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선의 국모다‘명성황후’
- 고1 박채은 -
본명은 민자영으로 1851년에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으며, 조선 철종당시 영의정 민치록의 외동딸로 태어나 9세 때 고아가 되어 어렵게 생활을 하다가 세도정치의 기반을 없애기 위해 중전을 물색하던 대원군의 눈에 띄어 10세에 왕비로 간택되었다. 이후 총명함으로 고종의 마음을 사로잡아 대원군의 섭정을 물리치면서 정치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쇄국정치를 고집하던 대원군이 물러나고, 조선의 문물개방은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외국을 통해 유입된 새로운 사상과 문물은 조선이 새로운 시대에 눈을 뜨게 하는 반면, 수구세력들의 불만은 늘어나고 일본 상인들의 농간으로 백성들의 반일감정은 고조된다. 결국 별기군 특별부대에 반발하여 구 부대의 군사들은 난을 일으켜 민씨 척족과 황후의 처형을 요구하는 사건인 임오군란이 일어나 대원군이 다시 등장을 하게 되고, 황후는 변장을 한 채 피신을 해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다.
임오군란을 계기로 다시 정국의 중심에 대원군이 등장을 하고, 위협을 느낀 조정의 기득권층은 청나라 텐진에 주재하던 영선사 김윤식에게 통지를 하여 청국의 조정을 요청하였다. 청국은 종주국으로써 속국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일본에 빼앗긴 조선의 기득권을 되찾으려 군사를 이끌고 돌아와 내정을 간섭하기 시작했으며, 이때 대원군을 납치해 청국으로 호송을 하고 다시 황후는 궁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10여 년간 일본과 청나라의 각축전은 청일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나 이미 노쇠한 청나라는 일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청일 전쟁 후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과 갑오경장을 요구하여 조선의 지배기반을 확고하게 구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러시아, 불란서, 독일을 회유하여 일본의 기득권 탈취를 골자로 하는 ‘삼국간섭’을 성사시킨 명성황후에 의해 일본은 조선을 다시 잃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결국 일본은 대세를 뒤집기 위해 ‘여우사냥’이라는 작전명 아래 황후의 암살계획을 수립하고 1895년 10월 8일 사무라이 다카하시 겐치의 칼에 의해 파란만장했던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내가 7살 때였던가? 명성황후란 드라마를 처음 봤을 때, 그땐 어려서 생각 없이 엄마, 아빠가 명성황후를 보실 때 그냥 따라본 적이 있다. 그때 까지만 해도 드라마 내용을 잘 이해 못해서 문근영이 황후가 되는 연습을 하기위해 머리에 도자기를 얹어 두고 걸음걸이 연습을 하다가 도자기가 깨진 장면을 보고 안타까워했던 것과 마지막에 최명길이 시해되어서 시신을 불에 태우는 장면을 보고 슬퍼했던 기억이 난다.
아, 그리고 어느 날 조수미의 ‘나가거든’ 뮤직비디오를 보며 애처롭게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고 외치던 이미연의 모습까지도. 그땐 어려서 조선에 무슨 일이 있던 건지, 또 황후가 왜 죽는 건지 잘 알지 못했다.
내가 존경하는 역사 인물(박채은편).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