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지..
페트라로 가기 위하여 페트라 입구 마을인 와디무사에 도착했습니다!!
인터넷 페트라 소개에 보니 한국인이 가장 많이 숙박하는 호텔이 발렌타인 인..
그런데 주인장이 너무 무뚝뚝하다고 해서 숙박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발렌타인인의 꼬마 아가씨가 손을 잡습니다..
차가 도착하니 바로 옆에 호텔 코치가 기다리고 있네요..
그냥 발렌타인 인으로 향하기로..
발렌타인 이용 이유 간단합니다!! 일단 가격이 저렴합니다.. 여러명이 잘수 있는 도미토리도 있고..
통상 조금 시설이 좋은 곳은 30디나르가 넘고 발렌타인은 1인 독실에 식사제공하여 25디나르/박 이네요!!
호텔에서 보이는 페트라 지역..
노란 암반의 바위산이 페트라 지역이고 사진상으로 보이는 지 모르지만 왼쪽위의 흰 건물이 아론신전입니다!!
모세의 형인 아론이 시내반도에서 임종하고 이곳에서 장례를 지냈다고 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안 이야기는 아니고 다음날 아론 신전을 방문하면서 현판을 보고 알았습니다!!
페트라를 관광하는 한국인들은 아론신전까지 거의 가지 않는지 아론 신전에 대한 정보는 전무합니다.
아니 제가 찾지 못했는지도 모르겠고요!! ㅎㅎ
페트라 매표소 옆의 전현 국왕 사진..
왼쪽의 분이 50여년간 요르단을 통치하면서 이스라엘과 중동의 등쌀에서도 요르단이 피폐하여 지지 않도록 실리외교를
펼치면서 양쪽에서 모두 호평을 받았던 후세인 국왕입니다..
후세인 국왕 사진은 이 한장만이 보이는데 아들인 압둘라 2세는 참 다양한 사진이 전시되어 있더군요!!
군복을 좋아하는지 군복입은 사진이 가장 많고 매사냥을 하는 사진도 보입디다..
조금 띨빵해 보이는데..ㅎㅎ
아랍 지역 다니면서 남성들에게 가장 부러웠던 것이 자유스럽게 기르는 수염이었습니다..
대형 슈퍼를 가도 우리 매장에서 흔히 보이는 고급 질레트, 쉬크 같은 면도기는 잘 보이지 않고 조잡한 면도기만..
저는 개인적으로 여행다니면서 수염은 신경쓰지 않습니다..
조금 자유로워지고 싶어서..ㅋㅋㅋ
페트라!!
페트라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중동을 조금 알아야 합니다..
티그리스 유프라테스로 시작된 문명의 전성기이며 서구에 알려진 시기는 아라비안 나이트 시대라고 보아야겠죠??
아라비안 나이트는 압바스 왕조의 바그다드가 주무대입니다..
고대왕국 옴미아드를 멸망시키고 무하메드의 후손 압바스를 칼리프로 옹립한 동칼리프 왕조 최초의 이슬람 왕조중 하나죠!!
그중 바그다드는 이라크의 수도로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가 흐르는 메소포타미아의 중심..
동칼라프 왕조는 나부코로 유명한 느부갓네살왕이 유대인을 포로로 잡아올 만큼 강성했습니다!!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서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장미희가 주연한 겨울여자에 삽입되어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졌고 나부토 제작 당시 베르디는 가족을 모두 전염병으로
잃고 신앙에 많이 의존하던 때였죠!! 또 옆길로..
각설하고 아랍제국은 13세기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이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그 여파로 중동인들은 황인종만 보면 근대까지 질겁을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중동에서 월남전 미국 추종한 국가로 이슬람 국가에서는 배척당하는 입장..ㅠㅠ
한마디로 미국 꼬붕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여행중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 어디서왔냐?? 아직 사회성 부족한 중동 사람들 아무렇지 않게 묻는 질문입니다..
그러면 "코리아"!! 다시 씨이익 웃으면서 "사우스 or 노우스!!"
이사람들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한국은 조금 무시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슬픈 현실!!
요르단에서 이라크의 바그다드 통행이 되나 관광객들은 현재는 이라크 통제로 접근 쉽지 않으며
대부분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이라크와 요르단도 인접하여 사이가 좋지 않은 국가입니다..
느닷없이 웬 중동이야기에 이라크 이야기하실 것으로 압니다만..
페트라가 동칼리프 시절 부족국가였던 나바테아인들이 세운 국가이기 때문이죠!!
1812년 스위스 탐험가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가 발견하여 현재까지 발굴 진행중인 도시입니다..
당시의 번성한 인근의 국가는 요르단의 나바테아 왕국, 터키 토로이와 히타이트, 그리스 미케네 문명등 입니다..
이 페트라는 성서의 에돔왕국 시대 사막을 오가는 캐러번들의 세운 나바테아 왕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성서상의 도시는 와디무사(모세의 계곡)에 천년 이상 숨겨진 보물로 남겨져 있다가 앞에 언급한 스위스 탐험가가 발견합니다..
이상한 도시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18세기 사막을 지배하던 베두인들은 통행하지 않는 곳입니다..
부르크하르트는 이슬람에 정통한 인물로 그 계곡내에 고대 이슬람 사원이 있으며 이 사원에 참배하는 것은 무슬림의 의무라고
주장하여 페트라를 발견하게 됩니다..
페트라는 입구 시크가 있는 곳을 와디로 부릅니다..
앞서 샘으로 이야기 했지만 하천도 와디로 부릅니다..
와디!! 건조기후에서 강우시 형성되는 일시적 하천으로 평상시에는 교통로로 이용되는 곳이죠!!
이 교통로의 일부가 됨으로 나바테아 인들이 점령하던 이곳을 로마가 물길 통제 이유로 106년 로마에 점령..
나바테아인들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페트라도 비잔틴이후 7세기 지진으로 잊혀진 도시로 전락합니다!!
이 잊혀졌고 발견이후에도 고고학자들의 방문지 정도로 기억되던 곳이
인디아나 존스의 마지막 성배 촬영으로 일반에게 알려지고
중동 정세가 호전되고 중동을 찾는 관광객이 급증함으로 중동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가 됩니다..
최근에는 죽기 전에 봐야할 문화 유적지 50개중 하나로 네셔널 지오그래픽에 의해 선정되기도 하고..
장장 2km의 시크라는 거대한 계곡을 지나면 장미의 도시가 나타납니다..
어떻게 시크의 위용이 느껴지십니까??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페트라를 아침에 들어와서 하루 정도 보는 것을 마감합니다..
하루 입장료는 50디나르.. 한화 8만원!!
이틀은 55디나르.. 3일은 60디나르..
제법 비싼 금액인데 젊은이들은 2-3일권을 끊어서 다른 사람에게 절반 정도 금액인 30디나르에 양도하더군요!!
여권 검사를 하나 발권시에만 검사합니다..
페트라를 몰라도 아래 사진을 보면 아 이곳하고 이야기 하실 것입니다..
장장 2km의 시크라고 불리우는 계곡을 걸어 들어가면 장미빛으로 빛나는 사원이 보이기 시작하고 심장도 같이 쿵쿵쿵!!
장례사원으로 보이는 페트라의 보물 카즈네피라움..
30m 높이의 이층 피사드 아래층의 중앙의 박공벽과 프리즈를 코린트식 기둥머리를 가진 원주가 지탱합니다!!
위층은 원형당과 둘로 갈라진 박공벽의 조합이죠!!
기둥사이의 받침대에는 유심히 보면 아름다운 조각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카네즈피라움!! 안내 책자에는 단순히 보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장례사원으로 추정되었지만 발굴 당시에는 아론의 무덤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슬람교토에게는 하라운으로 존경!!
7세기에 이슬람이 성립되면서 구약시대는 유대교와 뿌리를 같이 합니다..
이슬람에서 아론은 모세와 같이 신성시되며 부르크하르트가 이곳을 발견하기 위하여 베두인에게 아론의 신전이 있다고
유혹하였기에 아론의 무덤으로 알려졌겠죠!!
실제로 아론의 무덤은 남쪽의 투그라 산정에 있던데 정확한 연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페트라!! 시크를 통하여 들어오면 해발 950미터에 300미터의 바위산으로 둘러져있으며
동쪽의 시크, 남쪽의 투그라, 북의 투르크마니에등 3개의 협곡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와디무사에는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치자 샘솟았다는 "모세의 샘" 그리고 1.5km 동쪽 시크계곡
그리고 카네즈피라움으로 연결됩니다..
카네즈피라움의 중앙 출입구 조각은 이집트의 이시스신 형상..
발굴 초창기를 지나고 나서는 이집트 영향으로 "파라오의 보물창고"로 명명되었습니다..
카네즈피라움을 지나 도시 중간으로 들어갑니다..
바위 암석에는 다양한 건물들이 조영되어 있습니다!!
나바테아 인에서 시작하여 로마시대를 지나 최근에는 비잔틴 시대의 교회까지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아론 신전에 비잔틴 교회..
지붕위의 항아리에 파라오의 보물!!ㅎㅎ 모세의 형 아론의 무덤..
최근에 또 하나의 명 건축물 알데이르 입구에서 비잔틴 교회의 발굴로 로마 카톨릭의 성지로 지정되었다..
아론신전에 비잔틴 교수 또 예수쟁이들 몰려들겠네..ㅎㅎ
페트라를 조성한 진정한 자유인 베두인..
예나 지금이나 자본과 금력에 의하여 토탁 자본의 상업이 찌들기는 마찬가지인 모양!!
나바테아의 도기는 자기처럼 튼튼하고 가벼워 향유나 향료 항아리로 수출품으로 유명하였으나 4세기 향료길의 중심에서
홍해루트와 경쟁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이후의 페트라는 로마의 역사와 괘를 같이 하다가 7세기 지진이후 서서히 잊혀진 도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로마인들의 점령 시기에 건축된 원형 극장입니다..
이 주위로 로마시대의 건축물, 주택, 대학들이 있으며 최근 비잔틴 양식의 교회도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보통 하루 관광하는 페트라는 저는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하여 도착한 날 오후에 들어오니 시간적인 여유가 많네요!!
우선 알 카즈네를 중심으로 앞쪽길과 협곡만 돌아보기로 합니다..
자발 알쿠부타 산정에 있는 건축물..
안내 지도를 살펴보니 님파에움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알쿠부타 산의 대부분 건축물은 장례식장, 왕실의 무덤군으로 알려져 있는데 장미빛의 바위과 아름다운 조형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모든 유적지의 앞에는 현판에 건립연도 그리고 용도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조그마한 천막들은 베두인들이 음식 그리고 기념품을 파는 상점!!
님파에움의 내부..
큰 건축물에는 내부에도 아름다운 조각들이 있습니다만 어두운 환경으로 사진을 남겨보지는 못합니다..
모든 산 정상에는 이렇게 길이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길만 있는 곳이 아니고 여러가지 조형물이 많이 있습니다..
페트라가 아직 발굴 진행중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앟는 곳도 많군요!!
페트라!!
전 국왕인 후세인 국왕시절 국왕은 심심찮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하네요!!
사우디의 모든 석유를 다준다고 해도 페트라와 바꾸지는 않겠다..
많은 관광객이 찾기는 하지만 페트라 사우디 모든 석유라는 부와 바꾸기에는 황당한 이야기이겠죠??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왕국의 국왕으로 슬픈 메아리로 돌아오는 이야기처럼 저에게는 들리네요!!!
산을 조금만 오르면 이렇게 깊은 협곡으로 변합니다..
시크를 통하지 않고는 페트라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 뭉쳐사는 이 곳 베두인들에게 그리 감동적인 장소로
다가가지를 않았겠지요!!
그런데 이제는 베두인들이 몰려오는 관광객의 영향으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됩니다..
그리고 세상도 변해가고..
페트라의 요르단인들은 다른 곳의 요르단인들만큼 상냥하고 친절하지가 않습니다!!
돈이 사람을 여유없고 피폐하게 만드는 모양..
페트라의 석양이 떨어지고 이제는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해가 떨어지는 곳으로 올랐다가 길을 잃어서 숙소는 해가 깜깜해져서 도착했습니다..
페트라에서 장사하는 베두인들 마을로 돌아가는 길인데 말을 타라고 호객을 많이 하더군요!!
그런데 말 이용료가 50불.. 그냥 달려서 그들보다 빨리 마을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숙소가 있는 와디무사가 너무 멀리 보이네요!! 히치를 했습니다..
친절하게 태워주더니 내리는데 또 탑승료를 요구!!! 와디무사 급격하게 금전 만능주의 사회로 탈 바꿈하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