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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삼 나눔터 스크랩 아시아 최초 청각장애 사제 박민서 신부
재근 Gabriel 추천 0 조회 43 07.07.17 07: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아시아 최초 청각장애 사제 박민서 신부

7월 8일 서울 번동성당에서 첫 미사를 집전한 박민서 신부가 미사 후 열린 축하식에서 수화로‘사랑합니다’라며 신자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있다.
“마음으로, 사랑으로 만나겠습니다”

“예!!”

박민서 부제가 큰 소리로 답하며 제대 앞으로 걸어 나와 무릎을 꿇었다.

‘여기 있습니다’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예, 여기 있습니다’를 수천 번 수만 번 되뇌이고 연습했지만 소리낼 수 없었다.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청각장애인. 하지만 이 자리에 섰다.

7월 6일, 서울대교구 사제서품식이 열린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박민서 부제는 동료 부제 38명과 함께 제대 앞에 엎드려 주님의 은총과 성인들의 전구를 청했다.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과 주교단, 사제단에게 안수를 받고 제의를 입었다. 하느님께 제사를 봉헌할 손을 축성 받았다.

박민서 신부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 교회 첫 청각장애인 사제다. 세계교회를 통틀어서도 열 다섯 번째.

머나먼 길이었다. 두 살 때 약물 부작용으로 소리를 잃었다.

“너는 말도 못하고 희망도 없어.”

박신부를 따라다니던 편견이었다. 고등학교 문을 두드렸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했다. 포기하지 않았다. 새 삶이 찾아왔다. 운보 김기창 화백처럼 훌륭한 화가가 되고자 들어간 미술학원에서 신앙을 만났다. 1985년 베네딕토라는 세례명으로 다시 태어났다. 평생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었다. 대학을 마치고 회사에 들어갔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을 이기지 못했다.

1994년. 스승이자 은인인 정순오 신부(현 한국가톨릭농아선교협의회 지도)가 미국 유학을 권했다. 유학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청각장애인 신학과정이 입학 1년 만에 폐지되면서 성 요셉신학교에서 쫓겨나듯 나와야 했다.

미국교회 첫 청각장애인 신부인 토마스 콜린 신부가 성 요한대학원에서 신학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2004년 마침내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할 수 있었다.

1999년부터 박신부의 유학생활을 배려한 서울대교구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입학을 허락했다. 박신부는 지난 해 7월 부제품에 이어 이번에 사제품을 받은 것을 “교구장이신 정진석 추기경님과 성소국장 신부님의 사랑과 관심, 교수 신부님들과 동기 신학생들, 많은 기도를 보내준 청각장애 신자 덕분”이라고 전한다.

사제서품식 전 자신을 향한 매스컴의 관심이 부담스러웠을까. 박민서 신부는 지난 7월 8일 서울 번동성당에서 봉헌된 첫 미사에서 “사제가 되기 전 마음처럼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드는 겸손한 사제가 되도록 여러분의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께서 장애인들을 사랑하고 계시는구나’하고 느끼면 좋겠다고 했다.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시편 37, 5).

박신부가 택한 수품 성경구절이다. 하느님께서 몸소 전해 주실 사랑을 박민서 신부의 손끝에서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가톨릭 신문 047년 7월 15일자  1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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