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식, 이 산 저 산
조용식이 이 산 저 산 유유자적하면서 서울진경을 그렸다.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인왕산, 그리고 남산 같은 서울 산들의 밤낮과 사계를 그렸다. 진경이란 눈으로 직접 보고 몸으로 직접 겪은 진짜 풍경을 그렸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렇게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은 풍경과의 교감을 그렸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림 속엔 지각을 매개로 풍경과 내가 상호작용한 과정이며 결과가 오롯이 담긴다. 풍경 속에 내가 담기고 내 속에 풍경이 잠긴다. 그렇게 내 인격이며 서정으로 잠긴 풍경을 그린다. 실재하는 풍경과 마음으로 보아낸 풍경이, 풍경의 객관적 지평과 풍경에 대한 주관적 해석이 하나로 직조된다.
그렇게 직조된 풍경에선 풋풋한 흙냄새가 나고 고유의 서정이 묻어 나온다. 한지에 먹빛이 스미듯 침윤되고 침잠되는 그림이 아니라, 걸을 때마다 풀풀 흙먼지가 일 것 같은 건조한 느낌의 그림이다. 한지 대신 캔버스 위에다가 호분과 분채, 돌가루와 흙가루를 안료에 개 그리는 벽화기법의 그림이다. 벽화기법의 그림은 스미는 그림이 아니라 얹히는 그림이다. 한지와 먹빛이 투명성과 투명성이 만나지는 그림이라면, 캔버스와 가루의 만남은 불투명한 그림으로 현상한다. 그래서 서양화처럼 정치한 그림이 아닌데도 묘하게 사실적이다. 벽화기법이어서 그렇다기보다는 작가의 정서를 표현하기에 적절해서 벽화기법을 전용하고 변용한, 그리고 그렇게 자기화한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그렇게 벽화기법을 자기화한 작가의 그림은 크다기보다는 작고, 깊다기보다는 얕고, 아기자기하고 올망졸망한 정겨운 느낌이다. 풍경을 관념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표층 위로 끄집어 올린 그림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산세며 나무와 바위 그리고 어스름한 달빛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그렇게 밤과 낮이 다르고 사계의 풍경이 각각이다. 밤은 어둠이고 낮은 빛이다. 밤은 생략이고 낮은 현상이다. 밤은 서정이고 낮은 분석이다. 그렇게 밤에 풍경은 생략과 여백 속에 잠기고, 낮에 풍경은 늘 푸른 상록수 사이사이로 빼곡하고 치밀하게 그려진 헐벗은 낙엽송과의 색채 대비가 두드러져 보인다. 그렇게 가을산은 스산하고 겨울산은 쓸쓸한 느낌이다.
이처럼 모든 그림들이 저마다의 느낌으로 분분하지만, 근작에서 유독 인상적인 그림은 밤 풍경을 그린 그림들이다. 짙푸른 밤하늘에 보름달이 교교한, 푸른 어둠 속에 잠긴 산과 칠흑 같은 하늘 위로 교교한 달빛이 하나로 어우러진, 푸른 밤의 서정이 감지돼 오는 그림들이다. 그림에서 어둠은 아무리 어두울 때조차 검정색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대신 어둠은 덜 짙은 푸른색과 더 짙은 푸른색 속에 잠긴다. 채색에 금니가 더해져서 달빛을 더 오묘하게 만들고, 어둠을 더 부드럽고 만들고, 푸른색을 더 깊게 만든다.
조용식은 이참에 조풍류로 화명을 바꿨다. 풍류는 관념보다는 감각에 어울릴 것이다. 작가의 그림은 감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