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봐놓고 그래
최정나, “문화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2016, 01 04, 34-35면
최정나(崔禎那 1974-) 숙명여대졸, 명지대 문예창작과 석사 재학중.
심사위원 김원우과 임철우
노모, 노부, 여자, 남자 넷, 가족관계상 시어머니, 시아버지, 남편과 며느리이다. 넷이서 마당과 방안을 왕래하는 단막극 무대를 보는 듯하다. 물론 이 단편에서 대화가 그만큼 많고, 대화가 서로 사맏디 아니해도 가족은 가족이며, 서로는 서로의 위상을 잘 수행하고 있다. 그래서 각각의 관심사와 생활사는 대화에서 그리고 작은 움직임에서 드러난다. 작가는 무대장치를 대화 사이에 주인공 넷의 주변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잘 볼 수 있게 해놓았다. 보조 인물의 장치는 노부를 찾아올 것만 같은 그러나 오지 않는 남자의 삼촌들 내외들이 아니라, 지나가는 동네 노파와 기르는 개이다. 이 생일날 노부는 마당에 노란 들통을 걸고 장에서 사온 개를 한 마리 삶고 있었으니 말이다.
일반적으로 가족은 단란하고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각자가 각자의 관심사를 이야기하며 공통의 화두 없이 겉도는 이야기들이 허공에서 머물곤 한다. 서로의 삶을 깊이 느끼고 공감하면서도, 서로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점은 주제넘게 떠들어 대며 서로가 관심을 갖고 있는 척하며 킬킬거리는 이차 술집에서 이야기들과 달리, 가족 공동체는 웃을 수 있는 일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르려니 하고 지나가야 하는 일들이 더 많다. 떨어져 사는 가족은 제목처럼 “전에도 봐놓고”도 특별한 날에 모이면 좀 새로운 것이 있을 것 같지만 여전히 “그렇고 그래”이다. 며느리로 들어온 여자도 또 그렇고 그래 라면서, 이 공동체 속에 점점 침잠해 들어갈 것이다. 아마도 이럴 것이다. 희미한 불빛아래 보이는 시어머니의 얼굴 종아리 등에서 비치는 혈관들의 스물거림처럼, “노모의 발목에서 불거진 혈관이 종아리를 휘감고 올라갔다. 굵고 가는 줄기가 아래로, 옆으로, 옆으로 퍼지며 꼬고 풀어졌다. 꽈리처럼 부푼 것도 있었고, 거미줄처럼 펼쳐진 것도 있었다. 꼬불꼬불한 줄기는 노모의 몸을 타고 넘어 바닥까지 뻗어 나온 줄기가 노모의 몸을 타고 자라는 것 같기도 했다.”(마지막 문단: 내가 노모의 라는 말을 지우고 싶었다), 그런 삶을 며느리도 살아가게 될 지도 모른다. 그 다음에도 운명의 쳇바퀴처럼.
대화에서는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간 건조함이 필요하고 시골에 사는 투박함이 필요하다. 무대의 묘사에서 상황에 맞게 담쟁이의 묘사에 전등이 비치는 상황을 넣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전기불을 아끼는 시어머니 발의 핏줄은 희미한 또는 비스듬히 비추는 불빛 아래 묘사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50P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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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당선작들의 글을 보면, 공통적으로 문장을 간략하게 쓴다. 문장 부호의 나열 같다. 그 나열에서 그리고, 그런데, 그래서, 따라서 등이 빠진다. 마치 의미론자들의 기호논리에서 문장의 연결과 같아서, 비트겐슈타인의 그림이론을 읽고 있는 것 같다. 입선작을 뽑을 때 걸러내는 심사 기준이 아닐까? 그럼에도 소설이니깐 나열은 배치에 따라 감정을 달리하고 공감의 폭을 증폭시키기도 하고 소멸시키기도 한다. 물론 속도와 강도를 더해지면 공명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겠지만, 풍토와 환경은 무시 못 할 토대이다. / 여기 신문에는, 삽화가(안은진 기자)가 잘 뽑은 두 장면 있다. 하나는 들통과 도마인데, 소설적이기 보다 표상적이다. 다른 하나는 케이크가 떨어져 퍼질러지는 장면인데 좋은 시도였다. 딸기라... 요즘 계절이 있나마는 ..(50PLB)
* 당선소감: 소설은 진혼굿이 아닐까... 더 차가워지고 싶다.
“.. 바다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서 믿지 못하는 아내에게 남편의 죽음을 직시하게 하는 것이 소설이 아닐까. 직시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이후의 삶은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따뜻함이다. .. ” (35면) [수동의 세월이 능동으로 바뀌는 삶에서, 아제 없을 것보다 있을 것을 만들어가는 삶에서 찾는다. (50PLF)
* 심사평: 우리의 자화상 .. 담쟁이 넝쿨, 노모의 종아리 대비 돋보여
- 김원우와 임철우(2016 문화일보 신춘문예 본심)
“‘전에도 봐놓고 그래’는 작가의 의도와 형식이 놀랍도록 짜임새를 이뤄낸 작품이다. 흡하 한 편의 무대극 같은 이 소설은 두어시간 동안 벌어지는, 한 가족의 평범하고 남루한 생활의 단면을 칼로 오려낸 듯 보여준다. 극히 무의미하고 진부하게만 뵈는 이 풍경의 내면에 시종 독특한 불안감과 긴장감이 흐르는데, 그것의 원동력은 극도로 단순하고 절제된 서술과 인물간의 건조한 대화에 있다. / 노인의 생일날 마당에 둘러 앉아 개를 통째로 삶아 뜯어 먹고 있는 일가족의 풍경은 삶이 아닌 말 그대로 ‘생존’의 섬뜩한 민얼굴이다. 그 풍경은 더 없이 끔찍이고 괴기스럽기만 한 것은 다른 아닌 이 시대 우리들의 자화상인 까닭이다. ..” (36면) [세대가 바뀌면 그 세대에 맞는 번역이 새로이 나와야 한다고들 한다. 어제, 먹을 게 부족 했던 시절에 개장은 시아버지가 뭔지 모르게 하여 먹게 하는 산모의 영양보충제였다. 이제 그 고기를 먹는 자들을 일종의 혐오의 눈으로 보는 시대가 아닌가! 아제 또 다른 번안이 나오고 또 시간이 지나면 새 번안이 무대에 올려 질 것이다. (50P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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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브 인
최정나, 미발표 원고, 2017, 05.
[지하실 안으로 정도 될까? 삶의 내부로 들어가는 들어간다면 좀 더 심층적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겠지.]
신춘문예 당선작과 같은 방식으로 구도를 잡고 있다. 여기서 넷은 장인 장모 사위 딸이다. 극장무대와 같이, 겨울 어느 소고기 굽는 집이 무대이다. 앞의 작품처럼 넷의 대화에는 고모가(姑母家)와 이모가(姨母家)가 등장한다. 그런데 음식집의 다른 조연들이 세 팀이나 된다. 하나는 셋(술취한 여자, 사내, 다른 사내), 또 하나는 셋(남자, 나이든 여자 어린 남자), 다른 하나는 청년 둘이다. 고모가와 이모가가 하나와 또 하나에 비유적 대비를 잘 표현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때문에 앞의 작품만큼 짜임새가 있지 않고, 복잡한 삽화의 부속물이 되었다. 욕심이 앞섰다.
이 구성 방식으로 여러 옴니버스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가족적인 면 다섯 가지 정도, 가족이 아닌 삶의 환경 다섯 가지를 써서 하나로 묶으면 좋은 소설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50PLE)
설1974최정나16전에도.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