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이 갖고 싶어하는 멋진 차
독일에는 벤츠를 비롯해서 포르쉐, 폴크스바겐, 아우디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차가 많다. 그러나 독일을 대표하는 고급 승용차는 뭐니뭐니해도 벤츠와 BMW다. 알프스의 흰 눈과 바이에른의 푸른 하늘이 낳은 세계적인 명차 BMW 는 날렵하고 경쾌한 모습과 뛰어나고 안전한 성능으로 비즈니스맨, 변호사, 건축가, 디자이너 등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흰색과 파란색이 조화된 엠블럼과 키드니 그릴로 상징되는 BMW는 고성능 세단의 대명사다. 자동차 왕국인 독일에서 벤츠와 쌍벽을 이루는 BMW는 벤츠보다 훨씬 늦게 태어났지만, 짧은 기간에 벤츠의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가 되었다.
BMW의 처음 목표는 아우토반에서 벤츠보다 작은 엔진으로 벤츠를 앞질러 달리겠다는 것이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BMW가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것이 6기통 엔진이었다. 벤츠의 엔진은 대부분 6기통보다 힘이 센 8기통 이었는데도 굳이 6기통을 고집하는 BMW는 분명 개성이 강한 차임에 틀림없다. 벤츠가 안전성을 으뜸으로 삼고 있다면, BMW는 무엇보다도 기분 좋은 승차감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BMW는 마치 스포츠 카처럼 경쾌하게 달리면서도 전혀 불안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벤츠가 대부분 고급 대형차인 반면에, BMW는 소형과 중형이 많은데, 요즘에는 그 구분이 조금씩 흐려지고 있다. 벤츠의 소형차 190이 등장해 BMW를 위협하는가 하면, BMW 역시 고급 스포츠 쿠페와 대형 세단 7 시리즈를 가지고 벤츠를 정면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1962년 모델1500의 성공으로 재건한 이후 "고성능의 완전한 승용차" 생산을 기본 정책으로 하여 꾸준히 발전해 오고 있다. 40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BMW는 최근들어 더욱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준다. 이러한성공의 바탕에는 성능과 안전 제일주의가 깔려 있다. 120여 개국에서 20개 공장을 가동하고 1천여 개 공식딜러를 운영하고 있는 BMW는 98년 롤즈로이스도 인수함으로써 ‘세계 최고급’이라는 명성까지 손에 넣게 되었다.
설립년도 1916년
본사 소재지 Munchen
대 표 자 Bernd Pischetsrieder
종업원수 117,624 ('97년말)
총생산대수/승용차 638,217 / 638,217 ('98년)
경 영 지 표
경영 결산 기준 '97.12
매출액(백만마르크) 60,137
세후순익(백만마르크) 1,246
총자본(백만마르크) 53,280
자기자본(백만마르크) 10,248
자본,기술 제휴업체 - 로버그룹(영,100%)
'이 시대 최고의 명차'를 생산한다고 자부하며 천하의 메르세데스 벤츠와 쌍벽을 이루는 BMW는 제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1916년 바이에른의 중심지 뮌헨에서 항공기엔진 회사를 운영하던 칼라프, 막스 프리츠,카라프와 구스타프 오토(Gustav Otto)가 합작하여 항공기엔진 메이커인 바이에른(Bayersche) 모터제작회사를 설립 하면서 태어났다. BMW의 상징이 된 엠블럼은 당시 비행기의 프로펠러를 형상화한 것이고 파란색과 흰색은 본사가 있는 바이에른주의 상징이다.
1917년에는 바이에리쉐 모토렌 베르케(Bayerishe Motoren Werke)라는 설비회사를 인수하면서 약자인 BMW로 불리우기 시작했다. 이들이 만든 엔진은 1차대전때 독일 공군기에 쓰여 항공기 엔진 제작분야에서 부동의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1차대전이 끝나고 패전국된 독일은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항공기엔진을 포함한 무기류를 생산할 수 없게 되었고, 이것으로 BMW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그래서 BMW는 항공기 제작에서 모터사이클로 분야를 옮겼다. 항공기 엔진 제작기술을 바탕으로 한 BMW의 모터사이클은 뛰어난 성능으로 인기를 끌었다. 때마침 유럽에는 경제불황으로 자동차가 줄고 모터사이클 붐이 일어 BMW의 새 사업을 도왔다.
1922년에는 당시 오토바이 경주를 석권하고 있던 영국의 트라이엄프를 제치고 유럽 모터사이클경주를 제패했다. 이후 2차대전 때 이름을 떨친 R75 사이드카를 비롯해 시속 280.22km로 세계 최고기록을 세운 500cc 월드 사이드카, 세계 최초로 ABS를 단 K100LT 등을 내놓아 명성을 얻었다. BMW의 모터사이클 사업은 지금도 활발하게 진행되어 미국 하레이 데이비슨에 견주는 유럽 명문으로 자리 잡았다. 크루저(Cruiser)가 소개된 1997년에는 사상 최고의 판매고를 올렸다.
항공기에 이어 모터사이클에서 명성을 높인 BMW는 1928년 자동차 산업으로 다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영국의 오스틴 세븐의 라이센스로 승용차를 만들던 딕시(Dixi)사를 사들여 BMW 3/15를 내놓았다. 3/15는 1932년까지 생산이 되었으며 네 번의 스타일 변경을 거치며 DA 4버전까지 이어졌다. 오스틴의 영향이 다소 남아있기는 하지만 BMW가 독자적인 모델을 개발한 것은 1932년 내놓은3/20으로 827cc 20마력 엔진을 얹은 모델이다. 1932년 1.5X 엔진을 얹은 315를 개발했고, 1933년에는 2.0X의 319를 내놓았다. 319는 BMW의 첫 경주차이기도 하다.
1933년 BMW는 베를린 모터쇼에서 처음으로 6기통 차량인 303을 선보였다. 303은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콩팥 모양의 키드니(Kidney) 스타일 그릴을 하고 있는데 이형상은 1931년 일(Ihle)형제가 처음 만들었고 이후 BMW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이어 1934년 시장에 나온 4기통의 309는 배기량이 845cc로 증가되었으며, 1934년에 배기량을 1천5백cc로 늘린315를 내놓으며 100km/h의 벽을 무너뜨렸으며 다음해에 2천cc엔진을 얹어 115km/h의 최고속도를 내는 319를 내놓으면서 레이싱에 뛰어들었다. 3 시리즈 탄생으로 bmw는 그 어떤 자동차에도 뒤지지 않는 세계적인 차로 인정받게 되었다. 3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모델 303은 BMW 최초의 직열 6기통 차였다. 303과 뒤따른 309 시리즈를 통해 BMW는 그 유명한 BMW만의 독특한 라디에이터 그릴을 갖게 되었으며,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BMW의 상징이 되고 있다.
1933년 이후, 독재자 히틀러가 추진한 경제 부흥 정책으로 독일의 자동차 산업은 더욱더 발전했다. BMW는 이때부터 대형 고급 승용차를 만들었는데, 1936년에 베를린 모터쇼를 통해 공개된 326은 BMW 최초의 대형 승용차이며, 오늘날에도 그 클래식한 멋으로 이름이 높다. 326은4도어의 새로운 326은 BMW의 전통적인 클라이언트들에게 어필하는 데 충분하였다. 그 전까지 BMW는 5보디 스타일에 2도어였다. BMW의 스포츠 이미지는 326의모습을 가진6기통 1천971cc 80마력 엔진의 로드스터 328이 발표되면서 굳어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각종 레이스에 참가하여 우승을 독식하며 명성을 높였으며, 328이 BMW의 최고의 명차로 여겨지게 되었다.
도약기로 접어든 BMW는 2차대전의 독일 패전과 함께 역사에서 사라져 버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자동차생산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모터사이클은 아이제나크 공장에서만 생산하게 되었다. 종전후에는 해체위기까지 맞았다. 이 때도 모터사이클로 위기를 극복했다. 그리고 온갖 노력 끝에 BMW 는 1950년 BMW 331 을 내 놓았다. 이것은 이탈리아의 소형차 피아트 토포리노와 매우 비슷하게 생긴 2인승 쿠페로, 오토바이용 엔진을 얹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차는 BMW 의 전통에 어울리지 않아 금세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1951년, 전후 첫모델로 6기통 엔진을 얹은 501을 발표했다. 이 차는 세계 제일의 6기통 엔진을 달았으며, 전쟁 전 클래식 모델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닮았다. 최고 속도는 무려 시속 135km 나 되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나온 벤츠 300과 쌍벽을 이룰 만한 대형차로, 패전으로 고통 받던 서독 국민에게 자동차 왕국이라는 자존심을 세워 주었다. 마침 평화무드가 정착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대형차 붐이 일기 시작하였다. 이에 맞춰 1956년 V8 엔진의 대형 로드스터 502, 503, 507을 차례로 선보였다. 고전적인 보디를 지닌 BMW 승용차들은 멋진 디자인으로 평가되기도 했지만, 시대감각에 뒤진다는 평도 있어 고객을 확보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시장에서507 로드스터는 인기가 높아 50년대 최고의 스포츠카중의 하나가 되었다.
한편 당시 패전국이 되어 버린 독일의 대다수 국민들은 고급차를 굴릴 만한 형편이 되지 못했다. 황폐해진 독일에서 필요한 차는 우수한 성능이나 깔끔한 디자인이 아니라, 값싸고 실용적이며 오래 쓸 수 있는 차였던 것이다. 이런 필요성에 따라 태어난 차가 바로 오토바이 엔진(단기통 245cc 12마력)을 얹은 이태리 라이센스모델인 '이제타'인데, '거품차'라는 애칭으로 불린 이제타는 300, 600, 700cc로 배기량을 늘이면서 계속 생산되었고, 독일의 국민차 역할을 하면서 전유럽에 퍼져 나갔다. 이제타의 성공에도 BMW의 경영난은 계속되고 이탈이아의 토포리노에 밀리면서 벤츠와의 합병설까지 나돌았다. 다행히 59년 헤르베르트 쿠완트가 대주주로 나서고 노동자와 소액투자가, 딜러들이 힘을 합친 덕분에 BMW는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다.
그 후 300, 600, 700 같은 소형차들이 이제타의 뒤를 이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700은 6년 동안 18만 대가 팔려 BMW의 으뜸 가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특히 700 시리즈는 전쟁 후 어려움에 처해 있던 BMW를 오늘날 최고의 자동차 회사로 만든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형차의 고객을 확보하지 못한BMW는 경영난에 빠지게 되었다. 스포츠 세단으로 이름을 날리던 BMW 는 심한 경영난으로 아우토반에서 경쟁을하던 벤츠에 합병될 뻔한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1959년 헤르베르트 콴트(Herbert Quandt)에 의해 BMW는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다시 한번 아우토반의 명성을 얻기 위해 1962년 1500을 내놓았다. 이때부터 BMW 는 본격적인 자동차 메이커로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이어 1966년 생산기지를 본사가 있는 뮌헨 근교의 딩골핑의 한스 그라스 공장을 인수하면서 확대 하였고 1500에서 성능을 높인 1600을 선보였다. 그리고 1600을 변형한 1600-2로 시작되는 02 시리즈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곧 이어 나온 1600TI, 1802, 카브리올레 버전인 2002모델도 크게 성공하면서 BMW는 완벽하고 고성능인 승용차의 메이커로 이미지를 굳혔다.
뮌헨올림픽이 열리던 1972년 BMW 는 세계 시장을 노린 본격적인 패밀리카 5시리즈를 발표하면서 세계시장 진출에도 적극 나섰다. 이때부터를 BMW의 2세대라고 말한다. 이 5시리즈는 BMW승용차의 중추적 구실을 하고 있다. 대중적인 패밀리카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 라이벌인 벤츠와 시장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이때 BMW 의 전략은 보다 낮은 가격으로 높은 품질과 고성능을 소비자에게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BMW는 모터 스포츠 분야에서도 대단한 명성을 가지고 있다. 창업 이후 각종 모터 스포츠에 뛰어들어 여기서 얻은 기술을 바탕으로 견고하고 정교한 자동차의 특성을 한껏 발휘할 수 있었다. BMW의 라인업은 스포티 세단3시리즈와 어퍼미들 설룬 5시리즈, 그리고 대형 프레스티지카 7시리즈,고급 스포츠 쿠페인 8시리즈로 자리를 잡았다.
3시리즈는 BMW라인업 중 가장 기본이되는 모델이며 1975년 데뷔해 두차례의 석유파동을 넘기는데 튼 역할을 했고 벤츠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부랴부랴 소형자 190시리즈를 내놓을 정도로 위협적인 모델이었다. 특히 뛰어난 고속 주행 안정성과 경제성을 지닌 3시리즈는 고성능 콤팩트 설룬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기함인 7시리즈는 1977년 데뷔해 벤츠 S클래스와 접전을 벌이고 있다. 7시리즈의 쿠페형 6시리즈는 1988년 선보인 8시리즈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단종되었다. M시리즈는 스포츠 버전으로 M3, M5 등이 나온다.
1998년에는 BMW는 영국 비커스그룹과 롤즈로이스사 매입에 합의해 대규모 자동차그룹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1999년 들어 BMW는 SUS붐에 맞춰 X5를 내놓았고, 2000년에는 새 스포츠카 Z8도 더했다. BMW는 다음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메이커의 하나가 될 것이다.
[사업내용]
BMW는 현재 세계 120여개국에서 16개의 생산공장과 1천여개의 딜러를 운영하고 있다. 92년에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르탄버그에 현지 공장을 설립해 3시리즈와 Z3를 생산하고 있다. Z3는 95년 미국을 비롯한 100여개국에 팔리기 시작했고 1997년 10월 29일에는 10만번째 모델을 생산했다. 1994년 베른트 피세츠리더 회장이 취임한 이후 해외시장 개척에 더욱 힘을 쏟고 있는 BMW는 같은해 영국의 로버를 인수하면서 생산규모가 100만대를 넘어섰고 그동안 BMW에 없었던 SUV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인수 6년째 되던 2000년 로버와 랜드로버를 다시 벤처 캐피탈회사와 포드에 각각 넘김으로써 BMW와 미니, 롤즈로이스 브랜드만 남게 되었다.
① 국내에서의 생산에 주력하고 해외생산은 호주에서의 엔진 생산과 남아프리카에서의 승용차엔진 조립생산밖에 없다. ② 주력 차종는 3 시리즈, 5 시리즈, 7 시리즈이며, 3 시리즈는 년 판매 30만대 수준을 상회하고 있다. ③ 독일내 시장 점유률은 5~6%정도로만 유지하고, 생산대수 증가분은 수출에 주력하고 있으며, 해외 판매는 모두 100% 출자한 자회사가 운영하는 기업 Identity 전략을 유지 하고 있다. ④ 수출 비율이 60%를 넘는 수출 주력 메이커이다. ⑤ "고 품질과 기술의 탁월성"을 모토로 스포츠성을 가미한 제품차별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모델 라이프사이클이 약 9년 정도로 긴 이유는 제품 컨셉을 완전히 만족시키는 고품질과 고성능의 실현에 두기 때문이다.
[BMW의 기술개발]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현대적인 BMW 디자인의 역사는 93년부터 수석 디자이너로 일해온 크리스 뱅글의 말처럼 ‘혁명적이기보다는 진화론적인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 BMW가 여러차례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은 합리적인 경영과 높은 기술이 뒷받침된 결과다. 이를 위한 끊임없는 연구개발 노력이 뒤따랐다. 뮌헨에 10여군데 흩어져 있던 개발, 연구실을 모아 87년에 문연 피츠(FIZ)연구소에는 과학자, 엔지니어, 디자이너 등 6천여 명이 디자인과 새차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본사보다 너비가 8배나 큰 이곳은 초현대식 기술장비와 정보 시스팀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BMW의 새로운 소재와 재료, 기술, 디자인 등이 나온다. 보통 6~7년 걸리는 모델 개발기간을 33개월 정도로 줄인 것도 피츠의 아이디어를 집약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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