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손
최성길
16세기 독일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는 독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목판화 ‘기도하는 손’은 그 그림에 얽힌 이야기와 더불어 큰 울림을 주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친구인 두 소년이 있었다. 한 소년은 화가가 되려는 꿈을 가졌고, 다른 한 소년은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다. 그러나 이 둘은 모두가 집안이 가난하여 꿈을 이루기 위한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먼저 뒤러가 화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는 동안 그의 친구가 돈을 벌어 도와주고, 뒤러가 화가가 되면, 돈을 벌어 그 친구의 피아노 공부를 도와주기로 했었다.
세월이 흘러 화가로서 뒤러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고, 그림이 팔려나가기 시작하자 옛 친구를 찾아갔다. 이제부터 자기가 돈을 벌어 친구의 피아노 공부를 위한 뒷바라지를 하겠노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거기서 뒤러는 우연히 그 친구가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자기는 이미 오랜 노동으로 손이 굳어 피아노 공부를 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 내 친구 뒤러가 유명한 화가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기도하는 그의 손을 보니 여기저기 심줄이 튀어나오고 아주 험하게 되어 있었다. 뒤러는 그 자리에서 연필을 꺼내어 그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스케치했다. 그리고 그 기도하는 손을 목판화로 만들었다. 그게 그 유명한 ‘기도하는 손’이다.
얼마 전에 내게 택배 하나가 왔다. 액자였다. 꺼내놓고 보니 ‘기도하는 손’이었다. 깜짝 놀랐다. 뒤러의 작품인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여태까지 보아온 뒤러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었다. 목판화 전체는 검정이었다. 십자가로부터 퍼져 나오는 하얀 빗살무늬가 여기저기로 번져나가면서 기도하는 손의 윤곽이 드러나게 하고 있었다. 뒤러의 그것과는 색감도 다르고 구도도 달랐다.
그 작품을 보낸 이는, 얼마 전에 장로로 취임한 화가였다. 그는 일본의 유명 대학 미술과 출신으로 단기과정이긴 하지만 미국에서도 수학한 바가 있는 글로벌 화가다. 국립진주산업대학교 교수를 비롯 여러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친 교육자이기도 했으나, 전업 작가를 선언, 학교를 그만두고 ‘온 갤러리’ 작가회를 만들더니, 감천문화마을에 들어가 갤러리 카페 그린하우스를 열어놓고 작품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개인전은 말할 것도 없고, 한일교류전를 통해 우리나라와 일본을 오가며 전시회를 갖기도 하고, 미국 등 외국에서도 전시회를 갖는 등 글로벌 작가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단지 그림만 그리는 화가가 아니었다. 노래 솜씨가 뛰어나서 여기저기 합창단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웬만한 작가의 수준을 뛰어넘는 문학적 소질도 갖고 있다. 게다가 그 특유의 친화력으로 교류의 폭이 넓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순수민간봉사단체인 한국HELP클럽에서였다. 그는 클럽의 여러 봉사활동 중에서도 특히 부산교도소 봉사활동에 남다른 열정을 쏟았다. 교도소 구내 복도에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작업을 맡아 교도소 전체를 훌륭한 갤러리로 만들어 놓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자기가 장로가 되어 취임식을 하는데 축사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깜짝 놀랐다. 비록 활동의 폭이 넓은 그였지만 그가 다른 건 몰라도 교회의 장로가 되었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로가 되려면 우선 믿음이 남달라야 하고, 교회 신도들의 신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장로가 되기 위한 시험을 통과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들어서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벌어진 입을 닫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교회에 나가는 사람도 아니고, 교회와 인연이 있다고 해봐야 기껏 예수 믿는 대학을 나왔다는 것밖에는 없는 사람인데, 그런 나를 보고 축사를 해 달라니 어이가 없었다. 거절을 했으나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장로 취임식 축사는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세운다며 축하가 아니면 꾸지람도 좋으니 무슨 말이든지 거절만은 말아달란다. 나는 그를 늘 좋은 친구로 생각해 왔는데 갑자기 존경이라는 말을 앞세우며 밀어붙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승낙을 하고 말았다.
장로 장립식 날의 교회는 온통 축하 일색이었다. 교계의 높은 어른들과 교인들이 교회 안을 가득 메운 가운데 장로 장립식 예배가 시작되었다.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던지 방금 예배가 시작된 것 같았는데 어느새 사회자가, 내가 축사를 해야 할 차례임을 알리고 나를 소개하는 멘트를 이어간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긴장이 되었다. 그러나 참 이상한 일이었다. 정작 축사를 하기 위해 단 위에 서니 왠지 거짓말처럼 긴장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이었다. 오래전에 읽었던, 매사에 감사하면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동화 한 편을 들려드리는 것으로써 축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구태여 말은 없었지만, 그는 감사할 일이 있을 때마다, 그의 목판화 ‘기도하는 손’을 액자에 넣어 선물로 보내는 모양이었다. 우리 내외의 주치의 선생님 진료실에서도 내게 보낸 그림과 똑 같은 그의 그 그림을 본 적이 있으니 말이다. 그와 그의 교회에 감사할 일이 넘쳐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