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 가는 길
박세아 목사 (시인)
어느날 아파트에 문을 열고 나가다 보니 봉화마을 간다는 전단지가 붙어있었다. 그 유명한 봉하마을을 간다고, 그것도 단돈 만원에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해서 우리 자녀들과 함께 교육의 장을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들어서 아주 좋아했다. 관광회사에다 전화를 해 보니 아이들은 갈 수 없다고 해서 실망을 했지만 만원에 밥도 주고 버스도 된다고 하니까 너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런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니까 거기 가는 것이 장사하는 곳, 물건을 팔아서 관광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소리를 들었을 때는 가기가 싫었지만 아내가 그래도 그냥 여행으로 갔다 오자고 해서 그냥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가기로 한 날 아침 일찍 준비를 해서 모임 장소로 가서 버스를 기다리니까 사람들이 한 두명씩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7시 50분쯤 차에 올랐다. 버스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고 전민동으로부터 노은동까지 사람을 태우고 유성IC로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버스에 한 차를 태우고 대전을 출발해서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추부IC를 나와서 인삼공장을 들렸다. 공장이 어마어마하게 컸고, 모든 것이 전자동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규모가 큰 인삼가공식품 회사인 것 같았다. 우리들은 회사 사람들이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갔다. 공장 내부는 이곳 저곳에서 기계가 움직였고, 안내자의 지시대로 학교 교실처럼 되어 있는 강의실로 들어와 우리 버스 탄 사람들만 같은 공간에 꽉 차게 앉아 있었다. 우리는 강의를 들었다. 그곳은 흑삼을 만들고 가공하여 건강보조식품으로 만드는 공장이었다. 흑삼은 9번 찌고 9번 말려서 가공되는 것이다. 이것은 홍삼이나 인삼보다 인체에 거부감이 없고 사포닌이 최상으로 들어있어 혈전을 용해하여 성인병 예방이나 다이어트에 도움을 준다. 그리고 천마도 김치처럼 숙성시켜 흑삼과 배합하여 농축액을 만든 것을 판매한다고 했다. 건강에 관한 강의를 재미있게 하는 회사 관계자들의 이야기 속으로 우리는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고 아내도 나의 몸을 걱정해서 그런지 호기심을 가지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무리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점점 하나가 되어서 물건에 관심을 보였다.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물건을 사기 시작한다. 나도 아내와 함께 다른 사람들이 사는 만큼 구입을 했다.
우리 차 말고도 다른 차들이 주차장에 들어서기 시작했을 즈음에 우리는 또 다른 곳을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곳 공장은 전국에서 하루에 수백대씩 차로 온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슴 농장에 들어갔다. 그곳에서도 일장 연설이 시작된다. 사슴뿔로 만든 술도 한잔씩 돌린다. 인삼 공장에서 이미 많은 돈을 쓴지라 모두들 시큰둥한 표정이다. 사슴농장 사장님이 인삼공장에서 큰돈 쓰고 와서 돈이 없는 것을 알고 있다며 카드도 된다고 했다. 처음에 어색한 관계가 약술 몇잔 오고 감으로서 더욱 친해지게 한다.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어느 정도 구입을 한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아주 다양했다. 원래 이런 관광을 하는 부류들은 이 세계를 잘 아는 듯 큰소리로 떠들어 대며 놀기도 잘 놀고, 먹기도 잘 먹지만 물건은 사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처럼 아무 것도 모르고 처음 온 사람들은 여러 가지 처음부터 끝까지 사색하는 것처럼 있다가 얼굴이 마주 치면 미소만 가끔 띄우는 사람이 있고, 처음부터 잘 적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이드 아줌마가 재미있게 얘기도 하고 버스 안에서 LED TV에 뽕작노래도 틀어줘서 분위기는 썩 나쁜 편은 아니었다. 물건을 팔 때도 웃음으로 넘겨주고 물건도 좋아서 그런지 약장사 입담이 좋아서 그런지 덥석덥석 잘도 산다.
어느 식당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점심도 잘 나온다. 아무튼 사람들 마다 싫은 표정은 아니다. 이제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음악에 맞춰 신나게 달린다. 우리는 어느새 김해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가이드 아줌마가 노무현 대통령이 좋아했던 양희은의 상록수를 멋지게 불러댄다. 정말로 민주화 운동할 때에 다 같이 목청 높여 불렀던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죽어서 실려 갔던 세영 병원도 지나친다. 거기서 노무현 대통령의 사망소식을 처음 알렸던 곳이다. 우리가 탄 버스는 김해 시골 마을들을 돌아돌아 봉화 마을에 도착을 했다.
봉하마을은 생각한 것 보다 현대적으로 꾸며져 있었다. 너무 어수선한 환경, 아직은 어색하여서 완벽하게 자리 잡지 못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참배객들은 많이 지나다니고 꽃을 헌화하며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분위기 였다. 아내와 함께 손을 잡고 웃음끼 가신 얼굴을 하고 나는 구석 구석을 누비며 노무현 대통령의 발자취를 느끼며, 가끔은 눈시울 붉어지는 것을 참고서 자연스런 참배 대열 속에서 함께 있었다. 태양은 우리만을 비추고 있는지 너무 덥고 멀어서 부엉이 바위와 정토사 절은 들르지 못했다. 아내와 나는 너무나 더워서 휴게소라고 쓰여진 식당 겸 매점에 들려서 메밀 묵밥을 먹고 그곳에서 더위를 식혔다.
사람들은 약속된 장소로 모이기 시작했고, 3시쯤 출발 또 다시 우리를 태운 버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함양 휴게소에서 모두 내렸고 가이드 아줌마가 손수 준비해온 저녁을 휴게소 한쪽의 야외에서 먹었다. 어떤 할아버지가 우리 아내를 칭찬을 했다. 우리 아내는 항상 나의 손을 잡고 다닌다. 나 혼자 다니면 잘 넘어 지기 때문에 어딜 가더라도 꼭 이렇게 다정하게 두 손을 맞잡고 다닌다. 항상 아내는 천사로 오해 아닌 오해를 받으면 몸둘바 몰라 한다. 그 어떤 할아버지도 아내를 또 천사로 보고는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식혜를 사주셨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사람들의 주목을 가끔 받을 때가 있다.
7시 부터는 다시 달리는 버스위에서 디스코 타임이 시작된다. 모두 들 흔들리는 버스 위를 곡예 하듯이 이리 저리 휘저으며 즐거움을 만끽 한다. 오늘은 사람들이 물건을 많이 사 줘서 그런지 가이드 아줌마도 좋아한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지만 어제까지는 물건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만 때려치우려고 했다고 한다.
진짜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의 대통령인 것 같았다. 이렇듯 죽어서 까지 서민들을 위하여 이런 즐거운 시간을 마련해 주셨기 때문 이다. 우리는 삶의 바쁜 현실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 분의 생각과 그 분이 하려고 했던 아름다운 대한민국이 아직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약장사에 속아서 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으로 인하여 많은 것을 보고 즐거워했다면, 그것으로 노무현 대통령도 좋아했을 것 같다. 어쩌면 그 분이 거창하지 않고 서민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했고 우리들에게 보여줬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한바탕 웃고 재미있었으면 되지 않나 생각한다.
버스가 거의 출발 했던 장소로 도착하기 시작하자 가이드 아줌마의 노래로 마무리를 했다. 검은장갑 이란 노래! -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굿바이 하며 내미는 손 검은 장갑 낀 손 할말은 많아도 아무말 못하고 돌아서는 내 모양을 저 달은 웃으리-
우리는 오늘 비록 얼굴은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서로서로 자기의 명예나 직위를 버리고 하루 약장사를 따라 다닌 것이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꼭 거창한 여행만 여행은 아닌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주는 깨달음은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