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15-17기 48번 훈련병, 아니 이병 박태민입니다. 사실 이 이등병 작대기 하나를 따기 위해서 저희는 5주라는 기간동안 오르막 등성이를 뛰어야 했고, 자갈밭을 기어야 했습니다.
10월 13일 처음 102보충대에 들어왔을때는 시간이 마치 눈물 섞인 밥처럼 꾸역꾸역 지나갔습니다. 빨간 모자르 푹 눌러쓴 조교들의 미소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함소리는 정말이지 안그래도 추운 날씨, 저희 몸을 더 얼게 만들었습니다. 이때는 정말 "이 사람들도 원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을텐데... 군대가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구나"하고 느꼈습니다. 입소식 때 저희는 민간인의 신분을 국가에 반납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저희가 반납한 것은 민간인의 신분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저는 군대에 와서 자각하지도 못한 채 반납해버린 세 가지를 여러분과 공유하려고합니다 첫번째는 어깨입니다. 신교대에서 여러 훈련을 받기 위해서는 교장까지 상당한 거리를 행군해야 합니다. 정말이지 신지도 않을 군화는 왜 넣으라는 건지, 하루만 자고 올건데 속오은 왜 세 벌이나 챙기라는 건지, 자지도 않느 날 모포와 침낭은 또 왜 챙기라는건지, 그리고 안그래도 무거운데 군장 배낭은 왜 철제 프레임으로만 만들어야 하는 건지..이런 수많은 아이러니들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저희는 군장을 강에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참 많이 걸야야 했고 그렇게 어느순간, 저희는 이미 어깨를 강원도의 아름다운 산길과 국가에 반납해버렸음을 깨달았습니다.
두번째는 팔꿈치와 무릎입니다. 4주차의 각개전투 훈련은 특히 힘들었습니다. 앞으로 가고 뒤로가는 코스들이 참 많았는데 뒤로가면 등에는 진흙이 묻었고 앞으로 가면 자갈들이 저희 무릎을 무자비하게 치고 때렸습니다. 하지만 빨간 모자를 쓰고 있는 무표정의 조교들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느리다고 고함치고 목소리 작다고 고함치고..."정말 군대가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구나"하고 다시금 느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로 헌납한 것은 인간으로서의 품위입니다. '훈련은 전투다 각개전투'가 끝나고 이어지는 월요일, 전국적으로 때 아닌 비가 억수같이 내렸습니다. 그 날 비오면 훈련을 안할 거라는 우리의 기대와 달리 저희는 "훈련은 생존이다"가 되어버린 거점전술훈련을 무박 2일간 실시했습니다. 총 여덟시간이라는 긴 행군시간에도 모자라 인정없는 하늘에서는 줄기찬 비가 내렸고, 하늘보다 자비없는 군대라는 곳에서 저희는 그 날씨에도 불구하고 비젖은 밥을 먹으며 훈련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저희는 그날 밤 그 춥고 젖은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회에서 가졌던 자존심과 품격은 내동댕이치고 옆 전우와 끌어안고 떨며 졸린 눈으로 밤새도록 원망스런 하늘을 노려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또 왔던 길을 걸어 대대에 도착하고 하늘을 보니 그 하늘은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왜 이렇게 맑은지.. 하늘에 얼굴이 있었으면 한방 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정말 느리고 더디게 갔던 하루하루가 모여 매우빠른 5주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마 더뎠던 하루들이 모여 빠른 5주가 된 데에는 옆에있는 전우들의 존재가 참 컸던 것 같습니다. 모두 처음에는 어색하게 만났지만 함께 씻고 먹고 혼나고 훈련받고 하다보니 이제는 부식을 먹을 때는 제외하고는 참 친한 친구들이 된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초코파이, 약과 등 부식봉지 뜯는 소리가 들리면 모두들 떼로 몰려와서 뺏고 싸우던 우리의 전투적인 문화가 결국에는 15-17기 전투력 향상으로 이어졌다고 저는 굳게 믿고있습니다. 그렇게 이곳에서의 5주동안 군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희는 끝이 안보이던 행군길을 완주하며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실은 해낼 수 있음을 배웠고 다양한 환경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섞여 호흡하며 진짜 '전우'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인생의 신비함도 느꼈습니다.
오늘 처음 뵙지만 존경하고 싶은 부사단장님, 우리 15-17기 5주간 정말 많이 노력했고, 진짜 육군의 용사가 되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저를 포함한 절반은 오늘 당장 전역해도 될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저희 부모님도 멀리서 오셨고 앞으로 예비군 훈련도 안빠지고 열심히 받겠으니 저희 그냥 오늘 이대로 전역하면 안되겠습니까? 마음만은 오늘 전역했다고 생각하고 부모님과 오늘 하루 좋은 시간 보내겠습니다 15-17기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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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가 제일 재밌게 읽었던 수료식소감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