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타이자, 박찬호와 박세리 이전에 우리나라가 조또 어디 쳐박혀 있는지 세계가 관심도 없던 시절 세계최정상 스포츠 무대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은 최초의 한국인...
바로 차범근이다.
그는 79년부터 89년까지 당시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였던 독일 분레스리가에서 308게임의 외국인 최다 출전기록과 98골의 외국인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고, 그 기록들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지금은 세계최고 스타들이 모두 세리에 A 무대에서 뛰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최고의 리그는 분데스리가였다.
그의 독일 무대 첫골은 세번째 경기만에 나왔고 그 골은 독일 키커지가 선정하는 골든볼로 선정되어 그 주간내내 독일 TV를 장식했다. 데뷔 첫 해에 세계 최고의 선수들 틈에서 바로 득점 7위에 올라 스타덤에 오르기 시작, 분데스리가 MVP에 선정되기도 했고 88년에는 UEFA컵 결승 2차전서 극적인 3번째 골을 성공시켜 팀에 첫우승의 영광을 안겼다.
이를 기념, 명문 '레버쿠젠' 클럽은 당시 차범근의 사진을 영구보존하고 있다. 그는 소속팀을 두번이나 UEFA 정상에 올려놓았으며 그를 계기로 그는 독일뿐 아니라 전 유럽에 유명한 선수가 되었다...
느낌이 잘 안오신다..?
박찬호가 데뷔 첫해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뛰어 데뷔하자마자 메이저리그를 통털어 투수부문 7위의 성적을 거두고, 그 다음 해 동양인 최초의 사이영상을 수상하고, 얼마 후 동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MVP를 먹고, 다저스를 월드시리즈 결승에 두번이나 진출시키고 그때마다 마지막 7차전에서 완벽한 투구로 승리투수가 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
그리고는 그가 마운드에 등장하면 관중들이 전부 찬호를 연호하며 박수를 치고,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유니폼이 영구전시되고 도대체 박찬호를 모르는 미국시민이란 없는 그런 상황...
차범근이 한게 바로 그런 것이었다.
레베쿠젠 클럽에서 발간한 책에 그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그는 뛰어난 운동선수다. 그리고 그는 팀의 어느 곳에나 세울 수 있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유일한 선수다..." 독일감독이 한 이야기다.
당시 분데스리가에는 차범근말고 또 한명의 동양인이 차범근보다 1년 앞서 진출해 있었는데, 일본의 오쿠데라였다.
당연히 이들은 라이벌이었다. 박찬호와 노모처럼... 차범근은 오쿠데라가 소속된 쾰론과의 경기에서는 언제나 펄펄 날았다. 반면 오쿠데라는 차범근이 독일에 진출한 이후 비실비실 힘을 잃고 주전자리를 잃었다.
독일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축구선수 마테우스... 그는 차범근 전담맨이었다. 허구헌날 차범근을 놓쳐 눈물을 삼키고 좌절하다 절치부심 노력해 오늘의 그 자리에 오른 선수다.
독일로 떠나기전에는 어떠했는가... 70년대 국민학생들 사이에 유행했던 노래 중에 이런게 있었다. '떴다 떴다 비행기' 장단에 맞춘 '떴다 떴다 차범근...'
국제대회가 끝나고 나면 어른들 사이에는 '차범근을 인간 문화재로!' 하는 구호가 유행했다.
그가 남긴 전설적인 게임기록... 77년 대통령배 국제축구에서 말레이시아와의 개막전 대결.. 당시는 우리는 경기 종료 7분전까지 4:1로 지고 있었다. 그런데 차범근이 날기 시작, 마지막 5분동안 혼자서 세골을 넣어 4:4로 만드는 우리 축구사에 길이 남을 기적을 연출하였다. 당시 차범근은 범아시아적인 스타로 동남아에 가면 지금도 중년의 택시기사들이 차범근 잘있냐고 물어올 정도란다.
그가 한국에서 독일로 떠나기 전 동대문운동장에서는 <차범근 서독진출 환송경기>가 열렸다. 차범근을 한번이라도 더 보러 3만 관중이 운집했다. 지금은 프로축구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올스타전이 열려도 이만큼 안 모인다...
...........
분데스리그가 유럽에서2부 수준이라 하신분..
솔직히 지금은 분데스리가가 프리미엄,프리메가,세리에A 보단
조금은 밀리죠 그건 독일 통일 이후 나타난현상이죠.
경제력이 구 동독으로 많이 솔리면서..우수한 선수와
스타들이 다른리그로 빠진거죠
차범근이 활약하든 당시에는 분데리스그가 최고 수준이었죠..
그럼..차범근을 우습게 보지 맙시다..
제제님의 글을 거의 차용한듯한 'brox'님의 반박글.
당시 최고리그라고 했어도 차범근의 활약은 그냥 그랬습니다.
외국인 최다출전과 최다골은 이미 몇년전에 깨졌습니다.
그리고 당시나 지금이나 리그관중 동원 최하위인 레버쿠젠이 명문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차범근의 활약이 무슨 사이영상 어쩌고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봅니다.
차범근이 득점왕이라도 했습니까? 어시스트왕을 했습니까? 챔피언스리그 우승? 리그우승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외국용병이 10년간 뛰면 그팀에서야 당연히 책자에서 등장하고 그렇게 되죠..두산의 우즈나 빅스의 맥도웰이 한 10년 뛴다고 치면 구단 책자나 그팀의 팬들은 당연히 기억하게 될겁니다.
그리고 길게 풀어쓸거 없이 기록이 말해줍니다.
아인트라트 프랑크푸르트시절은 스트라이커였고 바이에르 레버쿠젠시절은 공격형 미드필더 였습니다. 근데 스트라이커 시절에도 12골,8골,11골 이렇게 넣을때 리그득점왕은 26골,29골,27골 이랬습니다. 1골차이로 순위가 쭉 늘어선걸 생각하면 차이가 엄청난겁니다.
85-86시즌엔 좀 했지만 리그 우승은 커녕 근처도 못갔습니다. 진짜로 대단했다면 당시 바이에른뮌헨이나 도르트문트 같은 팀에서 데리고 가지 않았을까요???
또 챔피언스리그는 92년이전에는 리그 우승팀만 참가했기 때문에 차범근은 참가자체가 불가능햇고 현재도 챔피언스리그 본선1라운드에서 탈락하면 우에파컵에 나가니 별로 알아주지도 않는컵입니다. 월드시리즈 우승에 비교할려면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해야한다고 신문에도 났었습니다.
그리고 86멕시코 월드컵에서도 별 활약도 못하고 골도 못넣었구요
무시한다는건 아니지만 세계 최고의 선수였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ACE란 아디로 제제님자료 차용해서 반박한글.(걍 문맥이음정도만 했습니다.^^)
축구가 야구에 비교해서 기록상의 다양성을 가지지 못하므로, 기록으로서 그 선수의 모든것을 보여줄수는 없다고는 하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차범근은 스트라이커와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골에 대한 기록이 차범근의 이 위치에 대한 평가가 될수 있을거라 생각해서 위의 자료를 제시해봤습니다.
차범근의 활약을 박찬호의 사이영상수상과 MVP수상과 비교하는것은 어불성설인것 같군요. 또 차범근의 가장큰 업적은 UEFA컵 2회우승인데, 그당시 UEFA컵을 지금의 디비전시리즈나 하물며 월드시리즈와 비교한다는것은 잘모르시고 하는 얘기 같습니다. 물론 그가 한국, 아니 동양선수중에서 유럽에서 활약한 최고의 선수인것만은 분명하지만요.
P.S : 욕을 섞어가면서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 까페가 워낙 점잖은 까페라 좀 조심했슴다. ^^ 그리구 전에는 이런 개축구쟁이들의 글을 '그냥 그런갑다'라고 생각했던 무지하던 저를 일깨워주신 제제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