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세상을 바꿉니다. 지난해 ‘한류 열풍’이 말해주듯 이제는 문화가 세상을 지배합니다. 문화가 곧 국가의 최고 경쟁력인 시대입니다. 그 문화(소프트웨어)는 돈만으로, 힘만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사람이 만듭니다. 독특한 상상력과 감성, 고집으로 ‘2005년 문화 한국’을 열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봅니다.
지난해 연극계 최고의 화제는 1년간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열전’의 흥행성공(평균 객석 점유율 80%, 총17만명)이었다. 사그러든 연극에 관심의 불을 지폈다.
그 열기를 올해에는 ‘여배우 시리즈’가 이어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여배우 시리즈’는 2월 11일 윤석화의 ‘위트’가 첫 테이프를 끊으며 김성녀의 ‘벽 속의 요정’(가제) 손숙의 ‘셜리 발렌타인’ 박정자의 ‘19 그리고 80’ 양희경의 ‘늙은 창녀의 노래’ 김지숙의 ‘지젤’이 1년간 2개월씩 차례로 관객을 찾아간다.
그 중심에 비언어극 ‘난타’의 제작가로 세계 속에 우뚝 선 송승환(48) PMC프로덕션 공동대표가 있다. 배우들의 대중성과 연기력을 감안하면 공연성공은 웬만큼 보장받을 수 있는 상황. 그러나 그는 새로운 승부의 카드를 빼 들었다. 관객몰이가 쉬운 대학로 대신 연극의 불모지라 불리는 서울 강남을 무대로 선택했다. 그곳에서의 성공 없이, 그곳을 무시하고 한국 연극이 일어설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송 대표가 이 시리즈 기획에 나선 것은 지난해 봄. 난타전용관에서 레퍼토리극장으로 전환한 청담동 우림청담씨어터 등 서울 강남의 공연장이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현실이 출발점이었다.
대학로에서 공연을 즐기는 많은 그곳 관객을 불러모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던 그는 ‘연극열전’처럼 연출가나 배우 중심의 연극이 아닌 관객 중심 기획의 필요성을 느꼈다. 박정자를 시작으로 한명씩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참여의사를 타진해 나갔다. “강남 관객을 끌어 모아 연극계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그의 의지가 마침내 국내 대표 여자 배우 6명의 마음을 움직였다.
송 대표는 첫 공연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막을 영영 내리는 조급성이야말로 국내 연극, 뮤지컬계의 가장 큰 단점으로 보고 있다. 발전가능성이 있는 작품들을 꾸준히 다듬고 숙성시키지 않는 것은 ‘낭비’라고 말한다. “일부에서는 창작 아이디어가 없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기존 작품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해야 걸작이 나온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가 기존의 명작들을 새롭게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연극열전’을 높게 평가하는 것도, ‘여배우 시리즈’를 기존 레퍼토리로 채우려 했던 의도도 그런 이유에서다.
‘보는 사람보다 만드는 사람 위주의 제작 풍토’도 국내 연극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요인으로 지적한다. 인터넷 TV 영화 등 편히 즐길 수 있는 문화상품들이 널려 있는 요즘, 관객들이 애써 공연장을 찾아 표를 끊을 수 있도록 하려면 좋은 작품이 있어야 하고, 기획력이 이를 뒷받침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객들이 ‘아날로그 예술’인 연극에서 보고 싶어하는 것은 무대의 생생함이다. 윤석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윤석화의 연극을 보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인 현실은 결국 만드는 사람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다.”
‘여배우시리즈’로 강남지역에서 연극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싶은 것 말고 그에게는 또 하나의 목표가 있다. 지난해 ‘트라이 아웃(관객 반응을 알아보는)공연’을 한 창작뮤지컬 ‘달고나’를 세계적인 작품으로 다듬는 것. 아무리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수입 뮤지컬이라도 우리 정서를 담아낼 수 없어서다. ‘난타’와 같은 비언어극이 아닌 제대로 만든 창작 뮤지컬도 이제는 한류 열풍에 합류할 때가 되었다고도 본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자신이 연기자임을 잊지 않는다. 1965년 KBS라디오 ‘은방울과 차돌이’서 차돌이역을 맡아 배우 데뷔한지도 40년. “50주년 되면 기념공연 해야지” 라고 말하는 그는 올해도 실험극장 창단 40주년 기념작 ‘피가로의 결혼’서 피가로 역을 맡아 어김없이 무대에 선다.
천직인 연기를 1년 넘게 하지 않으면 정체성을 잃는 듯한 불안해 진다고. 배우겸 제작자인 투잡스족 송 대표의 열정과 도전정신은 주름하나 찾기 힘든 그의 얼굴처럼 올해도 여전히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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