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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김정현 선수 VS 길현탁구장 홍성길 관장
지난해 말 대한탁구협회 주최 불우이웃돕기 자선탁구축제가 열린 경기도 안양 호계체육관. 모처럼 펼쳐지는 다양한 이벤트로 열기가 가득하다. 행사장을 찾은 많은 탁구인들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콧수염과 턱수염을 함께 길러 얼핏 도사(?)같은 인상을 풍기는 그는 휠체어를 타고 있다. 예전의 모습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주변에서 그를 알아본 탁구인들은 그와 반갑게 수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묻는다. 왜 이렇게 오랜만이냐는 내용이다. 예전부터 실업탁구경기가 있으면 늘 경기장을 찾아 누군가를 응원하는 모습으로 유명한 그였다. 하지만 한동안 경기장을 찾지 못했던 탓에 본인도 서먹했는지 다소 겸연쩍은 모습으로 주위를 한번 둘러본다. 순간 뒤에서 “선생님~!”하며 누군가 그를 부른다. 대한항공 소속 국가대표 김정현 선수다.
“어~ 그래, 할만하니?”
“만만찮아요. 동호인 탁구 실력이 이 정도인줄 몰랐어요. 완전 무림고수들이에요!”
“하하하…… 그래?”
오가는 대화에서 부녀지간 같은 따뜻한 정이 느껴진다. 부·녀·지·간! 그렇다. 이들의 관계는 아빠와 딸이 아니면서도 그만큼 가깝다. 아빠 역할 담당이자 이번 호 주인공은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에서 탁구장을 운영하면서 탁구를 직업이 아닌 평생 취미이자 생활로 삼고 있는 길현탁구장 홍성길 관장이다.
초등학교 시절, 본격적인 선수로 입문해 대한항공에 들어가고 국가대표로 선발되기 전까지 홍 관장은 김정현의 매니저 겸 서포터즈가 되어 전국 경기장을 누볐다.
“탁구장 회원들이 정말 고맙죠. 한 달에 5일은 기본이고, 어떤 때는 보름 정도를 비운 적도 있었어요. 정현이가 시합 하나 끝나자마자 선발전이 곧바로 연결된 일정이라 어쩔 수 없었는데, 아무 내색 없이 회원들이 탁구장 문 여닫고 관리해주고 자발적으로 서로 레슨도 해주고 해서 그런 시간들을 아무 탈 없이 지날 수 있었죠. 그런 도움 없었으면 못했어요.”
작가 이외수 선생을 연상케하는 그의 변신은 무죄?
김정현의 그림자를 자처하던 홍 관장의 신상에 변화가 생긴 것은 지난 해 4월. 서울 뉴타운 재개발 사업으로 그가 운영하던 탁구장도 비워야할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주변의 건물들이 빠른 속도로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철거지역의 상가 보상 문제와 이주 대책은 이해 당사자 간의 입장차로 늘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지난 1월, 서울 용산에서 있었던 철거지역 경찰 진압작전 과정에서 여러 명의 아까운 목숨이 숨진 사고도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 어떤 위험에 노출될지 모르는 건 서대문구 재개발구역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토박이 홍 관장은 지난해 일찌감치 대책위에 이름을 올리고 나름대로의 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다보니 강인한 투사의 이미지도 필요했다. 주변에서는 조금 거칠게 보이는 것도 필요하다며 수염을 길러보라고 조언했다. 그것이 오늘의 탁구계 이외수, 탁구도사의 모습이 되어 버린 것이다.
“거칠게 보이려고 수염을 기르다보니 지금처럼 됐는데, 어떤 사람은 오히려 더 인상이 순해 보인다고 하더군요.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면 깨끗하게 잘라야죠. 수염 기르고 관리하는 것도 대단한 정성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영 성가시고 귀찮더라고요.”
서울 응암동 토박이인 그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무척 좋아하던 소년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 다리는 약했지만 목발에 의지하면서도 축구와 야구를 무척이나 즐길 정도로 강하고 근성이 있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활동량 많은 운동을 즐기기에는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턴가 그는 탁구와 바둑을 좋아하기 시작했고, 한때는 조각 공부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다.
“예전에는 바둑을 참 좋아해서 아마4단 정도가 됐어요. 한때는 기원에서 사범생활을 하기도 했고요. 그러다보니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건강을 해치게 되더라고요. 해서 잠시 손을 떼고 경북 안동에 내려가 한동안은 조각에 심취했었죠. 하회탈 같은 목공예를 했습니다. 조각을 계속하면서 나중에 나름 사업 계획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탁구에 빠지면서 뜻대로 안됐죠.”
그때가 김정현이 초등학생이었던 때다. 여하튼 얄개탁구장의 전성시대는 이후로 계속됐다. 당시로선 상당히 큰 규모의 탁구장으로 한 쪽에는 칸막이를 치고 기원을 겸업 운영하고 있었다.
“탁구가 참 잘 될 때였어요. 특히나 86년 아시안게임이 끝나고부터 최고 인기였죠. 들리는 얘기로 당시 서울에 탁구장이 200개 정도 있었는데 순식간에 1,200개로 늘어났다는 얘기가 돌 정도였으니까요. 얄개탁구장은 그때 80평 규모에 탁구대 16대를 들여놨는데, 일반손님이 너무 많아서 레슨은 새벽 5시30분부터 아침 9시 정도까지 밖에 못했죠. 문만 열면 일반 손님이 밀어닥칠 때였으니까요. 하긴 그땐 어찌나 인기였는지 탁구공을 구하지 못해 난리였을 때니까요….”
그때를 회상하는 홍 관장의 모습은 짜릿한 흥분을 느끼는 듯 이야기 톤이 순간 높아졌다. 아마도 당시 탁구장을 운영했던 이들만 느낄 수 있었던 희열이었을 것이다.
’80얄개, ’95길현 - 탁구장 30년 역사를 향하여
홍 관장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숨은 그림이 있다. 당시 얄개탁구장에서 운동을 시작한 중학생 회원이 지금은 길현탁구장 40대 회원으로 계속 탁구를 즐기고 있다는 거다. 햇수로만 따져도 홍 관장을 25년째 따라다니며 운동을 하고 있는 셈 아닌가? 사실 ‘길현’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회원들 중에는 ‘얄개’ 시절부터 운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 이어진 인연이 꽤 있다고 한다. 정말 어메이징~이다! ‘응암동파’가 얼마나 의리파인지 알만한 대목이다. 그리고 더불어 또 하나 놀라운 사실, 홍 관장이 지금까지 거의 30년 동안 쉬지 않고 탁구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30년을 이곳에서 채우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죠. 이곳이 정리된다 하더라도 탁구장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도 없지 않고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 다른 곳으로 옮긴다 해도 시설비나 운영비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죠. 여러 가지로 고민이라 잠시 딴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더 나이 들면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택시를 시작할까 하는 고민도 해 보는 거죠.”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주기를 3번 겪은 셈이다. 어떤 일을 해도 10년을 버티면 도사가 된다는 말대로라면 그는 이미 도사, 증조 도사를 거쳐 이미 고조 도사이다. 탁구장 30년! 탁구장 역사 30년은 단순한 수치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아마 대한민국 탁구장 역사에서도 큰 족적일 듯싶다. 탁구에 대한 후회나 회한은 없냐고 물었다. 고민의 겨를도 없이 돌아온 대답. 간단했다. ‘한 번도 없다’는 거다. 다만 하나, 기억에 남는 사람은 있다고 했다.
“언젠가 탁구장에 한 사람이 찾아와 여기서 레슨 받을 수 있냐고 하는 거예요. 그래, 당연히 레슨하는 곳이라고 했죠. 그랬더니 레슨을 누가 하냐고 묻더라고요. 내가 한다고 했죠. 그 사람은 알았다고 하더니, 안 오더군요.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어요. 휠체어 타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과연 어떻게 레슨을 할까 싶었던 걸까요? (웃음)”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공 하나에 온갖 신경전을 다 쓰는 지금의 경기 패턴은 순간순간 지루하고 식상한 게 사실이다. 전략이라고는 하지만 때로는 비열한 꼼수 같은 느낌이 들 때도 많다. 시합에서 경기 종료 시간 다 됐을 때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이리저리 공 돌리며 시간 때우는 이기는 팀의 모습이 지는 팀 입장에선 볼썽사나운 것처럼 말이다. 경기 내용이 빠른 박자로 전개되면 박진감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자연히 중계방송도, 보는 사람도 스피디한 전개 때문에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겠냐 하는 게 홍 관장의 요즘 탁구에 대한 단상이다. 역시 탁구장 30년. 거저 얻어지는 건 아니다 싶다.
지금도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을 지키고 있을 탁구마니아 홍성길 관장의 바람은 지금 있는 곳에서 탁구장 30년 역사를 기록해 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소박한 꿈의 실현은 현재로선 불가능해 보인다. 당장은 현재 그가 처한 입장에서 적정한 보상이 이뤄져 홍 관장이 이어가려는 길현탁구장의 역사가 계속 쓰여 지길 기대한다. 구순 노모를 모시고 묵묵히 탁구밭 오솔길을 걷고 있는 홍성길 관장. 그는 이 시대 진정한 탁구마니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