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5월1일은 여기서도 May Day입니다. 오전에는 별도의 약속이 없던 터라 우리는 공원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에르빌 공항 가는 큰 길에 Minara (미나라 공원, 스펠링은 확실치 않음)라는 꽤 큰 규모의 공원이 있습니다. 서울의 보라매 공원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입장료 같은 건 없었습니다. 대개 황토색인 에르빌 시내에서 푸른 색의 나무와 숲, 잔디를 보니 좀 색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곳의 땅은 매우 비옥해서 물만 주면 식물이 잘 자라는 데, 문제는 비가 적다는 것이죠. 그래서, 공원의 정원에 이랑을 파고 거기다 물을 공급해 줍니다. 물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죠. 이 점은 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후세인 시절, 산에 있는 나무를 모두 베거나 태워 없애 버렸다고 합니다. 주로 산을 무대로 활동하는 저항게릴라를 위축시키기 위해서 그랬다죠.
공원에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는 데, 군데 군데 벤치와 잔디밭엔 때론 혼자서 때론 여럿이 모여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모두 남학생들이었죠. 날씨는 덥고, 식구는 많은 데다가 에어컨을 갖추지 못한 집이 많으니 답답한 집에서 공부하기 보다는 시원한 공원에서 공부를 한다고들 합니다.
공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앉아서 하는 친구도 있고 걸어면서 공부하는 친구도 있고..
공원에는 작은 호수가 있고, 그 위에는 오리배도 몇 척 있습니다. 타는 사람은 못 봤군요.
공원에는 몇 년전 자살폭탄 테러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탑이 있습니다. 몇 명이나 되나 세 봤더니 대략 180명쯤입니다.
경호원 중 한 명이 자신의 사촌 이름이 저기 있다고 알려주네요. 이 테러 외에 2004년 에르빌 시내의 한 관공서에서 약 300명의 사람들이 자살폭탄 테러로 죽거나 다쳤는 데, 이 때 죽거나 부상당한 사람들의 다수는 후세인에 저항하던 비정규 군인들로 에르빌 경비군대(제르바니)에 지원하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이 때에도 우리 자이툰 부대가 부상자의 치료는 물론 죽은 사람들의 장례까지 나서서 도와 줬다고 합니다.
미나라 공원의 매점에서 코카콜라를 사서 마시는 데, 경호원 하나가 손가락으로 뭘 가리키더군요. 헉~스… 이게 뭔가요!! 익숙한 얼굴들입니다.
요즘에 한국드라마 한 두개가 이 곳에서도 방송되고 있다는 군요. 인기가 높다고들 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어를 조금씩 배우기도 한답니다.
7. 에르빌의 생활과 경제
에르빌의 다운타운은 Citadel (성채, 4000년된 토성) 부근의 시장 (bazaar)거리입니다.
Citadel 보호 캠페인 포스터…호텔 로비에 있는 걸 찰칵..
"계속해서 사람이 살았던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거주지"를 보호하자네요...
마침, 치약이 필요해서 이 곳의 구멍가게를 찾았습니다. 치약 가격을 보니 1,600디나르입니다. (1 U$ = 약 1,250디나르) 2달러를 냈는 데…잔돈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곳에서는 가게에서 외국인에게는 잔돈을 내 주지 않는다는 얘길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 시장통에는 세계 유명 휴대폰 매장들이 모두 있는 데, 특히 삼성 브랜드가 많이 보입니다. 에르빌 사람들도 거의 모든 성인들은 휴대폰을 갖고 있습니다. 무선통신사가 하나 있었는 데, 최근 하나가 더 생겼다고 합니다.
에르빌의 거리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자동차는 Toyota입니다. 그 다음이 Nissan이니까 일본차가 쿠르디스탄 자동차 시장을 장악한 상태입니다. 간혹, 우리 현대의 SUV도 보입니다. 그러나, 유명 자동차의 정식판매권은 대개 쿠르드인의 회사가 아닌 쿠웨이트나 사우디아라비아의 기업들이 갖고 있기 때문에, 쿠르드 자동차판매상들은 수백, 수십대씩을 메이커나 판매권자로부터 현금을 주고 들여와서 판매를 하는 상황입니다. 제가 만난 어느 기업인도 현대.기아차 셀러쉽을 확보할 수 있는 지 물어왔는 데, 현대.기아차의 셀러쉽은 이미 쿠웨이트회사가 갖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더니 무척 실망하는 눈치더군요. 쌍용차는 어떠냐 했더니 인지도가 떨어져 판매가 힘들 것이라 합니다.
이 곳의 개인들 중에도 부자가 많습니다. 매우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주로 영국, 터키, 독일, 미국 등지에서 공부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쿠르디스탄에는 은행시스템이 없습니다. Bank of Kurdistan이라는 은행이 있지만, 공무원들 급여 주는 일 외에는 다른 은행의 기능이 없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독일에서 500만불 송금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적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이 걸린답니다. 간혹, 송금이체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군요. 이래가지고야 은행이라고 볼 수가 없겠죠. 또한, 송금수수료가 1~2%에 달한다고 하니, 이 곳 기업인들은 송금할 경우에는 직접 돈을 들고 해외로 왔다갔다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 하나, 이 곳에서 특별히 문제가 되는 분야가 의료입니다. 물론, 의료보험이란 개념은 있을 수도 없고, 병원다운 병원이 거의 드뭅니다. 제가 머무는 동안, 우리의 편의를 위해 노력해 준 젊은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두 돌이 채 안된 애기가 감기인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에르빌의 병원에 갔더니 감기라고 하는 데, 그 병원에는 같은 증상의 애기들로 만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영국에서 공부를 했던 이 친구의 눈에는 의료진의 능력과 의료기기, 시설 등에 의문을 갖고 있다는 거죠. 결국 1주일간 차도없이 오히려 악화되어 가는 어린 딸을 데리고 요르단으로 간 겁니다. 거기서 이틀간 병원치료를 받고 완쾌시켜 돌아왔습니다.
현재, 슐레이매니아 주에는 한국기업 하나가 400병상짜리 병원을 4년째 짓고 있습니다만, 언제 완공될 지 모른다고 하네요…완공이 예정보다 계속 늦어지는 상황입니다.
우리 의료인들이 이 곳에 진출한다면 상당히 전망이 좋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 곳은 최근에서야 공장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산업의 태동기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생수, 화장지, 식품부터 기계, 자동차, 컴퓨터까지 거의 대부분의 제품이 수입품입니다. 이란, 터키, 시리아, 레바논, 인도, 중국 제품들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최근에야 쿠르드 기업인들이 기초생활용품과 건설기초자재 등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Zakho에 있는 현대화된 생수공장 (1시간에 2만병 생산합니다.)
벽돌공장입니다. 어린 아가씨들이 차도르를 쓰고 고된 노동을 합니다.
현재의 쿠르드 정부는 ‘개발독재’에 가깝습니다. 이제 40대 초반이 된 바르자니 총리는 절대적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거의 신격화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이 많은 장관들도 하나같이 그의 지도력과 영민함에 대해 칭송을 합니다. 물론, 독립투쟁의 영웅인 할아버지, 아버지의 후광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 자체가 그만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위에 잠시 소개했던 초만시의 시장은 바르자니가 독립투쟁을 할 때 두 번 도와 준 인연으로 초만시장으로 임명된 것이라 하는 군요. 참고로, 현재 쿠르드 자치정부 대통령은 바르자니 총리의 작은 아버지입니다. 바르자니 총리관저를 지나갈 일이 있었는 데, 그 규모가 엄청나더군요. 사방 담으로 둘러싸여 있어 내부를 볼 수는 없었지만, 대략 몇 십만평은 넘는 것 같았습니다. 당장은 SOC가 필요하고, 먹고사는 게 절실하니 대외협상력 좋고 리더쉽이 뛰어난 바르자니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는 것이겠죠. 먹고사니즘이 어느 정도 해결되면…글쎄, 정치적인 시스템에도 변화가 좀 있지 않을 까 합니다.
술 이야기로 이번 편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저녁마다 미팅이 있어서 거의 매일 저녁을 쿠르드 사람들과 식사를 했습니다.
저는 하이네켄 맥주를 한 병(또는 캔)씩 주문했는 데, 이 사람들은 거의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권유를 해 봐도 손사래를 치면서 차이(Cay, 홍차)만 계속 주문해서 마십니다. 그런데, 기실은 이건 내숭인 것 같더군요.
자이툰부대에서 영어통역을 하면서, 몇 년전 이라크 청소년축구팀이 한국에서 친선경기를 가졌을 때 따라와서 통역을 하던 33세의 무하마드가 제게 제 방으로 초대를 해 달라더군요. 제 방에서라면 소주도 마실 수 있다는 거죠. 오픈된 공간에서 술을 마시는 건 이 사회에서는 아직 눈총을 받기 때문에 드러내 놓고 술을 마시지는 못하지만, 집이나 개인공간에서는 즐겨 술을 마시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Zakho에서 만난 기업인은 자기 회사 구내식당에서 밤새 우리와 라키(Raki,술)를 마셨습니다.
다음 편…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좋은 경험하셨군요
번개 때 비하인드 스토리 들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대단하시군요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재미있었다니 다행이군요..감사합니다.
진짜루 재밌어효~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