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표어는 미 해병대의 'Once a Marine, Always a Marine'에서 한국전쟁시 유래한 것으로, 한국 해병대가 48여년간 사용해 온 우리의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자유 우방국가의 모든 해병대가 임무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평화의 선봉군으로 갖는 이 표어에 대한 긍지는 그 어느 것보다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해병대의 특성을 대변하는 상징 문구로서 해병대의 일원으로서 자부심과 긍지, 명예심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이것 이상으로 해병대 의식 구조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1987년부터 '해병대 정신'의 표어로 사용되고 있는 이것은 현역·예비역은 물론 일반 국민들까지도 '해병대'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문구로서 애칭되고 있다.
귀신 잡는 해병대
낙동강 전선의 피아가 대치된 상황에서 한국 해병대 김성은 부대(1개대대)는 진동리 서방 고사리지구 섬멸전에서 6. 25 이후 파죽지세로 침공해 온 북괴군의 예봉을 꺽고 침공을저지함으로써, 국군 최초의 큰 전과를 획득하였다. '50. 8. 5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전장병 1계급 특진의 영예를 획득한 뒤, 통영상륙작전에서 '50. 8. 17 - 9. 11간 한국 최초로 단독 상륙 작전을 감행하여 적을 완전 격멸하자, '50년 8월 23일 통영상륙 작전에 대한 취재차 원문고개로 해병대(김성은 부대)를 방문한 미 『뉴욕 타임즈』기자【마가렛트 히킨즈】는 해병대가 통영에서 거둔 전과처럼 기습적인 양동상륙 작전으로 우세한 적군(북괴군 7사단 600여명)을 공격해서 적의 점령지를 탈환한 예는 일찍이 없었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하고, '귀신잡는 해병대'의 표제 아래 취제 기사를 널리 보도함으로써, '귀신잡는 해병대'란 말의 씨를 뿌려놓은 계기가 되었으며, 이 전공으로 국방부장관의 표창이 수여되었다.
무적 해병
'51년 6월초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춘계 공세를 격퇴한 뒤 캔사스(KANSAS) 선으로 진격하고 있을 때, 한국 해병대 제 1연대가 중동부 산악 지역의 태백산맥에서 가장 험준한 전략적 요충지인 도솔산을 점령하였다.
이 전투에서 미 해병대 제5연대가 1차 공격을 하였으나 실패하고, 한국 해병대가 임무를 교대하여 '51. 6. 4 ~ 6. 20간 천연 요새인 난공불락의 진지를 돌파하여, 피와 땀으로 혈전 17일간의 끈질긴 공격 끝에 적1개 연대 규모를 격멸하고, 24개 고지를 탈취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다. 해병대 공훈을 치하하기 위하여 '51년 이승만 대통령은 국방부장관 및 미8군사령관을 대동하고 해병대 제1연대를 방문, 부대 표창장과 감사장을 수여하면서 격려사를 통하여 아 해병대를 '무적 해병대'라 칭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무적 해병' 휘호를 하달하였다.
신화를 남긴 해병대
해병대는 월남의 공산세력을 분쇄하고, 영원한 세계평화를 성취하겠다는 사명으로 건군사상 최초로 해외원정하는 전투부대의 선진으로 청룡부대를 1965년 10월 9일 【캄란】만에 상륙시켰다. 해병대 제2여단(청룡부대)은 【캄판】【판랑】【나트랑】방어전을 수행한 후, 1996년 9월 19일 【추라이】로 이동하여 작전임무 수행 중 월맹 정규군 제2사단 1연대와 21연대 및 지방게릴라 1개 대대가 1967년 2월 14일 23시 20분에 손틴군 짜빈동에 위치한 청룡부대 3대대 11중대에 인해전술로 파상적인 기습공격을 가해왔으나, 해병 제11중대는 중대 전술 기지를 사수하면서 수류탄, 크레모아, 지원화기의 적시 적절한 운영, 역습부대의 과감한 공격과 육박전으로 4시간의 사투 끝에 적 사살 243명의 대전과를 획득하였고, 중대병력으로 막강한 적의 대부대를 저지 섬멸한 쾌거는 월남전 사상 유례없는 대첩이었으며, 해병대의 용감성을 전세계에 과시하였다. 작전지역을 방문한 미 해병대 제3상륙 군단장 월드 중장은 '내가 월맹전에서 처음 보는 전과다. 전장병의 용감성은 우방군의 귀감이다' 라고 격찬하였으며 외신기자들이 '신화를 남긴 해병대'라는 표제하에 대장(정경진 대위), 소대장(신원배 소위)은 최고의 훈장인 태극 무궁훈장을 받는 한편 유공장병들도 국내외 많은 훈장을 받았다.
최강 부대
해병대 창설 당시 신현준 초대 사령관은 훈시를 통해 '해병대는 일치단결하여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 유사시에 대비한 최강의 부대가 되도록 교육훈련에 정진하자'고 역설하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는 『귀신잡는 해병대』,『무적해병』의 전통을 수립하였고, 1951. 8. 30펀치볼 작전의 일환으로 실시된 일명 김일성(924)고지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이 전투를 『神人이 경찬한 공훈』이라고 격찬함으로써 해병대가 최강부대임을 증명시켰다.
또한 1953년 3월 24일 미 8군사령관 테일러 중장이 진해 해병기지 방문시 해병대 창설 4주년을 맞이한 해병대에 대한 격려사에 '최강부대'라는 칭호를 준 것이 유래가 되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
해상으로부터 적진에 돌격을 감행하여 해안두보(海岸頭堡)라는 새로운 영토를 적에게서 탈취 확보하여 무(無)의 상태에서 병력과 장비, 물자를 축적하여 유(有)를 창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상륙작전의 특수성과 초창기의 불비한 조건과 환경속에서 최강 해병을 만들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창설했다는 해병대 역사 속에서 유래된 것으로 해병대 특유의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정신을 나타내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