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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교 일주문 원문보기 글쓴이: 春破[춘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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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剛經 五家解 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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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總論
칠야(漆夜)의 혼몽(昏夢)이 한 태양에 의하여 밝아지듯 우리 부처님의
위대한 깨달음이 만고(萬高)에 명암(冥暗)을 하루 아침에 밝혔다.
그러나 귀 먹은 이 듣지 못하고 눈먼이 보지 못하니 슬프다. 보리도량(菩
提道場)의 일대광명(一大光明)이 봄 눈, 아지랑이와 무엇이 다르랴!
범천(梵天)의 권청에 의하여 반야(般若)의 배를 끌고 생사(生死)의 바다
를 건내주는 한 사공이 되었으나 타는 이가 없으므로 먼저는 양수레,사슴
수레로 유혹하고 다음은 소수레로 유혹하다가 마침내 큰 흰소의 수레를 꼭
같이 끌게 하시니 마치 몸안에 무가(無價)의 보주(寶珠)를 가진 거지가 무
가보(無價寶)를 깨닫지 못하므로서 천지를 유랑하다가 마침내 어진 아버
지의 지혜로운 방편에 의하여 그것을 깨닫고 삼계(三界)의 주인이 된것 같
다.
금강경(金剛經)은 범명(梵名) Vaira-Cchedika로서 교판(敎判)상으로 보
면 六백부 반야경(般若經)4처16회(四處 十六會) 가운데 제九회(능단금강
분:能斷金剛分) 五七七권에 해당되고 교리상(敎理上)으로 보면 진공무아(
眞空無我)의 공사상(空思想)에 해당된다.
말하자면 소승불교의 유아법집(有我法執)을 하루 아침에 타파하고 무소입
무소주 무소득(無所入 無所住 無所得)으로서 금강무구(金剛無垢)의 청정불
심(淸淨佛心)을 개발하여 대승의 일승원통(一性圓通)의 도리에 바로 들어
가 자리이타 각행원만의 보살도(自利利他 覺行圓滿의 菩薩道)를 원만히 성
취할 수 있도록 교도(敎導)한 글이다.
대개 경(經)은 상하 양권(兩卷)으로 구분한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如是我問=第一法會因由分)로 부터 [과보도 또한 생각하지 못한다.]
(果報亦不可思議=제十六 能淨業障分)까지의 前半은 상권,[그 때 수보리
가 부처님께 말씀 하시기를 (爾是 須菩提 白佛言=제十七 究竟無我分)로
부터 끝까지를 하권으로 친다.
그러나 이 두권의 금강경은 말귀와 글뜻이 아주 비슷하므로 이에 관하여
僧肇는 [전반은 衆生空 후반은 法空을 설했다.]하고 智의와 吉藏은 [重
說 重說이라]하여 전반은 前會衆 후반은 後會衆, 또 전반은 利根 후반은
鈍根을 위하여 설한 것이며, 또 전반은 緣을 다하 후반은 觀을 다한 것
이며, 또 전반은 觀行을 밝히고 후반은 觀圭를 除滅한 것이다.]말하고 있
다.
그런데 불멸후 약 九백년경 無着보살은 이 경을 해석하려 하였으나 너무
어려운 부분이 많아 日光定에 들어 도솔천에 올라가 彌勒菩薩에게 물으니
미륵보살이 八十수의 시를 지어 이를 해석해 주었다 한다. 그래서 무착은
이에 의하여 [無着論]二권을 지었는데 여기서는 금강경을 총 18住位로 科
判하였고 그의 속제자인 天親보살은 이 [無着論]에 의하여 [天親論]3권을
짓고 금강경을 다시 二十七疑로 科判하였는데 梁武帝의 아들 昭明太子는
이를 三十二分으로 나누어 해설하였다.
[147] 제목 : [금강경오가해]연재---<1>
올린이 : 향산 (이양희 ) 95/10/14 13:01 읽음 : 81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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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剛經 五家解 연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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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序 說
1.涵虛得通禪師 序說(1/3)
여기 한 물건 있으니
이름과 모양 끊어졌으되 古今에 관통하고
한 티끌에 있으면서도 六合(四方上下)에 두루한다.
안으로 衆妙를 머금고 밖으로 群機를 따르며
三才(천지인)의 主가 되고 만법의 主가 되니,
탕탕(蕩蕩)하여 그에 비길 것 없고 외외(巍巍)하여 그에 짝할 이 없다.
싱그럽지 아니한가. 俯仰의 사이 밝고 밝아, 보고 들음에 隱隱하다.
그윽하지 아니한가, 하늘 땅 보다 먼저하여 그 비롯함이 없고
하늘 땅 보다 뒤에하여 그 끝이 없다.
空이라 할까? 有라 할까? 나는 그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 한 개를 얻고 널리 중생이 똑 같이 稟받았
으나 어두어 있는 것을 보시고 찬탄하시기를 ╩기특하다 ╦하시고 생사
의 바다 가운데 나아가 밑 없는 배를 끌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부시니 묘
한 소리가 땅을 움직이고 法의 바다가 온 누리에 찼다. 이에 귀먹은 것
들(범부)이 다 깨어나고 마른 것들(소승)이 모두 윤택하게 되어 대지의
모든 생명들이 각기 그 곳을 얻었다.
이제 般若經은 妙音의 흐른바 이고 法海로 부터 된 것이다.
金剛의 굳은 날로 我人의 주林(我空)을 베고 智慧의 해를 어두운 곳에
비쳐 三空(我空.法空.俱空)에 惑霧를 열어
斷常의 구렁에서 벗어나게 하여 진실의 세계에 오르게 하며, 萬行의 꽃
을 피워 一乘의 열매를 맺게 하시니,
말과 말은 날랜 칼날이 태양에 닿는것 같고, 글과 글은 물 뿌린듯 젖지
않는다.
갓 없는 법문 바다로 흘러 내어 한없이 人天의 스승들을 품어 기르시니
大鑑能(六조혜능)과 圭峯密(규봉종밀)과 治父川(야부도천)傳大士와 宗鏡
같은 이 다섯 큰 스님들은 모두 인천이 존경하는 스승이고 法海의 돌아
갈 곳이다.
각기 通方의 바른 눈을 갖추어 바로 모든 부처님들의 密印을 전하시고
각각 古今에 뛰어났다. 드디어 이 세상에또한 後人들을 널리 깨닫게 하
기 위하여 각자 經을 의지하여 註解를 지어 天下 後世에 전하니
어찌 玉을 쪼아 德을 상했다 하겠는가. 가히 비단 위에 꽃을 더한 것 같
다.
어찌 佛日을 더욱 빛나게 할 뿐이겠는가. 또한 祖師의 道도 드날려 빛냈
다.
우리들이 千載아래 태어나서 만나기 어려운 보배를 만나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니 크게 다행한 일이 아닌가.
이로서 가히 부처님과 조사님들의 남은 빛을 드날리고 이로서 가히 인
군과 나라의 큰 복을 누린다.
그러나 이 편집이 어떤 사람의 손에서 나왔기에 깬이 되어 세간과 출
세간의 안목을 연다.
만일 뜻이 이그러져 잘 못 되고 글이 잘못 되면 곧 사람의 눈을
뜨게하지 못할 뿐 아니라 또한 잘못 알게하여 바른 지견까지 장애하게
될 것이다.
무릇 문자에 미혹하지 아니하여 능히 성인의 뜻을 체달한 이를 진실로
얻기 어렵다.
그러나 만일 마음이 맑고 생각이 고요하여 글을 반연하여 뜻을 연구하며
뜻을 의지하여 글을 찾으면 곧 글과 뜻의 잘 못된 것이 털끝만큼도 숨지
못하여 훤히 나타나는 것이 세상의 病豚이 어진 의사의 손을 도망치지
못하는 것 같을 섟 혹은 늘이
고 혹은 거꾸로 되고 혹은 그친 것을 가려내어 여러 책들을 참고하고 여
러 선생님들께 물어 그것을 바로잡았다. 그러나 다른 책들을 의거한 것
밖에 일찌기 한 글자 한글귀도 망령스리 그 사이에 내 마음대로 붙이거
나 떼지 않했다.
무릇 의심스러운 것은 다른 책에서 의거한 것이 없는 것도 뜻을 의지하
여 해결하고 책끝에 붙였다.
만약 상다리가 부러진 것을 보고도 팔장만 끼고 칼을 그 사이에 놀리지
않는다면 어찌 通人達士가 옳다 하겠는가. 이러므로 재주를 헤아리지 않
고 그 맺인곳을 풀고 이 註解를 냈다.
╩한 물건이란 어떤 물건인가?╦ 비슷할방
이 한개는 希夷하여 情이 끊어지고 방佛하여 보면 있는 것 같으면서도
향홀하여 기 어렵고 황홀하여 헤아리기 어렵다. 어리석은 짓(迷)도 아
~~~(누에번데기기 향, 먼동털 홀)
니고 깨달은 것(悟)도 아니다. 가히 凡聖으로서 부를수 없다. 나(我)도
남(人)도 없으므로 나니 너니 하고 이름 붙일수도 없다.
그러므로 단지 ╩한 물건 ╦이라 한 것이다.
육조가 이르되 ╩한 물건이 여기 있으니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고 이름
도 없고 자도 없으되 위로는 하늘을 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바친다. 밝은
것은 해와 같고 어두운 것은 칠(漆)과 같다. 항상 動用重에 있되 動用重
에 거두어 있지 못하는 것이 이것이다. ╦하였다. 그러나 비록 이와 같
으나 ╩한 물건╦이라 한 말도 또한 억지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러므
로 南獄 讓和尙(제六조의 제자)이 ╩설사 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맞지 않
다.╦한 것이다. 그러니 ╩여기 한 물건이 있다.╦한 것은 그 곳(當處)
을 여의지 않고 항상 湛然한 까닭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이것이 ╩한 물건」에 대한 해석이다. 희이는 신비한 도리이다. 들어도
듣지 못하는 것을 희이(希夷)라 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것을 이라한다
.그러면 「이름과 모양 끊어졌으되 시방에 관통하고 한 티끌에 있으면서
도 육합에 두루한다」는 말은 어떻게 해석하는가.
소언공적하며 담미중허하여 이름없는 것을 가히 이름하고 모양없는 것을
가히 보는 까닭이다.
천겁을 지내도 옛이라 하지 않고 만세에 뻗쳐도 장금(長今)이라 하지 않
느다.
바다와 산악이 서로 수 없이 변천하니 風雲의 변태는 몇번이나 보았던가
무릇 있는 바 모든 사물이 작은 것은 크지 못하고 큰 것은 작지 못하나
이것만은 이와 반대다. 작을 때는 가늘어서 隣虛에도 들어가고 클 때는
넓어서 法界를 싼다.
╩바다와 산╦운운은 이 세계가 成.住.壞.空할때 바다가 산이 되는 세계
의 變을 말한 것이고, ╩風雲╦운운은 君臣興亡의 人間變易를 말한 것이
다.
╩體量이 恢恢하여 간디스강의 모래수와 같은 性德과 한량없는 妙用이
원래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면 곧 따라 느껴 通하는 것이 밝은 거울이
臺에 胡人(黑)이 오면
胡人이 나타나고 漢人(赤)이 오면 漢人이 나타난 것 같고, 큰 종이 틀
에 매달여 크게 치면 크게 울리고 적게 치면 적게 울리는 것 같다.
하늘은 덮고 땅을 싣고 사람은 그 가운데 존재한다. 내지 해와 달 별들
과 풀 나무 곤충등 모양과 형상이 있는 것들이 근본을 삼아 이루어 지
지 아니한 것이 없다.
이것은 ╩안으로 衆妙를 머금고 밖으로 群機를 따르며, 三才의 主가 되
고 萬法의 王이된 것 ╦을 밝힌 것이다. 그러면 그 蕩蕩巍巍한 모습은
어떻게 해석하였는가.
[148] 제목 : [금강경오가해]연재---<2>
올린이 : 향산 (이양희 ) 95/10/16 07:45 읽음 : 45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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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剛經 五家解 연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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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序 說
1.涵虛得通禪師 序說(2/3)
╩탕탕(蕩蕩)운운은 넓고 커서 제일 뛰어난 것을 말하고 외외(巍巍)운
운은 가장 높아 그 이상 더 높은 것이 없는 것을 말한다. 이러므로 왕
도 되고 주인이 되어 마음대로 세력을 쓰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결정코 이것은 없되 性이 스스로 싱그럽게 알고 결정코 이것은 있되 찾
으면 자취가 없다. 이러므로 싱그럽다 한 것이다.
모양 있는 것 가운데서 가장 먼저한 것은 하늘과 땅이고 모양 있는 것
가운데서 가장 끝까지 존재하는 것도 하늘과 땅이다. 모양이 있는 것
가운데서 가장 먼저한 것이 하늘과 땅이지만 하늘과 땅이 이로부터 시
작되니 이 물건의 시작은 가히 추궁하여 찾지 못한다. 이미 시작한 것
을 추궁하여 찾지 못한다면 끝나는 것도 또한 가히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그윽하다╦한 것이다.
物自體는 볼 수 없다. 다만 우리의 눈망울속에 나타난 그림자를 볼 뿐
이다. 그것을 보고 이렇다 저렇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空과 有 두가지를 놓고 무엇이라 할 것인가 망서린 것
이다.
물체가 깊고 그윽하고 비고 밝고 영롱하여 있다고 하지만 결정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다고 하지만 결정코 없는 것도 아니다. 말 길이 끊어지
고 마음 길이 멸한 까닭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성범염정(聖凡染淨)에 관계되지 않으면서도 聖도 되고
凡도 된다 한 것이다.
이 물건은 성인도 아니고 범부도 아니지만 성인도 되고 범부도 되며,
깨끗한 것도 아니고 더러운 것도 아니지만 더러워지기도 하고 깨끗하여
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르되 ╩손에는 부서진 사기그릇을 들고 몸에
는 비단옷을 걸치며, 때로는 술에 취해 사람들을 욕하는가 하면 갑자기
향 사르고 예배한다.╦하니 허공과 해를 비유한다면 허공이 어찌 늘
푸르기만 하고 늘 비만오며, 해가 어찌 늘 밝기만 하고 늘 어둡기만 하
겠는가. 한 생각이 어두워지면 구름이 큰 허공에 일어나 위는 밝으나
아래는 어두운것 같고 한 생각을 깨달으면 바람이 어두운 구름을 쓸어
버려 위 아래가 모두 밝아지는 것 같다. 더럽고 깨끗한 것도 이렇게 일
어나고 성인 범부도 이렇게 지어진다. 성인 범부가 이미 이렇게 지어진
다면 감응이 있어 어리석은 범부가 되어 있을 때는 風化를 목마르게 바
라고 깨달은 성인이 되어 있을 때는 物을 위하여 자비를 이르킨다. 그
러므로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적멸도량 가운데서 처음 정각을 이루
시고 사자후를 지어 이르시기를 ╩기특하고 기특하다. 널리 일체 중
생을 보니 여래의 智慧德相을 갖추고 있지만 단지 망상 집착으로 증득
하지 못하고 있구나 하시고 이에 인연 없는 자비를 베풀어 널리 敎海를
연설하시고 골고루 중생의 마음밭에 대어 道의 싹을 잘 자라게 하고 마
음 꽃을 발명케 하시니 大地 한 봄에 만물이 모두 빛난다.╦
다음은 金剛般若의 體相用을 밝힌것에 대하여 주해한 것이다.
╩반야는 한 물건을 억지로 이름한 것이고 경은 한 물건을 나타낸 기구
이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친히 선언하신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것
이 아니다. 법문의 연원이 쇄쇄한 敎乘(범부소승)과 같지 않다.
~~~~~(옥가루 쇄)
我人의 주林이 마음 땅에 울창하다가 금강의 불이 타면 땅을 쓸어 자취
가 없어진다. 法과 非法이 이 두 惑霧가 빈 성품을 가리우게 되므로 重
昏이라 한 것이다. 지혜의 빛이 한번 비치면 重昏이 담박 부서지고 三
空이 훤히 나타난다.
법은 常이 아니다. 집착하면 有가 되고, 性은 斷이 아니다. 집착하면
空이 된다. 空에 집착하여 공이 공 아닌줄을 알지 못하면 斷見의 구렁
에 떨어지고 有에 집착하여 유가 유 아닌줄 알지 못하면 常見의 구렁에
떨어진다. 實際라는 것은 空과 有 둘을 잊고 一味까지도 잊은 것이다.
부처님이 三空으로서 열어 보여 단상의 구렁에 떨어지지 않고 당장 空
有의 밖에 뛰어나게 하였으니 이렇게 원만히 닦고 이렇게 원만히 증해
야 할 것이다.
[149] 제목 : [금강경오가해]연재---<3>
올린이 : 향산 (이양희 ) 95/10/17 07:49 읽음 : 44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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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剛經 五家解 연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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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序 說
1.涵虛得通禪師 序說(3/3)
通方의 바른 눈은 眞에 밝아 속을 알고 中道를 통달하여 통치 못한것이
없는 바른 눈이고, 密印은 중생이 迷한 진리이고 부처와 조사가 서로 전
한 法印이다. 다섯 큰 스님이 바른 눈을 갖추고 이렇게 밀인을 전하여
큰 입을 열어 큰 말씀을 하여 威光이 땅을 움직여 古今을 밝게 비추시니
이것을 보고 듣는 이들이 모두 敎化되어 잘못을 알고 착해져서 마침내
宗說(宗은理, 說은 事)을 겸하여 통하니 解行이 서로 맞아 크게 교화를
펴는 방편을 모두 이 경에서 얻었다.
다음은 이 경의 주석자들에 대한 꽃다운 정신을 찬양하고 공경한 글을
註疏라 한다.
╩이경으로서 당세에 이익을 주었으니 또한 解를 지어서 만고에 꽃다움
을 흐르게 한것이다.╦
티 없는 옥에 글을 새기면 도리어 좋은 옥이 따뜻하고 빛나는 덕을 상하
게 하지만 이 解는 이와 반대로 경의 말씀을 더욱 정미롭게 하고 경의
뜻을 더욱 밝게하여 드디어 보는 이로 하여금 구름을 헤치고 햇빛을 보
고 듣는 이로 하여금 훤히 마음이 열리게 하였다.
고인이 이르되 ╩三乘 十二分敎의 이치를 깨닫고 妙를 얻으면 어느곳에
다시 조사(달마)가 서쪽에서 온뜻이 있겠는가.╦하니 곧 따로 전한 뜻이
또한 이 경밖에 있지 않다. 오히려 言敎에 포섭되어 숨어 나타나지 못하
게 되었으므로 이제 모든 조사님들이 진실로 가져 들어 내시니 교의만
나타낼 뿐 아니라 따로 전한 뜻까지도 훤히 나타났다. 어떤 사람이 이르
기를 ╩單傳의 바로 (인심을)을 가르킨 뜻이 어찌 이 교(금강)에 포섭한
바 되겠는가.╦하였지만 黃梅(五조)曹溪(六조)를 보면 족히 가히 볼 것
이다.
三승 十二分敎의 三승은 聲聞,緣覺, 菩薩이고 十二분교는 부처님의 一代
時敎를 경전의 성질과 형식에 따라 修多羅,低夜,授記,伽陀,優陀那,尼陀
那,阿波陀那,伊帝日多迦,도多迦, 昆佛略, 阿浮多達磨, 優波提舍로 구분
한 것이다. 人生難得이요 佛法難逢이라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어렵지만
바른법 만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데 바른법 가운데서 바른 지혜를 밝
힌 이 解만난 것을 어찌 慶賀해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원문에 「만나
기 어려운 보배를 만나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니 크게 다행한 일이 아
닌가.」한 것이다.
다음은 이 解로 인하여 自覺的 大道에 진입하여 佛祖의 慧明을 밝힌 것
을 찬탄한 대목을 해설한 것이다.
「만일 이 解를 인하여 훤히 바른 눈이 열리면 法印이 쥐는데 있고 化道
가 자기에게 있다. 그러나 편집자의 이름없음을 한탄한다. 한 책안에 부
처님의 등불과 조사의 불빛이 서로 서로 빛나 한번 읽으면 곧 부처님과
조사의 마음을 보게되니 이것이 기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 이 몇
이나 될 것인가, 그래서 음을 아는 이 만나지 못하는 것을 한탄한 대목
을 다시 이렇게 해설한다. 석자 옛 비파에 묘한 소리 있으나 만일 묘한
손가락이 없으면 마침내 소리를 내지 못하고 비록 묘한 손가락이 있어
잘 줄을 뜯으나 뜯고 음율을 맛 보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다.
소리를 감상하는 것이 어려운 까닭에 잘 못 곡조(峨峨)를 듣고 洋洋을
짓는 이 많다 한 것이다. 한 부의 신령스러운 글, 묘한 이치가 여기 있
지만 비록 묘한 이치는 있으나 만약 장수가 아니면 누가 능히 붓을 들어
진실을 드날릴 수 있겠는가. 비록 진실을 드날린다 하더라도 눈이 있어
잘 아는 이 얻기는 더욱 어렵다. 잘 아는 이를 얻기 어려운 가닭에 얕은
곳으로서 깊은 곳을 삼고 깊은 곳으로서 얕은 곳을 삼는 이 많아 이를
한탄한다.」한 것이다.
古來로 이 책에 대한 주해서가 무려 八백여가 넘는다. 거기에는 오른것
도 있고 그른것도 있어 잘못된 것이 사람들의 눈을 그르치고 있음을 개
탄하고 그것을 밝혀 바른 길을 제시하기 위해서 이 說誼를 짓는다고 본
문을 쓰게된 동기를 밝힌다.
참과 거짓이 서로 섞여 물과 우유를 가리기 어려우니 이러므로 잘못 어
그러진 말을 함께 써서 전하는데서 잘못 반연한다. 문자는 도를 나타내
는 기구이고 사람을 인도하는 방법이다. 모름지기 글과 뜻이 서로 도와
야 혈맥이 관통하고 정미롭게 살펴 자세하고 은밀한 것을 갖추어 빼고
늘이고 거꾸로 되고 그릇친 것을 그 사이에 섞이지 못하게 한 연후에 사
람들께 알게하여 만세의 龜鑑이 되게한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사람의
눈을 열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도리어 사람을 미혹하게 하는 도구가 된
다. 만일 밝은 눈이 아니면 잘못 어그러진 것에 미혹하게 된다. 비록 밝
은 눈을 갖지 못하였으나 마음과 생각을 고요히 하여 연구하면 글과 뜻
에 어긋나고 그릇된 것을 얻어 자세히 하게 될 것이다. 내가 민첩하지
못한 솜씨로 참과 거짓을 가리고 잘못 그르친 곳을 바로 잡았으나 이
것은 전거를 의거하였을 뿐 억지말로 단정하지 않했다. 만약 자기의 뜻
으로서 책 안에 넘치게 하면 혹 아는 이가 그르다 할 것이고, 맞거나 그
르친 것이 있는 것을 알고도 써서 전하지 아니하면 오늘 바로 잡는 공이
있지 못할 것이다. 또 후세에 혹 바로 잡았다는 말을 듣고도 완전하게
여겨 더욱 살피지 아니하면 부처님과 조사의 뜻이 땅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부득이 책끝에 써서 전한다」하였다.
잘못을 보고도 그대로 있는 것은 義人이 아니며 正人이 아님을 「부서진
상다리를 보고 팔장만 끼고 있는 사람」에게 비유한 것을 다음과 같이
해설 하였다.
「잘못 어그러진 것을 아는 것은 부러진 상다리의 장애를 맺어 통치 못
하는 것과 같다. 만일 이 다음에 그것을 안 사람이 그르다 할가 두려워
그르친 것을 알고도 바로잡지 아니한다면 어떻게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다 하겠는가. 후세에 반드시 잘못 그르친 것을 이어 받아 망녕스리 穿鑿
을 내어 그 말로서 통하기를 구하는 이 있을 것이니 만일 이와 같이 하
면 그것을 바로 잡지 못한 폐가 부처님과 조사의 말씀에까지 미처 마침
내 공박당함을 면치 못할 것이니 이는 通人達士의 허락할 바가 아니다.
이러므로 마침내 진실로 사양하지 않고 바로잡아 써서 전한다. 그렇게
한 뒤에라야 한 경의 뜻이 하늘에 맑게 빛나 그 해 밝은 달이 장차 천하
에 크게 빛날 것이니 누가 이같은 이치를 알 것인가. 이제 내가 스스로
그러한 것을 알고 크게 경사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과 이 말이
모기가 큰 허공을 치는 것과 같아 아는 이가 마땅히 이것으로서 웃을거
리를 삼을 것이다.
주1:峨峨曲 洋洋曲은 곡조의 이름이 아니라 「아아」하는 것을 「양양」
으로 잘 못 이해한다는 말을 비유한 것이다.
주2:「젖이 성밖이 아니다」한 것은 문자로 잘못 인증한 것을 비유한 것
주3:永樂은 明 成祖 文皇帝의 年號이고 乙未는 서기 1415년이다.
함허선사 서문(종)
다음은 육조혜능대사의 서문입니다.
~~~~~~~~~~~~~~~~~~~~~~~~~~~~~~~~~
이 경은 다섯분의 대 선사님들이 주해를 해 온 것이므로
서문 또한 다섯분의 것이 있어 다소 본문에 들어 가는 것이
지연되오나 서문은 그 경을 일독함과 다름없을 만큼 주옥같은
글이라 옛날 서당에서는 서전 서문같은 것은 몽땅외어
오래도록 간직했답니다.
[150] 제목 : [금강경오가해]연재---<4>
올린이 : 향산 (이양희 ) 95/10/18 10:31 읽음 : 42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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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剛經 五家解 연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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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序 說(서설)
2.曹溪六祖大師 解義序(조계육조대사 해의서)
대저 금강경은 무상(無相)으로서 종(宗)을 삼고 무주(無住)로서 체(體)
를 삼고 묘유(妙有)로서 용(用)을 삼는다. 달마스님이 인도에서 오시면
서부터 이 경의 뜻을 전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고 제 성품을
보게 하였다.
다만 세상 사람들이 제 성품을 보지 못하므로 견성(見性)의 법을 세운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만약 진여(眞如)의 본체를 볼것 같으면 곧 법을 세울 필요
가 없을 것이다. 이 경을 읽고 외우는 이는 수가 없고 칭찬하는 이도 가
이 없으며, 소(疏)를 짓고 주해(註解)를 낸 이들도 무려 팔(八)백여가지
나 되지만 설한 바 도리는 각각 소견을 따르니 소견은 비록 같지 아니하
나 법은 둘이 없다.
전생에 익힌 근기가 뛰어난 사람은 한번 듣고 곧 알지만 만약 전생에 익
힌 지혜가 없으면 읽고 외우기를 비록 많이 하더라도 부처님의 뜻을 깨
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뜻을 해석하여 많은 학자들의 의심을 끊게 하
는것이다. 만약 이 경에 뜻을 얻어 의심이 없으면 곧 해설을 빌릴 필요
가 없을 것이다.
위로 부터 여래께서 설하신 선법(善法)은 범부의 착하지 못한 마음을 제
거하기 위한 것이다. 경은 성인의 말씀이다. 사람들이 듣고 범부로 부
터 성(聖)을 깨달아서 영원히 어두운 마음을 쉬게하고자 한 것이다.이 한
권의 경은 중생의 성품 가운데 본래 있지만 스스로 보지 못한 것은 다
만 문자만 읽고 외우는 까닭이다. 만약 본 마음을 깨달으면 비로소 이 경
이 문자에 있지 아니할 것을 알 것이다. 또 밝게 제 성품을 알면 비로소
일체 모든 부처님들이 이 경으로부터 쫓아 나온 것을 믿을 것이다.
요즈음 세상사람들이 몸 밖에서 부처를 찾고 밖을 향하여 경을 구하여
속 마음을 갖지 않고 속 경을 갖지 아니할까 두렵게 여겨 이 비결을 지
어 모든 학자들 에게 안으로 마음의 경을 가져서 자기의 청정한 불심
(佛心)이 저 수량(數量)을 지나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을 보게
한 것이다.
그러니 뒤에 학자들은 경을 외우다가 의심이 있으면 이 해의(解義)를 보
아 의심이 풀리면 다시 비결을 쓰지 않을 것이다. 바라는 것은 학자가
함께 쇠속에 금성(金性)을 보아서 지혜의 불로서 용련(鎔煉)하여 쇠를 버
리고 금만 남게 하는 것이다.
우리 석가 본사 부처님께서 금강경을 설하실 때 사위국에 계셨다. 수보
리가 일으킨 불음(佛音)으로 인하여 대비(大悲)로서 위하여 설하시니 수
보리가 설하시는 것을 듣고 깨달음을 얻고 부처님께 어떻게 법의 이름을
지어 뒷 사람들에게 받아 가지게 할것인가를 청했다. 그러므로 경에 이르
기를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고하시기를 이 경은 이름이 금강반야바라
밀 이니 이 명자로서 너는 마땅히 받들어 가지라.╦하신 것이다.
그러면 여래께서 설하신 금강반야바라밀로 법답게 이름하신 그 뜻은 어
떠한가? 금강은 세계적인 보물이다. 그 성품이 날카로와 능히 모든 물건
을 파괴한다. 금은 비록 지극히 굳으나 고양각(羊角)[암염소뿔]이 파괴
하므로 금강은 불성(佛性)에 비유하고 고양각은 번뇌에 비유한 것이다.
금은 비록 굳고 강하나 고양각이 능히 부수고 불성이 비록 굳으나 번뇌가
능히 어지럽힌다. 번뇌가 비록 굳으나 반야의 지혜로서 능히 붓고 고양각
이 비록 굳으나 빈철(賓鐵)이 능히 붓는다. 이 도리를 깨달은 이는 확실
히 성품을 볼 것이다. 열반경에 이르되 ╩불성을 보는 이는 중생이라 이
름하지 않고 불성을 보지 못한 이를 중생이라 이름한다╦하였다.
여래께서 설하신 금강의 비유는 다만 세상 사람들이 성품이 견고함이 없
어서 입으로는 비록 경을 외우면서도 광명이 나지 않는다. 밖으로 외우
고 안으로 행하여야 밝은 빛이 함께 고르며 안으로 견고함이 없으면 정
(定)과 혜(慧)가 곧 없고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여야 정(定)과 혜
(慧)가 고르게 된다. 이 이름이 구경(究竟)이다. 금이 산중에 있으나 산
은 이 보배를 알지 못하고 보배 또한 산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성이
없는 까닭이다. 사람이 곧 자성이 있어 그 보배를 취하여 쓴다. 금사(金
師)를 만나 산을 뚫어 끊고 부셔 쇠를 취하여 삶고 단련하여 드디어 정
미로운 금을 만들어 뜻을 따라 사용하여 빈천(貧賤)의 괴로움을 면한다
사대(四大)의 몸 가운데 불성도 또한 그러하여 몸은 세계에 비유하고 아
인은 산에 비유하고 번뇌는 쇠에 비유하고 불성은 금에 비유하고 지혜
는 공장(工匠)에 비유하고 용맹스럽게 정진하는 것은 뚫어 베는 것에 비
유한다. 몸의 세계 가운데 인아산(人我山)이 있고 인아산 가운데 번뇌의
쇠가 있고 번뇌쇠 가운데 불성의 보배가 있고 불성의 보배 가운데 지혜의
공장이 있다. 지혜의 공장을 써서 인아산을 처 붓고 번뇌광(煩惱鑛)을 보
아 깨달음의 불로서 삶고 단련하면 제 금강불성을 훤히 밝혀 깨끗이 볼
것이다.
이러므로 금강으로서 비유하여 이름을 지은 것이다. 공(空)을 알고 닦아
행하면 이름과 체가 구비한다. 닦지 아니하면 곧 범부이고 닦으면 곧 성
인의 지혜와 같아지므로 그러므로 이름을 금강이라 한 것이다.
어떤 것을 반야라 하는가? 반야는 범어이다. 당나라 말(중국어 이하는
모두 중국어로 표기함)로는 지혜이니 지혜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지혜있는 이는 방편이 있다. 혜(慧)는 지(智)의 체(體)이
다. 체(體)에 만약 혜(慧)가 있으면 지(智)를 쓰는데 어리석지 않고 체
(體)에 만약 혜(慧)가 없으면 어리석음을 써서 지(智)가 없다.
다만 어리석음을 반연하여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드디어 지혜를 빌려 없
애는 것이다.
어떤 것을 이름하여 바라밀이라하는가? 중국어로는 「저 언덕에 이르는
것」이라 한다.
저 언덕에 이른다는 것은 생멸을 여인다는 뜻이다. 대개 세상 사람들이
성품의 견고하지 못해서 모든 법 위에서 생멸상이 있어 여러 취(趣)[六
趣]에 유랑하여 진여의 따에 이르지 못하므로 이것을 이 언덕이라 한다.
큰 지혜를 구하고저 하여 일체법에서 뚜렷이 생멸을 여인다면 곧 이것이
저 언덕에 이른 것이다. 또 이르기를 마음이 어리석으면 이 언덕이고 마
음을 깨달으면 저 언덕이고 마음이 삿되면 이 언덕이고 마음이 바르면
저 언덕이다.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행하면 곧 제 법신(法身)에 바라
밀이 있고 입으로 설하고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면 곧 바라밀이 없다.
어떤 것을 이름하여 경이라 하는가? 경은 길이니 부처가 되는 길이다.
범인이 이 길에 이르고자 하면 마땅히 안으로 반야행을 닦아야 마침내
이른다. 혹 단지 능히 외워 말하고 마음으로 의지해서 행하지 아니하면
제 마음에 경이 없고 실답게 보고 실답게 행하면 제 마음에 경이 있다.
그러므로 이 경을 여래께서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 이름한 것이다.
육조해의(六祖解義)가운데 금강(金剛)과 달마전법의(達磨傳法義)를
해설한 대목을 함허(涵虛)스님은 다음과 같이 주해(註解)하였다.
「반야(般若)의 영원(靈源)이 확 트여 모든 상(相)이 없고 넓어 주
(住)한 바가 없다 공(空)하여 있는것이 없고 맑아 알수 없다. 지금
이 한 경은 이것으로서 종체(宗體)를 삼아 앎이 없으므로서 알지
아니함이 없고 있음이 없므므로서 있지 아니함이 없으며 주(住)하
지 아니한 곳이 없고 상(相)이 없으므로서 모든 상(相)에 장애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묘유(妙有)로서 용(用)을 삼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
들의 증하신 것이 대개 이것을 증한 것이며 모든 조사가 전한 것이
대개 이것을 전한 것이니 이러므로 사람에게 열어 보인것 또한 이
것이다.」
[151] 제목 : [금강경오가해]연재---<5>
올린이 : 향산 (이양희 ) 95/10/19 08:07 읽음 : 43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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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剛經 五家解 연재.....<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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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序 說(서설)
3.야부도천선사송(治父道川禪師 訟)
法은 홀로 일어난 것 아니다.
누가 이름을 지었는가
크고 큰 법왕(法王)이여,
짧지도 않고 또한 길지도 않다.
본래 검고 흰 것 아니지만
곳을 따라 푸르고 둥근 빛 나타낸다.
꽃이 피어 아침이 고운것을 보고
숲이 이우러 지니 늦 서리 내린다.
우뢰가 빠르면 얼마나 빠르겠는가.
번개 또한 빛이 아니네.
범부와 성인 원래 헤아리기 어려운 것
천룡(天龍)이 어찌 헤아리리---
고금(古今) 사람이 알지 못하여
방편으로 이름을 금강(金剛)이라 하였다네.
일원(一圓)이 어찌 금강(金剛)의 성덕(性德)을 다 나타낼 수 있으랴 하지만
이렇게
라도 표현하지 아니하면 아니되겠기 때문에 이렇게 제(題)하신 것이다.
「원상을 최초로 그린 이는 남양(南陽) 혜충국사이다. 국사가 한 ○을 그려
탐원(耽源)에게 전하고 원(源)이 앙산(仰山)에게 전했다. 원이 하루는 앙산에게
이르기를 「국사가 六대조사 원상 구칠(九七)개를 전하여 노승에게 그것을 쓸 줄
鱇弩많퓐 그림(本)에
집착할 것이 없었읍니다.」원이 이르기를
"그대는 알았다고 하지만 뒤에 사람들은 어떻게 하겠느냐"
산이 이에 거듭 한 그림을 그려드리니 하나도 틀림이 없었다.
하루는 당(법상)에 오르자 산이 대중 가운데서 나와 한개의 원상을 그리고
손으로
잡아 일으켜 바치는 모양을 짓고 드디어 합장하고 섰으니 원이 두 손으로 받
아 보
였다. 산이 앞으로 세걸음 나아가 여자 절을 하자 원이 드디어 고개를 끄덕
이었다.
산이 곧 예배하였다. 이것이 원상을 지은 시초이다. 그러면 이제 스님이 제
목아래
하 3."옛사람만 멍할 뿐 아니라"한 것은 영산회상에서 세존이 꽃을 들어
맛灸
백억대중이 멍한 까닭이고 "오늘 사람들도 알지 못한다"한 것은 양무제
가 달
마에게 "어떤것이 제일의(第一義)입니까?"물으니 "알지 못한다"한 것
이다.
[152] 제목 : [금강경오가해]연재---<6>
올린이 : 향산 (이양희 ) 95/10/21 10:38 읽음 : 45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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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剛經 五家解 연재.....<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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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序 說(서설)
4.예장종경선사(預章宗鏡禪師) 시강(提綱) 및 강요서(綱要序)-1/2
무릇 공여래장(空如來藏)을 관하고 조사관(祖師關)을 부셔 진상(眞常)이
홀로 들어나면 반야(般若)아닌 것이 없다. 삼심(三心)이 움직이지 아니하면
육유(六喩)가 온통 들어난다. 칠보(七寶)의 공(功)에 비하면 사구(四句)가
배나 뛰어나지만 만일 글과 글을 따라 글자만 헤아리면 더욱 더 지견(智見)
만 더한다. 종사(宗師)의 눈이 밝지 못하면 마침내 마치지 못한다. 슬프다.
은밀히 나타낸 깊을 뜻이여, 석화전광(石火電光)이요. 가만히 나타낸 참된
기(機)여, 금산철벽(金山鐵壁)이로다. 문득 다른 견해를 내면 중도(中途)에
막혀 나아갈 문이 없으리라. 몸이 미로(迷路)에 빠질까 하여 애오라지 한 선
(線)을 트고 구부려 초기(初機)를 위하노니 어진 말이라면 채찍을 보고 바람
처럼 천리를 달리리라. 이것이 종경(宗鏡)선사의 시강(提綱)이다. 시(提)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고, 강(綱)은 시구(詩句)이니 시(詩)로서 금강(金剛)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여래장에는 공여래장도 있고 불공여래장도 있다.
공여래장은 증득한 진리이고 불공여래장과 같아서 확트여 조금도 가리움이
없는 까닭이고, 참 지혜를 불공여래라 한 것은 참된 지혜가 이치를 비치는
것이 빛나는 해와 같아서 허공에 당하면 나타나는 까닭이다. 모두 이것을 장
(藏)이라 한 것은 갈무려져 있는 물건이 속이 비기도 하고 또한 차기도 한
까닭이다. 속이 빈 까닭에 저 허공에 비유하고 또한 찬 까닭에 불공(不空)에
비유한 것이다. 이제 말한 공여래장은 대개 저 공과 불공의 다른 공장(空藏)
이니 조사관을 부수므로서 대(對)가 되는 까닭이다. 물건을 쌓아 봉하여 들
어나지 않게 한 것이 장(藏)이다. 팔식(八識)의 장이 자성여래를 숨겨 덮고
있는 까닭에 이름이 여래장이다. 관(關)은 가고 오는 것이 통하지 않는 것
이다.
조사의 참된 기(機)는 성인의 지해(知解)로는 통하기 어렵고 범부의 감정
으로서는 뚫을 수 없기 때문에 이름을 관(關)이라 한 것이다. 망령되지 않
는 것을 진(眞)이라 하고 변치않는 것을 상(常)이라 한다. 그러므로 진상(眞
常)은 범부 중생과 부처의 대본이다. 저 여래장을 비게하고 저 조사관을 부
셔 진상으로 하여금 홀로 들어나게 하면 반야공(般若空)아닌 것이 없을 것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