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때는 초가을 바람이 부는 요즘 시원한 냉면이나 메밀국수도, 이열치열이라 좋다는 얼큰한 탕도 슬슬 식상해진다. 나에게 선물을 주는 셈치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으로 나를 초대해 보는 것은 어떨까? 고급스러운 느낌이지만 우리에겐 이미 익숙해진 그 곳,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말이다.
6호선 상수역 근처에 자리 잡은 언엘리는 방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대접을 받는 느낌이 들게 하는 곳이다. 가게 앞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외관. 스타일리시한 소품과 예쁜 내부가 비치는 큰 창은 얼핏 보기에는 주변 건물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자그마한 이곳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게 만든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봄이나 가을에 왔다면 주저하지 않고 건물 밖 테이블 자리를 선택했을 것이다.
이탈리안 레스토알 언앨리 외관
언앨리 외부 테이블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살짝 어두운 조명과 그에 대비되는 밝은 얼굴을 한 웨이트리스가 나를 반긴다. 깔끔한 테이블 세팅. 맑은 유리잔과 깨끗하게 빛나는 식기가 마음을 들뜨게 한다.
테이블 세팅 메뉴판
메인 메뉴는 파스타, 리소토, 피자, 스테이크 등이며 지하에는 100여 가지 와인이 가득 차있는 와인셀러가 있어, 요리에 잘 맞는 와인도 추천받을 수 있다. 코스 요리는 안심 스테이크가 메인인 A코스와 도미요리가 메인인 B코스, 파스타가 메인인 C코스 세 가지가 마련되어 있다.
파스타가 포함된 C코스와 언엘리에서 추천하는 스테이크를 주문하였다. 파스타는 Fettuccelle Con Granchio(신선한 생꽃게와 야채로 맛을 낸 크림 파스타), 스테이크는 와인소스의 최상급 한우 안심구이 였다.
주문을 마치니 갓 구워낸 빵과 소스, 아삭아삭한 피클이 테이블 위에 준비되었다. 발사믹 식초에 올리브 오일을 넣은 소스와 잘 어울렸던 부드러운 빵은 원하는 만큼 제공된다고 하니, 부드러운 빵 맛에 반했다면 요청하면 된다. 단, 메인요리를 맛있게 먹을 만한 여유를 남겨두는 것은 필수이다.
기본음식인 피클과 빵 부드러운 빵의 속살
코스 요리의 첫 번째 메뉴는 주방장 특선 수프로 매번 다른 수프가 제공되는데, 오늘은 단호박 스프 였다. 부드러우면서도 진하고 달콤한 맛이다. 다른 곳에서 먹었던 단호박 스프는 달콤하기만 한 것에 반해, 끝 맛이 살짝 매콤한 것이 입맛을 돋우어주는 듯 했다.
단호박 스프
스프를 깨끗이 비우자, 두 번째 요리인 샐러드가 나왔다. 싱싱한 야채와 상큼하면서 달콤한 소스가 잘 어우러진 가벼운 그린 샐러드 였다.
샐러드
샐러드로 입안을 정리하고 난 후에, 안심 스테이크와 코스 메인요리인 파스타가 나왔다.
안심스테이크
파스타
종종 음식의 순서를 무시하는 가게를 볼 수 있는데, 코스 요리와 단품 요리를 함께 주문했을 때 단품요리를 코스 메인 요리와 함께 제공하는 작은 센스에 기분이 좋았다.
보기 좋은 것이 먹기도 좋다는 말을 언엘리에서 알 수 있었다.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스테이크에 가지, 파프리카, 호박, 그리고 그 위에 놓인 푸른 맛깔스런 샐러드. 보기에 좋아서 먹기에도 좋았던 것일까? 부드러운 스테이크와 새콤달콤한 와인 소스, 촉촉한 야채는 서로의 맛을 한층 끌어올려 주었다.
파스타 면과 스테이크 고기
큼지막한 게 한 마리가 파스타 면을 한껏 안고 있는 모습 또한 웃음을 자아냈다. 크림소스가 느끼해서 잘 먹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 파스타를 권하고 싶다. 진한 꽃게 맛과 야채가 함께 버무려져 느끼하지 않으면서도 크림소스 특유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메인 요리 역시 깔끔하게 비우고 나니, 코스 요리의 디저트인 우유 푸딩과 식후 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는 커피, 홍차, 루이보스티 중 선택할 수 있는데, 나는 몸에 좋다는 루이보스티를 주문하였다.
개인적으로 푸딩에서 나는 지나치게 단맛과 미끌거리는 느낌이 싫어서 즐겨 먹지 않게 되는데, 이곳
우유푸딩 은 그러한 고정관념을 깨주었다. 크림치즈 같이 부드러운 식감에 달지 않으면서 이름 그대로 우유 맛이 났다. 한 입 먹고 나니 그제야 푸딩의 작은 크기가 아쉬웠다.
푸딩
루이보스차 는 차 자체의 맛보다는 차에 띄운 레몬 한 조각의 상큼한 맛이 식후 차로 적절했다.
루이보스차
언앨리 내부
언앨리 벽과 장식물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언엘리를 나오면서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언엘리에서는 조미료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개 음식에 빠질 수 없다고 하는 소금마저도 말이다. 주재료의 육수를 진하게 내어 사용한다고 하니, 내 지친 마음에게만 선물을 준 것이 아니라 몸에게도 선물을 준 셈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맛있는 음식은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바쁜 일상에 피곤한데 날씨까지 나를 괴롭게 한다면, 맛과 분위기, 서비스가 모두 잘 어우러진 이 곳 언엘리에서 지친 나에게 선물을 한번 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만약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그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자주 오기엔 가격이 살짝 부담될 수 있지만, 어쩌다 한 번 내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곳은 프러포즈 장소로도 사랑받는 곳이라고 하니, 계획하고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 가 격
■ 코스
- A코스: 62,000원(메인요리: 안심(국내산))
- B코스: 58,000원(메인요리: 도미(국내산))
- C코스: 35,000원(메인요리: 파스타)
■ 스테이크 류 : 37,000원~32,000원
■ 파스타, 리소토 류 : 15,000원~20,000원
■ 샐러드, 사이드 메뉴 : 11,000원~37,000원
■ 와인 : 하우스 와인 8천원, 병 35,000원~140,000원
□ 찾아가는 길
상수역 1번 출구로 나와 나온 방향으로 100m정도 가다가 ‘옛날짜장즉석우동’집과 ‘G-CAT' 샛길로 들어가면 길 오른쪽에서 언엘리를 볼 수 있다.
□ 전화번호
02) 3143-5775 (주말 방문 시에는 예약하는 것이 좋다. 당일 예약도 가능하다.)
박인경[서울도시철도공사 사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