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계 자료국명: 터키 지리 및 기후터키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교두보적인 위치에 있다. 불가리아에 있는 에드리네 국경 지대에서 아르메니아 국경지역인 Kars 까지 자동차로 약 1700km(1050mi)거리이고 북쪽 흑해에서 남쪽의 지중해까지는 1000km(620mi)이다. 터키는 북서쪽에서 시계 방향으로 그리스 불가리아 조지아 아르메니아 이란 시리아 등과 국경으로 맞대고 있다. 터키에 사막 야자수 이런것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산과 계단처럼 깍아진 언덕과 굽이치는 강물과 풍부한 농산물이 있는 계곡 암벽등이 있으며 8400km에 달하는 해안선이 터키를 또다른 관광명소로 인식하게끔 만든다.
흑해와 지중해 안탈리아(Antalya)의 서쪽에 있는 해안선을 따라 아나톨리아(Anatolia) 동쪽에는 눈길을 끄는 고원지대가 펼쳐진다. 봄이 되면 여러 가지 색상의 아름다운 야생화들이넓은 목초지들을 뒤덮는다. 터키의 생태계는 발칸지역이나 유럽과 비슷하여서 곰, 사슴, 스라소니 야생돼지들, 늑대 표범등을 볼 수 있다. 아름다운 반 고양이는 토착 동물로서 아름다운 순백색의 털과 한쪽은 파란색 다른 한쪽은 초록색인 눈을 가지고 있다. 이외에도 소떼나 말 망아지 양 산양등을 볼 수도 있다. 터키의 양치기들은 늑대로부터 양을 지키는 캉갈이라는 맹렬하고 힘있는 양치기 개를 자랑으로 여긴다. 조류생태계는 매우 보존이 잘 되어 있어서 독수리떼의 소리도 들을 수 있으며 수리새나 하늘에 영역표시를 하며 돌아 다니는 황새 뿐만이 아니라 흙따오기등과 같은 희귀종의 조류도 모습을 볼 수 있다.
에게해 지역과 지중해 연안의 날씨는 겨울철에는 따뜻하며 비가 약간 내리며 여름은 매우 덥고 건조하다. 이스탄불은 여름 평균기온이 섭씨 28도에서 30도 가량이며 (화씨 82도에서 85도) 겨울은 쌀쌀한 편이며 비가 내린 것이 얼기도 하며 눈이 흩날리기도 한다. 아나톨리아 고원은 여름에는 선선하며 겨울에는 기온이 많이 떨어진다. 흑해 연안은 여름에는 비가 약간 내리지만 날씨가 온화한 편이며 겨울에는 비가 내리고 약간 추운편이다. 터키 동쪽에 있는 산악 지역은 겨울철에 기온이 많이 떨어지며 눈이 오기도 하며 한여름철에만 날씨가 따뜻한 편이다. 남쪽은 겨울철에 건조하며 온난한 편이지만 여름철에는 대체로 기온이 45도(화씨 113도)에 육박할 정도로 뜨거운 날씨가 계속된다. 역사터키는 지중해 지역에서 가장 먼저 사람들이 정착 생활을 시작한 지역으로 알려져 왔으며 그 시기는 대략 기원전 7500년경으로 추정되며 이곳에서는 여러 왕조가 서로 권력을 잡기 위해 많은 암투가 일어났다. 이곳에 맨처음 문명을 세운 민족은 태양의 여신과 폭풍의 신을 숭배하는 히타히트족이었다.
히타히트족은 청동기중기시대부터 (기원전 1900년부터 1600년까지) 람세스 2세 밑에서 이집트가 지배 받는 시기까지도 계속 아나톨리아 지역을 지배 하였으며 시리아 지역까지도 통치하였으나 에게해의 그리스인들이 기원전1250년경 트로이를 침공하자 히타히트왕조는 와해되기 시작했다.
그리스의 섬들로부터 온 '바다 사람들'의 거대한 침공과 그리스의 여러 도시 국가들의 압력으로 히타히트는 더 이상 지탱이 어려워졌고 자꾸 소왕국으로 쇠퇴해 갔으며(이 시기에 프리지아, 유라티언, 리디아등의 민족들이 왕국을 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흥망성쇠는 동쪽부터 아나톨리아 지역까지를 모두 통일한 페르시아 제국의 건설자인 키로스2세 (기원전 550년부터 530)가 지배할 때 까지 계속 되었다.
그러나 페르시아는 기원전 330년경에 그리스부터 인도에 이르기까지 중동 지역 전체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때 멸망한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후에 장군들간의 권력 분쟁이 일어나고 시민전쟁은 갈라디아인들이 기원전 279년에 앙카라에 그들 제국의 수도를 세우기전까지 계속되어지고 셀루시드 폰틱 페르가멈 과 아르메니아 왕국들의 흥망성쇠가 계속되어진다.
로마의 통치는 3세기동안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가져다 주었으며 기독교 전파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는 시기가 되었다. 세인트폴은 전세계를 거쳐 아나톨리아 지방까지 선교 여행을 계속 하였으며 세인트 존은 에베소에서 4번째 복음서가 쓰여졌다고 생각하게 되며 근처에 성모마리아의 오두막이 있다고 생각했다. 로마제국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24년 재통일을 하기 전까지인 기원후 250년 경에 약해졌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불리우는 대도시의 새로운 수도의 건물들을 내려다보곤했다. 유스티니아누스(527-65)황제는 비잔틴제국이라도 불리우는 동로마제국을 건설했으며 이탈리아를 재정복했으며 발칸반도와 아나톨리아 지방 그리고 북아프리카까지 영토를 넓혔지만 5년후에 메카에서 모하메드가 태어났고 이 사건은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건으로 기록되어져있다. 60년후에 모하메드는 신의 계시를 받았으며 그의 죽음 이후 50년뒤에 가장 치욕적인 전쟁이 메카에서 벌어지게 되어 이슬람의 군인들은 콘스탄티노플에서 메카 그리고 페르시아와 이집트에 이르는 모든곳의 사람과 모든 것들을 장악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의 장벽을 위헙하기 시작한다.
모하메드의 출현이후로 이슬람 왕조의 권력체계가 바뀌고 이시기부터 비잔틴 왕국의 시대가 시작되지만 11세기에 지금의 터키 이란 이라크를 대 셀주르 터키 제국이 지배하게 된다. 셀주르제국은 십자군의 침략과 몽골유목민의 침략으로 흔들리지만 오스만제국이 시작되기 전까지 셀주르의 강력함이나 야망은 계속되어진다.
오스만제국은 13세기후반 터키의 전사들과 몽골의 군사들이 단합하여 시작된 제국이다. 1453년 마호메트에게 정복되기 전까지 오스만 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킬만큼 강대한 힘을 가진 제국이었다. 위대한 술탄 술레이만이 (1520-66) 제국을 통치하던 시기는 그 강대함이 최고조에 이루는 시기여서 예루살렘에서 비엔나 근처까지 이르는 광대한 범위의 오스만제국을 다시 건설하여 콘스탄티노플의 영광을 되살려냈다. 그러나 술레이만 이후의 뛰어난 몇몇 술탄들이 제국을 통치했지만 오스만제국의 긴 통치기간도 1585년경에 쇠퇴의 길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19세기에 들어서 쇠퇴와 혼란의 시대는 민족주의를 부추겼다. 오스만제국의 사람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종종 유럽의 세력이 그러한 방향으로 그들을 돕거나 부추기곤했다. 1832년 처참한 전쟁이 치루어진 이후에 그리스 왕국을 이루었던 세르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알바니아 아르메니아와 아랍은 전쟁이후 독립을 찾게 된다. 제국의 붕괴이후 유럽의 권력또한 공중분해지경에 이르며 터키내부의 여러 가지 재난들은 부흥과 현대화를 받아들이고자 하지만 불행히도 1차세계대전중에 독일의 통치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여 터키는 다시 재통합된다. 1918년 연합군의 승리고 인해 터키는 다시 분할된다. 그러한 결정은 그리 좋지 못한것이었다. 오스만의 장군인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장군은 터키인을 위한 터키의 운명을 책임질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기 위하여 반군을 조직하기 시작한다. 그리스가 Smyna를 침략하여 동부에 압력을 넣기 시작하자 터키는 첫 번째로 그 영향을 받고 자극을 받아서 반격에 나선다. 이 독립전쟁은 1920년부터 1922년까지 2년간 계속되어지며 터키의 비참한 승리로 끝을 맺고 술탄통치를 폐지한다.
무스타파 케말은 터키사회를 재건하는 훌륭한 임무를 잘 마친다. 1938년 그가 죽은 이후 공화정체제가 수립되고 일부다처제가 폐지되며 오스만의 구시대적 상징인 페즈(술이 달린 붉은 모자)의 착용을 금지했다. 이슬람은 종교적인 우상물들을 다 없앴으며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으며 여자들은 투표권을 가지고 의회에도 참석할수 있었다. 아튀투르크는 터키의 진정한 영웅으로 기억되어 그의 동상은 어디를 가도 볼 수 있으며 그를 모욕하거나 욕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 되고 있다..
아튀투르크의 뒤를 이은 Ismet inonu 는 2차 세계 대전중에 중립 노선을 고수 했으며 터키의 진정한 민주체제로의 변화를 위해 노력한 인물이다. 1950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했으며 1960년과 1970년에도 승리했지만 이러한 승리는 군장교들의 경계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장교들은 민주당의 이러한 정치적 행보는 공화정을 위협하는 독재라고 간주하기에 이른다.
1980년 정치적인 내전은 시민군을 주둔하게 만들었다. 극우파와 극좌파 세력은 소련연방의 지원을 받거나 모슬람광신도들의 지지를 받아서 점점 그 양상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중앙정부에서는 두 정당 모두 정치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되는 최악의 상태가 계속되어 몇 달동안 의회에서는 대통령 선거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군대는 장성들의 신념에 따라 정렬되었지만 군대는 엄격히 통제되었으며 인권침해가 일어나기도 했다.
정부군 장성인 Kenan Evren 은 그의 자리를 사임하고 새로운 터키의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1983년 자유 총선거로 Turgut Ozal 의 중앙우당은 권력을 잡게 되며 1980년대를 경제붐을 일으키는 주역이 된다. 1993년 Ozal 의 때아닌 죽음으로 정권을 놓게 되며 터키의 정치는 개혁이 시작되고 10여년 동안 종교적인 권리의 소생을 위하여 지지받고 있는 동료의 관계같은 묘한 연합관계를 형성하는 불확실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1998년 초 터키의 사법부는 이슬람계 복지당의 활동을 금지시키고 Necmettin Erbakan 의 정치노선을 따르게 된다. 이슬람계 복지당은 터키의 비종교적인 민주 노선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당이었지만 터키가 민주화되는데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을 제기하도록 만드는 모순을 남겼다.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에 대한 열망은 경제적인 불안정과 쿠르드족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들과 인권침해에 대한 기록들이 유럽연합가입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터키의 동쪽과 남동쪽 지역에는 약 6백만명의 쿠르드인들이 여기저기 살고 있으며 약 4백만명의 쿠르드족들은 나라 전역에 퍼져 터키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쿠르드족 차별정책은 터키의 가장 골치거리가 되고 있다. 앙카라는 오스만 제국의 동화정책을 고수하지만 공식적으로 '쿠르드'라는 말은 없고 '투르크 산악지역 사람들'이라는 말뿐이며 쿠르드 언어나 쿠르드족의 생활에 대한 공공연한 표지판등도 법으로 금지시키고 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시리아와 이라크 이란에 그 기반을 두고 쿠르드족 게릴라들을 지원했으며 1980년대 터키의 남동부 지역을 기습하여 수천명의 시민과 군인 사상자를 냈다.
터키의 탄압과 이라크의 지원을 받는 쿠르드(1988년 이라크가 화학무기로 침공하며 1991년 걸프전때도 다시 침공한다.)족은 국가적으로 가장 골치 아픈 문제가 되었다. 앙카라는 쿠르드족의 문화와 언어를 융통성 있게 금지시켰지만 1999년 쿠르드족의 지도자인 압둘라 오클란이 체포된 이후로 바짝 긴장상태로 돌입하게 되었다. 오클란이 이끄는 쿠르드 노동자당은 터키의 경제나 관광에 문제를 주지 않도록 발표했다. 터키를 아직까지 안전하게 여행할수 있기는 하지만 언제 또 새로운 위험에 처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경제국민 총 생산량: US$126 오스만시대의 문학과 궁중 음악은 대부분 종교적이며 서양인들에게는 화려하면서도 애처로운듯한 느낌을 준다. 시각예술은 '영원한 영혼과 함께'라는 어떠한 존재에 대한 표현을 금지하는 이슬람의 격언으로 인해 많이 발달하지 못했서 이슬람의 예술가들은 비시각예술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터키의 박물관들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색상의 타일과 우아한 유리화병과 나무로 새긴 모스크의 문들과 화려하기 빛나는 코란과 보석과 아름다운 장식이 된 고가의 의상들로 가득 차 있다.
에튀투르크는 터키의 문화를 하루밤 사이에 변화시켜서 그림과 조각 문학 서양음악과 춤 드라마등을 만들 수 있도록 장려하였다. 라틴어에 바탕을 둔 터키언어의 도입은 많은 시민들이 문맹을 면하도록 만들어 주었으며 이러한 언어의 차용으로 오스만제국은 많은 문학작품을 만들어 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Nazim Hikmet , Yashar Kemal 그리고 Orhan Pamuk 와 같은 터키의 작가들의 작품은 터키내의 어떠한 분쟁과는 상관없이 많은 인기를 누리고 비평도 받는다. 최근에 대리석무늬의 종이나 인형극상연등과 같은 오스만제국의 예술들이 다시 복고풍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카페트 만들기는 아직까지 터키에서 가장 인기있는 일이다.
전통음악은 매우 힘이 있었다. 라디오를 통해 들을 수 있는 대부분의 투르크음악은 현대화된 도시의 전통음악이다. 1000년을 이어온 터키의 음유시인들은 TV와 카세트들로 인해 사라져갔지만 아름다운 음유시인의 노래들은 아직까지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종종 공연이나 음반을 통해서 접할 수 있다. 일찍이 시작된 터키의 영화사업은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후 1920년대 급속히 확산되었고 1960년대와 70년대에는 사회적 정치적인 쟁점들을 파고 들기 시작했다. 터키의 영화들은 사실적이며 자연주의적이고 풍자가 특징이다. 감독들로는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Yilmaz Guney, Tunc, Basaran, Zulfu , Omer Kavur.등을 꼽을 수 있다.
터키어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우하하며 어순이나 동사체계가 인도 유럽어족과는 매우 다르므로 배우기에 다소간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동사가 문장전체 속에 그 자체내에 들어있는 경우가 있어서 매우 복잡하며 대체로 이런Afyonkarahisarlilastiramadiklarimizdanmisiniz? 문장들 같은 경우도 동사가 어디있는지 찾기 어렵다.(Afyonkarahisar에서 대책없이 누군가를 찾는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냥 화장실이 어디있냐고 묻는 것이 훨씬 편할 것이다.
터키는 99%가 수니파와 사이파의 이슬람 세력이 압도적이며 동쪽과 남쪽에도 이슬람세력이 있다. 많은 터키의 관습과 관례는 이슬람 관습에서 파생된 것이 많다. 이슬람 사원을 방문할 경우에는 점잖은 옷차림을 해야 하며 신발을 벗어야 하는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 여자들은 머리와 팔 어깨 등을 가려야 하며 무릎까지 오는 단정한 정장이나 치마를 입어야 한다.
이슬람 사원을 방문할 경우 기도 시간이나 이슬람의 안식일인 금요일은 되도록 피하도록 하자. 터키관습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정중함 그 자체이다 심지어 터키 사람들조차 문밖에서5분 동안이나 인사하는 건 참을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예의를 중요시하며 이러한 예의 바름은 초대한 집주인을 기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떠한 사람에게도 손가락으로 바로 누군가를 가르킨다거나 누군가에게 신발 한쪽을 보여주거나 공공 장소에서 코를 풀거나 키스를 하거나 누군가를 끌어안는 일은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므로 주의하도록 하자.
많은 여성들이 터키에서 추행을 당했다는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을 하거나 여행도중 혼란스러워하는 어리석은 짓을 할 필요는 없으며 몇 가지 점만 주의하면 된다. 특히 동쪽으로 여행을 할 경우에는 될 수 있으면 노출을 삼가 가슴과 다리 팔 등을 가리도록 하자. 결혼반지를 꼈을 경우에는 훨씬 더 편하게 여행할 수 있으며 길을 걷다가도 의도적으로 반지를 보이도록 하며 휘파람 소리는 무시하며 해가 진 뒤에는 혼자 거리를 걷게 되면 꼭 주위의 시선을 끌게 된다. 혼자 식사를 해야 하는 경우에는 aile salonu (가족 식당)이라는 곳에 부탁해보자. 혼자 술을 마시러 나가는 것은 그야 말로 어리석은 행동이다.터키는 식욕을 마구 댕기는 맛있는 음식들이 많이 있다. 시시커밥(양고기 꼬챙이요리) 은 터키에서 발명된 요리이며 어디에서도 커밥스타일의 음식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양과 생선요리는(가격이 비싼편이다) 레스토랑에서 중요요리이다.
여행경비를줄이고자 한다면 가장 싸고 맛좋은 식사로는 터키식 피자가 있다. 가지는 가장 흔한 채소이며 imam bayildi (성스러운 듯한)이라는 의미를 지닌 가지 요리는 맛있는 한끼 식사가 될 수 있다. 후식은 매우 단편이어서(종종 꿀이 듬뿍 뿌려져서) 과일이나 견과류 페스트리등과 함께 나온다.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요리가 많이 준비되어 있지 않지만 굶어죽을 일은 없으며 meze를 이용하여 한끼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터키고유의 차로는 케이가 있다. 맥주는 어디에서도 마실수 있으며 터키식 포도주는 매우 싸고 맛도 아주 좋다. 아니스 향이 들어간 포도주 회사에서 만드는 라키라는 포도주는 알콜중독을 불러 일으킬 것처럼 맛이 아주 좋다. 많은 이슬람의 종교적인 행사는 음력에 따라 정해졌으며 그 날짜는 이슬람 단체에서 몇 년동안 정해오고 있다. 단 두 개의 종교적 휴일이 국경일로 정해졌는데 Seker Bayrami,는 라마잔 축제 (12월에서 1월까지 30일동안 낮시간동안 묵언을 하는 종교적인 행사)마지막 3일동안 벌어지는 축제이며 Kurban Bayrami(3월에서 4월)은 아브라함의 희생될뻔한 아들 이삭을 모히아산에서 기념하는 날이다. 이 축제는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대신 살아있는 양을 신에게 바치는 의식으로서 터키의 모든 주부들은 양을 사서 집으로 가져와 Bayram 날 아침 일찍 기도를 한후에 바로 목을 따서 토막을 낸다. 그러면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축제를 위해서 요리를 한다. Kurban Bayami 때에는 계획을잘 세워야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은행들이 일주일내내 문을 닫으며 공공교통수단은 만원이며 호텔방들은 어마어마할 정도로 가격이 오른다.
비종교적인 축제로서는 7월 중순에 이즈미르 남쪽에 있는 Selcuk 이라는 마을에서 열리는 낙타 레슬링 대회가 있으며 4월 23일은 독립기념일이며 매우 큰 국경일로서 1920년 처음으로 공화정을 수립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여름철에는 여러 가지 행사가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으며 6월초에는 아드리안 근처에 있는 Sarayici에서 기름을 묻히고 하는 레슬링 축제가 있으며 터키북동쪽에 있는 Artvin 근처에서는 Kafkasor 축제가 6월 3주간 열리며 이스탄불 국제 예술 축제(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열린다) 기간동안 부르사의 민간전통예술과 7월 중순에는 음악축제가 열리며 9월 중순이나 말에는 Diyarbakir의 수박축제가 열린다. 11월 10일에는 모든 나라가 오전 9시 5분에 묵념을 잠시동안 하는데 이 시간은 1938년 에튀투르크가 죽은 날과 시간이다. 비자: 호주 캐나다 일본 뉴질랜드등 대부분의 나라의 국민들은 3개월 이내에 여행을 목적으로 터키에 체류할 경우 비자가 필요 없지만 영국이나 미국국민들은 터키 영사관에서 미리 비자를 받던가 터키입국시 비자를 받아야 한다. 보건위생: 소아마비, 파상풍, 디프테리아, 장티푸스 AB형 간염 결핵 등에 유의해야하며 예방접종을 하고 가야한다. 터키의 습한 지역(마르마라나 흑해연안)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말라리아를 예방할 수 있는 장비를 준비해서 가야한다. 통화:터키 리라 저렴한 숙소비용:US$8-18
터키는 물가가 싼 편이다. 팬션에서 잠을 자고 매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도 하루에 US$15 정도로 모든 교통편까지 해결하며 여행이 가능하다. US$20에서 US$45 예산으로는 호화스러운 버스나 특실 기차칸등을 이용하며 여행할 수 있고 별 1-2개 짜리 호텔에서도 묵을 수 있으며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서 지낼 수 있다. US$45에서 US$75로 하루 예산을 잡는다면 별 3-4개 짜리 호텔에 묵을 수 있으며 종종 비행기로 이동이 가능하며 레스토랑에서 늘 만찬을 즐기며 다닐 수도 있다.
터키리라 가치는 변동이 심하므로 며칠 단위로 환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환전을 할 때는 0이 몇 개인지 잘 살펴야 한다. 500,000 리라와 50,000리라를 헷갈리는 실수를 종종 범하기 때문이다. 은행과 환전소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문을 열고 주말에는 여행자 수표를 바꿔주는 곳을 찾기 힘들다. 현금 지급기는 터키 전 도시와 마을 리조트 등에 설치 되어 있으며 대부분 Cirrus 나 Plus 같은 회사들의 전세계 전산망과 연결되어 있으며 신용카드회사와도 연결되어 있다.(비자카드는 어디서도 사용이 가능하다.) 마지막 숙소에서 환전을 하기 위해서는 환전 영수증을 잘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
저렴한 가격의 식사를 팔고 있는 레스토랑에서는 접시 위에 동전 몇 개의 팁을 놓고 갈 필요가 없다.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팁을 주는 것이 관습화 되어있다. 심지어 음식값에 따라 10-15%의 서비스 팁을 주어야 하며 약 5% 정도는 웨이터에게 직접적으로 팁을 주어야 하며 지배인에게도 같은 값의 팁을 주어야 한다. 짐꾼들이나 택시 기사들은 달러를 팁으로 받길 원하며 고고학 발굴 현장이나 주의를 요하는 일을 도와주는 사람들도 달러를 팁으로 받길 원하므로 달러 지폐를 몇 장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처음엔 정중히 팁을 사양하지만 두 세 번 정도 더 권하면 두 세 번 정도 더 권하는 것이 예의이다. 세 번 이상에도 거절할 경우에는 정말 팁을 원하지 않는 걸로 받아들여도 좋다. 터키에서 물건값을 흥정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경우이지만 기념품가게 에서는 흥정을 삼가야 한다. 11월에서 4월 사이에 여행을 할 경우에는 호텔 가격도 흥정이 가능하며 오래 머물 경우도흥정이 가능하다. 터키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봄(4월에서 6월)과 가을(9월에서 11월)이다. 이때는 이스탄불과 에게해 와 지중해 해변까지도 최고의 기상상태를 보여준다. 여름철 해안 리조트들은 불볕 더위로 이곳의 사람들이 시에스타 낮잠을 자듯이 아마도 한낮에는 휴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10월말에서 4월초까지는 해변의 여러 곳들이 문을 닫는다. 흑해를 제외하고 5월에서 10월 사이에는 비가 약간 내리지만 6월 중순에는 전염병을 옮기는 모기들이 활동을 하기도 한다. 터키 동부는 산 위에 눈이 내리고 날씨가 추워지면 산으로 가는 진입로를 폐쇄하므로 실제로는 6월말에서 9월 사이에 여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
주의사항 1999년 2월 쿠르드족 반군 지도자인 압둘라 오클란이 체포된 이후로 그가 속한 조직인 PKK 단에서는 그의 석방을 위해 터키정부에 저항운동을 펼치고 있다. PKK 또는 쿠르드 노동당 인들은 터키의 남동쪽을 터키정부에서 독립하여 자치주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역죄로 체포당한 오클란을 전세계적으로 무죄임을 입증해달라며 터키 전역에서 PKK 당 요원들이 수많은 무력충돌을 벌이고 있다. 1999년 3월 PKK당은 터키정부에서 많은 부분 신경 쓰고 있는 관광사업을 타겟으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쿠르드족은 인종에 따라 일곱 개의 국경으로 나뉘어져야 한다며 주장하고 있다. 1차 세계 대전이후 터키정부는 독립을 약속하였지만 분할 점령되면서 그 약속도 깨지고 말았다. 터키의 120만 명의 쿠르드족은 아직까지도 쿠르드족의 언어를 교육이나 방송에서 금지하는 등의 문화적 박해를 하는 앙카라에 대한 정책에 대해 유럽이 압력을 넣어주길 바라고 있다. 터키를 여행하는 것이 위험한 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우선 정부에서 추천하는 지역을 확인해보고 여행계획을 짜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주요 여행지수세기동안 문명사회의 중심지였던 이스탄불은 아직도 터키의 중심부로 남아있다. 이스탄불은 오래된 도시이긴 하지만 120만 명의 거주자들과 함께 아직도 거대도시로서의 영광을 누리고 있으며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인상적인 도시이며 터키의 역사 문화적 전승 상업과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도시이다. 이스탄불이 각종 공해로 가득 차 있긴 하지만 흑해와 마르마라해를 이어주는 보스포로스해협과 골든혼의 강어귀의 깨끗한 물이 이스탄불을 개방과 여유 있는 도시로서 인식하는데 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73년 보르포로스 해협에 다리가 건설되기 이전인 몇천 년 동안은 아시아와 유럽사이를 잇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배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다리는 1988년에 완공되었으며 세 번째 다리는 도시의 발전에 따라서 계획중이다.
이스탄불의 날짜 변경선 은 3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역사에 대한 인식은 하렘과 경기장을 분간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다. 15세기에서 1800년대 초까지 술탄의 거주를 위해 지은 톱카프(Topkapi) 궁전도 꼭 봐야하는 명소이다. 궁전의 하렘은 (왕족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마치 작은 마을과도 같아서 500명의 사람이 어느 때든 모일 수 있으며 첩이 300여명에 이르렀다. 왕족의 보물창고는 궁전에서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는 명소이다. 이곳에는 눈이 휘둥그래질만한 금 은 다이아몬드 등이 쌓여있다.
Aya Sofya 는 신성한 지혜의 교회로서 유스티니아누스 시절인 548년에 지어졌으며 기독교계 건축물로는 규모가 매우 큰 것이었다. 14세기에는 많은 건축물들이 지진이 지나간 자리위에 지어졌으며 그 교회들은 교회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거대한 외관 벽들이나 정자 등 많은 건축물의 잔재가 군데군데 그 모습이 남아있다. 내부의 거대한 돔은 매우 인상적이다. 블루모스크 사원은 제국의 통일성과 균형 우아함을 보여주는 상징이며 내부는 Aya Sofya 의 내부를 강조하기 위해서 커다란 눈이나 약한 무릅 등의 모습을 돌출해내는 장식을 연출해냈다. 이스탄불에서는 관광객의 짐을 노리는 많은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보스프로스 해협을 페리를 타고 여행하거나 대 바자르 지역을 여행하면서 좁은 길에서 장신구나 카페트를 사거나 구경을 하며 다닐 수 있다. Uzuncarsi Caddesi는 관광객들이 덜 찾는 지역으로서 이곳에서는 목재선반공의 가게나 사냥 기구 옷감 상점 등을 찾을 수 있다. 다리 북쪽인 Beyoglu 지역에서는 Istiklal Caddesi쪽으로 천천히 구경하며 지나가면서 여러 가지 풍경을 볼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장소이다. 이곳은 1세기 이전 만하더라도 오스만제국의 높은 신분의 사람들과 유럽식민지배자들이 낡은 프록코트식 군복을 입고 대치를 이루던 곳이다. 만약 그러한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있다면 예전에 이거리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구 시가지에 있는 Sultanahmet에는 최저에서 중급 호텔들이 많이 들어서 있어서 숙소찾기가 좋은 장소이다. Taksim 광장은 현대화된 고급장소들이 있는 곳이다. Sultanahmet's Divan Yolu을 따라 늘어선 레스토랑에선 식사하기에 가장 평범한 장소이지만 관광지를 벗어나 식사를 할 경우에는 여행경비에 여유가 생길 것이다. 대 바자르 지역에는 적은 양의 음식들을 천천히 가져다주는 작은 음식점들이 많이 있다. Istiklal Caddesi는 작은 무허가 구이집으로 가득 차 있지만 아마도 남쪽까지 들어선 이 길가가 가장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주는 장소들이 많은 곳일 것이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는 반 사막지역인 아나톨리아 중간지대에 있는 거대한 도시에 불규칙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오스만제국이전에 이곳에 있던 앙고라와는 다른 곳으로 긴 털을 가진 양들이 길러지고 그 털로 솜털 점퍼를 만드는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1920년 에튀투르크가 이곳에 그의 자치 정부를 세운 이후 앙카라는 주로 정부의 중심지가 되었지만 한번쯤은 꼭 방문해볼 가치가 있는 장소들이 몇군데 있다.
대부분 관광객들은 구 시가지의 오른쪽 동쪽 언덕에 있는 비잔틴 제국이 보이는 Histar 쪽으로 쭉 가거나 아나톨리아의 문명 박물관으로 간다. 남쪽으로는 에튀투르크를 기념하는 대영묘와 건물이 있으며 건물은 매우 아름답고 웅장하며 아나톨리아 제국의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다. 에튀투르크가 사용하였던 관저는 매우 보존이 잘 되어 있어서 1930년대식 당구대와 가구 그리고 담배 술 등 여기저기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많은 조상의 역사를 알 수도 있다. 로마시대의 앙카라는 매우 중요한 도시였으며 로마제국시대의 유적지들이 이슬람 사원과 건축물주위에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대부분 저려한 호텔과 식당들도 앙카라 기차역에서 북동쪽으로 몇 킬로미터 지점에 떨어져있다.
터키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고대도시이며 유적지인 에베소는 매우 광할하며 보존이 매우 잘된 곳이다. 게다가 지중해지역에서 가장 고전적이며 활기 찬 도시이다. 에베소는 그리스제국 시대 때 가장 문화가 번성했던 이오니아 지방이었으며 로마제국시대에는 상업의 중심지였다. 이오니아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이며 이곳은 풍요와 아름다움의 도시로서 다시 재평가되어지고 있다.
세인트 폴과 존은 이오니아 지역을 차지했으며 성모마리아도 이곳에서 수년간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유적지의 도보여행은 적어도 반나절이 걸리며 여름에 이곳을 방문한다면 아침일찍 관광에 나서야한다. 왜냐하면 한여름의 폭염은 참기 어렵기 때문이다. 2백년동안 7명의 젊은 박해자들의 묘가 있는 Grotto 지역을 가로 질러 관광을 하고 식사를 하러 마을쪽으로 내려오면 되고 거대한 Gymnasium 항구이며 대리석 포장도로인 아르카인들의 길을 따라 걸을수 있고 매우 인상적인 Hadrian의 사원과 분수대 수영장 매춘굴 도서관 공공화장실등이 있다. 성가실 정도로 손님을 끌어대는 2만 5천여명이 살고 있는 Selcuk 은 이지역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은 장소로 유명하다. 마을 중심에는 아름다운 박물관이 있고 로마제국시대의 약탈품들이 있고 세인트 존 성당과 비잔틴 사원과 같은 기독교와 이슬람과 관련된 관광지들이 있다. 이즈미르에는 가장 가까운 교통수단이 있다. 에베소에서 약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Selcuk 까지 기차와 버스가 1시간짜리 관광을 운영하고 있다.
보드럼은 에게해의 남쪽에서 가장 아름다운 리조트지역이며 요트항구와 Kos 의 그리스 섬까지 가는 페리가 출발하는 항구가 있는 곳이다. 해변가에는 야자수가 죽 늘어선 대로가 있으며 하얀 각설탕 같은 아름다운 집들이 있으며 언덕 위에 아름다운 집들이 늘어선 마을이 있다. 보트 수영 스노킹 스쿠버 다이빙을 하기에 보드럼은 최상의 장소이다 보드럼의 밤은 나이트 클럽과 여러 가지 유흥으로 새벽까지 불야성을 이룬다.
터키인들이나 관광객들이나 이 시끄러운 소리에 대해서 불평을 해대지만 이 지역 사람들의 반응은' 평화와 고요함을 원한다면 왜 보드럼에 왔나요? 하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도시를 좋아한다면 어디에서도 보드럼으로 가는 버스를 잡아 탈 수 있으며 이즈미르에서도 약 4시간 소요된다. 여름철에는 Kos 까지 가는 페리가 이곳에서 자주 출발하며 수중선이 5월에서 9월까지 로드섬까지 운행되고 있다.
안탈리아는 터키쪽의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이다. 이곳은 몇km에 이르는 자갈 해변이 있으며 로마 오스만 제국의 역사적 중심이 되던 곳이었으며 안탈리아는 해변가를 따라 마을 쪽으로 탐사 작업을 하는 베이스캠프가 되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 가장 웅장한 고대 도시가 있는 곳이다.
안탈리아에서 동쪽으로 약 75km떨어진 곳은 안토니아와 클레오파트라가 밀회를 즐기던 장소로 알려져 있는 매우 아름다운 해변이 이곳에 있다. 안탈리아의 동쪽으로 115km떨어진 곳에는 마이애미와도 같은 느낌을 주는 수평선을 볼 수가 있다. 페타라(Patara)는 안탈리아의 남서쪽에서 수백km떨어진 축제의 마을이다. 이곳의 해변은 약 20km에 달하며 단순한 듯 하면서도 아름답고 웅장하며 매우 긴 해변이고 모래언덕에는 로마의 유적지가 있다. 어디서든 해가 지는 풍경을 볼 수 있으며 새벽녘에는 집으로 가는 거북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중해연안에 있는 모든 마을에는 버스나 돌무스 노선이 닿아있다.(단 여름에만)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오늘날 갈리폴리반도 전쟁터는 평화로운 장소이며 덤불들이 뒤덮힌 지역이며 소나무 숲이 있으며 농부들의 들판이 있지만 이곳은 지난 천년간 이스탄불에서 군사적 전략지의 핵이 되는 지역 이였다. 9달간의 에튀트루크의 잔인한 내전과 1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전투 등이 웬만한 이름 있는 전투는 이곳에서 벌어졌다. 갈리폴리는 관광하기에는 매우 넓은 지역으로 자신 소유의 교통수단 없이도 관광이 가능하다.(북쪽에서 남쪽 반도지역까지 약 35km 정도 거리가 된다.) 이곳에는 유명한 관광지 두 곳이 있는데 한곳은 Canakkale 이라는 동쪽 해안지역이고 서쪽은 Gelibolu 라는 곳으로 여러 여행사에서 이곳을 관광지로 넣고 있다. 여행사를 고르기 전에 어떤 곳에 초점을 맞추어 관광을 하는지 여행객들에게 한번 물어 보도록 하자. 갈리폴리의 대전투는 해마다 3월에(12일에서 19일 사이) 기념하고 있으며 이 시기에는 호텔들이 가격을 올린다. 페리는 Eceabat에서 갈리폴리 남서쪽으로 45km지역을 지나 Dardanelles에서 Canakkale 까지 운항한다.
1871년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하인리히 슐레이만(Heinrich Schliemann)가 트로이를 발굴해내자 전세계적으로 많은 고고학자들에게 유적지 발굴작업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시기 이전에는 호머의 일리아드 오디세이가 단순히 전설에 바탕을 둔 작품이라 생각했지만 이후에는 생각을 달리 했으며 트로이는 13세기에 에게해사람들과 트로이 사람들이 전투를 벌인 모습을 묘사한 호머의 서사시의 한 장면의 배경이 된 곳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슐레이만의 발굴과 기원전 3000년경으로 추정되는 다른 9차례의 도시의 발굴 이후에도 트로이는 가장 가치있는 도시이다. 트로이6세는(1800-1275) 트로이의 전쟁당시 프라이모스의 도시에 있었다.
이러한 모든 것은 놀라운 발견이지만 만약 일리아드를 읽지 않았거나 고고학에 관심이 없다할지라도 트로이에서는 조금이라도 역사적인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아마추어의 관점으로 보아도 트로이의 목마의 모조품 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트로이의 목마에 관한 이야기는 세상에서 가장 긴 이야기이며 배경의 광대함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낼 것이다. 트로이는 돌무스를 타고 Canakkale에서 약 30km정도 가야하며 버스도 터키의 여러 도시에서 트로이까지 연결되어 있다.
신비의 굴뚝(Valley of the Fairy Chimneys) 카파토키아(Cappadocia) 계곡은 화산재로 이루어진 이상한 모양의 계곡으로서 마을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으며 카파토키아의 북쪽Aktepe 근처에 있는 화산 계곡들은 모양도 희안하며 대부분 몰려있다. 대부분 선홍색의 원뿔 모양의 바위들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침식되어 피난처로도 쓰일 수 있는 단단하고 어두우며 평평한 돌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러한 침식과정은 다른 침식과정과 매우 다른 지형학적인 특징을 가졌지만 이곳을 단순히 기이한 곳이라고 부를 수 도 있을 것이다.남서쪽으로 있는 Uchisar는 Kale이 지배하는 곳이며 큰돌들이 꼭대기에 있으며 터널과 몇마일밖을 내다 볼 수 있는 창문등은 수수께기로 남아있다. 바위앞면에 비둘기 둥지와 빗물이 떨어져 만든 구멍들이 수수께끼처럼 남아있는 Dovecote Valley를 노래를 부르며 Goreme 쪽으로 쭉 걸어가 보는 것 도 즐거운 관광 중에 하나일 것이다. Goreme 의 남서쪽에 있는 Nevsehir는 이지역을 가기 위한 주 교통수단이 출발하는 곳으로 터키전역에서 출발한 버스가 이곳에 정차한다.
아나톨리아 남동쪽 쿠르드지역에 있는 하란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주거역사를 지닌 지역중에 하나일 것이다. 마을 주변에 있는 언덕들은 드문드문 벽들에 둘러 싸여있으며 꼭대기에는 유적지들의 건물들이 있으며 그것들의 오랜 역사가 아브라함이 하란 지방의 초기 거주지였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마을 동쪽에는 요새가 있으며 8세기경으로 추정되어지는 Ulu Cami (모스크) 라는 모자이크작품이 있다. 오늘날엔 사람들이 벌꿀모양의 이상한 진흙으로 지어진 집에서 아직까지 살고 있으며 농업과 밀수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아나톨리아 남동부에서 시작될 프로젝트 등에 참가하며 살고 있다. 하란에는 숙소가 많지 않으며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터키의 좋은 버스들의 노선이 닿는 서쪽 37km 지점인 Urfa 에 거점을 둔다. 레저스포츠터키에는 아름다운 해안과 해수욕장이 많이 있기 때문에 수상스포츠의 천국이다. 요트나 수상스키 스노클타기와 잠수등이 지금현재 인기를 누리는 종목들이다. 터키해안에는 많은 수중 유물들 때문에 스쿠바 다이빙을 규제하고 있으며 잠수하기 전에 유물여부를 먼저 확인해보아야 한다. 터키는 등산을 할 수 있는 많은 산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산들이 낮은 편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고 있다. 안탈리아 근처에 있는 Bursa와 카이세리 근처에 있는 에르지야스산 그리고 Erzurum 근처에 Palandoken 에도 스키장이있다. 언덕에서 스키장비를 대여할 수 있지만 알프스스키장 같은 시설을 기대하진 말아야 할 것이다. 터키에서 자전거여행은 가능하며 매우 즐겁지만 자전거를 렌탈이나 직접 판매를 하는 곳이 드물기 때문에 자신의 자전거를 가져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터키로 가는 길터키는 7개의 나라와 국경선을 맞대고 있고 비행기 배 기차 버스 등 여러 가지 경로로 입국이 가능한 곳이다. 이스탄불과 앙카라 이즈미르에 국제 공항이 있으며 지중해 리조트에도 몇 개의 공항이 있다. 터키항공은 이스탄불에서 유럽 주요 도시들과 뉴욕 중동 북아프리카 방콩 카라치 싱가포르 도쿄등 여러나라에 취항하고 있다. 공항세는 US$12이다.
기차를 이용할 경우 이스탄불 익스프레스가 매일 뮌헨과 크로아티아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등을 매일 출발하고 있다. 또한 프랑크푸르트 비엔나 등과 같은 유럽의 주요도시들에 터키의 버스노선이 닿아있다. 매일 아테네와 이스탄불 사이를 테살로니카를 경유하는 버스와 기차가 있다.
버스는 기차보다도 훨씬 빠르다. 시리아와 조지아 이란까지는 버스로 여행이 가능하며 아르케니아는 기차로도 가능하다. Turkish Maritime Lines는 안탈리아 마르마리 이즈미르에서 베네치아 사이에 5월에서 10월 중순사이에 배를 운항하고 있다. 개인 페리 회사에서도 터키의 에게해 해안과 그리스의 섬들 사이를 운항하고 있다. 국내 교통편터키의 항공사들은 이스탄불과 앙카라를 포함한 다른 주요 도시들에 취항하고 있다. 버스들은 터키내의 어디든 노선이 닿아있으며 가격도 적당하며 편안한 편이다. 기차는 속도나 안락함등이 버스에 비해서 다소 떨어지지만 침대칸이 있는 기차가 이스탄불, 이즈미르, 앙카라 사이를 오가는데 괜찮은 편이다. 만약에 터키 주변을 차를 이용하여 갈 경우 자동차 서비스센터를 찾기는 매우 쉬우며 비용도 저렴한 편이지만 거친 성격의 운전사와 거래를 할 경우 다소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터키시내에서 운전을 할 경우 교통체증이 심하다는 걸 꼭 염두해 두어야 하며 주차는 거의 불가능하다. 돌무스는(택시를 개조한 차) 짧은 여행을 할 경우 적합하다. 페리를 이용할 경우 자동차 여행보다 시간을 절약해주며 터키 해안선을 따라 소형 크루즈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페리는 이스탄불에서 이즈미르 까지 그리고 이스탄불에서 트래브존(6월에서 9월 사이에만 운항)까지 운행되고 이스탄불에서 브루사까지 쾌속정이 운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