 불장난을 벌이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다만 무대 밑의 어두운 관람석에 앉아있는 하나의 관객일 뿐인 것이다.
근래 들어 이 아파트에는 친구들 몇이 아예 아파트 한 칸을 통째로 빌어 자취를 하는 대학생 족이 부쩍 늘고 있다. 주변에 즐비하게 새로 건립된 고층아파트에 비해 임대료가 턱없이 싼 탓에 아파트 전체가 대학생들의 자취 전용 건물이 되어가고 있다며, 아내는 마치 집 값이 떨어지는 게 그들 탓이기나 한 듯 투덜거리곤 했다.
우리가 처음 이 아파트에 이사올 때만 해도 산 중턱을 깎아 세운 B대학교 건물들은 베란다에서도 빤히 올려다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사이에 고층아파트들이 빼곡이 들어차 대학은 산밑으로 훌쩍 밀려난 꼴이 되고 말았다. 아파트 건축이 한창일 때는 건축현장에 둘러친 방어벽이나 길바닥에 온통 아파트 건립반대 시위 구호가 시뻘겋게 널려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낮은 아파트 담벼락이 하얗도록 그 대학교의 학생들을 상대로 한 ‘하숙생 구함’ 이나 ‘자취방 있음’ 광고들이 나붙어있다.
가끔 그 담벼락을 지나 산에라도 오를 때면 나는 광고지들을 보며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곤 한다. 서툰 글씨로 조잡하게 써 붙인 ‘하숙생 구함’ 이나 ‘자취방 있음’의 광고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다 보면 내 머리 속에는 예전의 그 시뻘겋게 휘갈겨져 있던 강하고 거친 어조의 거창한 구호들이 공허하게 휘날리는 모습이 잡힐 듯 떠오르는 것이다. 그에 비해 그 조각 광고들은 얼마나 구체적이고 현실감이 넘치는가. 정말이지 그 많은 광고지들 중 단 하나도 똑같은 걸 찾을 수가 없다. 그것들은 하나 하나 마다 나름대로의 특색을 가지고 오밀조밀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긴다. 특히 맞춤법이 엉망인 예전 글씨체의 ‘소꼿 빠라 줌’이나, ‘한가족같이 지낼 여학생 구함’ ‘책상과 침대 있음’ ‘독방도 있음’같은 글귀를 덧붙인 광고지들을 나는 빠짐없이 찾아 읽었다. 어쩜 지금이라도 나가 그 담벼락을 뒤지다보면 맞은편 아파트의 주인이 써 붙인 광고지를 금세 찾아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 좁아터진 실내에다 방을 하나 더 들이기 위해 벽을 친 걸 보면, 주인은 일찌감치 다른 곳으로, 십중팔구 좀더 넓은 고층아파트겠지만, 이사를 가고 그 집은 그야말로 임대전용으로 쓰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내가 우리도 머지않아 이 서민아파트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던 때의 주장을 빌자면, 아파트 거주민의 대체적인 이동경로로 볼 때 이 아파트에서는 결혼초기에서 오 년을 넘기기 전에 이사를 가야만 순조로운 흐름을 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오륙 년 전의 얘기고, 이 아파트는 이미 그 흐름의 줄기에서 벗어난지 오래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야말로 그 정상적인 흐름에서 낙오된 서민층이나 독신 노인들, 지역적인 특성 -대학이 곁에 있다는- 에 따라 흘러든 자취생들로 아파트의 구성원을 이루고 있다는 게 아내의 탄식 섞인 분석의 결과인 것이다. 사실 베란다에 내 걸리는 세탁물들만 봐도 아내의 분석이 별로 틀리지 않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우선 우리가 처음 이사해 오던 오 년 전만 해도 베란다마다 깃발처럼 하얗게 나부끼던 기저귀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누리끼하게 색이 바랜 낡은 세탁물들이 우중충한 아파트의 외벽에 구색을 맞추는가 하면, 일부러 너덜너덜하게 칼질을 한 청바지 따위가 몇 날이고 빨래 걸이에 걸려있는 게 보통이었다.
그 침실 앞의 손바닥만한 베란다에도 낡은 빨래 건조대가 하나 놓여있어서 가끔 내 걸리는 세탁물은 그 방의 가리개 구실을 하곤 한다.
그들이 돌아와 번뜩이는 불빛아래에서 무엇인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스스럼없이 함께 옷을 벗을 때, 반쯤 창문을 가린 그 세탁물 뒤로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사라졌다 나타나곤 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창문을 훌쩍 뛰어넘어 그 세탁물을 치워버리고 싶다거나 아니면 완전히 가려주고 싶다는 따위의 터무니없는 열망으로 애를 태웠다. 하지만 그들은 어둠 뒤에 숨어있는 밖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거리낌없이 옷을 벗어 내린다. 그리고 그들이 세탁물 뒤에 숨는다는 생각이 단지 이쪽의 시각일 뿐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어 마치 원죄를 범하기 이전의 순진무구한 남녀처럼 아무런 부끄럼 없이 침대를 정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유리알 같은 웃음을 굴리는 것이다. 아, 그때쯤 나는 마치 나 자신을 스스로 강간하듯 허겁지겁 수음을 시작한다.
인간이 힘을 얻기 위해 사자의 이빨이나 호랑이의 심장을 먹는 대신, 그 순하디 순한 사슴의 뿔을 택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사슴에게도 그 뿔은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한 무기이긴 할게다. 오히려 그 유순한 초식성 때문에 적으로부터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한 무기는 필수적이겠지. 하지만 어느 동화 속에서의 사슴은 제 뿔의 아름다움에 취한 나머지 너무 화려하게 가꿨다가 그 거추장스러움 때문에 사자로부터의 도망에 실패하고 만다. 사슴에게 만약 약효가 그만이라는 뿔이 없었어도 인간은 그 목 줄기에서 피를 빨아먹고 싶어했을까.
어쩜 형이 리비아 건설현장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장만한 그 땅들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면 형수는 여전히 소박한 촌부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형이 돌아오고 나서도 농사일에 매달려 사는 형수는 그저 부지런하고 붙임성 좋은 여인일 뿐이었다. 나는 형 내외의 부지런한 노고와 온정 덕에 무사히 대학을 마치고 아내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내가 이나마 열일곱 평 짜리 아파트라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결국 형의 덕이었다.
형이 정착을 결심하고 농사일이 손에 익어갈 때쯤 마을과 들녁은 한꺼번에 광역시로 편입이 되고 형이 청춘을 바쳐 장만한 땅들은 차례차례 주택지로 혹은 공장부지로 넘어갔다. 그렇다고 그 일이 형이나 형수에게 실질적으로 어떤 손실을 가져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덕으로 형은 평생 만져보지 못한 목돈을 손에 쥐게 되었고 단번에 광역시의 중산층에 편입될 수 있었으니 어떤 면에서는 행운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저러한 이유로 나는 그 후 빠르게 그들의 생활 속을 파고든 변화에 대해 감히 어떠한 주제넘은 말도 할 자신이 없다. 형의 집을 방문하고 돌아올 때마다 투정처럼 늘어놓는 아내의 불평을 단속하지 못하는 것에조차 나는 죄의식 같은 걸 느낀다.
집과 농토가 공업단지로 들어가고 난 후 형은 정부에서 분배해준 택지에다 새로 집을 지었다. 그리고 방마다 새 가구를 들이고, 새 냉장고와 새 티브이와 새 전축을 사고, 또 차고에 넣을 새차도 샀다. 하지만 새차를 타고 갈만한 곳이 별로 없는 형은 가끔씩 그 차를 차고에서 꺼내 세차를 하거나 마당가에 심은 몇 그루의 나무를 가꾸며 소일을 한다. 그러나 형수는 다르다. 형수는 새로 산 가구에 채울 새 옷이나 새 장신구를 사러 다니기에 바쁘고, 새로 산 옷을 입고 계모임엘 가거나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정말이지 주부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은 많기도 하다, 무슨무슨 행사에 나가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정보를 모아들이기에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그래서 형수는 모르는 것이 없다. 그리고 그럴수록 행여 세상에 난무하는 온갖 정보들 중 하나라도 놓칠까 몸이 달아 형수는 잠시도 집에 들어앉아있질 못한다. 태양백화점 : 정기대바겐세일. 남성복코너 특별세일. 숙녀복 코너 우수고객 특별전. 새마을금고 문화회관: 암예방강좌. 대신문화사랑: 성인병 예방강좌. 한사랑문화원: 건강하게 오래사는 비결. 禪이란 무엇인가 -비산 대선사 특별 대강연. 한진화장품써비스센타: 건강한 피부 가꾸는법. 만능요리기상사: 건강요리 강좌. 한생보험문화사랑: 부부테크닉- 권태기 없는 부부생활 어떻게 유지하나... 형네 집 주방 앞에 걸린 달력에는 하루도 빈날이 없이 빼곡이 메모가 되어있다. 갑작스럽게 여유로워진 생활이 형수에게 터득하게 한 삶의 방식은 도무지 닿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가(媤家)식구를 대하는 형수의 살가움이 예전만 못한 건 아니다. 부부동반으로 사슴피를 마시러 가서까지 시동생 걱정을 하는 형수가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도대체 나는 어떻게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사회적인 성공이 보장되는 고시공부도 경제성이 높은 의학공부도 아닌 대학교수가 되기 위한 공부라니, 당시의 내 처지로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게 엉뚱하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당시 우리집에 감돌던 편집광적인 향학열이나, 나에 대한 터무니없는 기대는 그 공부가 가져올 사회적인 성공이나 그것이 줄 부(富)에 대한 구체적인 기대에조차 미치지 못한 채, 마치 엉겹결에 죽은 몽달귀신의 한처럼 좌절당한 꿈에 대한 열망, 그 자체에만 머물러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요즈음 나는 어린 시절 아무리 열심히 물 속을 움켜잡아도 어느 틈엔가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나가버리던 물고기처럼 정작 중요한 것은 모두 잃어버리고 쓸모 없는 고철덩어리만 짊어지고 다니는 게 아닌가 문득 문득 조바심이 인다.
끝내 불이 밝혀지지 않는 그 방을 노려보며 나는 뜻밖의 좌절이 전신을 휘감아 오는 것에 적지 아니 당황한다. 결국 나는 그 방에 불이 밝혀지길 그렇게도 간절히 기다렸던 것이다.
그 휘황한 불빛을 받고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자의 피부는 언제나 창백한 우유빛이었다. 나는 늘 덩치 큰 사내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작아 보이는 여자를 불안스레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는 질투심으로 가슴을 태웠다. 사내는 대개 여자의 몸에 단 한번의 키스조차 하지 않은 채 여자의 위로 올라가곤 했는데, 나는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사내의 엉덩이를 노려보면서 묘한 안도감을 느끼는가하면, 한편으로는 여자의 몸이 지닌 아름다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사내의 행동에 분개하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걸 느끼곤 했다.
정사가 끝난 후 그들은 함께 방에서 나갔다가 잠시 후 타올 한 장씩을 들고 돌아왔다. 나는 그들이 함께 샤워를 하러간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도 갑자기 방이 텅비버리면 잠시동안의 낮 꿈에서 깨어난 듯 혼란스러움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그때쯤 바지 속에 밀어 넣었던 손을 끄집어 내 손바닥에서 미끈거리는 끈적한 액체를 들여다보며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막막한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지금 막 위층의 여자가 마지막 담배 불을 끄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작은 침실의 옆방에서 흘러나오는 불그레한 불 빛 말고는 모든 창에 검은 커튼이 내려졌다.
아내가 밖에서 그들의 소식을 묻혀 온 것은 작은 침실에 불이 밝혀지지 않은지 닷새 째가 되는 날이었다.
“글쎄 우리 아파트에 창녀가 살았데요. 세상에, 정말 얼른 이사 가야지. 이런 데서 애들 키우고 사는 생각하면 기가 막혀요.”
“무슨 소리야? 사람 사는데 누구는 안 살겠어.”
“그냥 살기만 했다면 누가 뭐라겠어요. 집으로 사내들을 수없이 끌어들였다니까 문제지. 그것도 여름내 밖에서 훤히 보이도록 창문을 열어제쳐 놓고 그 짓을 했다니 참 기가 막힌 노릇이죠. 오죽했으면 이웃에서 신고를 했겠어요.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건 여자애 부모는 딸이 B 대학에 다니는 줄 철석같이 믿고있었다지 뭐예요. 두 번이나 재수를 하고서도 안되니까 면목이 없어서 거짓말을 했던가봐요. 낯선 지방에 와서 허구헌날 하는 일없이 학교주변을 맴돌기는 쉬웠겠어요. 그 애도 생각하면 불쌍하죠. 정말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요. 서울에 사는 부모가 와서 통곡을 하며 데려 갔다는군요.”
“설마 그런 일이... 그 여자가 몇 동에 살았다는데 ?”
“손님들 하는 얘기 귓등으로 들었는데 몇 동인지 어떻게 알겠어요. 하지만 우리 아파트인 건 틀림없어요. 고층아파트는 그래도 앞뒤동이 그렇게 빤히 들여다보이지는 않잖아요. 정말 창피해서 어디 이 아파트에 산다는 말이나 할 수 있겠어요.”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문득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려온 연인처럼, 부질없는 세상의 영욕에 눈이 멀어 끝내 외면해버린 옛 정인처럼 그녀가 참을 수없이 보고 싶었다.
약력)
이예훈
1954년 충북 괴산에서 출생
1994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1995년 계간 [소설과 사상 ] 신인상
<그남자의 여름나기><창밖의 세월> <주방과 거실사이><성전의 문간방>
<상흔>등 발표
2003년 창작집 [딸들의 방] 출간
한국 소설가협회 회원
대일문학 동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