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개구리처리입니다. 오래간만에 인사 올립니다.
이번주부터는 중간중간 공부에 지친 여러분들에게 잠시나 여유를 드릴 수 있도록...
감동적인 글귀나 이야기, 동양상 등도 제공할 예정입니다.
임용 정보만 제공하면 너무 딱딱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요.
이제 4월도 끝나가네요. 이제는 정말 봄인데... 새싹이 돋아나고 새로운 성장을 시작하듯이...
선생님들고 기지개를 하고 하나하나 단추를 채워나가시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
1) 오늘의 선물 하나.
감동 동영상 "실밥이 뜯어진 운동화"
-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2) 오늘의 선물 둘.
훈훈한 글(비록 지리과는 아니지만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글귀라 생각되어 담습니다.)
저는 2002학년도 임용고사에 합격한 뒤 벌써 현장에서 체육교사로 6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6년 동안에 참 여러 일들이 있었어요. 학교도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옮겼고 부서도 학생부, 체육부, 학년부 등에 있었습니다. 현재는 부천에 있는 심원고등학교에서 2학년 체육반을 담임하면서 체육교사와 스포츠지도자를 꿈꾸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1991년에 입학하였고 졸업은 1996년에 석사를 마쳤습니다. 군복무 이후에 경복고등학교에서 기간제로 한 학기동안 일했습니다. 이후 기업체에서 2년 가량 일을 했고 개인 사업도 1년 남짓 하였습니다.
군복무를 시작했던1997년부터 군복무 이후 2001년 겨울까지는 저에게는 꽤나 힘든 기간이었습니다. 벤처기업이라고 해서 기대감을 갖고서 들어갔던 회사는 IMF이후 망했고 어렵게 시작한 개인사업은 수천만원의 손해를 보고 실패하였습니다. 임용고사 준비를 시작했던 2001년 10월에 저 자신과 제 가정의 상황은 매우 힘들고 고달픈 상황이었습니다. 1997년에 결혼해서 2001년 가을에는 이미 전는 두 아이의 아빠였습니다. 세살과 돐 지난 두 아들의 아빠였죠. 하루 하루 살아가기가 어려워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제가 갖게 되었던 부담과 책임감은 저에게 상당한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사업이 힘들게 되면서 저는 더 이상 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교사임용고사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일찍 임용고사를 시작하지 못했던 것인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개인적으로 찾아오면 알려주겠습니다). 노량진에 있는 교사임용고사학원에 가서 전공체육과 교육학 수업을 신청하여 첫 수업을 들은 것은 2001년 10월 둘째주였습니다. 학원수업을 다녀와서 달력을 펼쳐보니 1차 시험까지는 정확하게 60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60일동안 최선을 다할 수 밖에 다른 길은 없었습니다. 60일이라는 시간은 저에게 희망이기도 했고 절망이기도 했습니다. 두가지 생각이 제 머리에서 멤돌았지만, 저는 희망을 선택했습니다. 아니, 희망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희망이 없더라도 희망을 만들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 할 상황이었죠.
첫날 전공 체육 수업을 들으면서 저는 한숨만 계속 쉬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5년 만에 접해보는 체육학의 다양한 지식들은 너무도 생소하게 다가왔습니다. 학원 강사의 질문에 마치 교회에서 주기도문을 외우듯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책도 펼치지 않고 대답하는 수강생들속에서 저는 위축되었습니다. "내가 너무 늦은 게 아니야? 언제 나도 저 사람들처럼 될 수 있을까? 시간이 얼마 없는데 큰 일이다. 하지만 죽기 아니면 살기로 최선을 다해보자"
체육학 전공강의실에는 전국에서 모인 400여명의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교육학 강의실로 잘 못 들어왔는 지 알았습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체육교사의 꿈을 실현하기위해서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저들에 비하면 나는 너무 나이도 들고 예전에 공부한 것도 모두 잊어버렸다는 부정적인 마음이 공포처럼 나를 엄습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부정적인 마음과 싸웠습니다. "2달이면 혹시 작은 기적이 일어날 지도 몰라. 하여튼 하는 데까지는 열심히 해보자."
전공이론 강의는 이미 끝난 뒤였고 모의고사 풀이 수업을 수강하면서 뒤 늦은 출발을 만회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첫 모의고사에서 70점 만점에서 10점도 못 받은 나는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생각하면서 한 주, 한 주 주어진 24시간을 쪼개고 쪼개며 공부에 전념하였습니다. 다행히 같이 수업을 듣던 수강생으로부터 이론반 수업을 녹음한 테입과 수업 내용을 정리한 노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론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모의고사 풀이는 저에게 큰 도움은 되지 못했습니다. 두달간의 수업 내용을 녹음 테입을 약 2주동안에 집중해서 들었습니다. 이해가 않되면 이해가 될때가지 계속 들었습니다. 스포츠생리학과 역학부분은 10번도 더 들었습니다. 남들이 두달에 정리한 내용을 저는 2주만에 벼락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그 방법이 꽤 맞았습니다. 대학 4년 동안의 체육학의 전체 내용을을 2주만에 집중해서 공부하는 것은 제에게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하였습니다. 학원에서 돌아와 집에서 녹음 테입을 듣다가 졸리면 녹음 테입을 갖고서 자동차로 갔습니다. 차안에서 오히려 더 집중이 잘 되었습니다. 종종 차안에서 새벽을 맞이 하기도 했죠.
두번째 모의고사에서 드디어 10점을 넘겼습니다. 15-16점 정도였을 겁니다. 꽤나 기뻤습니다. 아직 갈 길은 멀었지만 모의고사 점수가 향상되었다는 것은 저에게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녹음 테입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노트를 달달 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오로지 녹음 테입, 그 내용을 정리한 노트, 학원교재, 모의고사 문제만을 반복해서 보았습니다. 다른 책을 볼 시간도 여유도 없었습니다. 교육학은 수업시간에만 집중해서 공부했고 식사사간,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간, 걸어 다니는 시간 등의 짬시간을 통해서 복습했습니다. 교육학보다는 전공 체육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수업을 같이 듣던 사람들과 매일 스터디를 했습니다. 주로 가장 많이 스터디를 했던 사람은 육상선수를 오랫동안 해서 그런지 뒤늦게 시작한 나보다도 전공 수업 내용을 더 어려워 했습니다. 같이 스터디를 했지만, 주로 내가 수업 내용을 설명하면서 그 사람에게 이해시키곤 하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설명하는 동안 어느새 그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외우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점점 스터디시간을 늘렸습니다. 나중에는 하루에 5-6시간을 스터디를 하면서 저는 설명하고 또 설명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책을 덮어놓고 한 두시간을 설명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스터디가 제가 합격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었나봐요.
1차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면서, 연세대 체육교육과 체조장에서 후배들과 함께 운동을 하였습니다. 아참, 선배도 한 명 있었습니다. 20여명이 매일 함께 모여 실기 시험을 준비하였습니다. 1차 시험 합격를 확인한 후 더욱 실기 준비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31세의 저는 몸무게도 많이 늘었고 유연성도 약해져서 마루운동과 육상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대학 입학 당시 177cmd에 65kg, 턱걸이 20개, 서전트 76cm를 뛰었던 나는 이미 몸무게는 80kg를 넘어 달리기 운동을 좀 하면 무릎이 아프곤 하였습니다. 늦게 운동을 시작했지만 다행히도 농구, 축구, 배구는 대학교 다닐 때 많이 해두어서 별로 어려움 없었죠.
실기 시험 당일날 열심히 준비했던 새천년 체조가 아니라 청소년 체조가 맨손체조 시험으로 출제되어 앞, 뒤, 옆 사람의 동작을 따라하며 시험을 보았습니다. 채점관들이 속으로 엄청 한심스러워 하셨을 거예요. 맨손체조시험뒤 마루운동은 거의 환상이었습니다. 구르기를 빼고는 제대로 한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핸드스프링은 예상했던대로 마루바닥에 우당탕 넘어졌죠. 맨손체조와 마루운동에서 완전히 죽을 쑨 저는 그나마 농구, 배구, 축구, 핸드볼에서는 나름대로 선방을 했습니다. 허들은 유연성이 약했기에 아예 접고 대충 흉내만 냈습니다. 제가 구기와 높이뛰기라도 잘 못했다면 아마 .....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면접날 정장을 입고 면접고사장을 향했습니다. 저는 실기고사를 보면서 온 몸이 파김치가 되었고 심한 감기에 걸려서 목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습니다. 면접도 중요한데, 걱정이 많았습니다. 드디어 면접 장소에 들어가 현재 목소리는 원래 제목소리가 아님을 말씀드리고(원래는 주위에서 목소리가 좋아서 성우하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고 농담했습니다. 면접관님들이 피곤하실 것 같기도 해서) 주어진 질문에 나름대로 대답을 했습니다. 나중에 면접 점수를 확인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기적같은 점수가 나왔습니다. 30점 만점이었던 면접에서 28.?(소수점은 기억이 않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면접관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나봐요? 지금도 왜 그렇게 높은 점수가 나왔는지 잘 모르겠어요.
전화를 통해서 최종합격여부를 확인하였습니다. 최종합격했다는 음성을 듣고 너무도 기쁘고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또 걸고 또 걸었습니다. 한 네번을 했나봐요. 그 시간에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방에 깔려 있던 이불을 덮어쓰고 엄청나게 울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을 합격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하였죠. 그리고 결혼 이후 꽤 오랜 세월을 내 옆에서 묵묵히 견디면서 기도해주면서 내조해준 아내에게 감사해서 계속 울었습니다. 태어나서 제일 많이 울었나봐요. 벽에 걸린 아이들 사진을 보면서 "이제 너희들에게 좀 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겠구나"하고 감사해했습니다.
저의 60일간의 도전은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60일을 앞두고 절망보다는 희망을 선택했기에 오늘 이렇게 교사로 일하게 되었나봐요. 60일간의 도전은 저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지 말고 남아있는 시간에 희망을 걸어보세요. 어쩌면 여러분들에게도 놀라운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그 놀라운 일을 기대하면서 최선을 다해보세요. 저는 60일동안 매일 현장에서 체육수업을 하는 저 자신을 상상하면서 공부했습니다. 내가 체육교사가 되면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 하는 상상을 펼치는 것은 저에게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꼭 자신의 꿈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3) 학원 강의 및 교재 관련 소식
●세계지리 공개강의 일정이 지난 24일 마무리되었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계속해서 듣겠다. 등등 많은 애정과 격려 감사합니다.
항상 수험생의 입장에서 한번더 생각하는, 최선을 다하는 강의로 찾아뵙겠습니다.
5월부터 8월까지는 공개강의가 개론서해설강의로 진행되며, 인강은 무료로 공개되지 않는다 합니다.(학원 사정으로)
●공개강의 일정이 변경되었습니다. 아래 연간강의계획을 참고하세요. ^^
상대적으로 많은 분들의 깊이 있는 공부가 이루어진 지형학 대신 한주성샘의 경제지리학의 이해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7월 공개강의 수강을 생각하시는 선생님들은 한주성샘의 경제지리학의 이해를 준비하시면 됩니다.~
●메인홈페이지(처리야넷 http;//churiya.net)을 리녈했습니다. 한번 들러서 인사말 남겨주세요. ^^
인사말을 남겨주신 분에게는 교육학 핸드북파일을 드립니다.(메일남겨주세요~)
●2007년 전공 임용지리 강의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