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일격에 그로기(groggy)된 몸의 회복이 왜 그리 더딘지.
날이 갈 수록 여수 엑스포장이 점점 더 멀어지는 듯 안절부절 못해 갔습니다.
공명과 이해가 걸린 일도 아닌데 왜 기일 내에 도착하려 한 것일까요.
많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여수 엑스포가 폐막되기 전에 도착하려 했던 당초의 계획대로
되기를 바란 것이었을 뿐입니다.
8월 1일 새벽에 재개한 여정은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현재의 부실한 몸에는 필요불가결한 스틱을 타고온 시외버스 안에 두고 내렸으니까요.
그 버스회사 직원의 적극적 협조로 멀리 달아난 버스의 기사와 통화, 회수하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귀한 시간을 많이 낭비했습니다.
게다가 2개월이나 편한 맛을 본 몸과 칼질한 부위들이 고분고분 따라줄 리 없습니다.
매일 기록을 갱신중이라는 폭염에도 주저앉기를 거듭하며 기싸움까지 해야 했습니다.
중지했던 영광에서 다시 시작했으나 영광땅의 해변은 순조롭지 않습니다.
백수(해안로)에서 끊기고 염산에서 막히는 등.
두우리 갯벌과 대규모 염전을 돌다가 새우양식장에서 협박받으며 쫓겨나 밤 늦게 까지
미로를 헤맨 끝에 바닷가 정자(七山亭)에 잠자리를 편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잔뜩 화가 난 몸을 달래는데 두려울 만큼 진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그래도 밀려오는 파도를 향해 손쉽게 개축할 수 있는 내 집(천막)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함평땅 해안을 이어가려면 향화도(向化島)로 이동해야 합니다.
이미 섬이 아닌 향화도에는 '천년의 빛 바다타워'라는 바다매체타워를 건설중인데 인기
있는 낚시터인지 조사(釣師)들이 폭염도 아랑곳없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제법 긴 '옥실방조제'가 향화도리(영광군 염산면)와 학산리(함평군 손불면)를 가르는 군
면계(郡面界)를 이룹니다.
함평땅 학산리~안악해수욕장 간은 기존 곡선방조제의 직선화 공사가 진행중이며 다시
바닷길인데도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은 물 위를 걷는 요술쟁이라도 되는지.
모르니까 묻는 나그네를 이처럼 혼란스럽고 난감하게 하고도 마음이 편할까?
손불면의 긴 월천방조제를 걷다가 한 트럭에 편승하게 되었습니다.
땡볕 방조제 길만 벗어나게 되길 원했지만 길이 막혔다 통했다를 반복하는 해안과 위험
천만한 지방도로를 벗어나 돌머리해수욕장까지 태워주겠다는 고마운 운전자.
대기업을 명퇴하고 귀향했으나 실의와 좌절을 안겨준 고향의 현실을 개탄하는 그와의
대화는 의외로 진지해졌고 이야기를 계속하려면 더 달려야 했습니다.
25.65km라는 함평의 해안선을 더는 따를 수 없고 목포길 무안 경유지인 무안 국제공항
까지 연장 운행하며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어차피, 아직도 공차증(恐車症)에 시달리고 있는 제게는 위험한 길이며 이번 여정에서
이같은 차로는 기피하기로 했으니까요.
그는, 늙은이에게 대수롭잖은 도움을 주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학수고대하고
있는 자기의 신분을 아직껏 알려오지 않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저의 일정을 하루 단축시켜 준 고마운 그는 무안과 목포의 경계에서 돌아갔고 백두대간
금대봉의 인연 C님이 목포에서 마중나와 재회하게 되었습니다.
해남은 버스편으로 통과하며 해남(삼남)대로 때의 인연들과 재회한 후 마량(강진)에서
본격적인 남해길을 시작했습니다.
(해남, 강진, 완도, 진도는 해안길은 물론 택리지 따라 곳곳을 누비듯 했으니까요)
완도땅 고금도를 잇는 연육교(고금대교) 진입고개를 넘으면 신마(新馬)마을입니다.
고려때부터 제주마의 한양길 경유지였답니다.
배에서 장시간 시달린 말을 쉬게 하고 사람과 말의 목을 축여주었던 샘(수청샘)이 있던
곳에 조그마한 제주말 역사테마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장흥땅 남해안길은 대덕읍에서 회진면을 거쳐서 기암괴석의 천관산이 있는 관산읍으로
북상하는 형국입니다.
천관산 정상에서 참으로 아름답다고 감탄했던 다도해 바닷가를 걷고 있는 것이 뭉클한
축복으로 느껴졌습니다.
더구나 회복 여부가 불투명했던 투병 끝이라 더욱 감격적이었습니다.
물 축제가 막 끝난 탐진강(장흥군청 소재지) 둔치의 다리 밑(천막)에서 1박하고 정남진
전망대에 오름으로서 또 하루의 남해안 길을 시작했습니다.
4km삼산간척지 방조제 한가운데가 우리나라 정남진이랍니다.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가 정동(正東)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광화문을 기준하여 위도상으로 정동쪽이라는 뜻인데 발전된 측량기술과 GPS 시스템에
의하면 광화문이 아니고 도봉산 동쪽의 정동이 된다니까 그동안 잘못 알려진 것이지요.
충남 태안반도를 지나올 때 만리포 포구에 서있는 정서진 표지석을 보았는데 이곳이야
말로 광화문과 전혀 무관한 서쪽입니다.
장흥군 당국에 의하면 정남은 광화문을 중간점으로 하여 정북인 중강진(함북)과 일직선
상의 지점을 말하는데 여기가 바로 그 지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자체 장흥군의 홍보용 이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관산읍의 북쪽에 위치한 용산면의 유명한 석화구이 마을 남포(南浦)에도 정남진
표석이 서있습니다.
"인문, 사회, 지리, 역사적인 자료와 국립국토지리정보원의 개략적인 측량에 근거하여
'南浦'마을 이름을 '正南津'으로 개칭하기로 의결하고 正南津標識石을 세우다"
2004년 2월 5일에 세운 표지석입니다.
남포 마을인들에 의하면 이곳이 정남인데도 군 당국은 관산읍 사금(沙金)마을에 정남진
전망대를 세우고 삼산방조제 중간을 정남진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길손을 혼란스럽게 하며 정남진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이같은 일이 읍면간, 마을
간의 이해 때문이라니 소탐대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이 아니기 바라지만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의 내막은 다음에 기술하겠습니다)
장환도를 육지로 만들고 많은 농지를 확보한 3면의 방조제를 비롯하여 긴 해안길은 남포에서
안양면수문리 한하고 막힙니다.
용산면과 안양면 사이, 장재도 앞의 작은 만 때문입니다.
공사(교량?, 방조제?) 계획이 있다니까 수년 후에는 해안을 따라 걸어갈 수 있을련지?
군내버스와 편승을 거쳐서 도착한 수문리해수욕장에서 다시 걷기가 시작되었으며 옥섬
워터파크 찜질방에서 묵으려 했던 당초의 계획을 바꿔 보성땅으로 넘어갔습니다.
S교수와 함께 한 제암산 ~ 사자산 ~ 일림산 철쭉산행을 중도 포기하고 우여곡절 끝에
찾아갔던 곳인데 철을 만나 몹시 붐비기 때문이었습니다.
회천면 전일리 군학(群鶴)마을 앞 해변은 천혜의 해수욕장인 듯 합니다.
그러나 경주김씨 집성촌(이순신 장군 휘하의 장수 경주 김씨에게 선조가 하사한 땅?)인
이 마을은 개발을 원치 않는다는데도 많은 피서객이 몰려와 성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맥주 1병을 주문했는데 막걸리를 마시며 담소하던 마을 노장(老壯)들이 합석을 권할 뿐
아니라 제 술값까지 지불하는 호의 외에도 이 마을에서 유(留)하라고 권했습니다.
옛 K자동차의 상무이사를 끝으로 낙향해 독거하며 안빈낙도(安貧樂道) 중이라는 K옹은
자기 집에 유하기를 특히 권했습니다.
호남정맥 종주중에 알게 된 3경(景) 3보향(寶鄕)이 생각났습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3제(帝)산(尊帝山, 帝岩山, 帝釋山)과 강과 바다, 의향(義)과 예향(藝),
다향(茶) 등을 말합니다.
호남정맥에서 가장 긴 능선을 가진 보성구간을 그윽한 다향처럼 후한 인심에 취해 통과
했는데 해안로에서도 여일함을 확인하는 밤이었습니다.
멀지 않은 뒷쪽에 봇재를 지나고 녹차밭을 통과해 철쭉 군락지 일림산을 넘어가는 호남
정맥이 흐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바닷가를 걷고 있으나 저는 역시, 여전히 산(山) 체질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