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할 때에 1초라도 아껴 공부해서 입학시험이 끝나는 순간 '나는 최선을 다했다'라고 나에게 말하겠다고 하면서
집중 또 집중하면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또 불합격했다.기가 막히고 이 현실을 받아드릴 수 없어서 북한산 바위를 기어올라가다가 실수로 떨어져 죽겠다고 결심하고 75년 1월에 우이동 도선사 일요선원을 다니면서 늘 올려다 보았던 만경대를 좌에서 우로 기어올라갔다.바위를 릿지(자일없이 손발로 바위타기)로 타본 적이 없었고 만경대 바위 코스도 모른 채로 그냥 기어올라갔다.바위위에서 '하나, 둘, 셋'하고 뛰어내려서 자살이 되기는 싫었다. 죽기는 죽되 자살이 아닌 실수로 떨어져 죽고 싶었다. 자살로 죽는 것이 너무 창피했기 때문이다.사람이 다닌 손자국과 발 흔적이 희미하게 바위위에 나있길래 따라 올라가다가 3갈래 길에 맞닥뜨렸는데 우측은 벼랑이고 정면은 수직절벽이고 좌측에는 사람이 잡고 갈 만한 약간씩 튀어나온 바위들이 있길래 이 길을 택했다.튀어나온 바위들 아래는 벼랑이었다. 좁은 바위 틈으로 발을 딛고 몇 미터를 갔더니 더 이상은 발 디딜 곳이 없고 툭 튀어나온 바위가 있는 데 이 부분을 통과하려면 발은 딛지 못한 채 팔로만 튀어나온 바위 윗부분을 잡고 좌로 이동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미 극도의 긴장감과 공포감으로 제 정신이 아니었다. 언뜻 언뜻 보이는 바위아래 절벽은 무서움을 더했다.길이가 4m가까운 튀어나온 바위를 팔로만 잡고 엉덩이를 내밀어서 바위에 발을 붙인 상태로 극도로 긴장하여 정신없이 통과했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하나하고 위를 쳐다봤더니 경사 70도 정도로 보이는 높이 6m, 가로 3m의 평평한 바위벼랑이 있고 그 위에는 수직 절벽이 버티고 있었다. 진짜 실수로 떨어져 죽으려면 그리로 올라가면 되었다.그러나 이때 본심이 드러났다. 사실은 죽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너무 기가 막히고 억울해서 실수로 떨어져 죽겠다고 한 것이지 마음 깊은 곳에서는 진짜 죽고싶은 마음은 없었던 것이다. 죽지 않고 살고 싶다는 본심을 확인한 순간 이제는 살아서 내려갈 길을 찾아야했다. 위로는 갈 자신이 없었다.윗쪽의 평평한 벼랑을 5m 올라가도 그 위에 수직절벽이 있고 그 다음 갈 길은 전혀 알 수 없으므로 윗길은 포기하고 어찌 왔는지도 모르는 우측의 왔던 길로 돌아갈 자신도 없었다. 그렇다고 좌측으로 가자니 듬성 듬성 소나무가 있는데 잡을 곳이 없는 벼랑으로 보였다. 그러면 아래로 내려가야하는데 마침 발 아래 길이가 5m이고 폭이 1m정도인 바위가 돌기처럼 튀어나와서 경사가 다소 완만해보이므로 일단 이 바위위로 내려가보기로 했다. 이 바위를 지나면 뭔가 발 디딜 곳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면서 엉덩이로 앉아서 두 손과 두 발바닥으로 몸을 지지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내려갔다.엎드려서 바위를 안고 내려가자니 아래가 안보여서 상태를 알 수 없으므로 눈으로 확인하면서 가려고 이 자세를 취하기는 했는데 불안정한 자세였다. 혹시라도 살짝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엉덩이, 두 손바닥, 두 발바닥이 바위에 얹힌 상태여서 지지하는 힘이 없으므로 그대로 허공을 안으면서 추락하게 되는 상태였다. 주춤 주춤 조금씩 내려가다가 이 쯤이면 우측 발 끝이 바위 아래에 닿게 되고 그러면 몸을 뒤집어 손으로 바위를 잡고 내려가려 했는데 발이 닿지않았고 그래서 디딜 수도 없었다. 돌출 바위 끝 부분이 툭 끊어져서 아래가 보이지도 않았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엉거주춤 상태에서 아래를 보니 하늘이 보이고 저 아래 나무 사이로 등산로도 보였다. 여기서 내가 죽는 구나, 실수로 죽으려고 했지만 사실은 살고 싶었던 것인데 진짜로 죽는구나, 여기를 내가 왜 왔는가하고 절실하게 후회했지만 현실은 곧 추락해서 죽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냉엄한 현실이었다. 저 아래 등산로에 나이 든 등산객 한 분이 대동문 쪽으로 지팡이로 땅을 짚으면서 천천히 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 분한테 '아저씨, 살려주세요'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저분이 와서 나를 구할 수는 없었고 내 몸이 순간적으로 미끌하면 추락하게 되는 상황에서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내 목숨 살려달라고 , 나를 구해달라고 호소할 곳이 없었다. 문득 저 분이 너무 너무 부러웠다. 나는 죽을지 모르는 공포속에서 순간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저 분은 여유롭게 등산로를 걸어가고 있고 저기서 넘어져도 먼지 털고 일어나면 되는데 나는 삐끗하면 바로 추락사라는 상황이 대비되면서 '만약에, 만약에, 내가 살아서 여기를 내려가 평지를 걷게 된다면 평지를 걷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온 몸으로 느끼고 느끼면서, 살아서 평지를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면서 행복하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평지를, 동네길을, 등산로를 걸을 거야, 제발 살아서 내려가고 싶다. 제발...'하고 간절히 생각했다. 이때 염불을 한다든지 화두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오직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 살아서 여기를 내려가고 싶다는 한가지 마음뿐이었다. 아, 그런데 아직은 죽지 않을 운명이었는지 이런 고민을 하는 동안에 미끌하지 않고 몸이 조금씩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면서 드디어 우측 발이 돌출바위 우측 아래에 닿았다.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뒤집어서 바위를 안고 조금씩 내려오니 이제는 두 발로 걸을 만한 경사가 완만한 지대가 나왔다. 살았다. 죽지않고 살았다.
나중에 친구와 그 길을 다시 가보니 막혔던 곳에서 그냥 올라가서 우측으로 바윗길을 지나면 만경대 정상으로 올라가는 릿지코스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이 되면서 만경대 릿지를 검색했더니 내가 두 팔로 통과한 바위이름이 '피아노 바위'였다. 발은 디딜곳이 없고 두 팔로만 피아노 치듯이 손 목과 손가락힘으로 통과해야해서 붙인 이름이었다. 지금은 추락을 막으려고 튀어나온 피아노 바위아래에 그물 철망을 설치해놓았다. 릿지를 잘하는 분들에게는 식은 죽 먹기 코스겠지만 생초보에게는 생사가 왔다 갔다하는 공포의 길이었다. 죽지않고 살아 내려와서 3수를 해서 원하던 대학에 합격을 했다.
첫댓글 건승하십시오, 거사님!
예, 스님께서도 강녕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