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푸대접 받고 있는 한글의 생일. 한글날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11월 4일 조선어연구회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 480돌을 맞아 ‘가갸날’을 정한 것이 기원입니다.
이듬해 조선어연구회의 기관지 ‘한글’이 창간되면서 이름이 지금의 ‘한글날’로 바뀌었고 1940년부터 10월9일이 한글날로 정착됐습니다. 1970년 공휴일로 지정됐지만 90년에 ‘법정공휴일이 아닌 기념일’로 떨어졌다가 2006년 ‘법정공휴일이 아닌 국경일’로 지정됐습니다.
한글은 세계적인 생물학자 제럴드 다이아몬드가 세계 최고의 언어로 극찬한, 과학적이면서도 쉬운 언어입니다. 하지만 의학용어에서는 아직도 어려운 일본식 한자용어가 한글용어보다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젊은 의사들은 영어 용어는 알지만 우리말 용어는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 의학자들과 언어학자들이 힘을 합쳐 쉬운 한글 용어를 제정하는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들은 구협을 목구멍, 관골을 광대뼈, 취모를 배냇솜털, 겸상적혈구를 낫적혈구로 고치는 등 난삽한 용어를 쉬운 용어로 고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의사들은 기존의 용어를 고치는 데 거부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개정안으로 제시된 한글용어가 지나치게 생경해 일반인이 오히려 이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의학용어에서 세 가지 정신이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첫째,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용어라도 일반인이 모르면 소용이 없습니다. 용어를 정하는 분들은 언어의 사회성을 염두에 두시기를 빕니다. 뜻이 통하지 않은 일본식 한자어는 장기적으로 고쳐야겠지만 말입니다.
둘째, 쉬운 용어는 의사와 환자의 다리 역할을 해줍니다. 의사는 자신에게 익숙한 용어라도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다면 용어의 개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일부 의사는 영어 용어만 알면 된다고 여기지만, 선진국에서는 의대생이 환자에게 무엇인가 쉽게 설명해주지 못하면 의사 자격증을 받을 수 없습니다.
셋째, 우리말은 용어 중심이 아니라 풀이말 중심입니다. 의사들이 ‘염전’은 ‘꼬였다’, ‘염좌’는 ‘삐었다’로 쓰고, 환자에게 의학용어를 나열하기 보다는 가급적 쉽게 풀어서 설명하도록 고민을 했으면 합니다.
한글이 의사와 환자의 사이를 좁혀주고, 따뜻한 관계로 바꿔주고, 이에 따라 온 국민이 더 건강해지면 참 좋겠습니다.
박용균 전 고려대 의대 교수의 영결식이 8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의대 교정에서 의과대학장(醫科大學葬)으로 열렸습니다. 유족 대표인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과 고려대 오동주 의무부총장, 정지태 의대학장, 김선행 산부인과 주임교수 등이 고인을 추모할 때 조문객 사이에서 긴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고려대 의대와 한국 산부인과학계의 큰 별은 그렇게 떠났습니다. 고 박용균 교수는 미국의사회와 미국산부인과학회 교육상을 받은, 큰 의학자였으며 환자들에게는 소탈하고 여유로운 의사였습니다.
코메디닷컴 대표이며 동아일보 헬스 팀장을 지냈다. ‘대한민국 베스트닥터’ ‘황우석의 나라’ ‘인체의 신비’ 등 7권의 책을 펴냈다. 고려대 철학과 졸업, 연세대 보건대학원 석사, 미국 존스홉킨스 보건대학교 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