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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2005년 8.12~15(3박4일) 금요일 출발
일정
제1일-10:00 김해공항 국제선 약국앞집결 12:00 부산출발/ 상해도
착. 상해외탄및 남경로 관광 석식후 황산으로 이동(국내선)
황산 천자호텔 투숙/ 자유시간
제2일-호텔조식후 황산 풍경구로 이동 등산
운곡사-입승정-선인번상-선인지로-피봉-백아령-흑호성-
시신봉-몽필생화-사자관해-배운정-비래석-광명정-청해-
오어봉-연화봉
호텔투숙/ 자유시간(북해호텔)
제3일-옥병루 일출 감상후 조식
케이블카 하산
황산 시내로 귀환 호수와 섬의 도시 서호 유람관광.
운서죽경,오산 청하방 역사거리,성황각 관광 석식후
상해로이동 호텔투숙
제4일-호텔조식후 상해시내 관광
상해 출발/ 부산도착후 안녕히
상기 일정 및 조건은 항공과 현지사정에 의하여 변경 될수 있습니다.
요금:비자대및 모든경비 포함 78만원 (단 항공료가 인상될경우 변동될수있음)
상기와 같은 내용으로 중국 황산 산행 계획을 잡고 낙사모는 2005년 여름 해외 나들이를 갔다.
가기 전 다소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그나름대로 서로 이해하고 조율하여 김해 공항에 다들 집결을 했다.
김정호회장님,총무님
조종래고문님과 조성래총무 내외.
낙동의 호프 이희중 내외및 울 가족 4명.
서선원,마사장,이호기사장님과 박춘자 누부등으로 낙사모 회원및 가족 15명
그리고 캐스트회원 9명으로 구성되어 총 24명은 출국 심사를 마치고 중국 상해에 도착했다.
요즈음 말로만 들었던 국제적인 상업도시 상해의 모습에 경악스럽게 마저 느껴진다.
요즈음 외국 투자가 자유로와 눈 부시게 발전하고 성장하여 "세계 4대 도시"라고 일려진다고 한다.
우리 서울처럼 한강을 두고 강북,강남으로 나누어지듯이 강줄기를 두고 신도시,구도시로 구별이된다고 한다.
황포강을 두고 강서쪽으론 일찍이 유럽 문화가 들어와 유럽풍 건물이 다채롭게 서 있었고.
강동쪽으론 쭉쭉 솟은 현대 빌딩가 현성되고 동양에서 제일 높다는 동방 철탑이 멋들어지게 세워져 있는것이 이색적이다.
무더운 뙤약볕에 목덜미가 따갑게 느껴진다.
그나마 강바람이 간간히 불어댄다. 큰배들이 많은 화물을 실어 나르듯 많이 오고 간다.
가짜 로랙서 시계 "5개 만원"이라고 길거리에서 몇몇 아줌마가 소리 친다.
그런 상해의 풍경을 대충 사진 찍고 곧장 차량으로 이동이다.
고가도로 타고 고속도로로 들어서서 항산으로 이동을 했다.
상해가 넓다고 느껴질 만큼 온통 사방으론 건물과 지평선이다.
한참을 지루하게 몇 시간을 달리니 서편 하늘가로 석양이 진다.
붉게 물드는 서편 하늘가로 간간히 산이 보인다.
한국교표 2세인 최림이라는 가이드 말로는 이곳은 별장지역이라 한다.
다들 차밭을 운영하여 부자라 한다.
습기가 많아 일층은 창고로 쓰고 2,3층에 주거 공간이라 한다.
맨 꼭대기 건물에 마치 탑은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은 조상을 모시는 남골당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늦은 시간에 항주에 있는 송성 가무학교가 있는 곳에 도착하여 송성 가무쇼 공연을 관람을 했다.
규모가 제법 큰 무대에 사람들이 많다.
장내 사람들 열기땜에 온몸이 땀에 배는듯 싶다.
남송 시대에 황제의 생일 때 축하 공연으로 이루어진 가무들을 간단히 재연하는 내용이고
끝으로 금나라와 전쟁 상황을 보여 주며 그 당시 뛰어 난 장군을 기리는 공연이라 마사장이 일러 준다.
공연 중간에 대포소리와 비 내리는 장면은 실감이 나는듯 했다.
한 시간 정도의 공연 쇼를 보고 숙소에 도착하여 첫밤을 보냈다.
빠듯한 일정에 정신이 없는듯 했다.
점심을 먹었는지? 어디서 저녁을 먹어는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이곳은 시차가 한시간 차이가 나서 한시간을 더 움직이니 피곤이 더 한 듯 싶다.
아침 일찍 모닝 콜하여 로비에 나오니 울 총무님은 이사장님이 우짠일이고?하며 신기한듯 날 쳐다 본다.
조금 일찍 일었나 움직이니 여유롭운 시간이 있었다.
앞 가게에서 중국돈 100원 주고 가죽 구두하나 하고 잔돈이 없어 깍지 못했다고 투털 거리니
울 마눌 잘 했다 한다.
점방 아저씨가 장애인이라 그냥 동냥 했다고 생각해라 한다.
울 마누라 마음이 착한지? 얼빵한지" 모르겠지만 그런 마음씨가 좋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 마누라를 쳐다보니 아침부터 기분이 상쾌해진다.
항주 호텔 앞 택시
버스로 이동하여 황산 풍경구에 도착하니 매정하게 비가 쏟아 진다.
차츰 차츰 빗방울이 굵어진다.
A조,B조로 나누어 A조는 도보,B조는 케이블카로 이동이다.
각자 우비를 입고 잘 다듬어진 돌게단으로 오르니 기분이 묘했다.
사진으로 보는 황산의 풍경이 눈앞에서 아물아물하게 거린다.
흔히들 황산의 삼기라고 하면 기송,기암,운해를 든다 한다.
거기에 온천을 추가하면 사절이라고 부르기기도 한단다.
절묘한 기암절벽과 소나무들이 서 있는 사이로 구름들이 시시각각 움직이는 풍경이 좋다는데
기대가 커면는 실망도 크듯이 오늘 날씨가 우중이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올라서니
야속한 빗줄기는 그치기는 커녕 더욱 더 굵어지는듯 했다.
그래도 왼쪽 능성편으론 간간히 기암 능성이 희미하게나마 보였다.
디카가 비에 젖든 말든그런 풍경들이 보일 때마다 몇번이나 찍어 보았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꼬? 무슨 중국인들이 떼거리로 몰려 와 좁은 돌계단엔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이제는 중국도 묵고 살만 한지? 자체 관광객들도 많다 한다.
그 와중에 짐 나르는 짐꾼들이 대나무 대로 만든 짐대로 양쪽에 짐을 달아 나르고 있어
좁은 게단길에서 그들과 마주치면 어쩔 수 없이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는 정체다.
아이들과 집사람은 케이블카로 12시30분에 오른다하여 그 시간을 맟추려고 한번도 않 쉬고
6.5KM되는 오름길을 올라 백아성에 도착하니 그곳에도 인산인해다.
절묘한 풍경은 운무에 가려져 온데 간데 없고 짙은 구름으로 인하여 앞이 안 보일 정도였다.
몇곳 전망대를 둘러 보았도 물반 고기반이 아니라 빗반 구름반이였다.
집사람과 아이들이 올때가 지나다 싶어 한참이나 기다려도 깜깜 무소식이다.
낙동 후미조도 가물치 코구멍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상다 싶어 시계를 보니 한국시간으로 12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간이였다.
시차가 한시간이라는것을 깜박하여 혼자 오돌갑을 든것 같았다.
한참 있다가 그곳에서 가이드를 만나 처마 밑에 자리 잡아 지키고 있으니
객지라 배도 고프고 온통 젖어 이내 냉기가 돌았다.
옆에 있는 중국여자가 비스켓을 먹고 있어 "하나 달라"고 하니 들은척 만척하며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아이고! 옛말에 댄년이라 하더니 정말로 중국인들이 댕보라는 말이 실감이 났었다.
특히 중국인들이 몇몇 모이면 어찌나 시끄러운지 정말로 짜증이 날 정도였다.
시간이 흘러 낙동회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가져온 비상용 간식으로 허기를 채웠고
울 낙동 산우들도 중국인들이 째짤 거리는 소리에 다들 한마디씩 한다.
나는 장난기로 큰 소리로 시끄럽다! 조용히 해라!라고 큰 소리를 치니 회원들은 죽겠다고 웃어댄다.
한시간 40분 이상을 그곳에서 오똘오똘 떨며 기다려 합세하여 이동하려니 먼저 갔다는
마사장이 행방불명이다.
그곳에서 광명정이라는곳으로 가야하는데…….북해 산장으로 직진 한 모양이다.
이곳 백아령에서 광명정까지는 2KM이고 북해 산장까지는 1KM라 새켜져 있었는데……….
다들 걱정을 한다.
다른것은 걱정이 되지 않았는데 점심을 광명정에서 하니 마사장이 점심을 어찌 할지 걱정이 되었다.
광명정에서 조금 내러서니 식당이 나왔다.
그곳에도 사람이 많다.
올라 올데 봐던 짐꾼들이 나르는 짐들은 이곳 산장이나 식당에서 사용 할 음식재료들 인것 같았다.
이곳 메뉴도 현지 식이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먹었지만 이제는 니글거리는 기름기에 이골이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아직까진 황산에는 한국 사람들이 삐대지 않아 아직까진 한국사람에겐 입맛이 맞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감자와 콩은 그런대로 입맛에 맞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주와 배갈로 반주하며 산우들이 가져온 고추장으로 몇입하니 그런대로 볼록하다.
희중이는 내내 시큰둥하다.
음식이 영 아니 올시다. 표정이다.
입을 꽉 다문 체 말이 없다.
그리 늦은 점심을 끝내고 다시 광명정으로 올라 예초에 갈 연화봉을 포기하고 비래석으로 이동했다.
황산에서 제일 높은 봉이라는 연화봉은 1864M고지란다.
이곳 광명정과 마주 보이는 곳인고 전망이 제일 좋은 곳이라는데……. 오늘 같은 날은 가나 마나다 하여
부득히 설악산 흔들 바위 같다는 비래석으로 발길을 돌렸다.
뽀쪽하게 솟은 바위인데 중간에 풍화로 절개 되어 있다 한다.
좁은 끝 길로 올라서니 가는 철 파이프로 난간이 되어있다.
뒤쪽으로 돌아 들어서니 아래는 아찔한 절벽이다.
총무님은 바위가 빗에 젖어 있음으로서 갓쪽 끝으로 가지말라 한다.
난간을 잡고 아래로 내려다 보니 맑은 날이면 조망이 끝 내 줄 곳이데…….못내 아쉬웠다.
그리 내러와 몇 곳 전망대를 거치며 걸어오니 온통 구름속이다.
중국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59가지로 이루어진 소나무를 조망하고
서해 산장을 지나 내러서니 북해 산장이다.
황산 정상부에 이곳 저곳 돌길로 이루어진 코스가 산책하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곳에서 여유롭게 조망하지 못한 아쉬움이 날씨가 아니라 유독 짧은 일정이였다.
여러가지 이유로 우리들은 짧은 일정에 벗어 나지 못하고…….
이를 극복하여야 만이 여행 다운 진정한 여행을 할 수 있을텐데…….
남들만큼 벌리 놓은 돈도 없고…….아이들도 어리고…. 그렇다고 백수도 아니고……..
또 다시 한심스러운 마음에 부질 없이 넘 탓만 해 본다.
오늘 황산 일정은 이곳에서 끝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로비에 들어서자 말자 마사장! 마사장! 소리치며 불어보니 마사장은 제법 취기 있는 얼굴이 붉그래 하다.
조금 겸연적인 표정으로 백아령 이후 횡설 수설 한다.
그래도 다들 마사장과 잠시 이산 가족이 되고 재회하니 반갑다고 한다.
올라가 간단히 샤워하고 니기한 현지식으로 저녁하고 나니 제법 피곤 한듯 했다.
모처럼 이른 저녁에 아량곳 하지 않고 술 파티다.
여기 저기 배갈이 돈다.
그것도 모자라 싱글로 참석한 홀애비 방에서는 밤늦게까지 술판이 이어진다.
오늘 그리 많이 걷지는 않았지만 계단길이라 피곤한듯 했다.
그래도 공기가 좋아 내일이면 몸이 빨리 풀리겠지라는 느낌을 가지며 꿈나라로 갔다.
다음날 일정도 빡빡하여 한시간이라도 빨리 하산하려면 서둘려지 않을 수없어 새벽부터 기상이다.
북해 산장 바로 위부분에 있는 일출맞이 터에 5여분거리로 오르니 전망대는 멋진데… 앞이 보이지 않았다.
속으로 아이 시팔! 좆도 테라 마이신이다하며 산장으로 내려와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하며
케이블카 승차장으로 가니 이른 시간이라 대기자들이 없다.
한 40명 탈 수 있는 케이블카는 조망을 살피수 있도록 사면이 유리로 되어 시원하고 삼빡한 느낌이 온다.
이윽코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시원스럽게 하강한다.
온통 구름 속이라 좀 그렇 했지만 차츰차츰 고도가 떨어지더니 주변 조망이 보인다.
기암절벽과 돌 틈사이로 자생하는 소나무들이 마치 신들이 분재 한 듯한 경관이 보인다.
우리들은 처음으로 우악! 우악! 소리를 친다.
황산의 경관을 바라보면 다들 자연 스레 우악! 우악! 한다는데…….
오늘 조망은 별로지만 아쉬움을 달래듯 낙동 회원들은 소리를 질려보는듯 하다.
그래도 이 경관마저 못보고 가면 낙동 황산 산행의 이미지는 영영 아니 올시다라고 했을것인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이든다.
내내 아쉬운 마음을 두고 황산 풍경소에 도착하여 단체 사진 한방하고 항주로 이동했다.
오늘 따라 버스 이동길이 유난스럽게도 지루한듯 했다.
자다가 마시다가 또 자다가를 몇번이고 하니 점심시간이다.
가까운것 같아도 괘나 먼 길이다.
중국땅이 넓기는 넓은 것 같다.
이정도 거리는 그들한데 마치 앞 동네 가는 이미지라 한다.
중국말로 "하늘엔 극락이고 지상에는 항주가 있다"는 말이 있다는 항주는 중국의 7대 도시에 속하며
"지상낙원"이라 불린다 한다.
점심 후 항주 옛거리 구경이라 코스라 그곳에 들어서니 별로라는 느낌이 온다.
옛 건물 몇동 있고 상점들이 조금 있는 그런 거리였다.
골동품과 관광상품을 파는 그런 거리였다.
그런 상품이 눈에 들어 오는것이 없다.
다기 그릇 한셋트가 울 마눌 마음을 사로 잡는듯 했는데 가격이 제법 비싸다.
말이 통하지 않아 의아하게 생각 했는데 한셋트가 큰 다기,중간다기,차잔등으로 하여 10개쯤 되었다.
한국돈으로 600000만원쯤하여 울 마눌은 기겁을 한다.
이곳도 여전히 더웠다. 뙤약볕에 습도가 높았다.
녹두 아이스케기로 열기를 식히며 사찰 영은사로 이동을 했다.
영은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절내로 들어서니 울창 숲길이 있어 그나마 시원한 느낌이 온다.
서형은 팽나무라 일러 준다.
입구에 일선천이라는 동굴에는 여러 불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동굴 안으로 사람들이 많이들 들어가고 나오고 한다.
그안에는 많은 불상들이 있을 것 같다.
우리 가이드는 그곳에는 안중에도 없다.
곧장 영은사 대웅전으로 직행이다.
대웅전 입구에 들어서니 운림선사라 새켜져 있고 매캐한 향 냄새가 찌는듯한 더위와 함께 진동을 한다.
서형은 "이놈들 더운데 무슨 불장난이고?" 소리친다.
대웅전 안에는 목조로 만들어진 큰 석가 여래 불상이 우리를 압도하는듯 했다.
높이가 28,4M라 하고 귀 길이만 1.3M라 한다.
석가 여래 불상 뒤편으론 물신인 큰고기를 다루는 불상이 서 있었는데 그 규모도 어마어마 했다.
여러가지 조각이 되어 있는데 가이드가 뮈라 뮈라 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신라 무슨 스님이 지옥을 가보지 않고는 열반을 하기 않겠다고 한 스님이라 하는것 같았는데……아리송하다.
그곳을 나와 500개의 스님상이 있는곳으로 이동을 하였는데
자세히 보면 그중에 우리들 얼굴과 비슷한 상이 분명히 있다 한다.
아람 엄마는 조성래와 닮은 불상이다라며 소리쳐서 쳐다보니 영판 성래 얼굴과 닯은 것 같았다.
그것을 계기로 하여 한참이나 농담하며 영은사 대웅전을 관람을 마쳤다.
항주에는 용정녹차가 유명하고 대부분 그곳 농장인 부농이라 한다.
초벌 70%는 관에 상납하고 나머지는 이곳에서 팔아 부유롭게 생활 한다고 한다.
타 지방인들은 절대로 유입되어 살지 못한다고 한다.
차 판매장에 들어서니 제법 아기자기한 집이다.
먼저 녹차 한잔씩 서비스하였는데 그맛이 마치 녹두 콩코물같은 향기가 상큼하게 났었다.
교포 2세 남자가 용정 녹차 효력에 관하여 시원스럽게 설명한다.
그말 대로라면 그곳 녹차가 만병 통치약인것 같다.
그래서 농담으로 "이곳에는 병원이 없는냐"고 물으니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당뇨,기관지,암환자는 없다고 한다.
가격은 그런대로 싼 편인듯 하다.
그곳에서 간단히 쇼핑하고 서호로 이동 했다.
유람선 시간이 인박하다하여 다들 구보로 달음질하여 선착창에 도착하여 배 머리에 자리 잡았다.
호숫가라 그런대로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배머리 앞쪽으론 항주 빌딩가 보인다.
작은 배,큰배들이 제법 넓은 호수가를 거닐듯 움직이고 있다.
한바퀴 도는데 한시간쯤 걸리는 하였으며 작은섬 세개에 팔각탑 같은 정자가 다채롭게 보인다.
아름다운 여인 서시(西施)를 닮은 서호(西湖 ; 시후)
서호는 항주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유명한 미인 서시(西施)를 기념하는 의미로 '서자호(西子湖)'라고도 불린다. 서시에 대해서는 실제 인물인지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로는 월나라 왕인 구천(勾踐)이 오나라의 왕 부차(夫差)에게 바쳤던 인물로, 결국은 구천의 계략대로 오나라왕 부차가 서시의 미모에 빠져 나라일을 돌보지 않게 되었고, 오나라가 멸망에 이르게 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역사상 양귀비 등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미인으로 꼽힌다.
서호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호수에는 소영주, 호심정, 완공돈 등 3개의 섬이 떠있다. 호수의 총 면적은 60.8㎢이며, 그 중 수역의 면적은 5.66㎢이다. 서호는 안개가 끼었을 때나, 달 밝은 밤 또는 일출 때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준다.
서호 안과 근처에 위치한 유명한 명소 10가지를 서호 10경(西湖 10景)이라 부르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단교잔설(斷橋殘雪), 평호추월(平湖秋月), 소제춘요(蘇堤春曜), 곡원풍하(曲院風荷), 화항관어(花港觀魚)등 이다. 단교잔설은 중국의 오래된 신화고사인 백사전(白蛇傳)에서 백소정과 허선이 만난 무대가 된 곳으로 옛날에는 다리 중간에 문이 서있었다고 한다. 문 위에는 처마가 얹혀있었는데 눈이내리면 눈이 처마위로 쌓여 멀리서 바라보면 눈 쌓인 다리가 문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것 같이 보여 단교(斷橋)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평호추월은 넓이 400평방미터의 정원으로 호수 수면과 높이가 같아 평호(平湖)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소제춘요는 소동파가 항주에 지사로 부임했을때 쌓은 둑(제방)으로 사시사철 모두 아름답지만 이름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 봄날 새벽의 경치가 가장 절경이다. 곡원풍하는 소제춘요의 북서에 펼쳐진 풍경으로 여름에 연꽃이 피어 특히 아름답다. 화항관어는 봄에 모란꽃을 보며 용정차를 마실 수 있는 운치있는 공원으로 누각 등이 세워져 있으며 수많은 모란이 피어있는 목단원(牧丹園)이 유명하다.
~따옴글~
오늘도 바쁜 일정이라 지체 할 시간이 없다.
또 다시 상해로 이동이다.
상해시 근방에 있는 실크 공장 견학하고 쇼핑한다고 한다.
누에고치를 삶아 실을 뽑는듯한 샘플 기계 장치를 보여주며 곧장 이불 쇼핑이다.
실크 이불은 가볍고 포근한 느낌이 든다.
하나 사고 싶어지만 울 마눌이 만류한다.
2층 식당에서 저녁준비가 되어 있어 올라가니 식당이 제법 크다.
이번 여행중에 한국 입맛에 맞춘듯 했다.
김치.깍두기,고추장,상추도 있다.
오늘 저녁이 마지막이라 다들 배갈 일병씩하며 분위기 높인다.
간만해 볼록하게 묵고 발마사지코스로 이동했다.
20명이 한꺼반에 한방으로 들어가 양쪽으로 맞주보며 누위니 다들 농담을 한다.
그 와중에 강사장이 풍시마하니 춘자 누부는 냄새에 죽겠다고 강사장더러 벌금 내라 하신다.
나는 풍시마 한 사람이 20씩 받아야 되니 다들 20씩 주어야 된다고 하니 다들 하하하하 웃어댄다.
울 아들 진우는 처음 받아보는 발마시지인데도 표정이 담담하다.
특히,총무님,울마눌은 영방 간지럽다고 소리친다.
내숭조가 싶다. 좋으면 좋다하지?
엄살인가? 괘감에 환희적인 소리가?
상해 발마사지는 소문이 나 있다는데 그런대로 발바닥 혈을 훑어주니 시원감이 온다.
정확하게 한시간이다. 끝날 무렵에는 아쉬움이 돈다.
희중이와 난 풀코스로 한번 더 하자하니 다들 뮈라 뮈라 한다.
그리 단체 마사지를 끝내고 바로 옆집에 참깨 쇼핑이다.
다들 직,간접 경험들이 있는지 5KG씩 산다.
참기름 짜면 7-8병 나온다 한다.
상급이 울나라 돈으로 2만원이다.
이것으로 낙사모 황산 여행 일정을 마쳤다.
늘 그렇듯이 아쉬움도 야속함도 더러 있었고 다소 불편한 점도 있지만….
무엇 보다도 여유없는 빠듯한 일정에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들의 현실이 제일 아쉬움이 크다.
여행이란 돈 많다 되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간 많다고 되는것이 아니라 생각이 든다.
돈 많고 건강 없으면 허방이고……. 그렇다고 건강하고 돈 없으면 안되고…….
무엇보다도 "건강과 여행의 의식"이라 생각이든다.
즉 ,끝 없는 열정만이 이것을 해결 할수 있다고 생각이든다.
간간히 산능성에 붙혀진 시그날이 오늘도 생각이 난다.
갈길은 먼데…. 시간은 없고….
갈 곳은 많은데….. 인생은 짧고….라는 말이 문득 떠 오른다.
우리 모두들 삶이 일회적인 인생사인데……….
청산리 벽계수도 일도창해하면 끝이고…….
만사 다 일장춘몽이고…….
공수거 공수래라는 말도 있듯이
내몸을 어디든지 갈 수 있도록 적당히 운동하며
희미하게나마 틈만 있으면 언제든지
전국 방방곡곡,세계 도처 관광지를 둘러보고 하늘 나라 구천으로 가고 싶다.
2005년 08월12-13,14,15일 황산 여행을 마치며 이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