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5일 토요일
부산 동래역에서 "강산에" 산악회를 따라 전남 화순에 있는
백아산엘 다녀 왔다.
집에서 6: 20분 출발
동래 지하철역 7:40분 도착
8:00 출발 총 28명 탑승
사진들은 옮겨온 것이라 날짜가 일치 하지 않으니 이점 참고 바랍니다.
만덕 터널을 지나 남해 고속 도로로 접어 들었다. 김해 앞을 지나서 창원을 거쳐서
진주 부근에 있는 문산 휴게소에서 20분간 휴식을 취 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유유히 푸르른 자태를 뽐내며 흘러 가는 섬진강을
밑으로 하고 버스는 달려 간다.
순천을 지나 조금 더 가다가 고속도로에서 내려 선다.
1시간 쯤 더 가니까 백아산 아래 아산 목장
입구에 다다랐다.
거기서 백아산 등산로 라는 돌비 앞에서
산악회 기념 촬영을 하다.
11시 10분
드디어 산행을 시작 했다.
가다가 보니 더워서 땀이 나기 시작 한다.
체력이 예전만 못하다.
그래도 처질 순 없다.
앞을 향해 나아 가려지만 힘이 딸린다.
그러기를 1시간 정도 하니 마당 바위에 다다랏다.
마당바위 근처에 크다란 묘지 하나가 있다.
높은 산 꼭대기 마다 묘지가 있다.
상여 메고 올라 가느라 힘들이 많이 들었겠다.
마당바위
(가까이서 보면 저래도 멀리서 바라보며 요새 같이 생겼음,
올라가는 통로도 1군데 밖에 없어서 빨치산 부대 요원들의 주요 요새 이었음)
20분 쯤 더 가다가 싸가지고 간 김밥을 먹었다.
정상 부근에는 근래 내린 눈들이 아직 좀 남아 있었다.
정상 부근에서 주위를 살펴 보니 멋있었다.
백아산은 해발 810 미터로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 었다.
백아산 정상 부근
백아산 정상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정상에서 바라본 암릉
하지만 산세가 좀 험 했다.
백아 (白 峨(거위 아))는 흰 거위를 뜻한다.
산 정상에는 12:30분쯤 도착 했다
산 정상 가까이 바위들이 밑에서 바라 보면 거위가 움직이는 것 같아서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정상을 지나 능선을 타고 가다가 주위의 풍경을 구경하다.
문바위 옆을 지나서
8각정자를 지나서 하산 하니
오후 3시 정도 되었다.
비교적 쉬운 산행이었다.
하지만 백아산은 우리민족 상잔의 뼈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 산이었다.
산아래 6.25 전적 글이 적혀 있었다.
빨치산 !
지긋 지긋한 남쪽의 공산 사상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 이었다.
사상이 틀려 1949년 여순 바란 사건 이후 백아산으로 들어간
빨치산들은 백아산 주위의 동네마다 사람들을 많이 대리고 산으로 들어갔다.
그러니 산으로 간 가족들과 민주 사상을 가진자들,
서로 고발하고 서로 죽이고.
백아산 계곡 곳곳에는 발동기와 정미소가 있어 식량도 자급하고,
무기도 만들고,
그리고 빨치산과 군경과의 전쟁은 1951년 까지 계속 되었다 한다.
그러니 밤마다 내려오는 빨치산 대원과 그 가족들,
군경들과의 전쟁과 학살
1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고,
한번은 군경 합해서 500명 정도가 기습 작전을 하여 정상을 탈환 했으나
빨치산들의 엄청난 반격으로 군경 전부다
전멸 되었다는 기록도 있고,
언젠가는 미군 폭겨기도 격추시켰다는 기록도 있음)
끝내는 오키나와 미공군의 지원을 받은 군인들에 의해 막을 내린가 보았다.
3년 동안 파나는 전쟁이 백아산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것이다.
이제는 모든게 끝나고 백아산 자락에는 소나무들이
그 때의 일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하늘을 향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빨치산 기관지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