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화승총병은
중앙 군사훈련기관인 훈련도감(訓練都監)에서
포수(砲手)과정을 신설해 교육과 훈련을 담당했다.
조선초기의 세총통(細銃筒)은 손으로 불을 붙이는 지화식(指火式)으로
간단히 발사과정만 익히면 됐기 때문에, 별다른 교육이 필요치않았다.
그러나 화승총(조총)은
사격에 필요한 보조장구가 많았을 뿐 아니라
화약장전-연자(鉛子; 탄환)장전-화승(火繩; 불심지 노끈)장착-조준 등
정밀한 발사 준비과정을 습득한 뒤에야 운용이 가능했기 때문에,
총기조작은 물론 부대단위 전술(戰術) 훈련 등을 사전에
집체교육 받아야 했다.
훈련도감의 화승총사수 훈련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난 다음해인 1593년부터 이뤄졌는데,
전쟁이 진행되는 와중에 아무런 준비없이 시작된 훈련이어서
일본군으로부터 노획한 화승총(鐵砲)이 주 교재로 쓰였고
포로가 됐거나 투항한 일본군 사격수를 통해
조선군 사격지도와 운용전술이 전수되는 등
웃지못할 일이 벌어졌다.
임진왜란을 통해 급조(急造)된
조선 조총병 부대운용은 당시 왜군 뎃포부대와 마찬가지로,
창이나 칼을 휴대한 살수(殺手)와 함께 편제돼 화승총 사수가
화약장전 등 사격을 준비하는 동안 대적(對敵)했으며 조총병자신도
급작스런 적의 습격을 대비, 칼이나 활을 휴대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조총병의 자체 무장범규(武裝範規)나
훈련방식의 확립은 17세기 중반 이후에나 제대로 된
틀을 잡아나갔을 것으로 여겨진다.

▲ 19세기 중반 조선조총병의 '전투차림'을 문헌고증을 통해 복원한 그림.
붉은 술이 달린 철모를 썼고, 몸통과 얼굴 옆 부분은 방탄용 면갑(綿甲)으로
보호 한뒤 그 위에 군복을 입었다. 화승총병은 허리 춤에다 칼을 찼는데
그림처럼 '띠돈매기'(평소엔 칼자루가 뒤로 가게하고 사용할 땐 앞으로 돌림)
를 하여 화승총 사격시 걸기적 거리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배려한 방식이다.
그림과 반대로 칼 자루가 앞으로 향하게 하는 방식은 '고리매기'라 한다.
포수는 오른손으로 화승줄(불심지 노끈)과 함께 조총을 거머쥐고,
왼손에는 오구(烏口; 납탄환 용기)를 들고있다. 오구는 새 부리처럼 좁은
마게가 달린 가죽 주머니인데 한 번에 납 탄환 1개만 뽑도록 만들어 졌다.
허리에 두른 넓은 띠(帶)는 '죽관통'(竹管桶) 허리띠로, 통 하나에 1회
발사분량인 10g 내외 흑색화약이 들어있는 카트리지(cartridge)역할을 한다.
조선에서는 주로 대나무로 카트리지를 만들었으므로 '죽관'이라 불렀으나
화약을 담았기 때문에 '약관'(藥管)이라 부르기도 했다. 조선조총병은 전투시
10개-20개 단위의 죽관통을 담은 허리띠를 맸다. 유럽에서는 종이팩을 썼는데
탄환 1발을 카트리지 윗부분에 고정시켜 사수가 입으로 윗부분을 물어뜯어
탄환만 입 속에 넣은 뒤 화약을 총구에 부어 약실에 쟁였다.
조총병의 가슴에 대각선으로 매단 줄에 묶인 장방형 용기는 '귀약통'(龜藥桶)
인데, 점화접시(火皿)에 담을 '선약'(線藥; 점화용 화약)을 담아놓은 용기다.
귀약통은 나무, 가죽 등의 재료로 주로 만들었는데, 철제(鐵製)는 없다.
쇠는 자칫 강한 마찰이 일어날 경우, 스파크 불꽃이 튀겨 흑색화약이 폭발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 살수(殺手; 칼,활,창 운용) 장비와 포수(砲手; 조총운용) 군장을 함께 펼쳐놓고 있는
조선 중후기 병사의 모습. 조총병 군장인 '조총'과 '죽관통 허리띠' '오구' '귀약통' 등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다. '조선일보 유용원군사세계'에 업로드 된 'xman1717'(ID)씨의
작품이다. [=>바로가기]

▲ 참고그림 : 조선후기 민간인 포수들의 화승총 '차림'.
어깨에 대각선으로 맨 망태기 줄에 2개의 크고 작은
주머니가 매달려 있다. '귀약통'과 '오구'로 추정된다.
죽관통을 따로 휴대하지 않은 걸로 보아, 실탄주머니
'오구'는 망태기에 넣었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옆구리에 맨 주머니 두 개는 '신약'(약실용 화약; 大)
'선약'(점화용 화약; 小)일 확률이 높다.
조선말 화가 김준근의 풍속화로 제목 '포슈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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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번째 사진의 활은 꼭 몽골활 같습니다. 우리나라 활은 고자가 저렇게 생기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왠지 모르게 씁쓸합니다.
옛날 전투용 각궁은 고자가 저렇게 생겼다네.. 현재 사용하는 각궁은 습사용이고 실전에서 사용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성계나 최영장군의 활을 참고하세요... 지금의 각궁과는 아주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