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묘(肇慶廟)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해 지은 경기전(慶基殿) 경내 북쪽에 있으며, 1771년(영조 47) 이득리(李得履) 등 7도(七道) 유생들의 상소로 창건된 것이다.
(조경묘)
●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6호
● 소재지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3가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전주이씨는 전주에서 발생하였다고 하나 당시까지만 해도 시조 묘가 없었다. 시조인 이한은 태조의 21대조로서 신라시대에 사공(司空) 벼슬을 지냈으며, 전주 동교의 발산 아래 자만동(滋滿洞)에 거주하였다고 한다. 태조의 4대조 이안사(李安社)가 강원도 삼척을 거쳐 함경도 덕원 땅에 옮겨갈 때까지 19대가 전주에 세거(世居)한 셈이 된다. 시조비 경주김씨는 신라 태종무열왕의 11대손이라 전한다.
(시조와 시조비위패)
1854년(철종 5) 10월에 조경묘는 경기전과 함께 중수되었고, 1894년(고종31) 동학농민운동 때는 전주 부성이 점령되려 하자 위패들을 위봉사의 행궁에 안치하였다가 그해 7월 17일 다시 전주로 옮겨 왔다. 영조가 친필로 써서 보낸 ‘시조고신라사공신위(始祖固新羅司空神位)’와 ‘시조비경주김씨신위(始祖妃慶州金氏神位)’라고 쓴 위패가 모셔져 있다. 《문헌비고(文獻備考)》에 조경묘의 창건 경위에 관하여 비교적 자세히 실려 있다. 일제강점기 에 경내에 있던 대부분의 건물들이 철거되고 경기전 정전과 조경묘만 남아 있다가 최근 들어 부속건물을 복원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경묘 [肇慶廟]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