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요한 내 가슴에 나비처럼 날아온 햇빛은, 고요한 물결 위에 하얗게 부서지고
바스락바스락 낙엽소리, 언덕 넘어 숲길 헤치고 발걸음 닿는 대로 휘파람 소리
앗 여기가 섬인가 바다인가, 황홀한 호수와 땅의 경계 11.5㎞ 5시간의 이야기 "
0. 들머리 (프롤로그) ; 설렘 가득한 21개 구간
1. 1구간 (두메마을길) ; 길 위의 호수
물은 생명이요 강은 생명의 젖줄이다. 그래서 강이 모이는 호수는 가장 친근한 삶의 쉼터다. 강도 쉬어가고 사람도 그 곁에서 평온을 찾는다. 어찌 보면 인생은 강과 닮았다. 굽이굽이 험난한 물길을 따라 거침없이 내달리다가도 벽에 부딪혀 뒷걸음질 치기도 한다. 잠시 머뭇거리고 있을 때 등 떠밀려 결국엔 종점을 향해 나가는 것도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그래서 우리는 평온한 호숫가에서 짠한 동병상련을 느끼며 위안을 받을지도 모른다. 호수와 더 가까이 하고파서였을까. 사람들의 발길은 호숫가에 길을 냈다. 벗처럼 늘 곁에 두고 함께 하고픈 소박한 마음들이 모인 결과일 것이리라. 대청호 오백리길도 마찬가지다. 대청호 자체가 인위적인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호수라서, 그래서 아픔이 서려 있기도 하지만 지금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스토리를 담은 자연 그 자체가 됐다.
[영상] 1. 대청댐 물문화관 ~ 전망쉼터 ~ 호수와 땅의 경계 ~ 비상여수로(로하스가족공원)
◆길고 긴 여정의 시작
금강. 우리나라 4대강의 하나다. 전북 장수군 신무산 뜬봉샘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거슬러 오르며 크고 작은 지류들을 흡수한 뒤 대청호에 모인다. 금강의 길이가 398㎞인 걸 감안하면 대청호는 딱 중간쯤에 펼쳐져 있다. 물길도 쉬어가기 딱 좋은 위치다. 그래서인지 주변 환경도 수려하다. 대통령 전용 별장(청남대)이 마련됐을 정도니 말이다. 혹자는 대청호를 보며 ‘내륙에 옮겨놓은 한려수도’라고 말한다. 호수 규모도 엄청나다. 담수면적으로 보나 담수용량으로 보나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 호수를 배경으로 한 길로 치면 대청호 오백리길은 ‘전국 유일’이라고 자랑할 만 하다. 생태·환경 차원에서도 그렇고 호숫가를 삥 돌며 사색에 잠겨볼 여유를 선사하는 곳은 이곳만한 게 없다는 얘기다. 10리가 대략 4㎞이니 가야 할 길은 200㎞. 그 길의 출발점에 드디어 섰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 고요한 물결에 햇빛이 하얗게 부서진다. 눈이 부실 정도다. 호수는 거울이 돼 산도 비춘다. . |
◆들머리 … 신발 끈 조여 매고
여정의 시작은 역시 대청호를 있게 한 대청댐이다. 1980년 완공된 이 댐은 대전과 청주를 잇는다고 해서 대청댐이라 이름 붙여졌다. 길이 495m, 높이 72m의 대청댐이 뿜어내는 웅장함을 뒤로하고 대청댐 물문화관으로 향한다. 대청댐과 맞닿은 대청호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로 여기가 대청호 오백리길 1구간(11.5㎞)의 시작이다.
‘1구간 들머리 200m’라는 표지판을 바라보며 신발 끈을 조여 맨다. 살짝 오르막을 탄다. 바스락바스락 낙엽 부서지는 소리가 경쾌하다. 설레는 마음에 리듬이 더해진다. 숨이 조금 차오를 무렵, 전망 좋은 곳이 보인다. 역시 경치는 내려다보는 게 제맛이다. 겨울이라 스산한 감이 없지 않지만 마음이 차분해진다. 고요한 물결에 햇빛이 하얗게 부서진다. 눈이 부실 정도다. 호수는 거울이 돼 산도 비춘다. 울긋불긋 단풍이면 금상첨화겠지만 지금은 겨울이다. 그래도 나름 운치가 있다.
전망 좋은 곳에서 다시 내리막을 타면 금세 또 다른 그림 같은 풍경을 만나게 된다. 호수와 마주한 비교적 넓은 터에 나무 한 그루 서 있고 그 아래 누군가 벤치를 놨다. 비슷한 영화의 한 장면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또 다시 발길을 붙잡는다. 이런 데는 한 번 앉아 주는 게 예의다. 그래야 이 벤치가 존재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역시 그랬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장관이다. 확 트인 시야가 도심 일상에 찌든 마음까지 깨끗하게 씻어준다.
▲ 물문화관에서 출발, 30여 분 걸었을까, 전망 좋은 넓은 쉼터를 만난다. 호수를 마주한 곳에 나무 한 그루 서 있고 그 아래 누군가 벤치를 놨다. 또 다시 발길을 붙잡는다. 이런 데는 한 번 앉아 주는 게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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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쉼터 로하스가족공원
안구정화 제대로 하고 다시 걷는다. 호수 경치 감상에 지루할 틈이 없다. 그런데 뜻밖에 잘 정돈된 공원과 마주한다. 최근 완공된 보조여수로에 딸린 로하스가족공원이다. 개장하면 1박2일 캠핑을 즐기고 아침에 상쾌하게 대청호반길을 걸을 수 있는 여행명소로 자리잡을 게 분명하다. 아쉽지만 캠핑 생각은 일단 접고 목적지를 향해 다시 출발. 다시 산길이다.
공식코스는 그냥 산 정상 부분에서 내려와 보조여수로로 직행하도록 돼 있지만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호수와 최대한 가까이서 걸어볼 요량으로 그냥 직진. 걷다보니 청남대도 눈에 들어온다. 역시나 쉽게 도달하기 힘든 가파른 내리막을 만나게 되는데 일단 내려가기만 하면 여기서부턴 호수와 땅의 경계를 걷는 묘미를 즐길 수 있다. 물론 이 코스는 공식적으론 ‘비추’다. 이유는 단 하나, 위험하다.
▲ 1시간 20여 분 흐른 시각, 일행은 급한 내리막 낙엽길을 밟고 호수와 땅의 경계에 이른다. 황홀한 땅끝의 풍경을 감상하고 아슬아슬 걷는 묘미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이 코스는 공식적으론 ‘비추’다. 이유는 단 하나, 위험하다.
▲ 흔한 대전풍경.jpg.- 2시간 40분 경과. 삼정동 강촌마을. 파란 호수와 어우러져 흐늘거리는 갈대와 물억새 밭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자연은 그냥 아름답다. |
◆1구간 재미 더하는 생태공원
보조여수로를 건너면 마을마다 아기자기하게 조성된 생태공원들이 기다린다. 마을이야기도 함께 접할 수 있다. 먼저 이촌마을이 나오는데 이곳은 행정구역상 대전시 대덕구 삼정동이다. 삼정동은 강촌, 민촌, 이촌 이렇게 3씨 성이 모여 살았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예전엔 산전골로 불리다 ‘이곳은 세 명의 정승이 나올 명당’이라는 어느 노승의 예언에 따라 삼정골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아무튼 이촌마을에도, 강촌마을에도 생태습지가 조성돼 있다. 물론 걷는 사람에겐 파란 호수와 어우러져 흐늘거리는 갈대와 물억새 밭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자연은 그냥 아름답다.
삼정동 삼거리, 이곳부턴 도로와 접한 데크 길이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면 갈전동을 만난다. 갈대가 무성한 동네라는 의미로 ‘갈밭’ 또는 ‘갈전’이라 불렸는데 일설엔 칡밭이 지천에 덮여있어 칡갈(葛)자를 써 ‘갈전(葛田)’이라 했다고도 한다.
1구간의 끝이 보이는 지점.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여수바위 쪽으로 산을 탈 것인지 아니면 우회로를 택할 것인지 말이다. 다만 우회로는 평지길이지만 사유지를 끼고 지나야 해서 호수 수위가 높아지면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다. 이번엔 우회로를 택했다. 어렵사리 호수와 땅의 경계를 곡예하듯 지날 수 있었다.
다시 산기슭을 따라 걷는다. 팽나무, 굴피나무, 밤나무, 감태나무, 상수리나무, 산초나무, 노린재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숲에서 조화를 이룬다. 숲에서 나오자 다시 생태공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현동 두메마을 거대억새습지다. 1구간의 종점이자 2구간의 시작점이다.
쉬엄쉬엄 5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대청호 오백리길 1구간이라는 의미를 감안하면 이 정도면 맛보기로 충분하다. 이제 ‘2구간 찬샘마을 1㎞’라고 쓰인 표지판이 우리를 안내한다. 일단 이현동 두메마을부터 둘러보고 다시 출발하기로 한다.
글=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사진=김동직&이승훈 기자
☞ 아래 GPS트랙(경로)은 모바일에서는 보기가 조금 불편한데요, 경로 및 고도, 시간 등을 보실 분들은 PC 웹페이지에서 크게 보시기 바랍니다. - ^^
[영상] 2. 비상여수로~삼정동이촌마을~강촌마을~갈전동~이현동(두레마을)
#. 발길 붙잡는 ‘그 곳’
대청호 오백리길 1구간은 대청댐 물문화관→숫고개→미호동산성→대청댐 보조여수로→삼정동(이촌·강촌마을)→민평기 가옥→갈전동→이현동 두메마을(거대억새습지)로 이어진다. 이 요소요소가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 1구간의 쉼터이자 포토존이다.
◆ 대청댐 물문화관
수자원과 물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한국수자원공사(K-water)가 조성한 복합문화공간이다. 기존 대청댐 물홍보관을 리모델링해 2004년 새롭게 문을 열었다. 1전시실은 물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대청댐의 기능과 역할을 설명하는 물관, 2전시실은 금강에 사는 수중생물과 서식 환경을 소개하는 생태관, 3전시실은 댐 건설로 사라진 대청호 주변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한 지역문화관으로 꾸며져 있다. 이밖에 영상실, 댐자료실, 인포센터, 전망대, 기획전시실 등도 마련돼 있다.
◆ 대청댐 보조여수로
방류능력 증대로 대청댐 운용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조댐이다. 꼬박 10년이 걸려 최근 완공됐다. 댐 길이는 280m, 높이는 56m다. 주변엔 4만 6659㎡ 규모의 로하스가족공원도 함께 마련됐다. 오토캠핑장(40면)·카라반(10면), 풋살장(2면), 놀이터(2곳), 생태공원 등을 갖추고 있다. 전체적인 보조여수로 건립 사업엔 1981억 원이 투입됐다.
◆ 삼정생태공원(강촌)
7697㎡ 규모의 생태공원이다. 갈대·억새밭이 함께 어우러져 경관이 수려하다. 차를 타고 호반도로를 달리다가도 일단 정지할 수밖에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 민평기 가옥
조선 말기 고종황제의 승지를 지낸 민후식이 여주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오면서 마련된 집이다. 여흥 민씨 삼랑공파 19대 장손인 민후식 선생부터 22대 민평기 선생까지 마을을 지켰다. 이후 댐 건설로 이주가 시작되면서 이 가옥은 원형을 유지한 채 산기슭 위로 올라왔다.
◆ 삼정동 비점오염저감시설
농경지에 남아 있는 비료와 농약, 가축배설물, 빗물에 섞인 대기오염물질, 도로 퇴적물 등에 의해 발생하는 수질오염물질을 자연 정화하는 시설이다. 이곳에 모인 물은 침강지-깊은습지-지표흐름습지-생태여과지를 거쳐 대청호로 방류된다. 노랑꽃창포, 갈대, 물억새 등이 정화 역할을 한다.
◆ 이현동 거대억새습지
2만 6186㎡ 규모의 습지다. 미나리·애기부들·노랑꽃창포 등 수생식물학습장과 1만 2116㎡의 거대 물억새 습지, 산책로, 광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시내버스 이용할 땐
1. 1구간 들머리(출발지) - 대청댐 가는 대전시내버스(순환버스) 72번, 73번.
http://traffic.daejeon.go.kr/map/busInfo/searchRoute.do?routeNumber=72
http://traffic.daejeon.go.kr/map/busInfo/searchRoute.do?routeNumber=73
2. 1구간 날머리(도착지) - 이현동 가는 대전시내버스(순환버스) 71번.
http://traffic.daejeon.go.kr/map/busInfo/searchRoute.do?routeNumber=71
[출처] 금강일보(http://www.gg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10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