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산(667.9m) : 순천시 낙안면 |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낙안의 '큰 바위 얼굴' |
1. 개념도
2. 개요 즐거운 낙(樂) 자 편안 안(安) 자를 쓴 이름에서부터 느낌이 편한 낙안벌. 낙안읍성민속마을로 유명한 이 낙안벌은 순천시에서 불재 넘어 벌 안으로 드는 순간 이름 그대로 '낙안(樂安)'임을 깨닫게 한다. 초록 호수처럼 넓고 차분하게 펼쳐진 논과 그 벌판 여기저기 이마를 맞대듯 모여 앉은 농가들 그리고 그 마을들을 편안히 감싸안 듯 둘러선 산릉 등으로 낙안벌은 '이런 곳에서 평생 여유로이 살았으면' 하는 감동을 자연스레 불러 일으킨다. 과연 '낙토민안'에서 낙안이란 지명이 유래했다고 <낙안읍성지>는 전한다. 벌판만 넓게 펼쳐졌다면 어딘가 휑하니 허전했을 이 낙안을 낙안답게 하는 것은 역시 주변에 울타리로 둘러선 산봉들이다. 이 야산들을 거느리며 낙안읍성을 바로 가슴팍에 포근히 안고 있는 금전산은 낙안 사람들뿐 아니라 멀리 순천시, 심지어는 경상도 지방에서도 일부러 찾는 명산이다. 금전산은 낙안읍성 뒤에 낙안의 큰 바위얼굴로 우뚝 서 있다. 정상부의 서쪽 면이 모두 바위로 뒤덮여 특히 석양 무렵이면 붉디붉은 광채로 뭇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이 첨탑처럼 솟은 암봉 사이를 비집고 한 줄기 등산로가 나 있으며 원효대, 의상대, 형제바위, 개바위 등 기암들이 도열해 있다. 이렇듯 산행중의 조망이 각별하니 사방에서 탐승객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다. 금전산은 호남 정맥 남쪽에서 특히 우뚝한 산봉인 조계산에서 뻗어나온 한 지맥이 남쪽으로 흘러내리며 고동산을 거쳐 일으킨 바위 산이다. 이 금전산의 옛이름은 쇠산이었으나 100여 년 전 금전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자의 뜻을 그대로 번역하면 금으로 된 돈 산이다. 그러나 실은 불가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부처의 뛰어난 제자들이 오백비구(혹은 오백나한)중 금전비구에서 산이름을 따왔다"고 금강암 스님들은 말한다. 금전산의 산세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풍수가들의 지형 풀이가 전해지기도 한다. 금전산 북쪽에는 옥녀봉, 동쪽 줄기에는 오봉산과 제석산, 서쪽에는 백아산이 있는데, 이는 전체적으로 옥녀산발형 즉 옥녀가 장군에게 투구와 떡을 드릴 준비로 화장을 위해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풀어헤친 형상이라는 것이다. 또한 펑촌리 마을 앞에 있는 평촌못은 옥녀의 거울에 해당하는 등 조건을 완벽히 갖춘 덕에 낙안에는 유난히 미인이 많다고 한다.
3. 코스가이드 금전산 등산로는 동서로 길게 뻗은 능선길과 정상에서 남서쪽 상송리로 내리뻗은 금강암 계곡길 등 세 가닥이 주를 이룬다. 이중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물론 바윗길인 금강암 길이다. 이 등산로 초입은 낙안읍성 사거리에서 북쪽 오공재쪽으로 58번 지방도로를 따라 1.5km지점이다. '금전산 등산로. 금강암 1120m, 정상 1500m'라고 쓰인 안내판이 도로 오른쪽(동쪽) 옆에 보인다. 초입은 돌이 뒤섞인 단단한 진흙땅 경사길로 시작된다. 금강암 신도들이 종종 오르내리기 때문에 길은 뚜렷하고 넓다. 10분 남짓 걸으면 능선 위의 무덤에 이른다. 무덤에서 100m남짓 숲길을 오르면 바위가 드러나며 사방이 트인다. 그 뒤부터는 줄곧 전망좋은 길이 이어진다. 무덤에서 300m쯤 오르면 앞에 우뚝한 암봉이 나선다. 높이가 10m쯤 되는 암봉 위는 평평하여 땀을 식히기 그만이고 저 아래로는 낙안벌의 광대한 풍광이 펄쳐진다. 이름하여 형제바위. 원래는 2개의 봉이 서 있었으나 80년대 초 어느날 밤에 아래쪽으로 아우바위가 허물어져 버리고 형님바위만 남았다고 한다. 이곳 형제바위에서 산정쪽으로 보이는 경관 또한 뛰어나다. 정상에서 흘러내린 암릉에 안개라도 어울리면 일대 선경을 방불한다. 암릉은 쉽사리 오를 수 있는 대상이 아니고 암벽장비를 갖추어 등반을 해야 오를 수 있다. 일반 등산로는 암릉의 끝부분에서 왼쪽 계곡 안으로 나 있는 숲길이다. 계곡으로 접어들어 잠깐 오르면 금강암의 대문격인 바위굴이 나온다. 들어올 때는 금강문이요, 나갈 때는 해탈문이라는 바위굴이다. 왼쪽 구석에 맑고 시원한 샘이 있는, '금강암 정숙'이란 글씨가 붉은 페인트로 씌어 있는 이 컴컴한 굴속을 지나 산성벽같은 데로 올라서면 코앞이 금강암이다. 금강암은 흡사 산장같은 정겨운 분위기다. 맑은 때면 금전산이 그 맥을 이어받은 광주 무등산을 비롯해 천관 산이며 멀리 고흥 팔영산까지 보이는 전망좋은 곳에 자리잡았다. 암자 북서쪽의 평평한 바위는 의상대사가 수도했던 의상대고 동쪽 맞은 편의 암봉은 원효대지만 간단하게 방위에 따라 서대와 동대로 부르기도 한다. 서대바위 끝에는 빗물이 고였을 때면 부처님 형상이 그려지는 부분이 있어 신비를 더한다. 서대, 동대 이외에 입석대, 참선하는 스님 형상의 참선대, 두꺼비바위, 개(犬)바위 등등 금강암 주변에는 기암이 곳곳에 서있어 전설적인 분위기를 나아내고 있다. 서대 암반에 앉으면 낙안벌의 시원하고 드넓은 경관에 취해 오래도록 자신을 잊게 되기 마련이다. 서대에서 보면 낙안이 하늘이 감춰주고 산이 감싼 땅으로서 십승지지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이유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금전산 정상 길은 암자 왼쪽으로 나 있다. 지붕이 없는 해우소 옆을 지나 바위지대에는 여기저기 신도들이 정성들여 쌓은 돌탑들이 서 있다. 15분쯤 뒤 헬리포트에 이어 5분 더 걸으면 건설부가 설치한 삼각점이 있는 정상이다. 그러나 정상은 주위가 숲에 가려져 조망은 별로다. 이곳 정상에서 길은 동쪽 불재 방면과 서쪽 오공재 방면으로 갈린다. 교통편과 편안함 등을 감안할 때 무난한 것은 왼쪽 오공재길이다. 정상을 떠나 오공재로 향하노라면 소나무와 낙엽송이 뒤섞여 울창한 숲을 이룬 능선길이 계속된다. 정상을 떠난 지 30분쯤 뒤 능선을 벗어나 계곡으로 내려서자마자 이내 감나무단지가 펼쳐진다. 감나무단지 사이로 난 농로를 따라가다가 중간의 갈림길목에서 왼쪽으로 내려서서 도랑 옆 길을 따르면 오공재 도로변에 다다른다. 오공재 길이나 불재 길은 거의가 숲길이어서 조망도 좋지 못하고 소나무가 주종이어서 가을 단풍빛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4. 주변의 문화유적 및 명소
(1) 금강암 금강암은 백제 위덕왕 대에 창건되었다. <승주향리지>는 '위덕왕 30년 583년 금둔사가 창건되었고 그후 의상대가가가 금강암, 수정암, 문주암 등 30여 동의 사우를 가진 대찰로 중건했다고 전한다. 지금의 금둔사는 1985년 선원으로 재건된 것으로서 태고종 소속이며 금강암은 송광사에 속한 조계종 사암이다.
(2) 낙안 읍성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길이 1,410m의 성곽으로 둘러싸인 사적지(사적 제302호)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의 관아와 객사, 임경업군수 비각, 그리고 중요민속자료인 9동의 민가 등이 있는데, 현재도 직접 주민들이 살며 전통 세시풍속을 유지하고 있는, 살아 있는 민속마을이다. 때문에 전국적으로 관광객이 모여든다. 관아건물 이외는 모두 전통 초가집이고 15그루의 노거수와 어울려 있어서 일단 볼거리가 된다. 현재 성 안에 70여 세대가 살고 있는데, 마을 안 길가를 따라 개량 한복을 비롯한 전통 생활 용품을 파는 상점, 노점이 늘어선다. 성 안팎으로 민속주, 파전 등을 파는 음식점이 많으며, 매년 10월에는 남도의 특색있는 전통 음식과 새로이 개발한 음식을 선보이는 남도 음식축제가 이곳에서 열리기도 한다. 성안 공터에는 긴 그네가 매어져 있으며, 누구든 그네 타기를 즐길 수 있다.
(3) 낙안민속관광농원 남해고속도로 승주인터체인지에서 15km 떨어진 낙안읍성 민속마을로 가는 국가지원지방도 58호선은 금전산 서쪽의 오공재를 넘는다. 이 오공재 정상의 금전산 등산로 입구 서쪽에 7,000평 규모의 낙안민속관광농원이 있다. 10~15평 규모의 방갈로와 객실, 수영장, 캠프장, 원두막, 어린이 놀이시설 등을 갖추었다. 특별식인 멧돼지구이(1인분 8,000원)를 비롯한 닭갈비, 유황오리(1인분 25,000원)로 금전산 등산객 및 민속읍성 탐방객들에게 인기다(전화 061-755-6644-5) |
첫댓글 금전산 가보고싶은 산이었는데~~언제 기회되면 산행 해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