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부산(釜山)을 찾아라!
1.
조선(朝鮮)의 남쪽 관문이라고 불리우던 부산(釜山)은 장강(長江)의 어디쯤일까?
모든 사서(史書)들은 현 반도부산에 맞게 교열되어 있어서 대륙부산의 위치를 알아낼 어떠한 근거도 없는 실정이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辭典)의 설명도 모두 현 대륙지명에 맞게 서술되어 있어 그 근거를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1920년이 넘어서 대륙(大陸)에서 반도(半島)로 이주하셨던 분들의 고증(考證)과 구한말 외국인(外國人)들의 기록에 그 단초가 엄연히 살아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입체적으로 구성하면 명확히 대륙 부산(釜山)과 마산(馬山) 그리고 사라진 경주(慶州)의 근거도 추적해 낼 수가 있다.
2.
구한말(舊韓末) 대륙조선을 다녀갔던 많은 외국인들의 부산(釜山)에 대한 기록에서 공통적으로 일치하는 것이 바로 부산 앞바다에서는 상어가 다량으로 잡힌다는 기록이다.
부산만에는 탐욕스러운 바다의 하이에나들이 우글대고 있는데, 중국인과 일본인은 상어 지느러미를 별미로 치므로 상어잡이는 꽤 돈되는 일이었다. 상어가 대규모로 출몰하는 것은 조선의 남해안전역에 海蔘이 대규모로 서식하고 있기 때문인데, 상어 역시 사람처럼 해삼 사냥을 즐긴다.
헤세 바르텍(1894년)
이 밖에도 맛좋고 영양가 높은 생선으로 상어와 오징어를 친다.
아손 크렙스트(1904)
朝鮮의 南部海岸에는 상어들이 많다고 한다.朝鮮과 日本의 美食家들이 높이 평가하는 지느러미를 얻고자 상어들을 잡는 것이었다
카르네프 외(外)(1885-1896)
위의 기록중 상어는 바로 지느러미와 알이 일급요리의 재료가 되는 철갑상어를 말하는 것이다. 즉, 부산(釜山)은 철갑상어가 잡히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전의 글에서 철갑상어의 서식지를 그림으로 올린적이 있다. 다시한번 철갑상어의 서식지를 살펴보자.

현 대륙 장강(長江)하구에서부터 상류쪽으로 거슬러 올라가 현 남경(南京)을 조금 지나는 지역까지로 표시가 되어 있다. 즉 이 지역에 대륙조선의 부산(釜山)이 있었다는 것이다.
부산앞바다에 중국배와 일본배가 와서 상어를 잡았다는 기록인데, 현 반도 부산(釜山)이면 이른바 중국배가 그 거리가 어디라고 돛단배를 끌고 고기를 잡으러 온단 말인가? 또한 반도부산 앞바다에는 철갑상어가 잡히지도 않는다.
또한 철갑상어의 지느러미와 그 알인 캐비어를 조선인(朝鮮人) 미식가들이 즐겨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배운 상어지느러미와 캐비어 요리는 조선 것이 아니라 이른바 중국의 요리였다는 역사적(歷史的) 사실들이 거짓이었음을 명확히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천하일미는 바로 조선(朝鮮)의 궁궐과 부유층들의 식도락가들이 즐겨 먹었고 또한 수요(需要)가 엄청 났기에, 중국배나 일본배나 조선을 상대로 한 교역(交易)에서 수지타산이 좋았다는 것이다.
이방인들의 글에서 구한말(舊韓末) 즉 1910년 조선(朝鮮)이 망하면서 궁궐(宮闕)에서 근무했던 많은 요리사들이 쫓겨났다는 기록이 있다. 그들이 쫓겨나 각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우수한 천하진미를 구현하는 요리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현 대륙(大陸)의 이른바 천하일미를 구현하는 대다수의 요리집의 기원(起源)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3.
루돌프 차벨(Rudolf Zabel, 1876-?)은 독일(獨逸)신문사 특파원(特派員)으로 중국 현지에서 義和團事件을 취재한 바 있고, 直隸, 滿洲,山東, 모로코에 이어 자신의 6번째 원정 여행지로 조선(朝鮮)을 찾았다.
<러일전쟁 중에 떠난 나의 한국 新婚旅行>이 원제인 그의 책은 대한제국 시절인 1904년 독일 출신의 여행가이자 言論人인 루돌프 차벨이 갓 결혼한 아내와 함께 이 땅을 여행한뒤 1906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차벨의 위 책에 부산(釜山)의 정확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釜山은 전략적으로나 통상 정책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었는데, 이는 釜山이 동아시아의 칼레(Calais)라는 점에 근거한다. 이때 도버(Dover)는 시모노세끼가 될 것이다. 러시아의 동아시아 구상이 계획대로 완결되었다면, 다롄의 역할은 부산에 돌아갈 공산이 컸다.
이른바 프랑스와 영국의 도버 해협(海峽)에 대해 영국측의 도버와 프랑스의 칼레지역을 조선(朝鮮)의 부산(釜山)과 일본(日本)의 시모노세키에 비유한 것이다.
시모노세키 즉 하관(下關)을 찾으면 그 맞은편이 부산(釜山)이 되는 것임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대륙조선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있어 구한말의 시모노세키 즉 하관(下關)이 현 대륙 강소성(江蘇省)의 남경(南京)임은 하나의 상식으로 되어 있다.
바로, 남경(南京)의 위쪽 장강(長江)을 건너 마주한 현 푸커우구 즉 포구구(浦口区)가 대륙조선의 부산(釜山)이었던 것이다. 부산포(釜山浦)의 포(浦)자를 첫 자로 하여 포구구(浦口區)로 이름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현 장강은 모택동의 간척사업과 제방사업으로 그 폭이 2km정도로 좁아져 있다. 하지만 구한말(舊韓末) 조선을 다녀간 이사벨라 버드비숍의 기록에 따르면 장강은 그 폭이 10km이상이었으며, 여름철 동남풍을 따라 조수가 밀려오면 20km폭의 바다가 생긴다고 기록해 놓았다.
현 남경(南京)은 간척사업과 제방사업이후 새롭게 조성해 놓은것임을 알수가 있는 것이다.
4.
퍼시벌 로웰은 다음의 기록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뱃길이 얼음 때문에 묶이기라도 하면 釜山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사라지고 다른 나라와도 격리된다.
즉 부산(釜山)에서 서울로 가는 길이 바로 강(江)-장강(長江)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바닷길이라면 겨울철에 얼어 붙을리가 없지 않은가? 부산에서 장강을 따라 한산도(閑山島) 즉 지금의 포양호를 거쳐 무한에 다다른 후 한수(漢水)로 접어들어 대륙조선의 수도 한양(漢陽)으로 들어가는 여정이 바로 구한말(舊韓末) 이방인들이 드나들던 주요 루트였던 것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이순신(李舜臣)장군이 일본군을 격파했던 주요 전투지였던 곳은 한산도(閑山島)가 있었던 현 포양호인 것이다. 가로 100km, 세로 50km에 이르는 드넓은 호수지역에서 무수한 섬들에 둘러싸인 천혜(天惠)의 요새(要塞)처럼 형성된 현 포양호를 틀어 막았던 것이다.
즉 이 한산도 즉 포양호가 뚫리면 왜군(倭軍)은 바로 무한(武漢)을 돌아 한수(漢水)를 타고 한양(漢陽)으로 일사천리 다다를수가 있었던 것이고, 이순신(李舜臣) 장군은 포양호가 뚫리면 조선(朝鮮)이 무너지는 것이었기에 기필코 방어에 성공하고 결국 왜군(倭軍)을 패퇴시켰던 것이다.
포양호는 그 습한 열기(熱氣)로 인해 장독(瘴毒)이 피어오르는 지역이다. 이순신장군이 통제사(統制使)로 전투하는 내내 열병(熱病)으로 고생한 것은 바로 이 장독(瘴毒)을 말함은 이미 기술한 바이다.
2019.09.19. 松溪
첫댓글 송계 선생님... 다시 한 번 눈이 번쩍 뜨이게 해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조석으로 쌀쌀해지는 계절이 왔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1890년대 이후의 관련 기록이라면 본문에서의 부산은 한반도 부산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한반도는 한조선이었고, 대륙은 차이나 즉 대조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중국인은 대륙 조선인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시기의 일본은 열도에 있었습니다.
남경의 하관은 이 시기에는 일본의 시모노세끼가 아닙니다.
또한 중국 남경은 본래 일본보다 대조선과 관련된 지역입니다.
1823년 영국에서 발간된 지도에도 차이나는 현 대륙대부분으로 나타나고, 대륙에서 이주한 분의 주장도 대륙전체가 조선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증언과 지도의 내용이 일치하는 것은 신빙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당췌 이해가 안 가는군요.. 말씀하신 근거는 어디에 있는것을 인용하신것인지요? 저희 카페는 철저한 서지적 근거를 주로해서 하나씩 고증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냥 단순한 설이라던지 개연성을 가지고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또한 모든 근대사의 촛점은 구한말을 기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고증이 되신부분이거나 정확한 논거가 있으시다면, 정확한 설명과 함께 글을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다만, 아메리카조선설이나 세계가 조선이라는 주장은 정중히 사양함을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스스로 주장했던 내용도 스스로 부정하는군요.
그동안 님들이 주장했던 한반도의 내용중에 어떤 주장을 했었는지를 다시한번 검토해보시고 영국에서 발행한 1823년도 지도는 님들 싸이트 댓글에도 올라와 있습니다.
허점이 많은 주장을 무조건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마시고 다른 이의 주장도 검토해서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님들만 근거를 가지고 공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치도 맞지않는 어거지 주장은 오히려 독이 되는 것입니다.
1890년대에 일본이 대륙 양자강 남쪽에 있었고 시모노새끼가 남경이라는 주장은 누가 이를 인정하겠는지요.
천문기록에도 왜지역은 필리핀과 베트남 유역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그러니까 님의 주장을 고증해 보세요...고증하셔서 당카페의 주장 틀린것을 정확히 서지적으로 증명하세요..그게 학문하는거 아니겠습니까?
@송계 왜의 천문기록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영국에서 발행한 1823년도 발행된 지도와 1428년도 제작된 천하제번겸공도를 찾아보세요.
그러면 님의 주장이 허구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있습니다.
인터넷에도 나오는 내용이니 헛소리는 그만하시지요.
님이야 말로 자칭 해석하는 것이지 고증이라 말할 수 있는지요?
님이 제시한 철갑상어 서식지역도 한반도 부산지역이 나타는 것은 어떻게 설명하겠는지요?
그럼 님이 생각하는 중국은 어느 나라를 지칭하나요?
부산앞바다에 상어를 잡으로중국 일본배가 많이 왔다고 하는데 중국은 어느 나라를 지칭하고 중국 어느지역의 배가 어데 온것인가요?
@평형감각 아~ 뇌피셜로 올린 댓글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해력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깊이가 얕은 것인지...
스스로 되돌아 보시길ㅎㅎ
@레시아 아 그렇습니까?
님이 댓글을 올린 기록들을 무시할 수 있는 근거는 있나요?
@송계 이미 당시 세계지도에도 나오는 사실을 무엇을 고증하라는 것인지요?
님이야말로 고증해보시지요?
윗글이 고증하는 것이라 보시는지요?
위글어데가 대륙 부산앞바다라는 내용이 나오는지요?
철갑상어? 님이 제시한 철갑상어 서식지도 양자강하구 유역. 한반도 남해바다 유역(현재 부산포함) 일본 서남쪽 바다유역으로 표시되어 있지 않는지요?
이 내용이 잘못된 것이라면?본문에 올린 지도는 혹시 가짜인가요?
@평형감각 제 주장이 허구라는거 ,정확히 글을 올리세요..어떤 말을 제가 헛소리를 한것인지...제가 인용한 책을 도대체 읽어보기나 하신건가요. 아니 얼마나 정확히 아시길래 철강상어 나오는게 반도부산이라고 자신을 가지고 말씀을 하시나요? 님이 헛소리를 하고 계시군요. 반도부산인지 대륙부산인지 책의 내용을 정확히 분석해서 밝히지 못하는 수준이시면 먼저 정확히 책을 읽어보시고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하세요.,,그러면 됩니다. 그리고 모르시면 점잖게 질문을 하세요.혼자 판단하시고 맞네 안맞네, 헛소리네,,이게 무슨 예의입니까?
평형감각님 현 한반도 부산에서 철갑상어 잡아서 먹었다는 썰은 없은 걸로 압니다...
윗 글에도 철갑상어라고 나오지 않고 상어라고 나오며, 필자가 철갑상어 서식지로 표시한 지역도 양자강유역과 한반도 남쪽 일본 등지로 나타내고 있지 않나요?
서식지는 환경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윗 본문에서 나타난 1890년대까지도 한반도가 조선과 관계가 없다면 현재 대한민국은 조선과 전혀 관계없는 나라가 아니겠는지요?
무조건 조선에 관한 내용을 모두 대륙으로 해석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성을 유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중국이 조선이다라고 주장하고는 중국은 조선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해석하면 모순되지 않나요?
중국배가 조선 부산앞바다에 상어잡이를 하러 많이 왔다는 것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이겠는지요?
@평형감각 중국배... 경기도 배가 부산까지 가서 어업 활동한것이오
혹시 경기도 뜻 모르죠?????
@레시아 경기도는 조선이 아닌가요?
그럼 조선은 어데인가요?
위글에서 중국은 어데이고 조선은 어데인가요?
또한 님들의 주장대로 근거는 무엇인가요?
만약 중원이 경기도라면 내륙에서 많은 배를 몰고 바다에가 상어잡이를 했다는 근거는무엇인가요?
참 이해력이 많고 깊이가 깊으신분이 대단하십니다.
또한 일본은 1890년대까지 대륙 남촉에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근거는 무엇이며, 언제 열도로 이주했다는 것인가요?
또한 당시 일본으로 유학 등으로 간 사람들이 왜 현 일본으로 갔을까요?
현재 일본이 일본이 아니라면 그럼 어떤 나라인가요?
또한 님들이 한반도가 한조선이었다고 주장한 것은 무슨 근거로 주장한 것인가요?
저는 그동안 1800년대 초반까지 한반도는 고려였으며, 이후 고려가 세계예수회국에 멸망한 후 조선이 이를 병합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윗글에도 철갑상어 서식지가 양자강일부와 일본 한반도로 나타는데 한반도 부산앞바다에는 왜 표시한 것인가요?
저의 근거는 1800년대 발행된 각종 세계지도가 근거입니다.
세계예수회국에 불알을 탁~치고 갑니다ㅎㅎㅎ
한조선이란 말은 듣도보도 못한 말이군요. 도대체 누가 한조선이 한반도라고 했단 말인가요? 일본은 대륙에 1890년대까지 있었다고 주장 누가 했나요? 저희 카페는 일본의 최종적인 열도이전은 1945년 나가사키 즉 항주만에 원자탄이 떨어지고 이동했다고 했지요. 일본이 필리핀뿐 아니라 여러곳에 있었던 거 당 카페 회원분들도 다 아십니다. 그 주체세력이 있던곳이 대륙동남부로 보고 있는것이지요. 최적관측지역과 관측가능지역은 잘 이해를 해야지 무조건 최적관측지역에 따라서 필리핀이 일본이다 하는 논리는 다시 조선조의 일식 최적관측지역은 한반도라는 박창범선생의 오류와 마찬가지이지요. 이클립스의 삼국부터 조선조의 일식도만
@송계 정밀히 보아도 얼마든지 알수 있는 일입니다. 즉 정확히 공부가 안되셨다는 것입니다.본인 공부가 덜 되신걸 가지고 맞다 안맞다 틀리다 하면 어쩌란 말입니까? 우기는 것 밖에 더 되겠습니까?
ㅎ ㅎ 토인비의 지도를 참고해보세요.
그리고 님의 부랄이나 탁~ 많이 치시지요.
그렇다면 고려는 누구에게 언제 멸망한 나라인가요?
혹시 1392년 조선에게?
한반도에 있던 고려는 어떤나라 인가요?(천하제번겸공도참조)
한반도에 고려가 없었다면 한반도는 어떤나라가 있었나요?
다시한 번 부랄 탁~ 많이 치세요.
혹시 한반도 상황도 모르면서 대륙 운운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님 이해력이 대단하신분들은 뭐가 달라도 크게 다른가 봅니다.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이
이해력이 좋은 분들 특기인가요?
참고로 조선의 한반도 병합설은 현재 미국 필라델피아에 거주하고 계시는 최준기씨의 증언을 참조했습니다.
이 분 아버지가 대륙에서 조선마지막 황제에게 직접 칙량사자격증을 하사받았다고 합니다.
그 후 1910년부터 1920년 까지 일본의 지시에 따라 한반도를 직접 측량했다고 합니다.
''조선의 건국역사도 모두 거짓으로 왜곡된 것이며, 대륙 전체가 조선이고 대륙 전체의 역사가 조선의 역사이다.''
''조선과 고려는 오랫동안 평화롭게 지내왔는데, 고려가 멸망하자 이를 조선이 병합한 것이다.''라고 증언하셨습니다.
저도 이 분의 증언 이후 대륙 조선설을 믿고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 조선은 세종대황 초기까지 대륙에 있었다.
조선 영역은 한반도와 대륙 산동반도를 포함한 일부지역이며, ''산동반도와 기타 지역을 명나라에 위양하고 사군육진 즉 동간도 서간도 북간도 녹둔도(연해주)를 개척했다.라고 최초로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저이외에 대륙조선설을 주장했던 분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는 최준기씨 증언 덕분으로 ''대륙 일부가 아닌 전체가 조선이다.''라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실록에 나오는 동서 2000리 남북 3000리설은 혹시 님들이 주장하는 중국 즉 조선의 중심지역인 경기도 지역이거나 일본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최준기라는 분의 증언이어디나오는지 알려주실수있을까요?
위에서 언급하신 분 외에도 대륙조선 이야기는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1982년에 머리통 맞아가며 지도로 대륙조선의 지명을 설명하셨던 집안분한테 공부하셨던 분이 당 카페회원이십니다. 말씀하신 반도이야기하고는 일치가 되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서지적인 고증을 통해 밝혀야 하는 부분이 될것입니다. 물론 외국인들의 기록도 같이 분석해야 겠지요..두 이야기중 하나는 거짓이 되는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