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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3일, 금요일, Ambala, Hotel Kwality
(오늘의 경비 US $14: 숙박료 400, 점심 130, 저녁 40, 택시 30, 릭샤 10, 홍차 4, 4, 환율 US $1 = 44 rupee)
인도에는 파리가 많다. 쓰레기 천국이니 많을 수밖에 없다. 음식점이나 실외에 앉아있으면 덤벼드는 파리들과 싸워야한다. 왜 사람에게 그렇게 집요하게 덤벼드는지 모르겠다. 무언가 먹을 것이 있는 모양이다. 오늘 Haridwar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파리들과 지겹게 싸웠다. 기차역에 파리가 많은 이유는 철로에 쓰레기가 널려있기 때문이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철로에 계속 쓰레기를 던진다. 철로를 쓰레기통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주위에 쓰레기통은 하나도 안 보인다. 인도 사람들은 쓰레기가 더럽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하는 것 같다.
기차가 들어올 시간이 되어서 방송이 나오는데 내가 기다리는 4711 기차 얘기는 없고 4712 기차 얘기만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힘들게 영어를 하는 친구를 찾아서 물어보니 4712 기차는 들어오는 기차고 4711 기차는 나가는 기차라는 아리송한 대답만 한다. 정확한 대답을 얻을 수 없어서 들어온 4712 기차에 올라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중에 차장을 만나서 확실한 답을 얻고 안심을 할 수 있었다. Haridwar에 도착한 4712 기차는 Haridwar가 종점이라 돌아서 나가면서 4711 기차로 바뀐다는 것이다. 차량 번호, 좌석 번호, 플랫폼 번호는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기차 번호는 어디 있는지 안 보인다. 기차 번호는 출발 시간과 플랫폼 번호로 대강 추측할 수밖에 없는데 차장에게 물어보기 전에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번처럼 기차 번호가 혼동이 될 때는 정말 황당하다. 다행히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지정 좌석인 에어컨 차량인데도 승객들이 오르면서 기차가 떠날 때까지 꼭 싸우는 것 같이 아우성이다. 제 자리를 찾아서 앉으면 되는데 왜 그렇게 그러는지 모르겠다. 기차가 떠나고 승객들이 모두 자리를 찾아서 앉은 다음에야 조용해 졌다. 에어컨이 나오면서부터 기차 안이 쾌적하게 느껴졌고 좌석도 편안했다. 그 동안 탔던 버스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짐도 위 선반에 올려 놀 수 있고 참 편안한 여행이다.
창 밖 경치는 넓고 넓은 평야 농촌 풍경이다. 바람이 세게 분다. 바람은 막으려 심었는지 포플러나무들이 많이 보이는데 나무들이 바람 방향으로 모두 기울어져있다.
오늘 Rishikesh에서 Haridwar로 합승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옆에 앉은 휴가 중인 가족과 얘기를 나누었다. 30대 부부와 13살과 5살 난 두 아들인데 한국에 관해서 예상외로 많이 알고 있었다. 한국은 일본과 별차 없이 잘사는 나라로 알고 있다. 인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삼성, LG, 현대의 공이 큰 것 같다. 13살 짜리 아들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어보니 컴퓨터 엔지니어란다. 아버지가 미국에 가서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가능한 얘기다. 미국 Silicon Valley에는 인도 컴퓨터 엔지니어들이 아마 미국 컴퓨터 엔지니어 다음으로 많고 인도 컴퓨터 엔지니어들이 세운 컴퓨터 회사들도 많다. 내가 마지막 일했던 Silicon Valley의 컴퓨터 회사도 인도 컴퓨터 엔지니어가 세운 회사이다.
Ambala에 도착해서 어렵게 호텔을 잡았다. 에어컨이 있는 방인데 400 rupee다. 일단 에어컨이 있으니 살 것 같다. 저녁 식사를 방에서 하고 나니 내일 아침 기차역으로 나가서 다음 기차를 타기만 하면 된다. 호텔 매니저에게 부탁해서 waiting list에 있는 내 Ambala-Kalka, Kalka-Shimla 두 장 기차표의 좌석들이 확정되었는지 전화로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인도에 수없이 많이 보이는 Sadhu, holy man, 혹은 성자
Haridwar 길가에 있는 이름 모를 힌두교 신
Haridwar 기차역
기차역 플랫폼 풍경
편한 자세로 기차를 기다린다
2005년 6월 4일, 토요일, Shimla (고도 2,205m), Fontaine Bleu Hotel
(오늘의 경비 US $13: 숙박료 250, 점심 19, 저녁 85, 홍차 8, 바나나 8, 아이스크림 25, 위스키 작은 병 140, 식료품 52, 기타 2, 환율 US $1 = 44 rupee)
Ambala 호텔 매니저가 매우 친절하다. 호텔을 나오는데 무슨 일로 서울에 하루 들렸다며안녕하십니까하고 외친다. 그러나 어제 밤에 부탁한 기차표 예약 확인은 매표소가 닫아서 못 했단다.
기차역에 당도해서 대합실에 붙여진 예약자 명단을 보니 내가 탈 Ambala-Kalka 기차가 나와 있고 내 이름이 "Confirmed"로 나와 있다. 다행이었다. 예약자 명단에 내가 탈 차량 번호 C1의 위치도 나와 있었다. 화차 바로 뒤였다. 그러나 플랫폼 번호는 없다. Enquiry에 물어보려 가니 칠판에다가 내 기차의 플랫폼 번호를 막 쓰고 있었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1st Class Waiting Room에 들어가서 쉬었다. 입구에 지키는 사람도 없는데 나처럼 막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 가끔 누가 와서 체크를 하는 모양이다. 체크를 해도 나 같은 외국인은 1st Class 기차표가 없어도 봐주는 모양이다. 내부는 선풍기가 돌아가서 시원하고 깨끗한 화장실도 딸려있다. 기차 도착 시간이 될 때까지 잘 쉬었다. 기차 탈 때 보니까 내가 탈 차량 위치가 예약자 명단에 나온 위치와는 달랐다. 기차에 차량이 30여개 이상 될 때 내가 탈 차량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기차역에 저울이 있어서 달아보니 짐 무게는 12.5kg이고 내 체중은 55kg이다. 이번 여행을 떠날 때 몸무게가 57kg이었으니 2kg 줄은 셈이다. Everest와 Annapurna 트레킹을 하면서 준 것 같다. 몸이 가뿐해서 좋다. 앞으로도 이 몸무게를 계속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 트레킹 할 때는 나 같이 나이가 든 사람의 적정 짐 무게는 체중의 4분의 1일 정도라는데 55kg의 4분의 1은 13.75Kg라니 내 짐 무게는 적정 수준 이하이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 Lonely Planet 인터넷 포럼에 장기 인도 여행을 하려는데 짐 무게가 어느 정도가 좋겠느냐고 질문을 던졌는데 누군가가 10kg이라고 대답했었다. 그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었는데 지금 보니 맞을 수도 있는 얘기다. 인도에서 추운 Himalaya 지역에만 안 가면 침낭도 다운재킷도 필요 없으니 나도 충분히 10kg으로 줄일 수 있겠다. “Travel light - 여행은 가볍게”라는 것은 여행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에어컨 된 Chair Car를 타고 Kalka까지 편하게 갔다. Kalka에서 waiting list에 있던 내 다음 Kalka-Shimla 기차표의 상태를 차장에게 알아보니 "Confirmed" 되었단다. 내 자리가 확정되었다는 얘기다. 이번 기차표를 산 것은 좀 위험했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는 사지 말아야겠다. 미리미리 행동을 취해서 항상 "Confirmed" 된 기차표를 사야겠다. Kalka-Shimla까지는 5시간 반 걸렸는데 좀 지루했다. 에어컨이 안 된 Chair Car로 Kalka를 떠날 때는 더워서 좀 불편했는데 고도가 높아지면서 시원해지고 편해졌다.
기차가 "S" 자를 그리면서 계속 고도를 높였는데 경치도 점점 좋아졌다. 터널을 100개 이상 지나갔다. Kalka-Shimla를 다니는 기차는 유원지에서 보는 장난감 기차 같은 소형 기차였다.
오늘 신문을 보니 인도에 영어를 하는 인구가 10%밖에 안 된단다. 그리고 영어가 공용어 중에 하나로 지정된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한국이 일본 강점기에서 빠져나오면서 일어를 계속 사용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얘기다. 그러나 인도의 경우는 좀 다른 모양이다. 오늘 신문에 나온 사설은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오후 6시쯤 Shimla에 도착했다. 고도 2,200m 산 위에 세워진 도시다. 소나무가 울창하고 날씨가 시원했다. Shimla는 British India의 여름 수도였던 곳이다. 1년 중 6개월 동안은 Calcutta에서 (후에는 New Delhi에서) 정부가 이곳으로 옮겨왔다. Calcutta와 New Delhi가 여름에 너무나 더웠기 때문이었다. British India의 영국인들은 여름 6개월 동안 Shimla에서 편하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다. "Gandhi" 영화에도 Gandhi가 영국 총독의 초대를 받아서 Shimla에서 회의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일 년에 한번 씩 수도를 옮기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초기 철도가 없었을 때는 말이다.
숙소를 잡는데 애를 먹었다. 찾아가는 호텔마다 빈방이 없단다. 그리고 보통 비싼 것이 아니다. 웬만한 방은 700 rupee ($16) 이상이다. 어렵게 욕실도 없는 허스름한 방을 250 rupee에 얻었다. 그래도 운이 좋은 셈이다. 짐을 내려놓고 내가 원래 들려고 했던 YMCA로 가봤다. 역시 빈방이 없단다. 매일 떠나는 사람들이 있으니 내일 오전 11시 체크아웃 시간에 다시 와보란다. 내일은 YMCA나 다른 곳으로 꼭 옮겨야겠다. 그것이 안 되면 지금 있는 곳에서 이틀 정도 더 묵은 후에 Shimla를 떠나야겠다. 너무 비싸고 불편해서 오래 못 있겠다.
Shimla는 물이 귀한 모양이다. 산위에 위치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저녁에 화장실에 가서 몸을 대강 닦으려 하니 (샤워가 없다) 수돗물이 안 나온다. 물통에 물이 있어서 조그만 용기에 퍼서 수건을 적시어서 몸을 닦는데 누가 밖에서 화장실 문을 두들긴 다음에 영어로 외친다. 물통에 든 물이 오늘 쓸 물 전부인데 (대소변을 내리기 위해서) 그것을 아느냐는 소리다. 누구인지 내가 화장실에 들어갈 때부터 나를 주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알 리가 있나, 모른다고 했더니 또 뭐라고 떠든다. 화장실에서 물 하나 마음대로 사용 못 하다니, 이래저래 이곳은 힘든 곳이다.
Shimla 역사는 간단히 다음과 같다. Shimla 지역은 원래 네팔 왕국의 땅이었는데 1814년 네팔이 옆 나라 Sikkim 왕국을 침공했을 때 Sikkim 왕이 영국에게 원조를 요청해서 네팔과 영국과의 전쟁이 벌어졌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Shimla 지역을 포함한 현재 네팔 서부 지역 땅을 차지했다. 1814년 영국과의 전쟁이 없었더라면 Shimla는 현재 네팔의 땅이었을지도 모른다. Shimla의 날씨와 경관에 매력을 느낀 영국 사람들은 1864년에 Shimla를 British India의 (대영 인도제국) 여름 수도로 정하고 1939년까지 진짜 수도였던 Calcutta에서 (1939년부터는 1947년까지는 New Delhi에서) 2,000km 거리인 Shimla로 정부를 옮겨서 매년 6개월 동안 이곳에서 인도를 통치했다. Kalka-Shimla 철도가 1903년에야 만들어 졌으니 그전까지는 거의 40년 동안 매년 “pack animal"을 이용해서 수도를 옮겼고 그 많은 정부 건물과 개인 저택들을 짓기 위한 건축 자재 역시 "pack animal"을 이용해서 옮겼다니 믿기 힘들다. 아마 세계 다른 곳에 기후 때문에 이렇게 수도를 매년 옮긴 예는 극히 드물 것이다. 한 여름에 Delhi와 Calcutta의 온도가 50도 가까이 올라가고 특히 Calcutta는 습도가 매우 높아서 영국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Kalka 역에서 Shimla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소형 기차다
산길을 "S"자를 지으며 올라갔다
수많은 터널을 지나갔다
철로 옆으로는 차도도 지나간다, 버스보다는 기차로 가는 것이 훨씬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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