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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7:1-8:5 진노의 날에 성도들을 보호하심 찬송: 5, 8, 489장 교독문: 고후 4:7-15
성도들이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항상 두려워하는 것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심판들을 어떻게 해석하며, 그러한 심판이 성도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염려일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을 것인데, 그 이유는 마지막 날에 우리가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안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염려 때문이다. 이러한 염려는 사실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은데, 그것은 우리가 미래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사도들과 증인들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참으로 많은 위로와 위안의 약속의 말씀을 주시면서 성도가 이 땅의 삶을 마친 후에는 영원한 안식에 이를 것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고 계신다. 여기에는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요한계시록도 포함이 된다. 그렇다. 이미 언급한 바이지만, 요한계시록은 사실 성도들에게 위로의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성경의 다른 책들과 함께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말씀을 ‘듣고 읽고 지키는 것’을 통하여 그의 신앙을 바르게 세워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배우는 목적이다.
요한계시록 6장에서 우리는 여섯 가지 인의 심판이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 배우면서, 여섯 번째 인을 떼었을 때 천재지변에 해당하는 심판이 있었지만, 불신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지 아니하고 죽음을 택하였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여기에서 성도의 의문이 있는데, 그것은 계 6:17의 말씀이다.
계 6: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앞에서 말한 대로 이 말씀은 성도들에게조차 두려움이 되는 말씀이다. 여섯 가지 인의 심판을 통해 이 세상은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결국에는 천재지변의 심판을 받는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과 현실의 모습을 보면서 타락하여 회개하지 않는 세상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인데, 그렇다면 그들과 함께 지상에서 살고 있는 성도들의 삶은 어떠한가에 대하여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대한 대답이 7장의 내용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동안 당신의 백성은 어떻게 보호를 받느냐에 대한 내용이 바로 7장의 기록이며, 성도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배우고,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7장은 여섯 번째 인과 일곱 번째 인 심판 사이에 있는 막간이라고 불린다. 이 막간은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사이에 끼워 넣은 것으로, 여기에서 하나님은 성도들을 크게 위로하고 계심을 볼 수 있다. 물론 많은 이단들은 여기에 나오는 숫자, 144,000명을 오해하여,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이 숫자에 드는 자들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절대 요한계시록이 말하지 않는 바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은 분명히 구약의 배경 하에 기록된 것이며, 구약에 기록된 말씀들을 간접적으로 많이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구약의 의미와 관련하여 요한계시록을 해석해야만 바르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7장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앞의 부분은 1-8절이요, 뒷 부분은 9-17절이다.
먼저 앞 부분인 1-8절의 말씀을 살펴보자. 1절은 “이 일 후에”로 시작하며 9절도 마찬가지로 “이 일 후에”로 시작하는데, 이 말씀들을 보면 마치 요한계시록이 시간 순서대로 기록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은 시간순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사도 요한이 환상을 본 순서에 해당할 뿐, 세상의 역사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심판의 순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이 막간의 부분도 여섯 번째 심판이 끝난 후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첫 번째부터 네 번째 사건이 동시다발로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심판의 내용이요, 이러한 심판이 진행될 때 다섯 번째 인 심판에서 순교한 성도들의 기도에 잠시 쉴 것과 그 수가 찰 때까지 기다릴 것을 말씀하시며, 그 마지막이 천재지변으로 끝날 것이라고 여섯 번째 심판을 통해 보여주신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언급된 여섯 가지의 심판이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이요, 여섯 번째 인이 재림 직전에 일어나는 심판임을 생각해 볼 때, “이 일 후에”라는 말은 요한이 환상을 본 순서를 의미하는 것이지, 우리 인생의 시간에서 순서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왜 이것을 알아야 하느냐 하면, 이미 심판이 끝난 후라면 7장의 내용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7장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에 대해 말씀하실 것인데, 심판이 끝난 후에는 이러한 자비와 긍휼은 전혀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긍휼은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미하는데, 심판이 이미 진행되었다면, 이미 끝난 심판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긍휼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를 알고 본문을 살펴보자.
계 7:1을 보면 “4”라는 숫자가 계속 나온다. “네 천사”, “땅 네 모퉁이”, 그리고 “땅의 사방의 바람”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4”라는 숫자는 세상 전체를 상징하는 숫자이다. 그래서 네 천사는 세상 전체를 심판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모든 천사들을 의미하며, “땅 네 모퉁이”는 바로 세상 전체를 말한다. 그리고 바람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는데, 그 대상은 땅과 바다와 나무이다. 이 땅과 바다와 나무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심판 시리즈의 주된 대상이 될 것을 미리 보여주는 장치이다.
네 천사는 땅과 바다와 나무를 해할 권세를 갖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또 다른 천사를 보내어 네 천사로 하여금 아직은 해하지 말 것을 명령한다. 언제까지인가?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이다. 이 인침은 바로 하나님의 소유로 확정하는 행위이다. 이 말씀은 겔 9:6을 인용한 것인데, 에스겔을 통하여 주신 말씀을 보면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고 되어 있다. 이 예언은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때 이마에 표를 받은 사람만 심판에서 보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숫자가 이어 나오는데, 그것은 144,000명이다. 사이비와 이단들은 이 숫자에 들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성도들을 위협하는데, 이것은 완전한 오해이다. 144,000명은 12x12x1,000의 숫자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앞의 12는 구약의 열두 지파를 의미하며, 뒤의 12는 신약의 열두 사도를 의미하며, 1,000은 많은 수를 의미한다. 따라서 144,000은 신구약 시대에 존재한 모든 교회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도들을 의미하는 숫자이다. 그리고 3절을 보면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란 표현이 나오며, 6:9-11을 보면 “동무 종들과 형제들”로 표현되어 있고, 약 1:1을 보면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다. 이 표현들은 모두 교회를 의미하며, 신구약 시대의 모든 성도들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가 되며, 하나님께서 이 열둘을 선택하시고, 즉 이마에 인을 치셔서 보호하실 것을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말씀을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데, 열두 지파라는 명칭은 사실 예수님 시대에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때는 이미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열 지파가 사라진 때요, 남 유다에 남아 있던 유다와 베냐만 지파만 포로에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본문 5-8절을 보면 “단” 지파는 빠져 있고,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각각 한 지파를 형성했었는데, 여기에서 에브라임은 빠지고 “요셉” 지파의 이름이 들어왔다. 여기에 대한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각 지파가 동일하게 12,000명으로 구성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의 수가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게 될 것이라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이 땅에서 완성이 되었음을 의미하며, 이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교회를 보호하셔서 당신의 백성을 한 사람도 빼앗기지 아니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교회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치신다는 것, 보호하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교회의 역사는 물리적 박해의 역사이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를 영적으로 보호하시며, 그 영혼을 소생케 하시며 끝까지 인내하게 하셔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하실 것이며, 이 땅에 사는 동안 그 신앙을 보호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굳건하게 고백하도록 하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보호요, 이러한 보호의 끝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예수의 부활에 참여하게 하시는 복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은혜의 약속이다.
그렇다면 1-8절의 말씀은 바로 지상에 있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보호의 약속임을 알 수 있다.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고 있는 천사가 아직 그 바람을 놓지 않았다는 것은 계 6:11에서 말씀하신 대로 “그 수가 차기까지”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신다는 것이다.
이제 두 번째 단락인 9-17절에서 무대 배경은 천상으로 옮겨진다. 그렇다. 두 번째로 언급되는 교회는 바로 천상의 교회를 의미한다. 9절을 보면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말하는데, 이는 앞에서 말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들이 무엇을 하는가?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찬양을 하고 있다.
계 7: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이들이 입고 있는 흰 옷과 들고 있는 종려 가지는 승리를 상징하는데, 이것은 마지막 심판이 끝난 후 수많은 성도들이 삼위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구원의 완성과 승리를 찬양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14b절을 보면 이들에 대한 언급을 이렇게 한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지상의 교회들이 전투에서, 즉 큰 환난과 박해에서 승리한 후 하나님의 하늘 보좌 앞에 서게 되었으며, 예수님 초림 때 패배한 사탄이 예수님 재림 때 완전히 패배하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천상에서는 계속 찬양소리가 울려 퍼진다. 12절은 모든 천사가 찬양한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늘에서는 삼위 하나님의 승리를 계속하여 찬양함이 가득 울려퍼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면 얻게 될 승리이다.
그래서 계 7:15-17의 아름다운 묘사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 묘사들은 이미 구약에서도 언급되었던 것들인데, 요한도 역시 이 환상을 보면서 우리에게 천상의 교회의 모습과 그들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는것이다. 천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밤낮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장막을 치시고 당신의 백성과 함께 하시며, 성도들이 지상에서 경험했던 모든 육체적 결핍과 위험이 사라진 상태, 즉 모든 것이 충족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영원한 안식, 즉 안전이 보장되고 평화와 풍요를 누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삶에는 눈물을 흘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눈물도 없다.
이처럼 성도가 지상의 전투하는 교회, 세상의 박해를 이기는 삶을 살 때부터 하나님은 이미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셔서 승리한 천상의 교회로 우리의 소속을 옮겨주실 것이다. 이것이 여섯 번째 인 심판과 일곱 번째 인 심판 사이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위로이다. 세상은 심판을 받을 때 회개하지 아니하고, 그 심판을 고스란히 받게 될 것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환난과 박해를 지나 천상의 아름다운 삶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수가 차기까지 잠시 인내하는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8:1-5에서 일곱 째 인을 뗄 때,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이는 지상의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기 위하여 잠시 하늘을 고요하게 하시는 것이다. 여기에서 반 시간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오전과 오후 제사드릴 때 향을 피우는 시간으로, 시 141:2은 이 분향을 기도와 동일하게 말하고 있다.
시 141: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그래서 본문 8:4은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도는 성도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성도는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으며, 현재 잠시 인내해야 할 삶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함으로써 다시금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기도할 것을 요구하시며, 그 기도에 응답하심으로써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시고 용기를 주시고 보호하신다. 따라서 기도는 세상 종교가 갖고 있는 자신의 소원을 신에게 아뢰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어서 이루어주시기를, 즉 하나님의 분명한 응답에 대한 약속을 의지하여 아뢰는 것이다.
이 기도에 대한 응답이 끝난 후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일곱 번째 심판이 드디어 나오는데, 그것은 5절에서 말하는 대로 보좌로부터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온다. 이 표현은 일곱 나팔 심판과 일곱 대접 심판의 마지막 심판에서도 동일하게 나온다. 11:19은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고 말하며, 16:18은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라고 말하고 있다. 이 표현들은 모두 보좌로부터 마지막 승리를 선언하는 것으로써, 하나님께서 계획한 모든 것이 완성이 되며, 세상의 악은 완전한 심판을 받아 사라질 것을 의미한다. 이 환상은 출애굽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후 시내 산에 모였을 때 하나님은 십계명을 선포하시기 위하여 시내 산에 강림하셨다. 이때의 상황에 대해 출애굽기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출 19:16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이 말씀은 출애굽이 완성된 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치시기 위한 작업,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묘사한다. 이것은 완성된 상태가 되었음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으로, 요한계시록의 환상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심판이 끝을 맺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인 심판, 일곱 나팔 심판, 일곱 대접 심판은 모두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일어날 심판들이며, 뒤로 갈수록 그 강도가 더욱 세어질 뿐 동일한 심판들임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계속 살펴보면서 기억해야 할 바이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을 들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 세상에서 진행되는 동안 하나님의 백성은 분명히 보호를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하늘에서부터 주어졌다. 물론 이 보호는 우리가 소원하는 바 물리적인 보호, 즉 건강과 재물에 대한 보호가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만나는 박해에서 우리로 하여금 이길 힘을 허락하시며, 천상의 교회를 바라보고 그곳에서 안식하며 살아갈 날을 소망할 수 있도록 주시는 약속의 힘이다. 그리고 성도들은 이 땅에서 홀로 고난을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도를 통하여 함께 하시며, 당신의 백성들의 호소를 들으시며, 그 호소에 응답하실 것을 약속하고 계심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위로이다. 그리고 이 위로는 하늘의 삶을 소망하게 한다.
교회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능의 손으로 붙들고 계셔서 철저한 보호를 받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노력으로 택함 받은 숫자인 144,000명에 들어가려고 집중할 것이 아니라, 계 7:9이 말하는 대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찬양할 날을 소망하면서, 여기에서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에 대한 감사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만큼 능히 셀 수 없는 많은 수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삼위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할 것이며, 그분의 돌보심을 영원토록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성도가 받는 위로이다. 말씀을 하나 보자.
고후 4:16-18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요한계시록을 통해 받은 하나님의 약속과 바울이 주는 권면을 통해 주 안에서 깊은 위로를 얻고, 더욱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상의 교회에서 성도로 살다가 천상의 교회에 들어가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누리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이것을 소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약속을 주셨기 때문이다. 나를 바라보지 말고 오직 이 약속을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굳건한 신앙의 모습이 가득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