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주의 위험이 있다니,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가요? 저는 신원이 확실한데다 전과도 없고 그리고 마음씨도 아주 착하···.”
김일한이 말을 끝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자기 말의 모순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가 입을 다물자 동생 매아리가 킥킥거렸다.
“당신은 대학생이지만 무예의 고단자이고 총과 활, 신구新舊 무기 사격대회에서 최우승을 한 경력이 있으므로 대단히 위험한 인물입니다.”
김일한은 비겁하게 더 이상 회피하고 싶지 않아 냉담하게 말했다.
“그럼 가족에게 알리고 가겠습니다.”
“알릴 필요 없어요. 사해제일관의 관주館主님에게 이미 양해를 구해놓았으니까요.”
동생 매아리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김일한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마치 ‘거봐라, 거. 당신이 나의 포로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겠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꼼짝하지 못하고 두 여인에게 이끌려 나온 김일한은 속으로 뇌까렸다.
‘아, 오늘 재수 없으려니까, 새파란 여자 경찰에게 끌려가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밤에 조서를 꾸민 후 내일 아침 검찰이 즉결 처분을 내리면 당신은 풀려날 수 있어요.”
언니의 말이다.
“하지만 풀려나는 건 몸이에요. 마음은 아닐 거예요.”
동생이 언니의 말을 받았다.
“그게 무슨 뜻이죠?”
“그건 몰라도 돼요.”
동생 매아리가 다소 냉정한 어투로 대꾸했다.
사해제일관 밖으로 나오니, 여경들이 타고 온 말 두 마리가 대기하고 있었다. 김일한은 동생 매아리의 말에 동석하게 되었다.
경찰서에 도착해 조서를 꾸민 후 유치장으로 들어간 김일한은 곰곰 생각해보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고 곱씹을수록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어쩌다가 이런 실수를 저질렀는지. 지금까지 주로 혐한嫌韓 사이트들을 해킹하면서 한 번도 정체가 탄로 나지 않았었는데, 어떤 나는 놈이 그의 비밀암호를 해독했는지, 그리고 그의 컴퓨터와 연결된 그의 만능전자수첩의 소유자 및 위치를 어떻게 파악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가 들어간 방 안에는 아무도 없고 자기 혼자뿐이었다. 그가 우두커니 앉아 오늘 하루 일어난 일들을 되돌아보고 있을 때,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동생 매아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봐요, 김일한씨. 당신은 사내대장부가 되어 이따위 하찮은 일로 왜 그렇게 상심해 있어요?”
“남이사.”
김일한이 귀찮다는 듯 짧게 끊었다. 갑자기 녹의녀가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당신은 내가 만든 사슬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어요!”
“벌금이 아직 부과되지도 않고, 벌금을 낼 의사와 능력이 없는 것도 전혀 아닌데, 인신을 구금하는 것은 도대체 어느 나라 법이오? 이건 당신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을 불법 감금한 거요. 나중에 내가 당신을 고발할 거요.”
김일한이 준엄한 목소리로 따졌다. 녹의녀가 빙그레 웃더니 다시 속삭였다.
“맘대로. 하지만 당신은 고발하지 못할 거예요.”
“왜?”
그가 거칠게 항의했다.
“왜냐하면, 나의 포로가 되었으니까.”
“당신 혹시 정신이 돈 게 아니오?”
김일한은 마침내 막말을 쏟아내고 말았다.
“맞았어요. 난 돌아버렸어요.”
그녀가 천연덕스럽게 대꾸한다. 김일한은 어이가 없어서 그녀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가 요구했다.
“당신도 쉬어야 할 테고 나도 잠 좀 자야겠으니, 여기서 나가주시겠소?”
“당신은 내가 싫은가요?”
“나를 이곳에 끌고 와 감금해 놓고도, 그럼 좋아해주기를 기대한단 말이오?”
“싫으면 그만이에요.”
그녀가 한 소리 후 문을 쾅 닫고 나갔다. 문이 저절로 잠겼다. 김일한은 문득 피곤이 몰려오는 것 같아,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꿈이 몹시 뒤숭숭했다.
갑자기 한 낯선 여인이 다가오더니 자기 앞에서 녹의여경으로 변했다. 그녀는 오른 손에 뱀을 들고 있었다. 그녀가 요염한 미소를 짓더니 갑자기 뱀을 그의 목에 가져다 대는 것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김일한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아직까지 목이 섬뜩했다. 이상한 기분에 손으로 목을 만지다 말고 깜짝 놀랐다. 뭔가 물컹한 것이 감촉되었기 때문이다.
“킥킥!”
뒤에서 여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홱 돌려 바라보니, 녹의여경 동생 매아리가 그의 뒤에 쭈그려 앉아있었는데, 바른 손에 뱀을 잡고 그의 목에 들이대고 있었다.
혼비백산한 김일한은 엉겁결에 뱀의 머리를 손으로 낚아채 급소를 눌렀다. 반응이 없었다. 알고 보니 그건 모조 뱀이었다. 벽으로 모조 뱀을 홱 던진 후 김일한이 분노한 표정으로 항변했다.
“당신, 이게 무슨 짓이오? 이것이 일종의 고문이라는 걸 당신은 모른단 말이오?”
“알고 있어요. 당신은 담력이 괜찮은 편이군요.”
기가 막힌 김일한은 말없이 그녀를 노려보다가 되돌아 앉았다.
“당신 기분이 어때요?”
김일한 옆에 대각선 방향으로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녹의여경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김일한을 쏘아보며 물었다.
“기분이 어떻다니, 지금 나를 놀리는 거요?”
“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녹의녀가 사뭇 정색을 하고 또박또박 부인한 후 재차 물었다.
“당신의 마음은 내게 대해 아무런 느낌도 없어요?”
어이가 없었던 김일한은 눈을 들어 여경을 한 차례 흘낏 쳐다보았다.
“증오할 뿐이오.”
“그 증오가 곧 처절한 치정癡情으로 바뀔 거예요.”
김일한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심각한 얼굴로 요청했다.
“내가 지금 잠을 자야겠으니, 나가 주시겠소?”
속으로는 ‘이 여자가 정신병자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나갈 수 없는데요?”
김일한은 그녀를 째려보다가 돌아앉아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녀의 존재를 사뭇 무시하는 태도다. 김일한의 얼굴을 오랫동안 뜯어보던 녹의 여경, 동생 매아리梅峨梨는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나갔다.
그러나 그녀의 마지막 목소리에는 냉기가 서려 있었다.
“흥! 나중에 내게 매달려 애걸복걸하지나 말지?”
김일한은 기가 찬 듯 눈을 떠서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자리에 누웠다.
‘내가 어쩌다가 생전 처음 보는 경찰서 유치장에 오게 되었나? 다 그놈의 999년 조차문제 때문이 아닌가?’
속에서 오히려 그 특유의 오기가 발생하는 것 같았다. 999년 조차문제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려다가 엉뚱한 짓을 저지르고 또 정신 나간 듯한 엉뚱한 여경을 만나고.
하지만 그녀들의 이름이 매아리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어도 사해제일관 사각의 로봇 여성 매아리의 얼굴과 그녀들의 얼굴이 그토록 닮은 건, 그저 황당무계 그 자체였다.
‘이건 현실이 아니라 소설이다!’
그녀들의 안면을 잘 아는 사람이 그녀들을 모델로 삼아, 사각의 매아리 얼굴을 만들었다는 결론 외에 달리 추론할 방도는 단 하나 뿐이었다. 우연의 일치라는 것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확률 제로의 추정이다.
그가 듣기로 사각의 메아리 로봇은 제작된 지가 벌써 근 이십년이라고 한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매아리 로봇은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중간에 두어 차례 얼굴 모습을 좀 수정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단 하나다.
‘혹시, 매아리 자매가 우리 로봇을 모델로 삼아, 성형수술을 받은 건 아닐까?’
‘지금의 성형수술은 옛날에 비해 고도로 발달해 다른 사람의 얼굴을 완전 동일하게 복사할 수도 있다. 그게 불법으로 금지되어 있긴 하지만.’
‘그렇다면 왜?’
‘단지 아름다워서?’
‘절세가인이었던 옛 여인을 사모해서?’
‘별 미친 여자들도 다 있구나.’
‘내가 그녀들을 고발해버릴까?’
‘우리 상품, 로봇 매아리의 얼굴을 복제했으니, 이것은 분명히 특허품의 가치 도용이다.’
쓴 웃음과 함께 이런 상상이 머리를 타고 넘나드는 사이 그는 꿈결 속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니 자신이 마치 꽃밭에서 자고 일어난 듯, 꽃 향기에 머리가 아찔아찔했다. 방안에는 어떤 향기가 가득 차 있었다.
어디선가 옥을 굴리는 듯한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나! 벌써 일어나셨어요?”
여경 매아리의 목소리였는데, 웬일인지 어제와는 매우 달리 아주 상쾌하고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들려왔다.
다소 놀란 김일한이 눈을 비비며 그녀를 쳐다보았는데, 어제와는 다른 위아래 화사한 백색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었는데, 저고리 소매의 단과 치마의 아랫단에 은은한 빛깔의 환꽃이 수 놓여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망울이 아침 이슬을 머금은 꽃잎처럼 아롱거렸다. 거기에는 순진무구의 빛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자기 가슴의 두근거림을 의식한 김일한은 속으로 매우 놀랐다.
‘내가 왜 이러지? 어제까지만 해도 그토록 지겨웠던 여인이, 왜 오늘 아침 이처럼 신선하고 아름답고 순결하게 다가오지?’
그녀는 김일한의 눈빛을 무심하게 쳐다보다가 환하게 웃으며 재촉했다.
“자, 가요. 저와 함께. 잠시 조서만 꾸미면 돼요. 그럼 집으로 바로 돌아갈 수 있어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는 얼떨결에 일어나 그녀의 섬섬옥수에 손목을 잡힌 채, 마치 새 옷을 사러 엄마를 따라가는 아이마냥 모종의 설레는 기분마저 느끼며 그녀에게 이끌려갔다.
김일한의 볼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가슴의 두근거림은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다.
“당신은 동생 매아리인가요?”
김일한이 간신히 입을 열어 물은 것은, 그녀의 분위기가 어제와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매아리가 옆을 돌아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는데, 입술 사이로 엿보이는 가지런한 치아가 마치 하얀 보석과도 같았다.
“그래요. 전 동생이에요. 저희들의 얼굴이 잘 구분되지 않죠? 앞으로 저를 ‘아리’라 불러주시겠어요? 저의 언니는 성격이 매우 쌀쌀해요. 하지만 전 정반대로 극히 다정다감하구요. 우리 둘을 구분하는 방법은 바로 그거예요. 다정다감하게 말하는 사람이 저예요. 아리는 당신을 한없이 그리워하고 있답니다.”
그녀는 묻지 않은 것까지 세세히 털어놓으며 김일한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귓속으로 아름다운 천상의 곡조가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일순 황홀감에 도취된 김일한은 자신의 마음이 간밤에 어떻게 이리 180도로 바뀌었는지, 아니, 그녀가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이토록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변모했는지, 도무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속으로 이렇게 헤아리고 있던 김일한의 입에서 자신도 모를 말이 툭 튀어 나왔다.
“매아리!”
매아리가 싱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 공자님. 어서 말씀하세요. 전 당신의 가장 친한 벗이랍니다.”
김일한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자신도 도저히 자기감정의 이런 격변을 가늠할 수 없었다.
‘혹시 어제 저녁 그녀가 우리 집 거실에서 내 뱉은 담배연기에 미혼약迷魂藥이 들어 있었나?’
속으로는 이렇게 추론하면서도 겉으로는 딴 말이 술술 나왔다.
“당신이 너무 아름답소.”
“어제와는 정반대되는 소리를 하시네요?”
“어젠 실례가 많았소.”
“괜찮아요. 난 당신이 내게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당신을 이해해요.”
“당신이 그렇게 아량이 넓은 여인인줄 몰랐소.”
대화하는 사이 사무실에 당도한 김일한은 조서를 작성한 후 곧장 귀가 조치되었다. 백의녀 매아리는 김일한을 마치 왕자 모시듯 정중히 대우하며 경찰서 밖까지 안내했다.
“공자님, 전 당신의 가장 친한 벗이에요. 그리고 당신의, 당신의···.”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백의녀 매아리는 얼굴을 수줍게 붉히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겨우 떠듬거렸다.
“앞으로 제가 당신을 만날 때는 언제나 이 백의를 입고 있을 거예요. 우리 언니는 녹의를 즐겨 입어요.”
“오늘 아가씨를 만나서 참으로 즐거웠소.”
김일한은 갑자기 가슴을 활짝 펴며 명랑하게 말했다.
“안녕!”
백의녀 매아리가 손을 흔들었다.
그녀와 헤어지고 몇 발자국을 간 김일한은 홀연 상기되는 게 있어서 뒤돌아 그녀를 불렀다.
“아리!”
그녀가 천천히 들어가다가 뒤를 돌아보며 예의 그 매혹적인 미소로 활짝 웃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하늘의 선녀가 하강해 수풀 속에서 그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녀가 멈추어 서서, 백설을 가득 인 송죽처럼 얼굴에 웃음을 듬뿍 띤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일한이 천천히 걸어가 물었다.
“당신의 얼굴은 우리 사해제일관 사각의 매아리 얼굴과 똑같소. 어떻게 된 연유인지 들려줄 수 있겠소?”
“호호호호호!”
그녀가 지나가는 사람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를 요동치며 거침없이 웃었다. 그녀의 웃는 모습이 마치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 같았다.
“저도 몰라요. 저도 어젯밤에 사해제일관 사각에 들어가 보고 처음 알았어요. 실은 제가 먼저 그걸 공자님께 여쭈어보고 싶었는데, 공자님의 기개가 하도 남아대장부답고 얼굴이 조각한 듯 너무 아름다워,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깜빡 잊었어요.”
“그래요?”
그녀의 아첨과 아양이 싫지 않았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김일한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녀와 헤어졌다. 뭔가 허전한 심사가 가슴에서 저녁밥을 짓는 굴뚝의 연기 마냥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내가 그녀의 미혼술에 걸렸단 말인가? 말로만 듣던 미혼술. 미혼술이 이런 거라면, 백번이라도 걸리는 게 좋을 거야.’
그는 별 이상한 편린들을 머릿속에 주워 모으며 발걸음을 재촉해 경찰서 정문을 나섰다. 문 밖에 나가니 누군가가 자신의 애마를 끌고 다가오고 있었다.
경찰인 듯한 그가 넘겨주는 말고삐를 잡고, 말 위에 가볍게 뛰어오른 일한一韓은, 경찰서의 아름다운 기와지붕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돌려 힐끗힐끗 그곳을 바라보았다.
부리나케 말을 몰고 사해제일관에 당도한 일한은 말을 사환에게 맡긴 후 사각으로 달려갔다.
숨이 찬 기색으로 로봇 매아리에게 다가간 김일한이 다짜고짜 물었다.
“이봐요, 매아리 아가씨! 당신도 직접 보았으니까, 녹색 옷을 입고 있던 여경 매아리를 기억하고 있겠지?”
“사람은 잊어먹어도 로봇은 데이터가 손실되지 않은 이상 결코 잊지 않아요.”
“그래서 말인데, 그녀의 얼굴 모습이 당신과 똑같다는 것도 기억하나?”
“물어보나마나.”
“그럼 어떻게 된 연유인지 들려줄 수 있겠나?”
“그건 나도 몰라요.”
“아이고! 이런 바보!”
“누굴 보고 바보라 하는 거예요?”
“물론, 날더러 그러는 거지. 멍청한 로봇에게 물어보았으니.”
“흥! 멍청하긴 누가 멍청해요? 당신들 인간들이 멍청한 거지. 난 인간이 모르는 것은 모르고 아는 것만 알고 있으니, 멍청한 것은 인간이 아니고 누군가요?”
“으이구!”
김일한은 주먹을 들어 로봇 매아리를 한 대 쥐어박으려다 말고, 화가 나면 무슨 일을 낼 것 같아 곧장 사각에서 뛰어 나왔다.
“999년 조차문제를 캐려다 엉뚱하게 이름이나 외모가 로봇 매아리와 꼭 닮은 여경 매아리 자매까지 만나니, 내가 그야말로 뭔가에 홀린 것 같아.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녀는 어찌나 아름답고 매혹적인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도 그녀 앞에서 울 거야.”
중얼거리는 일한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어떤 번개 같은 섬광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매아리 자매는 혹시 로봇 인간이 아닐까? 로봇인간이 진짜 사람인 나를 유혹해? 로봇 인간이 언제 이만큼 진화했지?’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친다. 다음 순간,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닐 거야. 신조인간神造人間(태생인간)이 인조인간人造人間(로봇)에게 반했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봤으나, 로봇인간이 사람을 유혹했다는 소리는 내가 머리털 나고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일한은 매아리 자매가 결코 로봇인간이 아닐 것이라고 확신하며 사색을 이어간다.
‘999년 조차문제로 황궁 소개 사이트를 해킹하다, 이런 아름다운 인연을 맺게 되었으니 이건 전화위복이고, 난 행운아지.’
“전화위복인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 알 거요!”
(다음장으로 계속)
*****************************
샬롬.
2925. 12. 5. 겨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