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최고의 번성기라 하는 영․정조시대의 풍운아 정약용에 관한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1762(영조38)~ 1836(헌종 2)년 사이를 살다간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은 주로 정조(1776~1800)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이다. 정조는 영조의 손자로서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보고 왕위에 오른 자로서 홍국영의 도움으로 世孫시절 죽음을 면하고 홍국영에게 전권을 위임할 정도의 신임을 하였으나 홍국영이 세도에 맛을 들이고 전횡을 일삼자 홍국영을 물리친 정조는 정약용을 만나 그의 정을 불어넣으려 애를 썼으나 남인이었던 정약용을 노론 벽파 무리가 나서서 모함하는 바람에 정작 정약용을 높은 자리에 등용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나라와 임금을 제일로 여기는 정약용과 신하를 아끼는 정조의 애틋한 사랑이 가슴에 와닿는 구절이 많다. |
정약용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가환, 이승훈 등과 더불어 천주학에도 관심을 기울였던 전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천주학에서 손을 떼고 실학자로서만 살아간다. 오히혀 그의 형 정약종은 학문이 뛰어났으면서도 과거를 치르지 않고 오직 천주교에 귀의하여 신유사옥 때에 참형을 당한다. 그의 아들 하상(夏祥)은 한국순교복자 103위 중 김대건신부 다음으로 2위로 기록되는 영광을 차지한 천주교 신자이다. 하지만, 정약용은 천주교 신자였으면서도 천주교를 거부한다. 또한 그는 정치에 몸을 담았으면서도 정적이 많아 큰 출세는 하지 못한다. 그가 세상에 업적을 남긴 시기는 곡산부사로 있을 때의 시기인 것으로 파악이 된다. 그때 그는 爲民爲國의 牧民官으로서의 철학을 느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하지만 그의 생은 너무 허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