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에 눈이 없었다
-1박 2일 강원도 촬영 기행 - 김현호
1. 설경을 기대하며
한동안 페북 카톡 등 SNS에 설경 사진과 눈 소식이 넘쳐났다. 오랜만에 눈 다운 눈이 내려 설국이 되어버린 까닭이었다.
2018년 1월 13일 한국사진작가협회 장흥지부 회원 43명 중 이십여 명이 워크숍에 참가신청을 했었다. 오전 7시 장흥군민회관 앞, 사정이 생겨 취소한 사람을 제외하고 18명의 회원을 싣고 버스가 출발했다.
카메라와 배터리 필터 릴리즈 등 장비를 넣은 배낭과 삼각대를 챙겼다. 겨울 날씨를 고려하여 따뜻한 겉옷을 준비했다. 동화 속 같은 설경을 만나 셔터를 누를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우리는 강원도를 향해 떠났다.
읍내를 빠져나오는 차창 밖 사자산 뒤로 하늘이 붉게 열리기 시작했다. 두어 줄의 구름 띠를 두르고 멋진 일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버스는 장흥을 벋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대관령 양떼목장 눈부신 설경이 어른거렸다. 우리 일행을 실은 버스는 화순을 지나 광주에서 호남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차창 밖은 온통 설경이었다.
솜이불처럼 포근히 양떼목장 언덕을 감싸고 있을 설경을 만날 생각에 한껏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따뜻한 남쪽이 온통 눈 세상인데 대관령의 설경은 장관일 거야. 강원도의 멋진 설경을 기대하며 일 전 페북 타임라인에 올라 우리로 웃음짓게 했던 오탁번 시인의 “폭설”을 다시 음미해 본다.
폭설(暴雪)
오탁번
삼동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 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가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 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의 미아가 된 듯 울부짖었다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2. 대관령에 눈이 없다
18명의 회원은 저마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잠을 청하거나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설경을 하릴없이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가 횡성휴게소에 도착했다. 점심을 사 먹기 위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꽉 들어찬 인파, 계산대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언제 우리 차례가 올지 까마득했다. 회원 대부분이 아침 식사를 못하고 왔거나 대충 때운 터라 오래 기다리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먹고 가자 가서 먹자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한참을 더 가 횡계의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설국을 뚫고 왔건만 거꾸로 강원도에 들어서자 눈이 사라지고 없다.
에이 그래도 설마 대관령에 눈이 없을까?
횡계에서 늦은 점심을 맛나게 먹고 다시 차에 올라 대관령으로 향했다.
오후 2시 반경 이윽고 대관령에 도착했다.
어라, 대관령에 눈이 없네.
풍력발전기 커다란 날개만 게으르게 돌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양떼목장 설경 촬영을 할 수 없어서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향했다.
눈이 없네/김현호
겨울 풍경 만나러
대관령에 왔는데 눈이 없네
어라
필시, 중천에 떠 헤실거리는
저놈 소행
뜨거운 입김 호호 불어
내린 눈 다 녹였네
가도가도 강원도
눈이 없네.
3. 경포대해수욕장, 파도를 담다
강릉에 도착한 우리는 저녁을 먹기 전까지 경포대해수욕장에서 바다 풍경을 촬영하기로 했다. 에메랄드빛 수평선 저 멀리서 해안의 모래밭을 향해 쏴 쏴 몰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힘찬 파도.
겨울 바다를 찾아온 사람들은 맑다 못해 푸른 경포대의 낭만을 스마트폰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1.8km의 모래밭에 찍힌 수많은 발자국, 연인끼리 가족끼리 겨울에도 사람들이 바다를 찾아 왔다.
우리 일행은 해안을 따라가며 저만치 등대와 바위섬과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를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을 흔히 ‘순간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사진에 관하여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은 ‘순간을 담는다.’고만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진은 순간을 기록하지만, 사진작가의 의도에 따라 몇십초 몇 분 혹은 몇 시간 동안 셔터를 열어 오랜 시간을 카메라에 담기도 한다. 이른바 장노출 사진이 그것이다. 그로 인해 야간에 차량이 진행한 시간만큼의 궤적이 사진 속에 그려지기도 하고 때에 따라 움직이는 것들의 형상이 모두 사라져 버리게도 한다.
ND(Neutral Density)필터를 활용하면 순간이 아니라 더 오랜 시간도 카메라에 담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사진작가는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새로운 색감과 효과, 색다른 표현을 위하여 미지의 세계를 부단히 넘보아야 한다.
어느새 겨울 바다에 어둠이 깔렸다. 바다 멀리 집어등을 환하게 밝힌 어선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촬영을 종료하고 저녁 식사를 위하여 식당으로 향했다. 총회를 겸한 워크숍이라 식사 전에 회의가 진행되었다. 결산보고, 사업보고, 예산안이 통과되고 향후 3년간 장흥지부를 이끌어 갈 지부장을 선출하였다. 위수환 현 지부장이 재임 추대되었다. 박대우, 김현호 회원을 감사로 선출하였다. 기타 임원은 지부장이 임명하게 된다.
한국사진작가협회는 137개의 지회 지부로 구성되어 있다. 회원이 43명인 장흥지부는 각종 촬영대회 공모전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모범적인 지부로 정평이 나있다. 정남진물축제 촬영대회와 전국전통사진 공모전 등을 개최하며 연말이면 한 해의 결산으로 회원전을 열고 있다.
회원 상호간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워크숍, 번개 등을 통해 회원들이 원활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저녁을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4. 낙산에서 양양의 일출을 담다
일출 시각 7시 37분
새벽 6시 카메라 배낭과 삼각대를 챙겨 숙소 가까이에 있는 낙산사로 향했다.
어둠 속에서 두세 명씩 흩어져 자리를 잡고 일출 촬영을 준비했다. 수평선 위로 오늘치 해가 오르는 모습을 담을 것이다.
아직 어디쯤에서 해가 솟을지 알 수 없다.
기다리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어느덧 해 오를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동녘 하늘이 점점 붉어졌다. 길게 드리운 자줏빛, 그 가운데 가장 밝은 쪽으로 카메라 위치를 다시 잡는다.
일출 시각까지 더 기다려야 한다.
사진은 순간의 미학이고 기다림의 미학이다. 해야 솟아라.
수평선에 붉은 해의 이마가 보이기 시작했다. 홍시 같은 해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겨울 홍시/김현호
먼동 응시하다
수평선 위로 떠 오른
홍시 하나 먹는다
시린 몸 사르르 녹는다.
구름 노을 드리운 황홀한 일출은 아니었지만, 낙산에서 양양의 일출을 담았다.
5. 추암의 촛대바위 우뚝
다음 촬영지는 동해 추암이다. 추암은 일출사진의 명소인데 한 낮이라 푸른바다를 배경으로 기암괴석의 비경, 추암과 촛대바위 갯바위에 부서지는 파도를 담는다.
6. 해신당의 벌떡주
다음은 삼척 해신당공원, 바람이 불어야 해신당의 남근처럼 파도가 일어서고 그 파도가 앞바다의 기암괴석을 격하게 휘감아 줘야 멋진 그림이 될 터인데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밋밋한 사진과 공원 입장료를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해신당공원 촬영을 포기한 대신 고추 잔에 벌떡주만 한 잔씩 나누고 돌아섰다.
7. 갈남 포구에서 만난 갈매기
버스로 이동하다 뜻밖에 찾아간 갈남마을 포구엔 등대가 둘이다. 왼쪽엔 빨간 등대, 오른쪽엔 하얀 등대 견우와 직녀처럼 바라보고 있다. 옥수같이 맑은 바다 포구 안쪽에 보석 같은 서너 개 기암을 품고 있는 이곳, 갈매기의 낙원 같았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포구에서 뗏목을 타고 떠다니며 연신 해산물을 건져 올리는 노인의 모습이 평화롭다.
상황은 기대와 달랐지만 나름 멋진 우리들의 1박 2일 이었다.
현실은 기대와 다를 수도 있고 기상이변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끝.
경포대해수욕장
낙산사 해변
낙산사 양양의 일출
추암
바위가 아래 할머니를 닮았다 아니 할머니가 이 바위를 닮았다
첫댓글 예술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