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잠결에 들린 바람 소리에 일어나, 일기 예보를 보니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 오늘이라고 한다. 지리학을 전공하였다면서 며칠 앞 기후도 예측하지 못함에 스스로를 한탄하였다. 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 ‘아침이면 기온이 올라가고 그리면 국지적으로 기압차가 줄어들어 바람의 속도도 줄어들거야’ 라고 위안하면서 자는 둥 마는 둥 일어나니 6시다.
아침, 창을 열고 가장 먼저 본 것이 바람의 방향이다. 새벽보다 바람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손에 부딪히는 체감 온도도 생각보다 낮지는 않다. ‘이 정도면 그럭 저럭 답사할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혹, 일찍 와 기다릴 사람을 생각하여 7시 50분에 집을 나섰다. 앞산 쪽으로 오니 동쪽에서 비추는 햇살이 차창으로 가득 들어왔다. 너무 좋았다. 이 햇살이 대기를 가열하고, 오후쯤이면 지표로부터 복사열이 다시 대기를 가열할 것이다. 그러면 답사하기도 한결 나아질 것이다. 걱정이 조금씩 안도로 바뀌어 갔다.
부초 앞, 잠시 기다리니 경대 이보영 선생이 왔다. 언제 보아도 여유있는 모습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9시 되어가고 선생님들도 한 분 두 분 오시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이 한명도 없는 것을 보아 날씨를 꽤 걱정한 것 같다. 무엇보다 편입생들과 윤수전이가 반갑다. 학부 학생들이 아침 일찍 답사에 따라 나선다는 것은 답사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 이상 쉽지 않는 일인데, 기특하기 그지없다. 더더욱 놀란 것은 김정희 선생님이다. 어제 답사 참여자 명단에 김정희 선생님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 정말 안동에서 왔다. 그것도 동료 선생님과 함께. 그리고 연이, 경화, 상혁이, 원동이 모두 반가운 얼굴들이다. 이정화 선생이 오지 못해 못내 안타까웠다. 무척 가고 싶어 하였는데.
자문애 깃발, 김금연 선생님이 자문애 깃발을 만들어 왔다. 차에 꽂아 보았다. 그렇듯 하였다. 이제 모양도 되어가는 것 같다. 괜히 기분이 우쭐해진다. ‘정형화라는 것이 좋은 점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였다. 박용택 선생님이 오면서 배차가 끝나 출발을 하였다. 30명 정도가 되는 것 같다. 대군이다.
도동 서원, 볼 때 마다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곳이다. 서원은 어디든 만만하지가 않는데 여기는 버거운 정도가 아니다. 좌우상하에서 압박하는 듯한 서원의 공간 구조는 어디에 서 있어도 마찬가지이다.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이러한데, 옛날 유생들은 어떠했을까? 미루어 짐작이 간다. 서원을 나오면 마치 시험치고 나온 사람처럼 긴장이 풀린다. 아마 짬짬이 수월루에서 낙동강을 바라보았든 유생들의 마음도 나와 비슷했을지 모른다.
---- 참 맛있게 먹은 점심 ----
사문진, 상상해 본다. 낙동강을 따라 북상하는 돗단배들을. 포구에는 염선(鹽船)을 기다리는 객주와 포구 사람들이 있다. 포구에 장이 열리고 고령, 성주, 대구 등 인근에서 사람들이 모인다. 한 바탕 시끌벅적함이 끝나가면서, 수레에 소금을 실고 사람들은 대구 장으로 간다. 곡물을 싣고 배는 다시 부산으로 간다. 떠나는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들. 아랫 장을 바라보는 봉화대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겨울이라 그런지 낙동강 물이 더욱 새파랐다.
남평 문씨 세거지, 돈이 아니라 정신을 담을 그릇을 남겨야 함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대구에도 부자들은 많았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살아생전 여러 사람들에게 돈으로 권세를 떨쳤고, 호사스러운 생활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름조차 없다. 흔적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삶을 남길 그릇이다. 깨어지지 않을 그릇. 그것이 문화이다. 형이상학적인 정신적 문화와 형이하학적인 보이는 문화가 그것이다. 그래서 문씨 세거지를 지금과 같이 만든 수봉 선생과 그 부친이 지혜로운 것이다.
저녁, 1989년 그 추웠든 12월 말에 답사하였든 대관령이 생각난다. 눈으로 덮혀 있었든 횡계의 황태 덕장. 바들 바들 떨면서 답사했다. 뼈 속까지 한기를 느끼면서 강을 3번이나 건넜다. 그것도 밤에. 그 때 보았든 황태를 지금은 따뜻한 곳에 맛있게 먹고있다. 힘들었지만, 아련하게 추억으로 남아있는 황태 덕장을 떠올리게 한다.
밤, 무사히 답사를 마쳤다. 피로가 몰려온다. 그래도 답사 후기는 쓰고 자야겠다. 모두 수고하였다.
답사, 내게 답사는 삶이다. 내 지리적 삶의 궤적들은 답사로 엮어져 있다. 학문의 문으로 들어가면서 배운 것이 답사였기 때문이다. 그 답사를 20여년 동안 하고 있다. 그래도 언제나 새롭다. 그리고 즐겁다. 내가 살아있음을 가장 많이 느낄 때가 답사할 때이다. 그래서 답사를 마치고 나면 너무 너무 뿌듯하다.
오늘 밤은 잠이 잘 올 것 같다.
12월 7일
첫댓글 교수님, 오늘 수고 정말 많이 하셨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항상 새로운 각도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답사 후기는 좀 더 생각을 정리한 후에 올리겠습니다. ^^
아까 컴퓨터가 갑자기 에러가 나는 바람에 애써 써 둔 후기가 몽땅 날아가버렸습니다.....조만간 다시 써서 올려야겠군요....
집에 가시면.. 꼭 답사 후기를 쓰시고 주무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맞군요.. 역시 대단하신 교수님.. 어제 정말 교수님의 생생하게 살아계신.. 정말 뼈속까지 시린 날씨에도 즐거운 표정이 만발한 교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했지만... 그 모습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저녁 먹을때 교수님이 눈감고 계신 모습을 보고 오늘도 무리를 하셨구나 싶어 걱정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정열적으로 설명하시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열강하시는 교수님의 표정에서 살아있음의 즐거움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학부때는 별생각없이 따라다니기만 해서 답사는 지루한것이라 단정지었던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오랫만에 학생이 된 기분도 너무 좋았습니다.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