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저자 문제 ..........................................
A. 비평적 입장 ......................................
B. 전통적 입장 ......................................
Ⅳ. 사 40장-55장에 나타난 야웨의 종 연구 ...............
A. 종의 의미 ........................................
1. 일반적 종의 의미 .............................
2. 야웨의 종의 의미 .............................
B. 야웨의 종에 대한 견해 ............................
1. 개인설 .......................................
2. 단체설 .......................................
3. 단체 인격 ....................................
4. 구조주의의 해석 ..............................
C. 야웨 종의 노래 ...................................
1. 첫번째 노래 ..................................
2. 두번째 노래 ..................................
3. 세번째 노래 ..................................
4. 네번째 노래 ..................................
D. 야웨의 종과 그리스도 .............................
Ⅴ. 결 론 .........................................
참 고 문 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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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 론
A. 문제의 제기
이스라엘의 종교 사상사에서 예언자들의 종교사상을 제거한다면 구약 종교는 생명력이 없는 외형적 종교만이 남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의 종교적인 민족으로 세계문화에 끼친 공헌이 있다면 그들의 정신적 유산을 시대에 알맞게 해석하고 전승하여 가장 예민한 종교적 통찰력을 가지고 자기 민족을 지도한 예언자들의 종교사상이라고 하겠다. 저들 예언자는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철저히 인식하여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하나님의 뜻하시는 메세지를 예리하고 용감하게 전달하는데 전심을 다하였다.
기원전 8세기부터 시작한 윤리적 예언활동은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예레미야 등 예언자들로 인해서 점차 성숙해 갔으며, 자기 민족의 패망과 고난의 역사와 더불어 시대적 요청의 소명을 받아 야웨 종교의 핵심을 바르게 전달하고, 자기 민족의 역사를 바로 이해시키고 바른 입장에 서도록 인도해 나갔다. 김찬국, “시인 예언자 제2이사야”, 󰡔기독교사상󰡕, 1960,4. p.90.
그들의 활동이 중요한 점은 그들이 추상적인 관념의 세계에 안주했거나 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진공속에 존재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민족의 모진 시련의 현장에 동참했던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종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종교외 기독교󰡕,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1985), p.98.
이러한 예언자들 가운데 단연 독보적인 우위를 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사야일 것이다. 폰라드(G. von Rad)는 이사야의 선포야말로 전구약성서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적 현상이며, 그의 정신적 생동성, 특히 그의 표상세계의 광활한 폭에는 다른 어떤 예언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 했다. 그의 표현은 폐부를 찌르는 책망의 말에서부터 그 정열을 장중한 말로 담은 텍스트들에 이르기까지 신탁의 뭉쳐진 간결성에서부터 장엄하게 울려퍼지는 말들의 성찬을 이루는 찬양에 이르기까지 광범하다. G.von Rad, 󰡔구약성서신학Ⅱ󰡕, 허혁 역, (왜관: 분도출판사, 1977), p.146.
이사야서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운데 특히 이사야40-55장에 관한 연구는 구약성서 연구분야에서 중요한 관심사로 되어왔다. 이 부분은 히브리 종교문학이 남긴 가장 고상한 문학적, 사상적 금자탑이라고 평가된다. 대부분의 비평적 입장에 있는 학자들은 이 부분의 저자를 역사적 배경, 문체, 신학적인 견지의 차이등을 이유로 예루살렘에 살앗고 그곳에서 에언활동을 했던 이사야와 구별하여, 바벨론에서 예언했고 활동을 전개해 나간 무명의 예언자 “제2이사야”라고 부른다. 파이퍼(R.H. Pfeiffer)는 이 부분의 시문학을 비유해서 평하기를 “욥기의 저자가 히브리시의 셰익스피어라고 하면 제2이사야는 히브리시의 밀턴이라고 할 수 있고, 이사야40-55장의 시제목으로는 복락원(Paradise Regained)이라고 부름이 좋다”고 하였다. R.H.Pfeiffer,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London: Adam & Charies Black, 1961), p.463.
이사야40-55장에 관한 연구는 1892년 두움(B.Duhm)에 의해 고래의 전통적 이사야관이 무너진 후 이 부분의 저자의 인물감정에 관한 큰 관심과 더불어 더욱 발전되었다. 두움이나 폴쯔(P.Volz)에 있어서는 제2이사야를 최초의 세계적 선교사요, 관념론자로 보는 독일 낭만주의 내지 관념론의 구약관이 있었는데, 그 이후 궁켈(H.Gunkel)의 양식사적 연구방법을 그대로 잇는 그레스만(H.Gressmann), 쾰러(L.Koehler), 엘리가(K.Elliger), 베그리히(J.Begrich)등의 연구를 통해 그런 것은 시정되었다. 또한 이런 연구는 폰라드와 노트(M.Noth)에 의해 계승되었고 그들은 전승사학적 연구방법으로 제2이사야를 이전의 문서 예언자들을 계승한 존재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물론 이들을 통해서도 제2이사야가 어떤 인물인가에 대해서는 새로운 규정이 내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중요한 업적은 바로 제2이사야의 양식이 전 예언서들과는 다른 중요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데에 있다. 김철현, “제2이사야의 저자에 관하여”, 󰡔기독교사상󰡕, 1965, 12. pp. 8-9.
그들은 전 예언서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색다른 문체들과 독특한 신학적 주제들, 문학적 단위들을 분류해 내었다. 그 이후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 졌지만 학자들 간의 일치된 견해가 없고, 논란의 대상이 되는 주제들이 산재한다.
이 중에서 종의 주제는 매우 흥미있는 주제중의 하나이다. “종”이란 말은 41:8에 도입되어 53:11에 마지막으로 언급되는데, 20회에 걸쳐 나타난다. 몇몇 경우에는 종의 신분이 모호한 것같다. 여러번의 사용례로 보아 종은 문맥 가운데서 그 신분이 밝혀진다. 이 부분을 위한 서론적 고찰을 위해서는 종이 이스라엘일 수도 있고 약속된 구원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이상적인 종을 가리킬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종”이란 말의 처음 사용은 특히 이스라엘과 동일시 된다(41:8-9).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이스라엘을 택하였고, 자기 백성에게 그들이 회복되어 모든 나라에 뛰어난 나라로 높임을 받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 이스라엘은 눈 멀고 귀먹어 불순종한다(42:19). 이것은 이미 이사야가 부름받을 때 알려진 것이었고, 심판이 죄많은 유다에 임하리라고 선포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를 지으셨고 택하셨기 때문에 버리시지 않을 것이다(44:1-2, 21). 망명으로부터의 구원이 약속되었다. 예루살렘은 고레스 시대에 회복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로부터 되돌아 올 것이다(48:20).
이 부분 초두에서 이상적인 종이 한 개인으로 소개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열방에 공의를 베푸신다(42:1-4). 역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 종은 하나님의 신을 부여받아 땅에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고, 그의 법을 열방의 섬들에 확장시키는 목적의 수행에 있어서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2:1-5, 11:1-16). 선택되었지만 실패한 나라와는 대조적으로, 이 이상적인 종은 하나님의 목적을 완수할 것이다.
실패한 이스라엘을 구원이 필요하다. 하나니게서 도말하시마고 약속한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서는, 속죄가 베풀어 져야 한다(44:22). 이것을 이루기 위해 이상적인 종(49:1-6)이 택함을 받았는데, 이스라엘에게만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이방에게도 빛을 비취줄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 종은 만방을 그 앞에 꿇어 엎드리게 할 것이다(49:7, 9:2-7). 그러나 이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속죄의 제사가 마련되어야 한다. 높이 올림을 받을 이 종은 먼저 고난과 죽음을 통해 죄를 보상해야 한다. 따라서 이상적인 종은 고난의 종과 동일시된다. 고난의 종은 52:13;53:12에서 가장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 종이 의롭고 무죄하다는 사실이다. 자기 죄때문에 고난을 겪은 이스라엘과는 대조적으로(40:2), 이 종은 전혀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해 고난을 받는다. 대신 당하는 고난을 통하여 속죄가 베풀어진다. 53:11에 사용된 “종”이란 말의 점층적 사용은, 대리 희생을 통해 허물과 죄가 용서받은 사람들에게 의가 전가될 기초를 마련한다. 이 종은 자신이 택함받은 목적에 있어서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그의 죽음을 통해 구원이 베풀어진다. Samuel J. Schultz, 󰡔구약총론󰡕, 송인규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5), pp. 428-429.
본 고의 기본적인 전제는 비평적 입장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이사야서의 분리설이 아니라, 이사야의 단일 저작이며 비평적인 입견해들을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평가하여 반증한 후에, 야웨의 종의 노래를 중심으로 하여 그 석의적 의미와 종의 정체에 대해 다루고, 특별히 고난받는 야웨의 종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것이라는 전통적 입장을 중심으로 내용을 구성해 나가려 한다.
B. 연 구 범 위
대부분 연구의 방법은 도서와 그에 대한 평가들을 중심으로한 문서연구방법을 사용하며, 복음주의적 입장을 그 기본전제로 하여 본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연구의 범위는 이사야서 중에서 특히40-55장에 제한하며, 예비적으로 이사야의 인물이해나 시대적 배경, 저자문제를 다룸으로써 이사야의 단일저작과 메세지 이해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특히 그 중에 나타난 “야웨의 종”에 대한 연구를 그 주요 골자로 하여 일반적인 종의 의미와 성서가 말하는 “야웨의 종”의 의미의 비교 및 종의 정체성 문제나 종의 노래를 통해 그 석의적 의미와 중요성을 연구하며, 특별히 종의 마지막 노래에서 뚜렷한 고난 받는 야웨의 종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주의의 기본적인 입장을 세워가고자 한다.
Ⅱ. 이사야의 역사적 배경
A. 이사야의 인물 이해
예언자 이사야의 생애에 관해서는 우리에게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러나 유대 주석가 중 몇몇은 이사야의 아버지 아모스와 유다왕 아마샤(796-767 B.C.)가 형제간이었다는 전통에 따라 그가 왕족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C. Hassell Bullock, Old Testament Prophetic Books, (Chicago: Moody Press, 1986), p.126.
하여튼 그가 귀족 출신인 것은 분명한데, 그이유는 이사야의 이름에 ‘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왕족들은 그의 이름 밑에 ‘야’를 즐겨 붙였는데 그것은 ‘야웨’ 하나님의 명칭에 속한 것이라서 그렇다고 보여진다. 최종진, 󰡔구약성서개론󰡕, (서울 : 소망사, 1987), p.377.
그가 아하스왕과 히스기야왕의 고문 역할을 한것(7:3-17; 39:1-18)을 보거나, 정치문제에 대한 해박한 견해표명을 보거나, 그의 주변 친구들(8:2)을 보거나, 그의 예언 문체를 볼 때, 그는 귀족계급으로서 고등교육을 받은 자였음이 틀림없다. E.Sellin & G.Fohrer,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김이곤, 문희석, 민영진 공역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79), p.437.
그가 제사장 계열이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그것은 그 증거를 소급해 낸다는 것이 거의 어려운 것이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주장은 그가 서기관이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이 주장은 역대하26:22의 내용에서 추측해 낸 것으로 웃시야왕의 행적을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했다는데서 기인한 것이다. 역대기 기자는 다른 선지자들의 경우에 대해서도 실제여부에 대해 알고 있었다.(르호보암-선지자 스마야,12:16; 아비야-선지자 잇도, 13:22; 여호사밧-예수,20:34) 서기관으로서 그는 궁중의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일을 맡았을 것이고, 아마도 그것이 그의 “제자들”(사8:6)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C.H.Bullock, op. cit., p.127.
그의 집은 수도 예루살렘에 있었다고 추측되며, 지위가 높고 낮은 사람들과 자유롭게 사귈 수 있었고, 자기 주변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자세히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그가 당시 왕실과 밀접한 관계에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왕실에 대한 대담한 공박은 일반 서민들에게 하는 것과 매일반이었다. 박대선, 김찬국, 김정준 공저, 󰡔구약성서개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1972), p. 178.
그는 두 아들을 두었고, 그의 아내는 여자 예언자(Hanabiah,히브리어로는 예언자의 아내라는 뜻도 있음) Ibid., p. 178.
로 가려져 있다. 큰 아들의 이름 “스알야숩”은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뜻을 지녔고(7:3), 작은 아들의 이름 “마헬 살랄하스바스”는 “노략이 속히 온다”는 뜻을 지녔다(8:2-4).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이사야의 가족 전체가 예언활동에 참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E.Sellin & G.Fohrer, op. cit., p.437.
이사야는 웃시야왕이 죽던 해인 주전 764년이나 740년 경에 예언자로 불리웠으며, S.Hermann, A History of Israel in Old Testament Times, (London: SCM Press),p.230.
그가 말년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으나 유다 전설에 의하면 므낫세왕에게 살해당했다고 전해진다. 박대선 외, op. cit., p.178.
이사야는 시편과 예레미야와 같이 정경중에서 가장 많은 책 중의 하나를 점했고, 표현의 극치와 표상의 훌륭함에 있어서 이사야를 능가하거나 그에게 비교될 만한 예언자는 없다. 그의 아름답고 힘있는 문체는 이사야 전체의 특징을 이룬다. 최종진, op. cit., p.378.
B. 시대적 배경
이사야의 활동 연대에 대하여서는 사1:1에 웃시야, 요담, 아하스와 히스기야 등 4대 임금이 다스릴 때에 이사야가 예언하였다는 기록과 사6:1의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그가 소명을 받았다는 기록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다. 이 네 왕의 연대에 대하여 성경의 기록과 성경외의 기록을 조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근대 여러학자들 간에도 이 연대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많고, 아직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배리스(G.A.Barris)의 학설로는 웃시야(783-742 B.C.), 요담(섭정으로는 750-742 B.C., 왕으로는 742-735 B.C.), 아하스(735-715 B.C.), 히스기야(715-687 B.C.)로 구분된다. 박대선 외, op. cit., pp. 178-179.
그의 예언활동 기간에 발생한 국내외의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이 그의 예언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데, E.Sellin & G.Fohrer, op. cit., p. 438.
이사야가 예언활동을 시작한 것은 742년 경 처음으로 앗수루의 위협을 느꼈을 때인 것같다. 박대선 외, op. cit., p. 179.
시리아와 이스라엘이 군사동맹을 맺고, 연합군이 되어 유다를 침략해 왔을 때였다. 이것이 바로 수리아-에브라임 침략(Syro-Ephraimite War 733-732 B.C.)이다. 동맹군은 유다왕 아하스에게 앗수르를 대항하는 군사동맹에 가담할 것을 강요하였다. 이사야는 거기에 정면으로 반대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앗수르의 세력을 끌어들여 수리아-에브라임 동맹군을 물리치려한 아하스의 계획을 저지하려 하였다. E.Sellin & G.Fohrer, op.cit., p. 438.
그러나 이러한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열왕기하 15:19에 의하면 앗수르왕 불(디글랏 빌레셀Ⅲ, 745-727 B.C.)이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므나헴으로부터 조공을 받아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앗수르 군대의 접근으로 자극을 받은 이사야가 6:11-13의 예언을 한 것같다. 이사야가 아하스왕에게 앗수르를 의존하지 말 것을 호소하여 거절당했을 때, 그는 일단 예언활동에서 물러났다. 그 기간을 743-715 B.C.로 본다. 박대선 외, op.cit., p. 179.
그의 생애중에 발생한 사건으로서는 이외에 B.C.732년 수리아에 의한 다메섹의 멸망, B.C.727년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의 사망, 이스라엘왕 호세아가 디글랏 빌레셀의 후계자 살만에셀에게 반기를 든 사건, 그것으로 인해서 B.C.721년 앗수르에 의한 이스라엘의 멸망등을 목격하였다.(28:1-4) 또한 이사야는 유다왕 히스기야가 부왕 아하스의 정책을 버리고 앗수르를 향해 반기를 든 것도 목도했는데, 그 반란은 B.C.713-711년 사이에 블레셋, 모압 및 유다에서 애굽의 선동으로 일어난 것이었다.(20:1f) B.C.705년 앗수르의 사르곤(722-705 B.C.)이 죽은 후 팔레스틴 전역에 일어난 앗수르에 대한 반란과 그것으로 인한 유다의 참화, 그리고 B.C.701년 앗수르의 산헤립(705-681 B.C.)의 공격으로 인한 예루살렌의 심각한 위기까지 그는 겪었다. 그의 마지막 예언은 앗수르의 산헤립이 유다를 침략한 B.C.701년 경에 나온 것들이다. 이사야는 남유다의 암흑시대에 므낫세에게 순교당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E.Sellin & G.Fohrer, op. cit., p.438.
그러나 본고가 다루려는 이사야40-55장의 역사적 배경은 학자들간에 일치된 견해가 없다. 대부분의 비평학자들은 이 부분이 B.C.8세기 예언자이사야의 것으로 보지 않는다. 이 익명의 저자는 제2이사야(DeutroIsaiah)라고부른다. 아이히호른(Eichhorn)과 되더라인(Doeder- lein)이후부터 학자들은 대개 40-55장은 1-39장보다는 적어도 두세기 후에 나온 것이라고 하는 사실에 동의했다. 역사적 배경이나 주제, 문학형식에 있어서 이 두 부분은 서로 다른 시기에 속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Ibid., p. 448.
이들은 제2이사야의 활동시기를 바벨론 포로말기 페르시아왕 고레스의 출현과 거의 같은 시기로 보았다. B.C.549년 메디아(Media)의 예속국가였던 안샨(Anshan)왕국의 왕 고레스(Cyrus)가 그 종주국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파사-메대 왕국(Perso-Median Empire)의 지배자가 되었다. 고레스왕의 일어나는 세력을 제압하고, 저지하기 위해 세 강대국의 왕들, 리디아 제국의 왕 크루서스, 바벨론 제국의 왕 나보니더스, 애굽 왕국의 왕 아마시스가 동맹하였다. 크루서스는 B.C.546년에 고레스에게 정복을 당했으므로 소아시아 전체가 고레스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애굽은 고레스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평온하였으나 그의 아들 캠비세스에 의하여 525년에 정복을 당하였다. 바벨론은 B.C.539-538년에 고레스에게 정복을 당하였다. 바벨론왕 나보나더스의 기록에 의하면 고레스왕이 바벨론을 무혈정복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제2이사야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시대는 B.C.549년 예루살렘 멸망과 B.C.539년 바벨론 제국 말엽 사이 포로기로 설정된다는 주장이다. 박대선 외, op.cit., pp. 187-188.
그러나 복음주의에서는 이와 같은 비평적 입장의 이사야 분리설보다 단일저작을 주장하며, 그것이 나름대로의 증거와 통일성을 갖는다고 믿는다. 이 부분은 이사야의 저자문제에서 계속 다루기로 한다.
Ⅲ. 저자 문제
이사야서의 어떤 부분을 포로기의 무명의 예언자인 제2이사야에게 돌려야만 되느냐 하는 문제가 그 예언자의 역사적 배경 문제와 관련되어 논란의 대상이 되고있다. 김찬국, “제2이사야의 문학양식에 대한 최근 연구동향”, 󰡔현대와 신학󰡕, 1965.5, p. 64.
A. 비평적 입장
18세기 후반 자연신론(deism)이 발달함에 따라, 초자연적인 확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미래사건을 예견하는 이사야서의 상당부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G.Archer, 󰡔구약총론󰡕, 김정우역 (서울:기독교문서선교회), p. 379.
이사야서가 예언자 이사야(예루살렘에 살았던 이사야)만의 기록이 아니고, 그의 예언은 1-39장에만 국한되고, 40-66장은 이사야후의 다른 예언자에의해 기록되었다는 가설은 1775년 되더라인(J.C.Doederlein)으로 주창되어 1780-1783년에 아이히호른(Eichhorn)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렇게 1-39장과 40-66장을 가르는 중요한 이유로는 두 부분이 포함한 역사적 배경이 다르고, 언어, 문학적 형식이 다르며, 신학적 견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1892년에 이르러 둠(B.Duhm)이 56-66장을 40-55장보다 훨씬 후대의 저작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제2이사야(Deutro-Isaiah)가 바벨론에서 B.C.538년 직전에 40-55장을 썼으며, 제3이사야(Trito-Isaiah)가 팔레스타인에서 538년 후에 56-66장을 썼다는 주장이다. 물론 40-55장과 56-66장 사이에 유사점이 많기때문에 40-66장의 단일성을 주장하는 학자들(Ex.토리, 쾌닉, 올브라이트 등 ) 도 있으나, 양부분을 분리하는 학자들은 56-66장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사의식이 40-55장 부분의 것과 다르며 안식일의 의식제사의 선입주견과 당파의 싸움등과 대립등의 40-55장의 것과 다르다고 보아서 40-55저작을 다른사람의 저작으로 보았다. 김찬국, “시인 예언자 제2이사야”, 󰡔기독교 사상󰡕, 1960.4. p.91.
그런가하면 이튼(Eaton)은 40-66장이 이사야 전승을 이어받은 제자들의 단일작품으로 보는가하면 스마트(Smart)는 35, 40-66장의 단일성을 주장한다. 아이스펠트(Eissfeldt)는 40-55장과 56-66장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기는 하나 동일인의 작품으로 보기 힘들다는 견해로 둠(Duhm), 베스터만(Claus Westermann)과 함께 56-66장을 제3이사야의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a. 역사적 배경의 차이
대개 제1이사야와 제2이사야의 구분의 근거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제1이사야는 B.C 6C 바벨론에서 활동하였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40-55장에는 예루살렘에서 활동한 이사야, 아하스, 히스기야, 산헤립등이 언급되어 있지않고, 앗시리아 대제국 전성기에 위축되었던 유다의 모습이 아니라 왕국은 이미 끝나고 예루살렘과 성전이 이미 황폐된 상태이며 심지어는 바벨론의 임박한 종말이 예고되고 페르시아의 고레스가 등장하는 새로운 시기임을 보여주고 있기때문이다. 1-39장에는 이사야란 이름이 16번이나 나오고있는데 후반부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제2이사야서에는 저자나 그 시기를 나타내는 편집자의 주해도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장일선, 󰡔이스라엘 포로기 신학󰡕, (서울:대한기독교서회, 1988), pp. 175-176.
제2이사야가 바벨론에서 활동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로는 그가 바벨론 생활양식에 익숙하다는것(사47:8 ff), 그들의 종교에 대해 익숙하다는것(사46:1), 바벨론의 천문학에 대해 익숙하다는것(47:13-15), 또 그가 익명의 저자임이 이사실을 증명한다. 만일 저자가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었다면, 그의 이름을 숨길 필요가 없다. 바벨론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이 익명의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또한 이 예언자가 바벨론적인 표현과 형식에 대단히 익숙한 사실 등을 근거로 들 수 있다. 박대선 외, op. cit., p. 193.
b. 문체와 단어의 차이
파이퍼(Pfeiffer)는 말하기를 1-39장과 40-66장간의 문체, 용어, 사상의 차이가 너무 명백하여 그 증거를 제시하는 것조차 불필요하다고 하였고, 드라이버(Driver)는 1-39장에서 자주 보는 단어들과 표현들이 후반부에서는 결코 발견되지 않거나 혹은 드물게 발견된다고 말하고, 전반부(1-39장)에서만 사용된 단어35개, 후반부에서만 사용된 단어20개를 들었다. 또한 박대선 교수는 히브리어의 인칭대명사의 제1인칭 단수 ‘아니’(ani)가 사56-66장에 ‘아노키’(anoki)보다 8배 나 더 나타남에 반대로 40-55장에는 3배밖에 나타나 있지 않다는 것을 증거로 제시한다. 박대선 외, op.cit., p. 174.
󰇴체나 문학적 양식으로 보아도 전반부가 공격적이고 위협적인 문학양식을 취하고 서술적인 문체인 반면에, 후반부에는 구원과 위로의 예언의 문학양식이 사용되고 있으며, 신탁적 성격도 1-39장은 책망과 경고로 특징지워지는가 하면, 40-66장은 권면과 약속이라는 점이 다르게 부각되고 있다. 최종진, op. cit., p. 381.
c. 신학적 전망의 차이
이사야서의 분리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제2이사야서는 하나님의 무한성과 이방나라에 대한 그의 주권적 단계가 제1이사야 서식에서 훨씬 더 발전되고 강조되었다고 한다. 반대로 제2이사야서는 메시야적 왕이나 신실한 남은자들에 대해서 오히려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 받는 종이 그 주요사상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G.Archer, op. cit., p. 399.
또한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무한성과 오래 참으심을 역설하고, 이방국가들을 향한 야웨의 관련성을 친밀히 다룬다. 결론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창조주시며 구속자이신 하나님 개념을 강조하는 것이다. 최종진, op. cit, p.381.
이상의 근거로 이사야서를 두부분으로 나누는 한편, 1892년 두움(B.Duhm)이 그의 획기적인 주석책 󰡔이사야󰡕에서 56-66장을 40-55장 보다 훨씬 이후의 저작이라고 주장하였으며, 토리(C.R.Torrey)는 36-39장을 제외한 34-66장을 제2이사야의 것으로 보았고, 스마트(J.D.Smart)는 35장과 40-66장을 제2이사야의 것으로, 모르겐스턴(J.Morgenstern)은 40-48장만을 제2이사야의 저작으로 본다.
한편 다음 학자들은 제2이사야(40-55장)가 여러 개의 분산된 시들을 논리적으로 질서없이 합쳐 놓은 것이라고 본다. 그레스만(H.Gressmann)은 그 문학적 단위가 49개정도 있다고 주장하고, 쾰러(L.Koehler)는 70개, 모빙켈(S.Mowinckel)은 41개, 폴쯔(P.Volz)는 50개의 독립된 문학 단위가 있다고 주장한다. Ibid. p.382.
2. 전통적 입장
탈무드 바바 바트라15a(Baba Bathra 15a)는 ‘히스기야와 그의 동지가 이사야, 잠언, 아가서, 전도서를 썼다’고 말한다. 그러나 문맥상 드러나기는 ‘기록했다’는 동사가 ‘편집했다’ 혹은 ‘출판했다’를 의미했다고 본다. 이것은 히스기야왕의 지도아래 그런 책들을 수집하고 편집하였다는 것이다. 실제적인 이사야서의 저자는 이사야 자신으로 인정하는 것이 보수적 입장의 경우이다. 최종진, op. cit., p. 379-380.
물론 이사야서를 구분하는 학자들이 대부분 합리주의적 근거에 기초하여 진정한 예언적 선언에 있어서 하나님의 계시를 불가능한 것으로 여긴다 G.Archer, op. cit., p. 382.
는 기본적인 전제의 간과외에도 그들에 대한 반증의 자료들이 있다.
a.학자들마다 주장하는 견해가 너무 다양하다.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이사야서의 구분에 통일된 의견이 없다는 약점이 있다.
b.역사적 배경 문제에 있어서 40-66장이 포로와 귀환을 다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이사야라는 인물과 시대적 차이가 있는 것으로 저자가 다르다고 단정짓는 것은 예언서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예언자의 예언에는 미래를 보는 눈이 있고 미래의 사건을 지시하는 영적 통찰력이 있다는 것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c.언어와 문학적 형식의 차이에 있어서도 이사야 전반과 후반 부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체적 차이로써 저자가 서로 다르다고 전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저자가 전하려는 주제가 다르면 문체나 단어의 사용 역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사야가 예언자로서 사명을 받아 수행한 기간이 무려 40년이상의 기간이라고 볼 때, 그의 사상도 그의 생활 환경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고, 따라서 문체의 변화도 있게 마련인 것이다. 최종진, op.cit., pp. 382-384.
데이비스(Davis)는 그의 Dictionary of the Bible (p.339a)에서 말하기를,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25년간의 활동을 보면, 그의 희곡작품이 네개의 뚜렷한 시기로 구분되어지는데, 각 시기마다 문체가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고 했다. G.Archer, op. cit., p. 398.
이러한 문체나 어휘의 차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제1이사야와 제2이사야 문체상 유사점 역시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뚜렷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독특한 명칭이 이사야서 전반에 걸쳐 자주 나타나는데, 구약의 다른 곳에서는 오직 다섯번(시71:22; 8:18, 렘55:29; 51:5 등) 나타날 뿐이다. 이 명칭은 “이스라엘의 거룩한자”인데, 이것은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예언을 지배하는 중심되는 신학적 강조점을 나타낸다. 이 명칭은 사1-39장에서는 21번, 40-66장에는 14번 나타난다. 실제로 이사야가 이 명칭을 창안했든 아니든 간에, 이것은 전체 작품의 통일성에 대해 강력한 증거를 제공해준다. Ibid., p. 396.
지적되어야할 또 한가지의 사실은 제2이사야와 8세기 선지자 미가 사이에는 문학적 유사점이 많고, 또한 뚜렷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B.C.5-6세기에 저술한 저자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몇가지 예들은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시리니.....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사52:12)--“그들이 왕이 앞서 행하며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미2:13)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 야곱의 집에 그 죄를 고하라”(사58:1)--“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미3:8)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사49:23)--“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미7:17)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사41:15-16)--“딸 시온이여 일어나서 칠지어다 내가 네 뿔을 철같게 하며.....여러 백성들을 쳐서 깨뜨릴 것이라”(미4:13)
이사야가 미가의 영향을 받았는지, 미가가 이사야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말하기 어려우나, 그들이 서로의 설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같은 분위기와 견해를 표현하고 있으며, 거의 같은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한 자료로는 호세아13:4을 언급할 수 있다. “나 밖에는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 문장이 제2이사야서 후반부에서는 43:11과 45:21에서 두번 나타나는데, 서로가 밀접한 관계를 보여준다. 호세아가 이사야보다는 전대의 인물이므로 아마도 이사야가 그의 영향을 받지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는 일이다. Ibid., p.398.
d.신학적 사상의 차이점도 앞에서 말한 문체의 차이와 비슷한 이유에서 가능한 것이다. 한 저자가 자기 사상과 전망을 기록해 나갈때 그 예언 사상의 다양성을 띄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이사야서에 있는 그 차이점을 이사야 자신의 사상 표현의 발전적인 형태로 보아야한다.
e.비평적 입장의 견해는 사40-66장을 바벨론 시대 작품과 얼마는 바벨론 포로 후기 시대에 팔레스틴에서 기록된 것이라한다. 그러나 이사야의 이 후반부 내증이 포로 시대 이전 작품인 증거를 제시하여 주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8세기 예언 중 당시 사회의 죄악상을 강하게 책망한 내용(사1:15)이 사59:3,7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최근에 길레디(A.Gileadi)나 브라운리(W.H.Brownlee)같은 학자들은 이사야서 전체가 통일성이 있어서 한 사람이나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에 의해 질서있게 조직적으로 정리된 것으로 본다.
길레디(G.A.Gileadi)는 이사야서를 두개의 중요한 부분으로 나누고(제1부: 1-33장, 제2부 34-66장) 그 각 부분에는 서로 평행을 이루는 주제자료가 평행을 이루며 7개의 단위로 구분된다고 본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내용과 주제가 공동적으로 제1이사야와 제2이사야에도 나타나기 때문에, 하나의 통일성있는 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최종진, op. cit., pp. 384-385.
f.또한 신약성경 역시 제1,2이사야의 저자를 한 사람이며 단일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이 분명하다. 신약의 많은 인용문들은 단지 전통적인 그 제목에 따라서 이사야서에 대한 언급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이사야라는 인물을 분명히 암시하는 다른 언급들이 있다.
마태복음 12:17-18은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바”라고 하면서 이사야42:1을 인용한다. 마3:3은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고 사40:3을 인용한다. 눅3:4은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라고 하면서 사40:3-5을 인용한다. 행8:28에 보면, 에디오피아의 내시가 “선지자 이사야의 글” 특히 사53:7-8을 읽었다고 한다. 그는 빌립과의 대화 속에서(행8:34) 묻기를, “선지자가 이 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라고 했다. 롬10:16은 사53:1을 인용하여 “이사야가 가로되...”라고 말한다. 롬10:20은 사65:1을 인용하여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라고 말한다. 가장 결정적인 신약의 인용문은 요12:38-41이다. 38절은 사53:1을, 40절은 사6:9-10을 인용한다. 여기에서 사도 요한은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고 논한다. G.Archer, op. cit., pp. 400-401.
g.한가지 더 흥미로운 증거는 고고학적인 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B.C.2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해사본(Dead Sea Scrolls)은 이사야 전체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이 사본은 두개의 두루마리로 되어있는데, 첫째는1-33장까지, 둘째는 34-66장까지이다. 제1두루마리의 33장 끝 부분에는 여백없이 글자가 빽빽히 기록되어 있고, 또 34장 초두에도 어떤 여유없이 전장의 말씀을 받아 계속하여 기록하고 있어서 이것은 타인에 의한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다. 제39장과 40장은 두번째 두루마리에 속해 있는데, 39장과 40사이에 아무 여백없이 한면에 계속 기록되어 있다. 이 사본이 원형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라고 추측할 때 이사야 사본은 단일 저자임을 증명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원용국, 󰡔구약예언서󰡕,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8), p.169.
또한 성서나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의 전통에서나 어디서든지 둘 혹은 그 이상의 저자가 있다는 증거는 없다. O.T.Allis, The Unity of Isaiah, (London: The Tyndale Press, 1951), p. 40.
󰇴세푸스(Josephus)시대(A.D.90)에는 이사야가 둘 아닌 한 책으로 확인되었고 특히 유대인 역사가는 고레스(Cyrus)가 자신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을 읽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Ibid., p. 57.
위에서 살펴본 바와같이 한 저자가 예언체를 선포해 나감에 있어 그 예언 사상에 다양성을 띄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사상 표현의 점진적 형태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본고는 제시한 증거들을 기초로하여 이사야의 단일저작을 전제로하고 이사야40-55장에 나타난 야웨 종의 독특하고 중요한 의미를 이해하고자 한다.
Ⅳ. 이사야40-55장에 나타난 야웨의 종 연구
A. 종의 의미
1. 일반적 종의 의미
히브리어로 종의 의미를 가진 ‘에벧’은 ‘일하다’, ‘봉사하다’등의 의미를 가진 동사‘아바드’에서 온 명사형으로 본래의 의미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 반대말이 ‘일을 하지 않다’, ‘게으르다’의 뜻이 아니라 ‘주인’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성을 나타내는 말로 이해된다. W.Zimmerli & J.Jeremias, The Servant of God, (London: SCM Press, 1957), p. 9.
일반적으로 ‘에벧’은 다른 사람에게 속한 주인의 재산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며, 이스라엘의 종은 다른 극동국가들과는 달리 보호받을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에벧’은 왕궁에서 왕을 섬기는 자를 지칭하기도 하는데 이미 사울왕 때 존재하고 있었으며(삼상21:7 등), 다윗왕 때는 전쟁시 징집면제를 받았다.(삼상11:9, 13 등) ‘에벧’은 정치적 조언자(삼상15:34 등), 혹은 대사(삼하10:2-4)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으며 왕상11:26에는 솔로몬의 감독관 여로보암이 왕의 종으로 불리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왕이 전쟁에 패했을 경우 왕도 상대에게 종으로 불리우기도 했다.(수9:11, 삼하10:9, 왕하18:24 등)
또한 ‘에벧’은 왕궁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겸손히 낮추어 부를때 사용되기도 하였고(왕하8:13), 성전건축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하였다(수9:23, 슥2:55,58, 느7:57,60, 11:3).
2. 야웨의 종의 의미
‘에벧’의 종교적인 사용은 대체로 ‘에벧 야웨’의 형태로 쓰이며 하나님의 현존앞에서 자신을 낮출때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이며 이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굴복을 의미하였다. Ibid.,p. 74.
구약에 나타난 ‘종’이란 말의 특수사상은 먼저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사상에서 찾게된다. 이 언약이란 사람사이에 맺는 계약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즉 한편은 절대 능동적이요 다른 한편은 절대 피동적인데에 그 특수성이 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종되었던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저들과 언약을 맺고 그 족속들의 주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야웨의 종’ 사상은 이스라엘 족속 전체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언약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김희보, 󰡔구약신학논고󰡕, (서울: 예수교 문서 선교회,1976), p. 316.
󰇴울러 ‘야웨의 종’은 복수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자들을, 단수로는 이스라엘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특히 시편에서 야웨를 피난처로 삼는 자(34:22),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69:36) 등을 ‘야웨의 종’으로 표현하며, 하나님의 ‘헤세드’에 의해 선택받은 자들(시105:25, 135:14 등)로 계약에 대한 순종의 의무를 지닌 자들을 일컫고 있다. 단수로 사용되어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경우는 이사야40-55장에서 처음 사용되며, 구원을 위한 제의 신탁에서 애가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울러 ‘에벧 야웨’ 역시 구약성서에서 야웨가 역사속에서 그의 백성과 만나시고, 그의 백성에게 주어진 책임성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하나님의 역사활동의 대리자로서 특별히 구분된 사람들에 대한 칭호로 사용된다. 하나님의 역사의 시작의 때에 야웨의 은혜를 통한 관계속에서 약속과 축복을 받아 야웨의 뜻을 이루는 열조에게 ‘에벧 야웨’의 칭호가 주어지며, 이스라엘 역사 중 가장 중요하게 인식되는 출애굽 사건 속에서 모세는 40번이나 ‘하나님의 종’으로 불리우고 있다.
왕역시 하나님의 종으로 불리웠는데 모든 왕들이 ‘에벧’으로 불리운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거룩한 백성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할 때 왕은 ‘에벧’으로 불리웠으며, 다윗왕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특별히 포로기때 이스라엘은 ‘에벧 야웨’로서의 다윗을 회상하며 다윗에게 주어진 약속 속에서 ‘에벧’이 왕이 되기를 소망하였다.(겔34:23f, 37:24f, 렘33:21f,26)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에벧’은 그 사용이 일반적이든 종교적이든 주인과 종 사이에 인격적인 관계성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으며, 특별히 종교적으로는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 사이의 계약관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으며, 특별히 종교적으로는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 사이의 계약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주인되시는 역사 한가운데 선 대리자로서 그의 말씀을 이루어가는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B. 야웨의 종에 대한 견해
종이 누구냐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거듭되어 왔다. 이사야40-55장에 전반적으로 종의 노래(42:1-4, 49:1-6, 50:4-9, 52:13-53:12) 이외의 다른 부분에도 종이 언급되어있다. 장일선, op. cit., p. 209.
󰇴개 지금까지 연구되어 온 학설들을 종합해보면 그 종을 어떤 민족 또는 특정한 집단 사회를 시사한 것으로 본 집단설이 있는가하면, 어떤이는 그 종이 과거에 생존했던 역사적 인물이라고 하여 개인설을 말한 이도 있고, 또 일부는 개인설을 말하면서도 미래의 메시아적 인물을 연상하여 기록하였다고도 한다. 채위, “제2이사야에 나타난 수난의 종과 예수”, 󰡔기독교사상󰡕, 1965,6., p. 64.
한 히브리적인 사고에 따라 개인과 집단 사이를 구분하지 않는 단체인격설(유동설)등을 주장하기도 한다. 동시에 위에 제시한 세가지 해석방법이 모두 평면적인 해석방법이라면, 근래에는 입체적인 해석방법이라고 볼 수 있는 구조적 해석등이 새 해석학을 근거로 한 문학비평의 입장을 반영하기도 한다. 장일선, op. cit., p. 212.
1. 개인설(Individualistic Interpretation)
이 견해는 야웨의 종을 한 개인으로 이해하고, 그 개인의 체험과 삶을 묘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가 곧 메시야라는데는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김희보, “이사야의 종의 노래”, 󰡔신학지남󰡕, 1975, p. 33.
대개 그 개인을 역사적 인물로 보는 학자들은(대표적 학자 Duhm) 그 개인이 율법선생(a religious teacher), 여호야긴왕, 무명의 예언자, 모세, 웃시야왕, 고레스왕, 이사야, 예레미야, 스룹바벨이라고 주장하고, 또 다른 부류의 학자들은(대표적 학자 H.Gunkel) 신화적 인물로, 메시야로(대표적 학자 H.Gressmann, I.Engell, A.Bentzen, C.R.North), 예수 스리스도로(대표적 학자 J.Ley, G.Fuelkrug, L.Lave, A.Condamin, F.Feldmann, Margoliouth, E.Ziemer, J.Fisher, C.Brustor) 각기 주장한다. 박대선외, op. cit., pp. 192-193.
너트(C.R.North)는 고난의 종을 장차 올 메시야로 보고 있고, 이와 같은 개인설과 단체설 모두 어느정도의 타당성을 인정하고, 종의 노래 전체를 보면 역사적 존재를 초월하는 것같은 모습을 보이므로 유일한 어떤 개인일 수 있다고 본다. C.R.North, Suffering Servant in Deutro-Isaiah, (London: Oxford Univ. Press, 1956), p. 214.
2. 단체설(Collective Interpretation)
이 학설은 야웨의 종을 실제의 역사적 이스라엘과 동일시하는 학설이다. 즉 하나의 집단체인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첫째로 세계를 향한 이스라엘의 종교적 사명인 예언자적 사명과 그 능력을 받은 사실, 둘째 이스라엘이 대적들로부터 고난을 받는 사실이나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 해방되어 국운이 회복되는 경험을 한 것이나, 셋째 그 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특징으로 보아 이스라엘의 역사를 한 개인의 일생과 같은 형태로 비유한 것 등이다. Ibid., p. 218.
󰇴이스(James Luther Mays)는 집단을 개인화시키는 것은 사40-55장 사이에 나타난 특징이며, 집단체의 탄식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공동체를 하나로 취급하여 “나의 종”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야웨의 종으로 부른 것은 하나님의 구원행위이며, 하나님의 종답게 산다는 것은 신앙을 가지고 산다는 것을 말한다. 메이스는 “나의 종, 나의 택함을 받은 자”는 원래 다윗에게 주어진 칭호인데, 이제 그 칭호가 이스라엘 공동체의 전체위에 넘겨져 다윗계약이 모든 백성들의 것이 되었으므로 다윗이 해야 할 임무를 이스라엘이 수행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장일선, op. cit., pp. 209-210.
또한 야웨의 종을 이상적 이스라엘로 보는 견해들도 있다. 즉 역사적 실재 이스라엘이 아닌 거룩한 이상으로 인격화한 이스라엘을 말하는 학설이다. 그 이상이 바로 이스라엘의 사명의 근원이라고 본다. 또 다른 한 부류의 학자들은 야웨의 종을 영적 이스라엘의 인격화로 해석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영적 이스라엘이란 이스라엘 백성 중 종교적 진수를 뜻하는데, 그들은 고난을 많이 겪고 그들 위에는 미래의 희망이 놓여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야웨의 종을 예언자 전체의 인격화로 해석하는 입장이 있다. 최종진, op. cit., p. 391.
야웨의 종은 이상적 예언자를 지적한다고 생각한 점이다. 종의 기능이 일개인의 예언자로서는 너무 고양된 것이기때문에 예언자 전체의 인격화로 해석한 것이다.
3. 단체인격(Corporate Personality)
이 학설이 주장하는 바는 야웨의 종의 노래를 쓴 사람의 의중에는 점차적인 단축과 개인화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즉 역사적 이스라엘로 단축이 되며, 거기서 또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핵심으로, 거기서 마침내 한 개인으로 단축된다는 것이다. 델리취(F.Delitzsch)는 “종의 관념은 한 피라미드의 형태를 취한다고 할 수있다. 즉 피라미드의 저변은 전체로서의 이스라엘이며, 그 중앙부는 영적 이스라엘이고, 그 정점은 이스라엘에서 나온 구원의 중보자이다” 라고 설명한다. 박대선외, op. cit., p. 193.
이와같은 주장을 펴나가도록 도움을 준 사람은 히브리적인 단체인격(corporate personality)의 개념을 밝혀 준 로빈슨(H.Wheeler Robinson)이다. 이스라엘의 계약안에는 개인주의(individualism)도 단체주의(collect- vism)도 없다는 것이다. 계약전승에 의하면,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에 있어서 한 개인은 언제나 전체 공동사회속으로 성육되어 버리고, 반대로 그 공동사회 역시 한 개인으로 구체화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분명히 한 개인이지만 그의 전기는 그를 조상으로 하는 전체 공동사회의 전기적 역사이기도 하다. 한 개인으로서의 아브라함과 한 공동사회라는 단체로서의 아브라함은 불가분의 정신적 통일체다. 따라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단체가 단체인격으로 인격화되는 것은 계약전승에서는 예사로운 일이다. 그러므로 야웨의 종이 단체로도 이해될 수 있고 개인으로도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E.Sellin & G.Fohrer, op. cit., pp. 453-454.
윈워드(S.Winward) 역시 로빈슨의 주장을 계승하여 야웨의 종은 이스라엘 집단체, 이스라엘 집단안의 충실한 남은 자들 혹은 어느 특정 개인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다고 본다. 또한 그는 이것의 개념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도 없다고 주장한다. 즉 종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행위는 이같은 시간대의 구분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4. 구조주의 해석
종의 정체에 대해 위에서 살펴본 개인설, 단체설, 그리고 이둘을 종합한 단체 인격설 보두가 평면적인 해석 방법이라면 최근의 구조주의적 해석은 입체적 방법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클라인은 새 해석을 근거로 한 문학 비평의 입장에서 이사야 53장을 분석하며, 본문은 여러 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는 본문 자체가 별개의 세계를 형성하는 독자로 하여금 그 세계 속으로 들어오도록 유도한다고 말한다. 보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실제 독자가 작품 속에서 함축적인 작가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클라인은 야웨 종의 노래에서 종이 누구이었다는 것이 원래의 청중들에게는 알려 졌을지 모르나, 이제는 모호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만큼 독자는 작품의 세계 속에서 제시하는 종을 만날 수 밖에 없으며, 그 상황은 독자의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클라인은 야웨의 종이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제자의 상을 비판하고 있다고 말한다. 장일선, op. cit., pp. 212-213.
C. 야웨 종의 노래
이사야40-55장 사이에는 네개의 “종의 노래”가 있다. 1892년 둠(B.Duhm)이 42:1-4, 49:1-6, 50:4-9, 52:13-53:12를 가리켜서 “종의 노래"라고 부른 이후 이것이 학계에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 노래들은 화법과 신학적 주제에서 보여지는 많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그 기원이나 해석에는 많은 이견이 나타나고 있다. Ibid., p. 203.
1. 첫번째 노래(사42:1-4)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공의를 앙망하리라.”
이 노래의 문학적 구조는 매우 분명하고 완결되어 있다. “보라 나의 종이다”, 혹은 “이는 나의 종이다”라는 맨 앞의 두 낱말들이 전체를 규정짓는다. 이 낱말들은 전체가 말하고자하는 바로 그 사건을 내포하고 있다. 즉 야웨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고, 이사람을 자기의 종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C.Westermann, 󰡔이사야󰡕, 한국신학연구소번역실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0), p. 110.
이러한 첫번째 노래는 대체로 신의 담론으로 다듬어졌다. 야웨는 자신의 종을 소개하되 궁중생활권에서 빌린 것으로 보이는 언어양식으로 소개한다. 즉 궁중의식으로 제왕은 임명식에서 그의 분봉왕들 중의 하나를 혹은 지방관원 한 사람을 그의 고관들에게 소개하고, 새 관원의 임무들과 권한들을 합법적으로 선포했을 것이다. 이 소개에 이어, 새 관원이 그의 큰 임무들을 수행하기 위한 장비 즉 카리스마에 관한 말이 따랐을 것이다. G.von Rad, op. cit., pp. 247-248.
이 노래의 화자는 야웨이며, 종은 야웨로부터 세워지고(42:6), 야웨가 붙들고, 마음에 기뻐하는 택한 사람일 뿐 아니라, 공의로 불리움을 받았다. 이 종에게 야웨는 ‘그의 신’을 주셨고 ‘새 일’을 위하여 공의로서 뭇백성에게 성실로서 바른 길을 가르치도록 불리웠다. W.Zimmerli & J.Jeremias, The Servant of God, (London: SCM Press, 1957). p. 28
노래에서 야웨는 그가 택한 종이 하나님의 공의를 온세상에 선포하도록 엄명한다. Ibid., p. 204.
미쉬파트”라는 단어는 본문에 세번 기록되어 나타나는데 (42:1,3,4), 일반적으로는 ‘공의(justice)’, 혹은 ‘심판(judgement)’이라는 의미로 번역되지만, 여기에서는 정죄를 위한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법으로서의 참종교, 참진리를 의미하는 말이다. 김희보, op. cit., p. 341.
그의 공의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며 야웨의 말씀을 통하여 나라를 재건하며 하나님과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며, 야웨와의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 그러나 종은 이스라엘이란 국가의 회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만국의 빛으로 전세계를 그의 빛으로 부르고 있다. 헨더슨(E.W.Henderson)은 ‘미쉬파트’라는 그 말이 소위 ‘토라(law, 법)’와 동질적인 의미라고 했고 김희보,op. cit., p. 341.
, 󰇴스(North)는 이 말의 뜻이 어떤 이들의 제시하는 것과 같은 윤리, 종교, 진리, 계시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종교의 진수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린다스(Lindars)는 이 말의 뜻이 훌륭한 통치자의 활동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며 또 예언자가 실행하는 올바른 종교도 아니고, 그것은 의로우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구원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행동이라고 말한다. 장일선, op.cit., p. 204.
2. 두번째 노래(49:1-6)
“섬들아 나를 들으라 원방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내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가 어미 복중에서 나옴으로부터 내 이름을 말씀하셨으며,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그늘에 숨기시며 나로 마광한 살을 만드사 그 전통에 감추시고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히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정녕히 나의 신원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다시 야곱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자기에게로 모이게 하시려고 나를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자기 종을 삼으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두번째 노래에서는 종이 제1인칭으로 표시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망과 그 생명을 민족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G.E.Wright, 󰡔이사야󰡕, 김정준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68), p. 171.
여󰇴에서의 종은 42:1-4절에서 하나님이 그의 종이라고 선포한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이방 민족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자기의 말을 들으라고 촉구한다.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그 말씀은 자신과도 관계가 있지만, 그가 말을 건네고 있는 민족들과도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를 ‘민족들의 빛’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42:1-4절의 두가지 중요한 요점이 49:1-6절에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나님의 종으로 임명받았다는 것과 그의 임무가 이방민족에까지 미친다는 것이 그것이다. C.Westermann, 󰡔이사야󰡕, 한국신학연구소번역실 역,(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0), p. 239.
야웨는 모태로부터 종을 택하여 그의 일꾼으로 삼으시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불러 종으로 임명했으나 그는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장일선, op. cit., pp. 205-206.
그러나 그의 소명에 대한 기쁨을 방해하던 것들은 그의 ‘미쉬파트’(공의, 즉 모든 반대와 저항에 대항하는 그의 선한 임무)와 그의 ‘사역’(즉 분명히 허사로 드러난 그 사역의 결과와 결실)은 여호와와 함께하고, 여호와가 그의 종이라는 권리를 변호해주고, 그의 노력에 성공의 왕관을 씌워줄 때에 나타나는 확실한 증거에서 그치고 말 것이다.
5절에 나오는 “그리고 이제는”(And now, 한글 성경에는 생략되었음-역자 주)이란 표현은 분명히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사람의 공적 생애의 새로운 전환을 나타낸다. 동시에 그것은 4절 상반에 한탄조로 나온 그 자신의 백성들에게 그의 수고가 헛되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49:1에서 온 세상사람들을 소환하는 그의 연설의 이유는 여호와가 그에게 그 자신의 백성들에게서 그의 수고가 성공하리라고 담대하게 말하는 그에게 보증해서가 아니라 그 선교임무가 온 인류에게 미치고 멀리 멀리 전파되리라는 것을 그에게 승인하셨기 때문이다. C.F.Keil & F.Delitzsch, 󰡔이사야(하)󰡕, 최성도 역, (서울: 기독교문화협회, 1983), p. 146.
이스라엘이 회복되어야하고 또 존재해야 할 유일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이 종으로서 ‘모든 민족의 빛’이 되는 것이며, 이러한 종의 사명완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은 이 땅 끝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모든 민족들 중에서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은 ‘빛’이 되어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의 대리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G.E.Wright, op. cit., p. 174.
3. 세번째 노래(50:4-9)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울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은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 줄 아노라.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아올찌어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가 누구뇨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헤어지며 좀에게 먹히리라.”
이 노래 역시 두번째 노래와 마찬가지로 종은 1인칭으로 말해지며, 사명 달성을 위한 인내를 말하고 있다. 세번째 노래에서는 ‘종’이라는 말이 실제로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첫 두 노래들과 네번째 노래사이에는 없어서는 안 될 교량적 위치를 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노래는 앞에 나오는 두 노래들의 주제들을 확인하고 더욱 발전시키는 한편 마지막 시의 주도적 특징인 ‘고난’의 요소도 함께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C.F.Whithley, 󰡔예언자 중심사상󰡕, 양승애 역, (서울: 바오로출판사, 1982), p. 203.
이 노래는 야웨의 종과 그 원수들에대해 묘사한다. 이것은 종의 신앙고백이며 자기 훈련의 사명이다. 야웨의 종은 야웨의 뜻을 따라 사는 명령의 사람이고 원수의 핍박과 조롱에 사랑으로 대하는 사랑의 사람이며 언제나 야웨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의 뜻을 이루는 말씀의 사람인 것이다. 또한 이 본문에서는 “학자”라는 용어가 “종”이란 말대신 사용된 것이 주목할 만하다. 여기서의 학자는 “스승의 말씀을 기억해야하는 제자”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제자로써 종이 말해야 하는 것은 자기가 사색하여 얻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스승 곧 야웨가 계시해 주신 말씀이다. 이런 면에서 학자의 직무와 예언자의 직무는 서로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즉 학자로써 종에게 위임된 직무는 바로 예언자적 직무인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확실하게 보이는 것은 이 노래가 두번째 종의 노래에 비해 예언자의 생애에서 후반부에 일어난 일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예언자가 두번째 노래에서 실패했다고 실망을 느꼈으나, 여기서는 직접 고통을 당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장일선, op. cit., p. 206.
첫째 노래는 분명히 둘째 노래보다 고난의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주의 종은 두들겨 맞고 욕을 먹으면서 하나님의 말슴을 전한다. 그가 잘 참고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끝내는 하나님이 그를 도와서 하나님 자신의 구속적 역사를 이룰 것이다. 구덕관, “고난의 종”, 󰡔기독교사상󰡕, 1983, p. 136.
실은 자신이 핍박을 당하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불평을 하지 않고 고통을 감수한다. 이는 야웨께서 그를 보살펴 주시기 때문에 자기 임무에 충실할 수 있으리라고 본 것이다. 결국 종은 부르심에 충실하기 때문에 그는 육체적인 폭행과 인격적인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러나 종은 재판정의 용어를 사용해서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나를 정죄할 자가 누구냐”라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하나님을 재판관과 변호사로 표현하면서 야웨께서 그를 도와주실 것을 천명한다. 장일선, op. cit., p. 207.
4. 네번째 노래(52:13-53: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으므로 그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니라 하시니라.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것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입을 열지 않았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었으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네번째 야웨 종의 노래는 종의 노래 가운데 해석상 가장 난해하며, 우리는 이 노래에서 고난받는 야웨의 종의 생생한 모습에 직면한다. 이 노래에서 야웨의 종은 슬픔을 지닌 사람이며 죄를 지고 가는 사람이며 마침내는 순교의 길을 걷는 고난의 종으로 나타난다. 사실 이 마지막 종의 노래는 그 중요성이나 의미의 심오함에 있어 구약의 어느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비중을 갖고 있다. C.R.North, op. cit., p. 168.
일찌기 리시아(Lysia)의 폴리캅(Polycarp)은 이것을 “구약 복음주의자의 황금의 수난기”라 하였고, C.F.Keil & F.Delitzsch, 󰡔이사야 (하)󰡕, 최성도 역, (서울: 기독교문화협회, 1983), p. 190.
울위크(Urwick)는 “구약성서 예언서의 지성소”라고 부르며, “신성한 그곳안에는 장차 있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이 새겨져 있고 예언되어 있다”고 했다. G.Rawlinson, 󰡔이사야(하)󰡕, 풀핏성경주석, 송종섭 역, (서울: 보문출판사, 1979), p. 433.
(1)본문의 구조 및 내용개관
짐멀리(W.Zimmerli)는 본문의 구조를 대략 5부분으로 분류하였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a.52:13- 15; 본 노래의 서문으로 종의 미래의 상승.
b.53:1-3; 비애의 사람.
c.53:4-6; 그의 대리적 고난들.
d.53:7-9; 그의 굴욕적인 죽음.
e.53:11-12; 그의 부활과 보상. W.Zimmerli & J.Jeremias, The Servant of God, (London: SCM Press, 1957),p.31.
각 부분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52:13에서는 종의 영화가 말해지고, 52:14-15에서는 종에 대한 열방들의 놀라움이 말해지고 있다. 그리고 53:1에서는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로 전체의 주제를 내세운다. 53:2-3에서는 종의 성장과정, 풍모, 형편이 말해진다. 53:4-6은 종의 고난과 ‘우리’의 자유로운 행위를 묘사하며 종의 고난은 자신의 죄의 댓가가 아니라 실은 우리 모두의 죄가 종에게 짊어진 것이라는 고백이 나온다. 53:7-10a는 종의 수난과 죽음과 장래에 대해 말하며 그 속에 야웨의 구원 행동과 구원 의도가 있다는 것을 증거한다. 53:10b-12는 야웨의 말씀으로써 죄인을 살리기 위해서 그 죄를 짊어지고 죽은 종이 받을 보상이 말해지고 있다.
이상이 대략적인 개관인데 이 노래의 주제는 분명하게 한사람의 의로운 종이 다수의 불의한 자의 죄를 짊어지고 고통을 겪으며 그 고난으로 불의한 자들을 야웨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대속적인 고난의 사상이다. 코크(K.Koch)는 이 대속을 “인간적 존재와 땅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악행과 이에 따른 재난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바로 이 대속적인 고난에 의해 야웨의 구원사업이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2) 내 용 이 해
이 노래의 화자는 처음과 마지막 부분이 하나님이고, 중간에는 열방의 지도자들이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되어있다. 장일선, op. cit., p. 207.
노래의 앞 부분에 나오는 신의 담론은 종의 미래에, 그의 상승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이 담론은 그로 전 열방과 대결하게 한다. 말하자면 이 담론은 바로 멸시받는 비인간적이며 추하게 생긴 이 사람이 어떤 사정에 있는가를 열방이 의식하는 순간을 겨누고 있다. 극도의 놀라움으로 그들은 그들에게 결코 이야기 된 일이 없는 것을 인식한다. 이 본문의 시초가 그토록 놀라운 것은 그것이 전 사건의 마지막에서 즉 종의 세계적 의미를 찬양하고 승인함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으로써 분명하게 언명된 것은 야웨의 종에게서 문제되는 것이 원칙적으로 그의 마지막에서 이해되어야 할 사건이라는 것이다. G.von Rad, op.cit., p.251.
뒤 따르는 화창은 종이 처해 있는 사건의 중심을 회고의 의미에서 묘사한다. 일부에서는 조가를 모방했다는 점에서 이 노래는 역시 이스라엘의 산물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 화창은 조가에 맞춘 묘사로 이루어 졌다. 그러나 이런 노래들에서 전수되는 죽음에 대한 종래의 찬양에 극히 대조적인 것은 추하고 멸시적인 것이 부각되고, 종의 생애의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화창은 그의 맹목성을 탄식한다. 실제로 자신의 눈 앞에서 일어난 것을 파악할 능력이 그에게 없었다는 것이다. 즉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고난을 당한다.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었던 자가 실제적인 연대책임자였다는 것이다. 이 화창은 계속 새로운 진술들로 한 사실, 즉 종이 대리역을 맡았다는 것, 그는 순종하고 반항하지 않으면서 이 중개역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수행했다는 것, 그는 이것으로써 야웨의 계획에 순종했다는 이 사실을 계속 반복한다. 이 노래는 그의 수난의 깊이를 진술하는데도 인색하지 않다. 이 화창은 말하자면 종의 수난을 총체적인 것으로 묘사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야웨의 계획이 종과 함께 좌절되지 않았다는 것, 종이 생명과 ‘후손’을 가지리라는 것도 이 노래는 말하고 있다(10b).
종결적인 신의 담론은 야웨의 종의 구원사업을 묘사하기 위해 중요한 개념을 또 도입한다. 즉 그는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한다. 그는 그들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돌아오게 하되, 그가 그들의 “범죄를 끌어내어 버림”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Ibid., p. 252.
클라인은 여기서 고난의 종이 속죄의 날에 아사셀에게 보내지는 속죄양(레16:22)과 같으며 또 죄인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아브라함(창18:22-32), 모세(출32:11-14), 아모스(암7:1-6), 예레미야(렘7:16), 에스겔(겔14:14-20)과 같다고 말한다. 워드(Ward)는 본문에 묘사된 종위 모습이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무저항의 대표적 표상이라고 말한다. 그는 폭력을 사용하여 자신의 어처구니 없는 박해를 막으려 들지 않고, 오히려 고스란히 당하고 있는 모습이다.
종이 그들의 죄를 대신 지고 도 종의 고통을 통해 그들이 평회를 얻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그들이 나았다(53:5-6)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워드는 본문의 복수3인칭이 52장 15절의 열방과 열왕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렇다면 본문의 종은 이스라엘을 가리키게 되며, 이스라엘은 열방 대신 고통을 당하게 된 셈이다. 그러면 어떻게 종의 고통이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 워드는 53장 11절의 표현대로 종이 가진 하나님의 지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때, 그들은 의롭게 될 것이라고 해석한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실생활에 옮기면서 순교를 당하기 까지 한다. 그러나 종이 죽은 그 자체가 다른 사람을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다른 사람들도 종에게서 얻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그들의 생활에 옮길 때, 하나님과 이웃 백성들 간에 올바른 관계가 수립되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의로운 사람들이 되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장일선, op. cit., pp. 207-208.
󰇴문은 또한 그의 희생을 언급한다(53:10). 그러나 구체적인 부활을 뜻한 것인가는 문제점으로 남아있다. 만일 53장의 종의 이야기가 하나님 백성의 이상적인 형태를 이스라엘로 상징한다면, 종의 고통과 희생은 이스라엘 민족의 체험을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남의 죄를 대신 지는 여기 종의 모습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읽게된다. 종은 그 붛르심에 충실했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기 까지 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선교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된다면, 그리고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통해 의로움과 구원을 얻게 된다면, 종의 고통은 결과적으로 보상을 받게 될 것이고 또 속죄를 얻은 것이 되는 것이다. Ibid., p. 209.
이상으로 네개의 종의 노래를 모두 살펴보았는데 종합해서 종의 임무를 살펴보면 그 임무란 야웨를 떠나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을 야웨에게 되돌아오게 하고 더 나아가 만방의 빛으로 야웨의 구원을 만방의 백성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고레스에게 부과한 사명을 한층 더 심화시켜 종에게 부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중의 어려운 임무는 정치적 권력과 지혜, 지식, 책략 등으로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모든 백성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고 자기의 생명을 희생하여 사람들의 죄를 속죄함으로써 달성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이야 말로 야웨가 야웨의 백성과 만방의 백성을 구원하는 의인 것이다.
D. 야웨의 종과 예수 그리스도
위의 야웨의 종의 노래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야웨의 구원의 도구로써 종이 말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종의 정체성이 논란의 대상이 되지만, 종이 개인인가 이스라엘인가 하는 문제를 넘어서서 야웨의 택함받은 종은 그의 영으로 무장되어 있으며 종의 수행방식이 겸손과 친절 가운데서 이스라엘과 온 민족들에게 공의를 세워야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42:1-4). 고난과 좌절속에서도 오히려 야웨에게 속한 자신을 돌아보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불러 모으고, 이방의 빛이 되어야 하는 그의 임무를 잊지 않고 있다(49:1-3). 결국 종의 임무 수행에 따르는 박해와 수치를 당하는 가운데에서도 그의 정당함은 야웨에게 있음을 종은 또한 일고 있다(50:4-9). 그리고 마지막 네번째 종의 노래에서는 무죄한 자가 수치와 고난을 참고 견디는 야웨의 대속적 구원을 이루는 대리적 고난을 보여준다(52:13-53:12). 이 종의 네째 노래에서 수난당하는 종은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로 집중되고 있다.
이처럼 종의 노래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업과 정신이 들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초대교회부터 시작해서 이 노래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과 고난을 예표한 것이라고 신중하게 해석됐다. 신약성서에서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이사야 53장을 설명하고 강론할 때, 이 고난받는 종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행8:26- ). 이병렬, 󰡔이스라엘의 예언자들󰡕, (서울: 페트라 성경원어연구원, 1986), p. 330.
이사야53장에 대한 메시야적 해석은 아벤 에즈라(Aben Ezra)때 까지 유대인 들에게서 보편적으로 인정되었고 기독교 교부들에 의해서도 논란없이 채택되었으며 19세기에 이르기 까지 모든 기독교 주석자들도 같은 입장을 취하였다. 문제는 그 후 유대인들이 전통적인 해석을 버리고 이 예언을 예레미야나 요시야, 이스라엘 백성에게 적용한 데서 논쟁은 야기되었다. 근세에 와서는 일단의 기독교 주석자들도 이러한 후기 유대학자들의 의견을 한두개 채택하고 있다. 그들의 논쟁점을 모두 검토하는 것은 여기에서는 불가능하고 단지 42장의 서론적 구절에서 이 문제의 핵심을 찾아보고 그 내용을 이해하는데 만족해야 할 것이다. 즉 본 절에서 “야웨의 종”의 모습은 개인적이라는 것과 따라서 의인화된 집단체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또는 “신실한 이스라엘” , “이상적인 이스라엘”, 그것도 아니면 “선지자의 집단체”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본절의 내용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을 훨씬 초월한 그런 내용이다. 따라서 본절의 내용은 유일한 사람이며, 신-인인 그리스도에게만 적용이 될 수 있는 내용이다. Rawilson, op. cit., p. 433.
근대학자들 중에 본절의 내용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헹스텐버그(Hengstenberg), 카일(Keil), 움브라이트(Umbreit), 오올레(Oehler), 델리취(Delitzsch), 카이(Kay), 케인(Cheyne), 헨더슨(Henderson), 알렉산더(Alexander), 울윜(Urwick) 등이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유대주의에 있어서 “야웨의 종”과 메시야와의 상관성은 주요한 난제이다. 메시야가 고난을 당해야 한다는 개념은 적어도 유대인들의 대망하는 바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랍비적 견해에 따르면 고난은 전적으로 메시야의 진정한 사명과는 양립될 수 없다. 그러나 한편 유대주의안에서 그 두 개념들이 만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간의 파괴되고 왜곡되었던 관계들을 회복시키고 그 백성들을 그의 택하심을 통해 그들에게 주신 바 하나님의 사명에로 되돌아 오도록 이끌어야 하는 것이 그 야웨의 종과 메시야가 동일하게 가진 임무인 것이다. 여러 언어학적인 고려들에서 볼 때 70인역은 사52:13-53:12까지를 메시야적으로 해석하는 듯하다고 결론지었다. 에녹서, 에스라의 묵시서, 바룩의 묵시서는 메시야에게 ‘종’의 송영을 돌림으로써 간접적으로 메시야를 야웨의 종과 동일시한다. O.Cullmann,󰡔신약의 기독론󰡕, 김근수 역, (서울: 도서출판 나단, 1988), pp.92-93.
󰇴러나 사실 이사야가 700년 이상이나 이후에 탄생할 예수를 사전에 알고 예언했다는 것은 해석상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시의 내용과 예수의 생애가 너무 밀접하고 관계깊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고레스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야웨의 종”의 일을 담당한 일이 있는데, 이스라엘의 해방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노래가 그 결과에 있어서 예수의 생애와 일치가 될 때 우리는 충분히 예수와 연결시켜 해석할 수 있다.
예수는 어린 시절부터 구약성서를 깊이 공부했으며, 특히 예언서와 시편을 많이 알고 있었다. 이사야서를 대하면서 그 내용이 예수 자신의 생애와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예수도 당시 성서를 강해할 수 있는 ‘랍비’의 칭호를 가지고 있었다. 예수는 권력으로써 로마제국과 싸워 유다의 해방을 쟁취함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 즉 메시야의 수난, 특히 “주의 종의 수난”을 통한 민족과 세계구원의 가능성을 보았다. 예수는 사역의 출발에서부터 십자가의 고난을 “주의 종”의 고난과 연결시켰을 것이다. “주의 종”은 순교자적 정신으로 이웃의 죄까지 담당하지 않으면 안될 것을 예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메시야, 예수를 “주의 종”, 특히 고난받는 종과 일치시켜 해석했다. 예수는 전도 초기 나사렛의 한 회당에 들어가 이사야서를 펴고 회중 앞에서 강론할 때, 당신의 생애와 일치시켜 해석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케 하심이라“(눅4:18,19, 사61:1,2).
예수는 그의 생애가 최후의 단계로 접어들자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설명했다(마16:21). 그리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섬기며 그들에게 생명을 주러 왔다고 했다.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과한 말이 이루어 감이니라”(눅22:37).고 하면서 사53:12과 예수의 생애와 죽음을 연결시켰다. 그리고 최후로 빌라도 앞에서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았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갂는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53:7). 예수는 종의 행위와 일치한 삶을 살았다. 이사야의 종에 대한 예언의 성취는 결국 복음으로 천하 만민에게 전파되면서 이루어졌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십자가의 죽음까지 순종하는데서 이 복음이 살아 세계로 전파되었다(빌2:7-9).
“야웨 종”의 노래는 놀랍게도 포로 당시의 이스라엘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고, 직접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이 아닌데도 이 노래의 사상과 이상은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메시야 예수의 출현과 일치가 되었으며, 예수의 전도와 사역속에서 완전히 실현되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만이 아는 비밀이며 역사위에 나타난 신비이기도 하다.
이렇게 종의 노래에 대한 새로운 각도의 해석은 세상의 구주이시요, 속죄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고난받는 종과 일치시킨다고 해서 절대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구약성서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중 율법과 시편과 예언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예수는 율법이요, 예언자이기 때문이다(마22:40). “고난받는 종”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고난에 동참, 그들의 죄까지 담당하신 예수 외엔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 받는 종을 생각하는 것이 온당하다. 이사야의 영감은 예수 안에서 비로소 그 뜻이 드러났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예수의 생애와 일치시켰기 때문이다. 이병렬, op. cit., pp. 330-332.
Ⅴ. 결 론
히브리어로 예언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들로써, 그 직책에 있어서 대를 이어가는 사람도 아니고, 황실의 임명을 받은 사람도 아니다. 예언자는 왕이나 백성앞에 초청을 받아 나타나는 것도 아니요, 누구의 위압에도 굴하지 않고, 심판과 재앙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사신으로 홀로 서는 것이다. C.Fritsch, 󰡔예언자의 세계󰡕, 문익환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5), p. 20.
이러한 예언자 중에 가장 탁월한 존재중의 하나가 바로 이사야이다.이사야서 가운데서도 특히 40-55장은 그 문학적인 형태나 문체의 세련됨, 신학사상이나 신학주제의 심오함등으로 일찌기 히브리문학의 정수라고 일컬어진 바있다. 이 부분이 이사야서의 다른 부분과 구별된다는 견해는 1892년 두움(B.Duhm)에 의해 구체화되었고, 일반적으로 비평적인 입장의 학자들에게는 정설로 받아들여져왔다. 그러나 이 부분(40-55장)을 과연 포로기의 예언자라고 간주되는 ‘제2이사야’의 작품으로 돌려야만 하는가 라는 문제가 그 예언자의 역사적 배경문제와 관련되어 논란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이와 같은 비평적 입장을 복음주의적인 입장의 논거들로 비판하였고, 이사야의 단일 저작에 관한 증거들을 제시함으로써 이사야서의 저자는 8세기 예루살렘에 살던 이사야라는 복음주의적 입장을 지지하였다. 또한 이사야서에 나타난 “야웨의 종”이 과연 누구이겠느냐라는 종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에 각기 그 종이 개인이라거나, 집단체인 이스라엘을 가리키거나, 히브리적인 단체인격의 개념, 구조주의적인 입장의새로운 이해들이 있다는 것을 소개하였고, 마지막으로 야웨의 고난 받는 종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로 집중하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고난의 종은 사52:13-53:12에서 가장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 종이 의롭고 무죄하다는 사실이다. 자기 죄때문에 고난을 겪은 이스라엘과는 대조적으로(40:2) 이 종은 전혀 다른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해 고난을 받는다. 대신 당하는 고난을 통하여 속죄가 베풀어지는 것이다. S.J.Schultz, 󰡔구약총론󰡕, 송인규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5), p. 433.
물론 이 노래의 종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부학자들의 견해가 있어왔지만, 프리취(C.Fritsch)의 말처럼 종의 노래들에 있는 “예언적인 추진력은 기독교의 전통에서 언제나 밝히 드러나는 것”이다. C.Fritsch, op.cit., p.36.
그리스도 자신도 당신의 사업과 사명을 고난받는 종의 빛에 비추어 생각하시는 것(막1:11, 10:45, 요13:1-20등, 특히 그가 십자가에서 대속하는 죽음을 죽으신 것)이 결정적인 설명이 될 수 있겠다. 마가복음 10장 45절은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가 된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예수에 대한 이러한 예언의 성취는 사도들의 고백과 선포에서도 역시 분명하게 나타난다. 즉 예수의 고난과 죽음이 종의 대속적 고난과 죽음의 성취인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벧전 2:24, 롬4:25, 고후5:21, 히9:28 등).
필자는 이러한 종의 “대속”의 개념이 그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이 부분만의 독특한 탁월성이라는 견해에 동의하며, 그것이야말로 야웨의 종이 예수 그리스도로 집중될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논리적으로나 이성적으로 800년이나 이후에 단생될 메시야에 대해 미리 예언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예언의 본질적인 의미로 들어가 가장 심오하고 영적인 단계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전하는 것이 예언자의 모습이라고 인정할 때, 이사야의 예언은 그러한 예언자들의 예언 중 구속적인 중요성을 가장 잘 드러낸 예언서인 것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이사야의 분리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합리주의적 근거에만 기초하기 때문에 진정한 예언적 선포에 있어서 하나님의 계시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같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철학적이며 선험적인 입장에서 출발하여 모든 실제 자료들에 접근한다. 그들에게 먼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자적 통찰이란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반면 만먁에 성취된 예언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면 분명하게 성취된 모든 것을 단지 사건 후의 예언이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할 필요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논리와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계시의 방법이며, 그것이 예언의 가장 중요한 본질 가운데 하나인 것이 소위 비평주의적 입장의 학자들이 간과한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