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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사회학 보고서-
한국의 생태공동체 운동
이찬우
1. 들어가며 - 공동체에 대하여
환경 공동체에 대한 분석에 앞서 먼저 고민하게 되는 것은 ‘공동체’라는 개념이다. 사전적 정의를 따르자면 ‘생활이나 행동 또는 목적 따위를 같이하는 집단' 정도가 되는데 매우 막연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동물이라고 불리는 인간에게 사실상 공동체라는 것은 무한하게 다양한 양태를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특성은 시대마다 변화하게 되는데, 인류초기의 공동체는 가족, 또는 마을 좀 더 나아가면 지역 정도의 수준으로 한정이 가능할 것이다. 즉 이들은 오늘날의 행정적, 제도적 범주라기보다는 혈연적, 생태적(지리나, 자연환경)범주에 기반한 공동체일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는 근대에 이르러서 거대한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수천년 간 이어져왔던 토지를 기반으로 했던 생산 양식이 전복되고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등장하게 된다. 기존의 공동체의 방식은 해체되고 도시라는 새로운 공간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가 등장한다. 이는 과거의 생태적 범주에 기반한 것이 아닌, 지극히 인위적이고, 시스템(행정과 제도)적인 개념이다. 기존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 도시에 모여들어 익명의 삶을 살게 됨에 따라 정체성의 위기와 함께 소외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된다. 이에 사람들은 공동체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고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다양한 공동체 실험을 함으로써 공동체의 존재양식을 풍부하게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정보화시대를 맞이하면서 또 하나의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황대권은 다양한 공동체들의 양태 속에서도 이들이 지니고 있는 핵심적 가치 3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지역성, 상호작용, 그리고 심정적 유대라는 세 측면이다. 현대사회에서 기술의 발달은 서서히 지역성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반면,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이 심정적 유대라는 측면이다.
그리하여 그는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공동체란 공동의 관심과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마음상태’ (State of Mind)로서 이해 당사자들의 요구와 지향에 따라 특정한 장소나 사회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공동체를 이와 같이 정의하더라도 이상적인 공동체의 원형은 어디까지나 지역성과 상호작용, 심정적 유대가 온전히 갖추어져 있는 마을공동체에 둘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거로서의 온전한 회귀와 재현은 불가능하기에 이 양태는 다양한 모습을 나타날 수밖에 없다.
2. 한국에서의 공동체 운동의 역사
해방 후 한국사회에서 공동체운동의 등장은 1960년대 초반 부산에서 시작된 신용협동조합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신협운동은 60년대에 가브리엘 수녀가 시작하고 천주교계가 이를 적극 지원함으로써 시작되어 서민금융공동체로 자리잡았다.
1970년대 들어서는 농업 분야에서 새로운 대안 농업과 공동체운동이 시작된다. 70년대 박정희 정권은 농업분야의 주요정책으로 식량자급을 구호로 내세우며 농업증산 정책을 추진하였다. 농업증산 정책은 기본적으로 전통농업을 근대적인 산업농으로 재편하는 정책으로 그 내용은 품종의 개량, 화학비료와 농약의 도입, 기계화영농과 농업분야에 시장원리 도입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를테면 쌀의 증산을 위해서 다수확 품종을 개발하게 되는데 이때 다수확의 의미는 수량적 증대뿐만 아니라 조기생산의 개념이 포함된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화학비료와 화학농약의 사용을 기본으로 하고 이러한 농업은 당연히 농업환경을 파괴하고 토양을 오염시키게 된다. 또한 박정희 정권은 공업중심의 성장주의 전략을 기본으로 농업생산물에 대한 저가 정책을 유지하였는데 이로부터 탈농화가 진행된다. 1975년에 이르면 그 이전까지 전체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하던 농업인구는 급속한 감소 추세를 맞이한다.
이러한 농업정책은 저항적인 농민운동을 탄생시키는데, 카톨릭농민회를 비롯한 농민운동이 그것이다. 그러나 농업의 한 축에서는 근대적인 산업농에 저항하여 대안적인 농업으로 유기농업을 모토로 한 정농회(正農會)의 활동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유기농업은 정부가 주도하는 농정에 대한 비판적인 농법으로 정부는 이를 불온시하였지만 90년대 초반부터 근대농업에 대한 반성과 환경에 대한 관심의 증폭으로 대안적인 농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다양한 대안 및 공동체운동 집단의 기본적인 농법으로 자리잡고 있다.
또 한 가지, 현재 대안운동으로 제시되고 있는 협동조합운동 또한 70년대에 본격화된다. 1972년 집중호우로 남한강 유역의 강원․충청․경기도의 주민들이 집중적인 피해를 입었다. 당시의 피해는 관에서도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규모가 컸으며 이에 따라 천주교 원주교구를 중심으로 ‘재해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재해대책사업을 지역운동의 차원에서 전개한 것이 민간 협동조합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당시 이들은 농촌에서 한우 작목반을 비롯한 소비조합,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조직함으로써 수해의 피해를 극복함은 물론 농촌공동체의 복원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강원도 영서남부 일대에 협동조합운동이 뿌리를 내리게 하였다. 이들의 활동으로 탄생한 협동조합운동은 신용협동조합과 오늘의 생활협동조합에 해당하는 소비조합운동이다. 1980년대 초반에는 생태주의와 결합한 도농공동체운동이 시작되어 오늘날의 생활협동조합운동과 한살림운동을 이루게 되었다.
현재와 같은 다양한 공동체 운동들이 시작된 것은 90년대 중반 이후이며 최근에는 IMF와 신자유주의의 파고를 타면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3. ‘생태’에 대하여
생태는 Ecology의 번역어이다. 에콜로지는 ‘살아 있는(생명활동을 하는) 것들과 환경 사이의 관계 또는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이다. 그리고 이 지구 자체를 하나의 유기체적 측면에서 본다면 그 범주는 무한정 확대될 수도 있다. 일상적으로는 환경이라는 말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쓰이고는 있지만 환경이라는 말 자체에 자연과 사회를 인간의 입장에서 대상화하는 느낌이 들어있어서 주체와 객체가 하나로 맞물려 돌아가는 생태적 세계상을 그려내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어떤 면에서 환경이라는 말이 인간중심적으로 쓰이고 있음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인터넷이든 서적이든 생태공동체, 또는 생태마을 등의 용어가 주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용어가 어찌되었든 생태 또는 환경적 가치는 기존의 산업주의, 생산주의적 패러다임을 대체할 대안적 가치임에는 틀림이 없다.
4. 생태 공동체에 대하여
위에서 간단히 접해본 생태와 공동체의 결합이 생태 공동체이다. 순수 생태학적 측면에선 특정지역에 사는 생물군집(Communities)을 뜻하며, 생태사회론적 측면에서 정리하면 인간사회가 다른 생물 종의 생활을 침해하지 않도록 (혹은 침해를 최소화 하도록) 생태적 원리에 기초하여 재구성한 사회를 의미한다.
생태공동체는 이와 같이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실제로 지역과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먼저 구미에서는 생태공동체(Ecological Community)라는 용어가 순수한 생태학적 의미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생태사회론적 의미로도 쓰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 대체로 Eco-Village 라는 용어를 많이 쓴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생태공동체를 ① 이념의 의미 ② 생태적 지역 공동체의 의미 ③ 계획공동체의 의미로 다양하게 쓰고 있다. 이것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① 이념의 의미: 생태공동체는 대안사회의 이념이다.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를 지양할 새로운 사회가 생태공동체 사회라는 것이다. 뜻을 좀 더 분명히 하기 위해 ‘생태주의 공동체 사회’ 또는 ‘생태적 공동체 사회’라고 할 수도 있으나 간략하게 그냥 ‘생태공동체사회’라고 한다.
② 생태적 지역 공동체의 의미: 생태공동체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범위에서 구현되는 지역 공동체이다. 익명의 사회에서 파편화된 개인은 보다 많은 자유를 행사할 수 있을지 모르나 소외와 단절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에 소규모 지역 공동체에서 개인은 이웃과 그리고 대지에 굳건히 연결되어 있다. 지역에 자리 잡은 생태공동체는 지역주민이 직접 참여하여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공동체민주주의와 지역자립 경제를 추구한다. 이것은 도시(생태도시)에서는 물론 읍면 단위(생태마을)에서도 가능하다. 생태공동체운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국가의 강화가 아니라 마을의 완성이다. 자연 속에 안겨있는 마을이야말로 인간 영혼의 영원한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③ 계획공동체의 의미: 계획공동체는 생태적 의식을 가진 일단의 사람들이 생태공동체 원리에 근거하여 의도적으로 만든 공동체이다. 계획공동체는 공터가 별로 없는 한국에서는 구현하기가 쉽지 않지만 생태공동체운동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생태공동체의 원리와 엑기스가 그 안에 집약적으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계획공동체는 말하자면 생태공동체의 축소된 모델과 같은 것이다
5. 생태공동체의 사례들
한국에는 상당한 정도로 생태공동체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다만 그것을 무엇이라고 이름붙일 수 없어 그냥 분산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주변부 운동이려니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기에 진보네트에서는 아예 카테고리조차 없었던 것이다. 예컨대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환경보호 운동이나, 역사문화 보존운동, 우리 마을·길거리 만들기 운동, 생협이나 신협과 같은 여러 가지 협동조합운동, 생태마을 운동, 계획공동체운동, 생태도시운동, 아파트공동체운동, 공동주거운동, 도시농업운동, 장애우공동체운동, 빈민공동체운동, 종교공동체 운동, 생태유아공동체 운동, 어린이 도서관 운동, 대안학교 운동, 생태농업 운동, 귀농운동, 도농직거래 운동, 녹색 장터 운동, 지역통화운동, 토지 트러스트 운동 등이 그것이다. 이 밖에도 이름붙이기가 곤란한 여러 가지가 있지만 생략한다. 물론 이 운동들 중 어떤 것은 다른 지향과 관점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생태공동체 운동의 기본 이념을 거부할 정도로 다른 것은 아니다.
① 홍성 문당리 마을
45년을 한결같이 운영해온 작은 농업학교인 풀무학교로 유명한 홍성 홍동면에는 오리농법으로 짓는 쌀농사로 많이 알려진 문당리 마을이 있다. 이 곳은 주변지역까지 무려 100만평이 넘는 논에서 유기 벼농사를 짓고, 주민이 180여명인 마을은 정보화 시설이 갖추어진 환경농업교육관과 농촌생활유물관, 방앗간, 찜질방 등 주민 편의시설도 마련되었다. 2000년 말 세워진 후 한해 수천 명이 활용하는 이 환경농업교육관은 환경․농업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한 주민들이 3년간 기금을 모아 부지를 마련하고, 흙벽돌 3만장을 주민들이 직접 찍어 지었기에 그 의미가 각별하다. 문당리는 농촌마을에서 희망을 찾고 농촌과 도시의 공생 방안을 마련하기 위하여 마을 단위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마을 백년 계획’을 세웠다. 외부 전문가의 도움으로 작성되었지만 계획서의 앞머리에는 계획을 세우는데 함께 고민한 주민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백년 계획은 자립적이고 상호부조하는 두레공동체의 모습으로 건강한 자연 속에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마을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는 것을 기본전략으로 삼고 있다.
② 화성 산안마을
산안마을에 근래 일어난 일들은 공동체가 하나의 유기적 생명으로 태어나고 성장하여 변모해 가는 과정을 살펴보게 한다. 산안마을은 전후에 일본 농부 야마기시 미요조가 제시한 더불어 행복한 일체사회를 이루는 전 세계 50여 곳의 무소유 실현지 가운데 하나로 1984년 화성에 자리를 잡은 곳이다. 산안마을은 공생과 순환의 양계방식이나, 마음공부의 원조격으로 많은 사회활동가들이 거쳐간 ‘연찬(硏鑽)회’ 프로그램으로 우리 사회에 공동체운동의 산실 역할을 해온 곳이다. 지난 10년 동안 마을은 뚜렷하게 성장하진 않았지만 안정된 기간을 보냈다. 이제 스무살 혈기왕성한 성년이 되면서 바깥 세상과의 조화에서 완숙함보다는 설레임이 앞서는 떨림이 일고 있다. 실제로 마을의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진로문제로 겪게되는 부모와 마을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생각의 차이가 표면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마을에 들어온 지 10년 넘어 인생의 전기를 맞는 구성원들에게도 생각이 많아지기도 한다. 몇 세대를 넘어 나름의 틀을 갖춘 외국의 공동체들을 참고하면 공동체에서 자라난 아이가 성년이 되면 세상구경이나 공부를 하고 몇 년 뒤에 스스로의 선택으로 공동체에 들어오는 과정을 밟는다. 인생의 전환이 필요한 경우에는 네트워크를 이룬 다른 지역의 공동체로 옮기기도 한다. 기본적인 물적 토대가 안정된 경우에 가능할 것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세대를 넘어 지속되고 있는 공동체가 거의 없기 때문에 공동체의 형성과 운영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지만, 공동체의 지속성에 대해서도 지혜로운 경험을 축적해야 할 시기라 할 수 있다.
③ 산청군 안솔기마을
경남 산청군 신안면 둔철산 자락, 간디학교와 기숙사 사이에는 4만5천평의 임야에 산을 깍아 터를 잡은 작은 마을이 있다. 언듯 보아서는 여느 전원주택 단지와 다름이 없다. 게다가 주민들 대다수는 아직 마을을 생계의 터전으로 삼고 있지 못하다. 터 닦기 공사가 진행 중이던 2001년 봄 이제 막 들어선 집 한두 채의 배경으로 눈에 들어온 소나무, 참나무들이 베어지고 파헤쳐진 산림의 광경은 생태마을과 연계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썩 좋지 않은 입지에서 시작한 안솔기마을 주민들은 터를 닦기 전부터 입주예정자 모임으로 주민간담회를 매월 가지면서 서로의 생각을 조율해왔다. 생태적인 삶을 추구한다는 목적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구체적인 생활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게 마련이었다. 이후 주민회의는 ‘함께 지켜야 할 것은 최소한으로 정하고 나머지는 스스로 알아서 한다’는 선에서 틀이 잡혔고, 그 과정을 통해 주민들은 개인 필지를 400평에서 200평으로 줄이는 결단도 내렸고, 콘크리트 사용을 자제하고 생태적 자재를 사용하며 수세식 화장실은 설치할 수 없다는 합의도 이루었다. 합성세제 등 오염물질 사용은 물론 텃밭에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할 경우 마을에서 사용권을 박탈할 수 있다는 등 주거생활 전반에 대한 원칙을 구체적으로 담아 개별 건축이 들어가기 전에 ‘안솔기 마을 자치 규약’도 만들었다. 그러는 과정에 원칙이 너무 느슨하다거나 부담스럽다고 생각한 예정자들은 입주를 포기하기도 했다.
6. 대안 공동체 운동이 넘어야 할 것들
공동체운동에 대한 비판 중의 하나는 민중성의 결여 내지는 빈곤이다. 대안공동체운동은 민중성을 취득할 수 없는 것인가? 현재 대안공동체운동의 민중성 결여에 대한 비판은 두 가지인 듯하다. 하나는 민중들의 삶이 자본으로부터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는데 투쟁하지 않는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대안공동체운동에 민중들의 참여가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 대부분의 대안공동체운동은 자본주의 사회와 문명에 대한 비판과 대안은 제시해도 자본과 권력에 대한 비판과 투쟁은 드물다.
이러한 비판은 대안공동체운동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나온다고 판단된다. 대안공동체운동 중 협동조합과 같은 조직은 그 자체가 자본에 대한 대응일 뿐만 아니라 협동조합이 투쟁조직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안공동체운동이 현장의 민중들과 함께 진보운동의 발판이 되는 사례는 외국의 경우 다양하게 많이 있으며 우리 나라의 대안공동체 운동진영에도 이러한 생각을 갖고 실천을 모색하는 곳들이 많이 있다.
또한 농업부문의 대안운동인 환경농업의 경우 최근 급속하게 농민들 사이에 전파되고 있으며, 생산협동조합의 경우 그 자체로 사회적기업으로서 의미가 있다. 지역화폐의 경우도 민중운동이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유기농산물을 공급하는 생협과 대안학교의 경우는 민중들의 참여가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유기농산물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고, 대안학교의 비용이 비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러한 운동이 출발하는 초기의 모습일 뿐 유기농업의 확산과 민중 지향적 대안학교의 등장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유기농산물 가격은 일반농산물에 대해 20~30% 이상 비싸지만 가까운 일본의 경우는 유기농업이 확산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10% 이내의 가격차를 보이고 있다. 또한 다양한 형태의 직거래 방식(지역화폐의 결합, 도농 직거래 등)과 다양한 협동조합운동은 그 자체로 민중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현존 대안공동체운동에 대한 비판 중의 하나는 분절성이다. 다양한 대안공동체운동이 개별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을 뿐 운동이라고 할 정도의 연결망과 체계성을 가지고 현실사회에 대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실제로 대안공동체운동은 치열한 사회적 실천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고립분산적이고 자기 안주적 실천으로 그 성과가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원인은 대안 공동체의 활동에서 대부분 구성원들의 내부지향적인 성격, 그리고 안정성에 몰두하는 경향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안공동체운동의 이러한 개별적 분산성은 한국사회의 대안공동체운동의 성과와 경험이 교류되지 못함은 물론 공동체운동의 발전을 더디게 하고 다양한 비판을 실천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게 되는 한 원인이 된다.
세 번째는 공동체운동에 대한 이념과 이론의 빈곤이다. 다양한 대안공동체운동이 존재하고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음에도 공동체운동에 대한 이념과 이론적 연구는 극히 미미한 편이다. 공동체운동의 실천주체들도 서구적인 이론의 적용과 형성된 이론의 적용에 급급할 뿐 변화하는 상황과 발전하는 운동에 대한 이론적 정립에는 소홀하고 학계에서도 관심이 적은 편이다. 특히 대부분의 공동체가 운동과 경영(운영)이라는 두 바퀴의 수레를 가지고 있는데 반해 대부분의 공동체들이 경영 혹은 운영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운동이 중지되는 사례도 종종 있다. 이러한 현실은 공동체운동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수용`발전시키는데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이외에 언급하지 않은 몇 곳을 간략히 적어보면, 도농교류의 모델로 역할하고 있는 장성의 한마음공동체, 지리산 시대를 열고 있는 두레마을, 종교적 결속이 강하여 보편적인 모델로 발전하기 쉽지 않아 보이지만 마을을 이룬 뒤 10년 만에 국내외에 20여 개 지부를 확충하여 강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만여 명의 주민들이 자립적이고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는 한농복구회, 강한 결속과 사회적 헌신, 불교적 성찰의 삶을 함께 꾸려 가는 도시공동체 정토회, 성서의 생활을 일구는 예수원, 그리고 공동체적 삶의 실험이자 교육장인 변산공동체, 인드라망 세계관을 지역에 펼치기 시작한 실상사 들녘 공동체 등등 싹을 틔운 지난 10년의 노력은 활짝 피어날 꽃봉오리로 에너지를 모으고 있다.
[Alternative Plans ]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