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남원햇보리문학동인회에서 활동하신 분들은
기노을 선생님을 잊을 수 없을것입니다. 저는 영광스럽게도 중학교 3학년때
모임 참가 허락을 받고 1년동안 활동했습니다만 정식 회원이 아니어서 회원 명단에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 4월 어느날부터 1970년 9월 26일 호남예식장에서
있었던 제2회 문학의 밤에 참여할때까지 6개월동안의 경험은 저의 삶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경험으로 남아있습니다. 함께 참여했던 오진환군이나 저나 남원중학교를
졸업하고는 각각 외지로 가서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햇보리문학동인회 활동은
6개월의 짧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잊을 수 없었습니다.
기노을 선생님과 전주에서 내려오셨던 지도 선생님, 그리고 고등학교 선배님들...
특히 문학의 밤때 사회를 보셨던 남원여고 '그 때 그 누나'...
1986년쯤으로 기억합니다.
서점에서 우연히 시인들의 주소와 연락처가 실린 계간지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기노을 선생님의 연락처가 있었습니다. 나무나도 반가워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응, 알어 ! 조성재 알어 !"
저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그냥 선생님이 인사로 하시는
말씀인줄 알았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서울 봉천동에 살고 계신다 했습니다.
하지만 찾아 뵙는 일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몇 년이 훌쩍 지나고 말았고,
1993년 초겨울 어느날 전화를 드렸더니 선생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신 뒤였습니다.
바로 그 겨울에 선생님이 그리워서 봉천동 댁으로 갔었습니다.
가족분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선생님이 사셨던 집이라도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던가 사모님과 전화 통화가 있었는데 그때 사모님은 대전에
내려가 계셨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간의 세월이 흘러 2001년도엔가 햇보리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몇 사람을 건너뛰어서 전화통화를 하게 되신 분이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에 근무하신다는
김세완 선배님이었습니다. 한 번 만나자는 말은 오갔지만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또 세월이 10 여년 흘렀습니다.
얼마전에 컴퓨터에서 '햇보리'를 검색해 보니 카페가 개설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1970년도에 활동했던 선배님들의 근황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수필 사랑방'에 '그 때 그 누나'라는 글도 올렸습니다.
다행히 최정주 선생님이 1대 회장님이셨던 분이어서 많은 궁금증을 풀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에 선배님들의 명단과 지금의 근황을 추적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1970년 가을에 있었던 문학의 밤 자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며칠전에 대전에 계실것으로 생각되는 사모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세째 아드님께서 받으시면서 어머니는 작년에 별세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친에 대한 자료는 서울 봉천동에 살고 있는 큰 형님이 다 간직하고 있다고
친절하게 핸드폰 전화 번호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제 서울 서초구에서 기노을 선생님 장남 기우현 선생님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기우현 선생님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시고 지금은 서초고등학교에서
교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기우현 선생이 저에게 전해준 햇보리 관련 자료는 1971년도에 만든
햇보리문학동인지 1권과 1973년도에 만든 3권 목차와 회원 명단과 선배 주소록 부분 복사본이었습니다.
2권은 어딘가에 있을텐데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아드님으로부터 귀한 자료를 선물 받았습니다.
자신이 쓴 '기노을 시인 평전' 파일입니다.
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인데 그 파일을 이곳 카페에 공개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공유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지금 공개합니다.
기노을_시인_평전.hwp
첫댓글 귀한 자료 덕분에 잘 보았습니다 ^^
사실, 지금 남원햇보리는 햇보리 선배들의 모임을 만들고 싶어 개설한 카페이고, 햇보리라는 카페는 따로있습니다. 1980년대 고등학교 문학동인까지 감시를 당하고 활동하는 동인들이 학교에서 불이익을 받는 현실에서 잠시 활동을 멈추었다가 10년 쯤 지나서 다시 활동을 시작한 햇보리들의 활동공간이지요. 그때 너무 반가워서 햇보리 동인지 1집에서 5집까지 자료로 보관하고 이어주라고 기증을 했었는데, 지금은 누구한테 있는지 복사본이라도 구할 요량으로 카페에 글을 올려도 소식이 없고..
조성재님의 열정으로 햇보리가 다시 살아날 수만 있다면 의미있는 만남이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중학교 3학년 시절의 그 기억을 잊지 않고 꿈을 되살려 준 조성재님 고맙습니다. 아드님이 쓰신 기노을 선생님의 평전은 소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귀한 자료 소중하게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자료 꼼꼼히 살펴보겠습니다
5년 6개월만에 뜬금없이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보안해제를 위해 숫자를 기록하고서야 진입이 허락될 정도로 제가 그동안 참 무심했습니다. 모두들 안녕하시지요 ? 최정주 선생님, 여전하시군요 ! 이제는 가을 냄새가 납니다면 며칠 전까지만 해도 따가운 폭염이 계속 되던 어느날엔 갑자기 37년 전의 남원 동문거리께에 있었던 어느 주산학원이 생각나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선배님들 틈에 끼어서 매 일요일마다 문학수업을 받던 그 추억이 갑자기 떠올랐었습니다. 그래서 기노을 선생님의 장남 기우현 선생님과도 오랜만에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남원 고향마을에는 아직도 사촌, 육촌, 팔촌 친척들이 살고 있건만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이 그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