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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위틈에 꽃필때 원문보기 글쓴이: 深海/정길용
수필(隨筆 essay)
산문문학의 하나. 수필이란 형식의 제약도 없고, 내용에 있어서도 자연·인간·역사·사회에 관한 견문·비평·사색 또는 연구·고증 등 다방면에 걸쳐 붓이 가는 대로 적어나간 산문문학이며 필자의 개성·자질·재능의 단적인 표현도 된다. 또한 수필은 서정(抒情)과 서사(敍事)에 의한 정서적 감동이나 허구적 흥미를 주기도 하면서, 다른 문학양식과의 상호 견인작용을 적절하게 포용함으로써 수필의 영역은 광범위하게 확대되기도 한다.
역사
서양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수필이 발달하여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하였다. 넓은뜻으로 J. 드라이든의 《극시론(劇詩論, 1668)》, T.S, 엘리엇의 《성림(聖林)-시와 비평에 관한 수필(1920)》 등과 같은 문예비평, J. 로크의 《인간오성론(人間悟性論, 1690)》, G. 버클리의 《신시각론(新視覺論)으로 향한 수필(1709)》과 같은 철학적 이론 또는 시론(試論)이 포함되며, 주로 산문으로 쓰여졌으나, 드물게는 A. 포프의 《비평론(1711)》 《인간론(1732∼34)》과 같이 시의 형식을 취한 것도 있다. 수필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사람은 프랑스의 M.E. 몽테뉴이며, 그의 《수상록(隨想錄, 1580∼88)》은 20년에 걸친 자기성찰의 집대성으로 프랑스 르네상스기의 모랄리스트 및 유머작가의 백미(白眉)로 되었다. F. 베이컨의 《수필집-생활과 도덕에 관한 충언(1597∼1625)》은 몽테뉴의 뒤를 이은 것으로서, 이 문학형식을 영국에 정착시켜 발달하게 하는 작품이 되었다. 프랑스에서도 J. 라 브뤼에르·C.A. 생트뵈브·T. 고티에·A. 프랑스와 같은 수필가가 나왔다. 한편 17세기에는 기지(機智)를 구사하여 인간성을 짧게 묘사한 등장인물이 나타났다. 18세기에는 저널리즘의 발흥에 수반하여 J. 애디슨·R. 스틸 등이 나타나 인기를 끌었으며 수필을 하나의 문학형식으로까지 올려놓았다. 19세기에는 L. 헌트·S. 스미스·W. 해즐릿 등의 수필가가 배출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C. 램의 《엘리아수필(1823∼33)》은 페이소스와 유머로 널리 읽혀졌다. 그 뒤 주지적인 M. 아놀드·W. 페이터의 수필이 나왔으며, 20세기에는 G.K. 체스터튼·M. 비어봄·R. 린드·A.A. 밀른 등의 경묘하고 소탈한 수필이 주류를 이루었고, J.B. 프리스틀리가 그 뒤를 이었다. 미국에서는 R.W. 에머슨·H.D. 소로·O.W. 홈스·W. 어빙·J.G. 서버가 우수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동양
중국에서는 특정한 내용이나 문체에 구애받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써나간 문장과 저술을 옛날에는 <필기소설(筆記小說)>이라고 총칭하였다. 주로 독서의 메모, 고사(故事)나 전고(典故)의 기록과 고증, 일상의 견문록 등 단편적인 메모와 같은 것이 <필기>이며, 사소한 일이나 민간전승 등을 기록해 둔 것이 <소설>이다. 일정한 내용과 그에 어울리는 문체(文體)가 필요하였던 정통적인 문학관에서 본다면 내용·문체 모두 잡다한 이들 저술은 <잡저(雜著)>라고도 하여 경시하였다. 필기소설류는 오로지 지적 흥미와 단순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으로 작가의 사상이나 인생관을 언급하는 일은 드물지만, 편안한 문체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위(魏)·진(晉)나라 시대에 유행하였으며 당대(唐代)를 거쳐 송대(宋代)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수필을 저서명으로 한 《용재수필(容齋隨筆)》 외에 필기·필록(筆錄)·만필(漫筆)·만록(漫錄)·잡기·잡지(雜識) 등의 명칭을 가진 많은 저술이 생겨났다. 이러한 유행은 명(明)·청(淸)나라 시대에도 이어졌으며, 중화민국 이후에는 서유럽의 수필이 소개되어 많은 사람들이 수필을 쓰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사회풍자와 시사비평의 정치적 색채가 짙은 것이었는데, 그중에서 소품문(小品文)의 전통을 이어받고 독특한 문명비평과 인생의 통찰을 시도하여 성공한 사람은 저우쭤렌[周作人]과 린위탕[林語堂]이다. 일본에서는 헤이안시대[平安時代] 세이쇼나곤[淸少納言]이 쓴 《마쿠라노소시[枕草子]》가 수필이라고 하기에 적합한 최초의 저술로 기록되고 있다. 이 작품은 날카롭고 섬세한 감성으로 포착한 자연과 인간의 갖가지 상(相)이 왕조귀족의 미의식의 극치를 나타냄과 동시에 후세에 대하여 규범적 의의를 계속 지녀왔다. 근세에 들어와서 바쿠후[幕府]의 문치정책과 서민의 지식욕구의 향상으로 초기의 계몽기를 거쳐 교토[京都]·에도[江戶] 각각의 문화가 융성함과 더불어 수필도 성행하였다. 메이지시대[明治時代] 이후에도 계속해서 수필은 유행하였으며, 잘 알려진 수필작가로는 사토 고세키[佐藤垢石], 우치다 등을 들 수 있다. 1951년 일본에세이스트클럽이 설립되고, 매년 그해의 우수작품에 대하여 에세이스트클럽상을 수여해 오고 있다.
분류와 특징
분류
일기·서간문·감상문·수상문·기행문 등을 수필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수필을 에세이와 미셀러니로 나누는 경우, 에세이에는 지적·객관적·사회적·논리적 성격을 가지는 소평론(小評論) 따위가 속하며, 미셀러니에는 감성적·주관적·개인적·정서적 특성을 가지는 신변잡기가 속한다. 또한 몽테뉴형의 경수필(輕隨筆)과 베이컨형의 중수필(重隨筆)로 나누는 경우, 경수필은 신변·사색·서간·기행수필 등이며 중수필은 과학·철학·종교 등의 객관적·사회적·경구적인 수필 등이다. 그 밖에 수필에는 사색적 수필·비평적 수필·스케치·개인수필·담화수필·연단수필·성격소묘수필·사설(社說) 수필 등으로 나뉜다.
특징
① 형식이 없는 자유로운 산문:수필은 소설이나 희곡과 같은 산문문학이면서도 구성상의 제약이 없이 자유롭게 씌어지는 산문이다. 내용면에서도 인간이나 자연의 어느 한 가지만 다룰 수도 있고 여러 가지를 생각나는 대로 토막토막 다룰 수도 있다. ② 개성적이고 고백적인 문학:시에서는 정서의 승화와 은유의 기법 속에 개성이 융합되고, 소설이나 희곡은 표현의 뒷면에 개성의 향취와 분위기가 있지만, 수필은 작가의 적나라한 심상(心像)과 개성이나 취미·인생관 등이 그대로 나타나는 고백적인 문학이다. ③ 제재가 다양한 문학:인생이나 사회·역사·자연 등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해 느낀 것과 생각한 것은 무엇이나 자유자재로 서술할 수 있으므로 그 제재의 선택에 있어 구속을 받지 않는다. ④ 해학과 기지와 비평정신의 문학:수필에는 서정의 감미로움과 입가에 스치는 미소와 비판정신이 있어야 한다. 특히 수필에서는 지적 작용을 할 수 있는 비평정신이 밑받침되어야 하며, 정서와 신비의 이미지를 그리기 위하여 해학과 기지가 있어야 한다.
한국의 수필
근대이전의 수필
고려 이후의 방대한 한문학에서 수필적인 특성을 찾을 수 있고 조선시대 문학에서 국·한문 일기, 기행, 서간 등의 수필적인 형식을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근대 이전의 수필은 한문수필과 국문수필로 나누어진다. ① 한문수필:고려시대에는 이제현(李齊賢)의 《역옹패설》,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 이규보(李奎報)의 《백운소설(白雲小說)》 등의 문집이 있으며, 그 중 이규보의 《남행월일기(南杏月日記)》가 유명하다. 조선시대에는 한문수필이 크게 융성하여 서거정(徐居正)의 《필원잡기(筆苑雜記)》, 강희맹(姜希孟)의 《촌담해이》, 성현(成俔)의 《용재총화》, 김정(金淨)의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 유성룡(柳成龍)의 《징비록(懲毖錄)》,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등 여러 수필이 등장한다. 특히 《열하일기》는 박지원이 연행사(燕行使)의 수행원으로 중국에 들어가 여행하면서 견문한 것을 기록한 것으로 한문수필의 백미로 꼽힌다. 또한 김만중(金萬重)의 《서포만필(西浦漫筆)》, 보고 들은 것을 단편적으로 기록한 안정복(安鼎福)의 《잡동산이(雜同散異)》 등 여러 가지 양식의 수필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한문수필들은 관조(觀照)의 세계에 안주하려는 시인이나 묵객 등이 그들의 사상과 생활감정을 여러 형태로 담은 것으로서 비평적이면서도 해학과 풍자를 담고 있다. ② 국문수필:조선 초기에는 운문(韻文)이 성했으나 서민문학이 활발해진 이후에는 주로 여성들에 의해 기행문이나 일기문 형식의 국문수필이 많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수필은 궁정수필(宮廷隨筆)·기행수필·의인체수필(擬人體隨筆)로 나누어진다. 궁정수필로는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모함하여 인목대비를 유폐시키던 실상을 궁인들이 기록한 《계축일기(癸丑日記)》,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가 남편 사도세자의 죽음에서부터 정조가 등극하기까지의 궁중생활을 기록한 《한중록(恨中錄)》과 같은 것은 우아한 용어와 여성만이 표현할 수 있는 섬세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기행수필로는 1776년(영조 52)에 박창수(朴昌壽)가 지은 《남정일기(南征日記)》, 정조 때 서유문(徐有聞)의 《무오연행록(戊午燕行錄)》 등이 있다. 기행수필 중 뛰어난 것으로 《의유당관북유람일기(意幽堂關北遊覽日記)》이 있다. 이 작품은 함흥판관 신대손(申大孫)의 부인 의령남씨(宜寧南氏)가 쓴 것으로, 그 중 특히 일출광경과 월출광경이 묘사되어 있는 <동명일기(東溟日記)>가 뛰어나서 국문으로 씌어진 기행수필의 백미로 꼽힌다. 한편 의인체수필로는 순조 때 유씨부인(兪氏夫人)이 바늘을 부러뜨리고 애도하는 심정을 제문형식으로 쓴 《조침문(弔針文)》과 7가지 침선도구(針線道具)를 희화적인 대화로 쓴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이 유명하다. 이 밖에도 숙종 때 박두세(朴斗世)의 《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 승려와 양반의 유희적 문답을 쓴 《양인문답(兩人問答)》 등이 있다.
근대수필
최초의 근대수필은 기행적 수필인 유길준(兪吉濬)의 《서유견문(西遊見聞, 1895)》이라 할 수 있다. 기행적 수필로 출발한 근대수필은 수상적(隨想的) 수필과 병행하다가 1930년대에 산문문학의 한 양식으로 형성되었는데, 주로 고전수필의 기행적 성격을 계승하고 서구수필의 개성적인 시각을 수용하였다. ^CRLF^⑴ 1930년 이전:1910년대의 수필은 시나 소설에 비해 장르가 확고하게 형성되지 못하였으나, 《학지광(學之光)》에 실린 최승구(崔承九)의 《남조선의 신부》, 나혜석(羅蕙錫)의 《이상적 부인》 등을 통해 새롭게 출발하였다. 이 시기의 기행적 수필로는 최남선(崔南善)의 《반순성기(半巡城記)》 《평양행(平壤行)》 등이다. 또한 수상적 수필로는 전영택(田榮澤)의 《독어록(獨語錄)》, 나혜석의 《잡감(雜感)》, 이광수(李光洙)의 《천재야 천재야》, 이일(李一)의 《만추(晩秋)의 적막》 《고독의 비애》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수필은 기행의 소감과 거기에 서린 역사적 시각, 또는 내성적인 성찰이 많아 문인들의 자아각성에 의한 새로운 문화의식이 엿보인다. 20년대 초기의 수필류는 내용에 따라 여러가지로 불렸는데, 이때의 대표적 작품으로는 김환(金煥)의 《고향의 길》, 남궁 벽(南宮璧)의 《자연》, 박종화(朴鍾和)의 《영원의 승방대(僧房臺)》, 이광수의 《감사와 사죄》, 홍명희(洪命熹)의 《학창산화(學窓散華)》, 박태원(朴泰遠)의 《병상잡설(病上雜說)》, 주요한(朱耀翰)의 《어렸을 때 본 책》 등이 있다. 20년대 후반에 <수필>이라는 명칭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동광(東光)》에 이르러 정착되었다. 또한 《조선문단》의 <수필감상>란에 주요한·방인근(方仁根)·김억(金億)·최상덕(崔象德) 등 11명의 수필이 실려 있음은 그와 같은 정착의 모습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이같이 20년대 수필양식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잡지는 《조선문단》과 《동광》이었다. 한편 초기 작품인 오상순(吳相淳)의 《시대고(時代苦)와 그 희생》에서는 시대상황을 내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염상섭(廉想涉)은 《국화(菊花)와 앵화(櫻花)》에서 꽃의 의미로써 망국의 심경을 담는 등 수상수필도 20년대 수필의 한 경향을 이루었다. 20년대 수필의 또 하나의 경향은 최남선과 이광수에 의한 기행수필이다. 《서유견문》과 맥락이 이어지는 기행수필은 산수를 즐기며, 그곳에 묻힌 역사와 민족혼을 찾으려는 시도의 일환이었다. 이광수의 《금강산유기(金剛山遊記)》, 최남선의 《심춘순례(尋春巡禮)》 《백두산근참기(白頭山覲參記)》 등은 기행수필의 3대걸작이다.^CRLF^⑵ 1930년대 이후:1930년대는 수필의 이론적 추구, 개인적 수필과 사회적 수필이라는 본격적인 수필유형의 형성, 그리고 발표무대의 확장 등과 더불어 근대수필이 형성되는 시기였다. 수필론의 정립은 외국문학을 전공한 문인들에 의해 추구되었다. 김기림(金起林)은 《수필을 위하여》에서 수필의 문학성과 그 영역을 추구하였고, 김광섭(金珖燮)은 《수필문학소고》에서 수필의 형식과 그 표현에 대한 이론을 모색하였는데, 김진섭(金晉燮)의 《수필의 문학적 영역》에 이르면서 문학양식으로서의 수필론이 정립되었다. 이와 같이 30년대에는 수필론이 정립됨으로써 1000여 편에 이르는 수필이 발표되는 성숙기를 이루었다. 직관적·관조적으로 자연과 인생을 음미한 개인적 수필로는 이양하(李敭河)의 《신록예찬》 《조그만 기쁨》, 이효석(李孝石)의 《사온일(四溫日)》 《화초》, 피천득(皮千得)의 《금아문선(琴兒文選)》, 노자영(盧子泳)의 《산사일기(山寺日記)》, 김유정(金裕貞)의 《그믐달》 등이 있고, 또한 깊은 성찰이나 진리의 추구를 담은 사회적 수필로는 김진섭의 《인생철학》 《주부송(主婦頌)》, 이상(李箱)의 《권태》, 고유섭(高裕燮)의 《고려청자》 등이 있다. 그 밖에 이 시기에 발표된 뛰어난 수필로는 김억의 《사상산필(沙上散筆)》, 이광수의 《산거기(山居記)》, 이희승(李熙昇)의 《청추수제(淸秋數題)》, 이효석의 《청포도의 사상》, 임화(林和)의 《현해탄 상의 일야(一夜)》, 박영희(朴英熙)의 《전선기행(戰線紀行)》, 이북명(李北嗚)의 《해변만담(海邊漫談)》 최명익(崔明翊)의 《조망문단기(眺望文壇記)》 등이 있다. 그러나 40년대 초기에는 일제의 국어말살정책으로 인해 신문·잡지 등이 폐간되면서 시나 소설처럼 수필도 침체현상을 보이게 되었으나 광복 직후에는 남북의 대립과 민족문학 모색의 혼란 속에서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게 되었다. 40년대에 발표된 수필로는 이태준(李泰俊)의 《무서록(無序錄)》, 박종화의 《청태집(靑苔集)》, 오장환(吳章煥)의 《팔등잡문(八等雜文)》 《삼단론법》, 김진섭의 《인생예찬》, 이광수의 《돌베개》, 마해송(馬海松)의 《편편상》, 현진건(玄鎭健)의 《단군성적순례(檀君聖蹟巡禮)》, 김기림의 《바다와 육체》 등이 있다.
현대 수필
현대수필은 50년대 이후의 수필을 총칭하는 말이며, 특히 1930년대의 수필이 이룩한 성과를 밑거름으로 해서 전개되었다. 또한 6·25 이후의 격동하는 시대에 상응하는 다양한 제재의 수용과 수필인의 확대는 수필문학의 새로운 변모를 가져왔다. 이에 따라 역사적 의미를 집약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도 생겨나게 되었다. 50년대와 60년대의 수필로는 이희승의 《벙어리 냉가슴》, 조지훈(趙芝薰)의 《지조론(志操論)》, 조연현(趙演鉉)의 《문학상과 비밀투표》, 계용묵(桂鎔默)의 《꿈을 새긴다》, 피천득의 《잠》, 김기진(金基鎭)의 《지행일치(知行一致)》, 김동리(金東里)의 《자연과 인생》, 김동명(金東嗚)의 《모래 위에 쓴 낙서》 《세대의 삽화》, 김말봉(金末峰)의 《대망(待望)의 노트》, 마해송의 《오후의 좌석》, 김정한(金廷漢)의 《석류일기(石榴日記)》 등이 있다. 그 뒤 70∼80년대에 들어서는 김동리의 《사색과 인생》을 비롯하여 박두진(朴斗鎭)의 《생각하는 갈대》, 박목월(朴木月)의 《밤하늘의 산책길》, 정비석(鄭飛石)의 《노변정담(爐邊情談)》 등이 있다. 오늘날에는 수필인의 확대와 독자층이 매우 넓어졌으며, 그에 따른 경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적 변모에 따른 변화와 취미 등의 확산으로 수필에 수용된 제재가 다양해지고 있다. 둘째 소설이나 시 등의 새롭고 다양한 기법을 도입하여 구사하고 있다. 셋째 여러 기법을 구사함으로써 수필문학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수필의 문학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넷째 수필인이 증대되었고 발표무대도 확대되었다. 수필이 누구나 쓸 수 있는 양식이 됨에 따라 문인·비문인 모두 쓰게 되었는데, 《수필문학》 《한국수필》 등의 수필전문지와 수많은 잡지는 확대된 무대를 말해준다. 그러나 현대수필은 수필문학의 문학성 향상과 산업사회에서의 수필문학의 정립 등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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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서의 수필 - 정주환
문학으로서의 수필
수필이 문학인가? 수필이 문학이라면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이에 대한 해답을 내리기 위해서는 먼저 문학이란 무엇인가부터 다시 밝히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문학이란 한마디로 “예술적인 언어의 구조를 말한다.” 그러면 그 예술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유희가 바로 예술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유희에 대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긴 장대를 사타구니에 넣고 말 타는 시늉을 한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유희는 많은 흥미와 재미를 동반했을 것이다. 그 재미, 그것이 일종의 예술적 행위이다.
그러면 왜 그것이 예술인가? 그것은 유희를 통한 의상(意象)을 객관화하여 구체적인 정경(情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장대를 타는 정취가 집중될 때 장대는 실재의 장대가 아니라 ‘정말’ 말이라고 하는 창조적인 정경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장대는 사실 죽어 있는 물체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이는 그것이 살아 뛰는 생명체인 말(馬)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무한한 재미와 함께 그것이 유희라는 사실을 잊은 채 어떤 환상의 세계로 젖어들게 된다. 이렇듯 문학과 예술은 결국 환상의 결과요, 현실에 대한 초월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과 문학은 하나의 심심풀이 같은 것이요, 삶의 정취인 것이다.
이와 같이 문학과 예술은 손바닥의 앞뒤와 같은 것으로 우리와 함께 늘 존재하고 우리 주위 어디에나 항상 널려 있다. 즉 농부가 모내기할 때 구성지게 불러대는 이앙가도 문학이고, 할머니의 신세타령이나 한숨도 문학이다. 새댁의 시집살이의 흥얼거림도 문학이요, 우리들의 혼이 배어 있는 신화도 문학이며, 선인의 내력을 적은 비문(조동일 교수 역시 한국문학통사에서 비문을 문학에 자리매김한 바 있음)도 문학인 것이다. 그리고 다정한 친구끼리 술잔을 기울이며 노닥거리는 음담패설도 문학이며, 침몰된 서해 훼리호의 백 선장에 대한 세인의 구설도 문학인 것이다. 훼리호의 백 선장은 이미 수장되었는 데도 불구하고 당시 신문에서는 백 선장이 자기 혼자만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튀었다고 보도한 적이 있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이야기인가. 그래서 우리는 옛날 민요나 구전을 오늘날 소중한 문학으로 간직하고 있고, 백 선장에 대한 화제는 현실감 있는 문학적 콩트로 우리의 가슴에 남아 있다.
이렇듯 우리들의 가슴 트이는 이야기가 문학이요, 우리들의 정서를 대변해 주는 것이 문학이며, 다방에서나 길거리에서 파적을 깨는 화제들이 모두 문학이다. 따라서 오랜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문학적 활동을 해왔고 또한 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 문학이 왜 저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 아무나 붙잡을 수 없는 어떤 신성 불가침의 것으로만 여기는가.
그 책임은 작가에게 있다. 그것은 무리하게 작가를 직업으로 만들어버린 데 있다. 그리고 그 직업의 당연한 결과로써 직업작가만 글을 쓰는 것으로 인식시킨 데 있다. 문학을 여러 장르로 산산조각 내놓은 것을 비평가는 거기에 한몫 거들어 문학을 더더욱 이질화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구분이나 권위가 언제까지 갈 수는 없다. 실로 문학이란 우리들의 숨소리다. 우리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문학이요, 가치 있는 체험의 기록이 문학이다. 우리들이 먹고 마시고 놀고 뛰노는 가운데 존재하는 것이 문학이요, 방에 앉아서 입담 좋은 사람이 내놓는 우스갯소리도 문학이다. 재주 좋은 말의 반죽만이 문학의 전부는 아니다.
하나의 드라마 성격을 지닌 것이면 모두가 문학이다. 즉 하나의 이야기가 문학인 것이다. 때로는 사회적인 모순에 대한 이야기도 문학이요, 또는 역사의 모순점에 대한 이야기도 문학이요, 개인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도 문학이다. 그것이 하늘 위로 향하건, 땅으로 향하건, 껴안은 여인을 향하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을 초월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언어를 초월하는 것이 문학이다. 그러면 김기림의 다음 두 작품을 보자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덕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빰의 얼룩을 씻겨 준다.
-(길)
강은 그의 모든 종족과 함께 대지의 영원한 하수도입니다. 아마존, 따뉴브, 쎄느, 라인, 한강, 두만강, 미시시피……최후로 저 위대한 땅을 흐르는 양자강.
그렇지만 시민들은 한번도 수도료를 낸 일이라곤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용을 거절 당한 일도 없습니다. 지금 그는 아침의 들을 달리며, 물레방아를 굴리며, 느껴 울며, 노래하며, 깊은 안개 속에 속을 굴러 떨어집니다.
-(강)
위 두 편의 글 가운데 어느 것이 시이고 어느 것이 수필인가? 정작 그것을 쓴 작가가 아니고는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두 작품 모두가 특징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I길 J은 그의 수필집에 들어 있는 수필이요, I강 J은 그의 시집에 들어 있는 시다.
이렇듯 수필과 시의 구분이 모호하고 유동적인 것이다. 따라서 시와 수필의 개념 정립이 실제적으로 어려운 것이다. 이와 같이 비슷한 작품을 예거하자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요즈음 들어 장르의 해체가 가시화되고 있음도 이러한 구분의 모호성 때문이다. 가령, 최인훈의 소설 I소설가 구보씨의 1일 J, I서유기 J같은 것은 소설과 수필의 혼합이며 희곡에 가까운 소설로서는 슈누레의 I나는 너를 필요로 해 J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시 장르에서는 파울 뷔어의 I엉터리 책 J 같은 것은 소설 문장을 시행처럼 잘라서 나열한 것 등이다. 이처럼 문학은 원래 담도 벽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미 결론을 얻은 셈이다. 시와 소설이 문학이라면 수필도 문학이요, 시와 소설이 문학이 아니라면 수필도 문학이 아니다. I계녀가 J가 문학이라면 I조침문 J도 문학이요, 보카치오가 쓴 I데카메론 J이 소설이라면 서거정이 쓴 I태평한화 J도 수필이다. 문학과 비문학의 차이는 어디까지인가.
앞에서 장르 구분이 애매모호한 것처럼 문학성 또한 구분이 실로 애매모호한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성이란 그 말 자체가 사실상 추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굳이 한마디로 언급한다면 '재미성'이라고 일단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저질적인 남녀의 성 묘사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상상과 감정을 통한 잘 조직된 이야기요, 정제된 미학적 언어 표출이다.
따라서 수필문학이 문학성이 약하다는 말은 그만큼 문학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자의 잘못된 표현인 것이다. 다시 분명히 언급해 두지만 수필 문학이 그 어떤 문학보다도 짙은 문학성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해 둔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오해에 대한 나의 강한 향변까지를 포함하고 있음을 언급해 둔다. 다음 수필을 읽어 보자.
자식은 돈을 벌러 외지에 가서 백골로 돌아오고, 딸은 돈벌이로 호텔에서 웃으며 나온다. 죽은 자식은 잊으면 그만이다. 외국 손님 품에서 시달리는 딸년은 약간 애처롭지만 아침에 웃고 들어오는 얼굴은 역시 해사하다. 그러나 기쁜 것은 돈이다. 판자집이 양옥이 되고 골덴텍쓰 양복에 제법 반반한 신사가 된 것도 다 이 친구의 덕이다. 이래서 역시 돈이 좋다. 유지 신사 축에 들고 사회 명망가의 대열에 낄 수 있다면 약간의 희생은 출세를 위하여, 가문을 빛내기 위하여 잊어야 한다. 냉방에서 콧물을 졸졸 흘리며 도사리고 앉아 준치가시 같기만 했던 잣골샌님의 후예는 이렇게 변했다. 돈이 더럽다고 젓가락으로 뇌까리던 선비의 후손은 이렇게 황금 앞에 충신으로 변했다. 그리고 소원대로 복을 받아 이제는 남 앞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술을 먹고 체신 없이 목을 놓아 울고 있었다.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자기도 모른다는 것이다.
-윤오영(왜 울었던고)
작가는 어쩌자고 비윤리적인 어느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써 놓았을까? 이러한 아버지는 비정의 아버지가 아닌가. 그런데 어쩌자고 이런 글을 써 놓았을까. 그러나 이 글의 맛은 글자밖에 있다. 마지막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자기도 모른다는 것이다.’에 이 글의 핵심이 있다. ‘모른다’는 그 말이 이 글에 신비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새겨 볼수록 얼마나 묘미가 있는 말인가. 여기에서 백 마디가 무슨 소용 있겠는가. 그 한마디, 바로 그것이 문학이다. 이 수필에서 마지막 표현인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자기도 모른다는 것이다.’란 말이 없다면 이 글은 생명을 잃는다. 그런데 수필이 문학이 아니라면, 그리고 문학성이 약하다면, 그는 문학을 모르고 지껄이는 말이다. 수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수필이 진정한 문학임을 다시 깨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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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진술방식 - 이문수
진술 방식의 면에서 보면, 수필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구분된다. 즉, 교훈적(敎訓的) 수필, 희곡적(戱曲的) 수필, 서정적(抒情的) 수필, 서사적(敍事的) 수필로 나눌 수 있다.
(1) 교훈적 수필
필자의 오랜 체험이나 깊은 사색을 바탕으로 하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수필.
<특징>
수필로서는 그 내용이라든가 문체가 다 같이 중후하며, 필자 자신의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는 신념과 삶의 태도 등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유의점>
수필 문학에 있어서의 교훈적인 경향은 이른바 교훈주의를 생각하게 한다. 즉, 문학 예술은 독자에게 쾌락보다는 교훈을 주려는 의도로 창작된다고 보는 일종의 공리설(功利設)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시나 소설에서처럼 수필에 있어서도 이런 교훈적인 경향에 있어서는 자칫 예술성을 소홀히 하게 되는 예가 많다.
<교훈적 수필의 예>
소(牛)의 덕성을 찬양하면서, 그것을 우리 인간들이 본받을 것을 권장한 이 광수의 '우덕송(牛德頌)'. 일제 치하라는 30년대의 암담한 시점에서 우리 나라 젊은이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일깨우고 있는 심훈(沈熏)의 '대한의 영웅' 나무의 덕성을 찬양하면서 인간이 그것을 배울 것을 강조한 이 양하(李敭河)의 '나무'
혼란한 사회에서 우리가 바르게 살아가는 태도를 제시한 이희승(李熙昇)의 '지조(志操)' 등.
<예시 1>
적지아니 탈선이 되었지만, 백 가지 천 가지 골이 아픈 이론보다도 한 가지나마 실행하는 사람을 숭앙하고 싶다. 살살 입술발림만 하고, 턱 밑의 먼지만 톡톡 털고 앉은 백 명의 이론가, 천 명의 예술가보다도, 우리에게는 단 한 사람의 농촌 청년이 소중하다. 시래기죽을 먹고 겨우내 '가갸거겨'를 가르치는 것을 천직이나 의무로 여기는 순진한 계몽 운동자야말로 참다운 대한의 영웅이다. 나는 영웅을 숭배하기는 커녕, 그 얼굴에 침을 뱉고자 하는 자이다. 그러나, 이 농촌의 소영웅들 앞에서는 머리를 들지 못한다. 그네들을 쳐다볼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심훈, '대한의 영웅'에서>
<예시 2>
의욕(意慾)이 있어도 되기가 어려운 것이 세상사거든, 하물며 당초부터 의욕도 없음이랴! 가능, 불가능의 수판만 따져 가지고야 어디서 용기가 생길 것이냐. 그렇다. 의욕과 신념과 용기를 가지자. 희망으로 맞아야 할 신춘(新春)에 '수천석두(水穿石頭, 물이 돌을 뚫는다)'의 희망을 가지자. 얼마나 어려운 일인고! 그러나,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고! <설의석, '수천석두'에서>
(2) 희곡적 수필
필자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체험한 어떤 사건을 생각나는 대로 서술하되, 그 사건의 내용 자체에 극적인 요소들이 있어서, 대화나 작품의 내용 전개가 다분히 희곡적으로 이루어지는 수필.
<특징>
사건의 전개가 소설에서처럼 유기적, 통일적인 진행을 이룬다. 그리고,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문장에 있어 극적 현제의 시제가 흔히 쓰인다. 즉, 현제 시제를 사용한다. 필자가 어떤 곤란을 겪게 될 때나 슬픈 일을 겪게 될 때,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보여 주는 점에서 각별한 흥미를 끈다.
<희곡적 수필의 예>
자신의 구두 발자국 소리가 기이했던 탓으로, 어떤 낯 모르는 여인에게 자칫 불량배로 오해받을 뻔한 수모를 당한 체험담을 쓴 계 용묵(桂鎔默)의 '구두'. 낯선 산에서 길을 잃고 죽을 뻔한 조난의 체험을 쓴 이 숭녕(李崇寧)의 오봉산 등산기 '너절하게 죽는구나'. 김 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 등.
<예시 1>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길에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일원짜리를 줍니까? 각전(角錢) 한 닢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동전 한 닢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푼 한 푼 얻은 돈에서 몇 닢씩 모았읍니다. 이렇게 모은 돈 마흔 여덟 닢을 각전 닢과 바꾸었습니다. 이러기를 여섯 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다양(大洋)' 한 푼을 갖게 되었읍니다. 이 돈을 얻느라고 여섯 달이 더 걸렸읍니다." <피 천득, '은전 한 닢'에서>
<예시 2>
내 구두 소리가 또그닥또그닥, 좀더 재어지자 이에 호응하여 또각또각, 굽 높은 뒤축이 어쩔 바를 모르고 걸음과 싸우며 유난히도 몸을 일어 내는 그 분주함이란, 있는 마력(馬力)은 다 내 보는 동작에 틀림없었다. 그리하여, 한참 석양 놀이 내려퍼지기 시작하는 인적 드문 포도 위에서 또그닥또그닥, 또각또각 하는 이 두 음향의 속 모르는 싸움은 자못 그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나는 이 여자의 뒤를 거의 다 따랐던 것이다. 2,3보만 더 내어디디면 앞으로 나서게 될 그럴 계제였다. 그러나, 이 여자 역시 힘을 다하는 걸음이었다. <계용묵, '구두'에서>
(3) 서정적 수필
일상 생활이나 자연에서 느끼고 있는 감상을 솔직하게 주정적,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수필.
<특징>
문장은 흔히 서정문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서정의 내용은 정서, 즉 희(喜) 노(怒) 애(哀) 낙(樂) 애(愛) 오(惡) 욕(欲) 이라고도 설명된다. 교훈적 수필에 공리성이 강하다면, 서정적 수필에는 예술성이 강하다. 그것은 작자의 의도가 자기의 정서적 경험을 독자에게 전달해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으므로 표현에서 주로 기교에 유의하는 것과도 관련된다.
<서정적 수필의 예>
이 효석의 '청포도(靑葡萄)의 사상(思想)', '화초(花草)', 이 양하의 '신록 예찬(新綠禮讚)', 김 진섭의 '백설부(白雪賦)', 이병기의 '백련(白蓮), '난초(蘭草)' 등.
<예시 1>
초라한 내 집이 오늘은 조금도 욕되지 아니하다. 산허리에 외롭게 서 있는 일간 두옥(一間斗屋). 아니, 내집도 이렇게 아담하고 아름다왔던가. 여기도 눈이 쌓이고 달빛이 찼다. 문은 으례 굳게 닫혀 있고, 나를 기다릴 개 한 마리 없다. 그러나, 이것도 오늘 밤에는 나를 조금도 괴롭히지 않는다. <이 양하, '조그만 기쁨'에서>
<예시 2>
어려서 나는 꿈에 엄마를 찾으러 길을 가고 있었다. 달밤에 산길을 가다가 작은 외딴집을 발견하였다. 그 집에는 젊은 여인이 혼자 살고 있었다. 달빛에 우아하게 보였다. 나는 허락을 얻어 하룻밤을 잤다. 그 이튿날 아침, 주인 아주머니가 아무리 기다려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러 봐도 대답이 없다.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거기에 엄마가 자고 있었다. 몸을 흔들어 보니 차디차다. 엄마는 죽은 것이다. 그 집 울타리에는 이름 모를 찬란한 꽃이 피어 있었다. 나는 언젠가 엄마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생각하고 얼른 그 꽃을 꺾어 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하얀 꽃을 엄마 얼굴에 갖다 놓고 "뼈야 살아라!"하고, 빨간꽃을 가슴에 갖다 놓고 "피야 살아라!" 그랬더니 엄마는 자다가 깨듯이 눈을 떴다. 나는 엄마를 얼싸안았다. 엄마는 금시에 학이 되어 날아갔다. <피 천득, '꿈'에서>
(4) 서사적 수필
인간 세계나 자연계의 어떤 사실에 대하여 대체로 필자의 주관을 개입시키지 않고,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수필.
<특징>
그 내용이 얼마나 사실 또는 현실에 가까운 것인가, 서술이 얼마나 정확한가 하는 문제가 따르게 된다. 이런 작품을 쓰려면 평소의 날카로운 관찰, 세심한 조사, 올바른 지식이 필요하다.
<서사적 수필의 예>
유명한 작품으로 최 남선의 '백두산 근참기(白頭山覲參記)' '심춘순례(尋春巡禮)' 이 광수의 '금강산 유기(金剛山遊記)', 이 병기의 '낙화암을 찾는 길에'. 김 동인의 '대동강', 노 천명의 '묘향산 기행기' 등이 있다. 이 밖에 필자 자신의 학문에 대해 다양하게 술회하고 있는 양 주동의 '연북록(硏北錄)', 옛날의 선비들에 대해서 뛰어나게 묘사한 이 희승의 '딸깍발이'등이 서사적 수필로 분류된다.
<예시 1>
나의 선친은 내게 호(號)는 지어 주지 않으셨다. 그도 그럴 것이, 호라는 것은 나이깨나 먹고 인간으로 틀거지가 잡혀서 사람다운 일을 좀 입내라도 낼 만한 시기가 되어야 하나 가져 보는 것이 그럴 듯하고, 또 이런 나이가 되면 친구끼리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 보다는 피차간에 호를 부르는 것이 점잖다 할까, 고상하다 할까, 정답다 할까, 풍류적이라 할까, 무어라고 꼭 때려서 말할 수는 없지마는 그저 그럴 듯하다고 하여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희성, '호변(號辨)'에서>
<예시 2>
두 볼은 야윌 대로 야위어서, 담배 모금이나 세차게 빨 때에는 양볼의 자국이 입 안에서 서로 맞닿은 지경이요, 콧날은 날카롭게 우뚝서서 꾀와 이지(理智)만이 내발릴 대로 발려 있고, 사철 없이 말간 콧물이 방울방울 맺혀 떨어진다. 그래도 두 눈은 개가 풀리지 않고 영채가 돌아서 무력이라든지 낙심의 빛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아래위 입술이 쪼그라질 정도로 굳게 다문 입은 그 의지력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
<예시 3>
궁궐을 쫓겨나온 공주는 온달네 집을 찾아갔다. 눈이 어둡고 늙은 온달 어머니에게 며느리가 되겠다고 하였다. 내 아들은 가난하고 추하므로 귀인이 가까이 할 바가 못 된다고 하면서, 온달은 지금 배고픔을 참지 못하여 나무 껍질을 벗기러 산에 가 있는 처지니, 온달과는 혼사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공주가 산 밑에 이르러 온달을 만나, 속 이야기를 했더니, 온달은 성난 모양으로, 이는 여우가 변하여 나를 홀리느라고 그러는 줄 알고 가까이 하지 말라고 소리 지르며 집으로 도망쳐 왔다. 공주는 할 수 없이 뒤 따라, 온달네 집 사립문 밑에서 자고, 다음 날 어머니에게 간청하여 뜻을 이루었다. 그 후, 남편을 출세하게 하여, 나중에는 노하였던 왕도 내 사위, 내 딸이라고 반겼던 것이다. <서 정범, '평강 공주'에서>
출 처 : [인터넷] http://munsu.new21.org/munhak-main.htm
어떤 수필이 좋은 수필인가
김태길
마음의 세계
수필가는 자기가 몸소 체험한 이야기와 느낀 소감, 또는 자기가 관찰하고 생각한 바 등을 산문으로 기록한다. 그런 뜻에서 수필은 작가의 마음의 세계를 그리는 자화상에 가깝다.
화가들이 그리는 자화상의 경우에 있어서, 좋은 그림이 되기 위하여 화가의 용모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어느 전문가에게 물어 보았더니, 자화상의 예술적 가치는 주로 그리는 솜씨에 달렸으며, 화가의 용모가 수려할 필요는 없다고 대답하였다.
아마 의견이 다른 전문가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설령 용모가 뛰어난 화가만이 훌륭한 자화상을 그릴 수 있다 하더라도, 평범한 외모가 탁월한 화가가 되기에 큰 지장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자화상이 아닌 다른 그림을 얼마든지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필의 경우는 사정이 크게 다르다. 수필이라는 것은 통념상 자기의 정신 세계를 대상으로 삼도록 마련되어 있으므로, 화가의 경우처럼 묘사의 대상을 아무 데서나 구하기가 어렵다. 뿐만 아니라 화가의 경우에는 그림 솜씨만 탁월하면 빈약하더라도 예술성이 높은 자화상을 그릴 수 있을 것이나, 수필가의 경우는 아무리 문장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빈약한 정신 세계를 가지고 훌륭한 글을 쓰기는 매우 어렵다. 수필이 주는 감명이 문장력에서 오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필자의 인간성에 대한 공감이기 때문이다.
남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풍부하고 매력적인 필자의 정신 세계가 있고, 그것을 탁월한 문장력으로 그렸을 때 진실로 나무랄 데 없는 좋은 수필이 생긴다고 하겠다.
그러나 훌륭한 인격자가 남다른 문장력으로 자서전을 썼을 때 가장 좋은 수필이 탄생한다는 뜻은 아니다.
풍부하고 매력적인 정신 세계란 반드시 성현 또는 군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위인이나 석학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풍부한 체험이 내면화하여 세상을 보는 눈이 밝거나 인심의 기미(機微)를 포착함이 날카로운 사람은 탁월한 표현력만 있으면 좋은 수필을 쓸 수가 있다.
아름다운 정감이 풍부하거나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사람도 수필에 적합한, 매력적 정신 세계를 가진 사람이다. 희로애락의 감정을 넘어서서 자신의 절박한 처지를 남의 일처럼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도 수필을 위한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이며, 각박한 일상(日常) 속에서 잠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풍류를 아는 사람도 수필의 소질이 있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의 체험을 안으로 깊이 들여다보고 그 체험 속에 담긴 의미를 음미할 정도로 조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대개 수필을 쓸 수가 있다. 자기가 보통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 겸허하고 자기의 부족함이나 실패담을 숨김없이 털어놓을 정도로 솔직한 사람도 수필을 쓰기에 적합한 사람이다.
수필을 쓰기 위해서 특별나게 사람이 잘날 필요는 없으며, 오직 세상과 자기 자신을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할 뿐이다.
표현의 솜씨
좋은 수필을 위해서 요구되는 '탁월한 표현력'이란 어떠한 것이냐에 대해서 전문가들 사이에 여러 가지 다른 의견이 있을 법한 일이며, 수필의 소재와 주제에 따라서 바람직한 표현의 양식도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수필에 있어서 문장력 내지 표현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소설이나 논문의 경우보다도 월등하게 크며, 또 수필의 문장론은 여러 가지 고려 사항을 포함한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서 나의 빈약한 개인적 견해를 소개하기에도 많은 지면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만한 여유가 없으므로, 간단하게 몇 가지만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전통적으로 수필에서는 딱딱한 문장보다는 부드러운 문장을 선호해 왔다. 경수필(硬隨筆)이라는 것도 있어서 때로는 억세고 딱딱한 표현이 어울릴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수필의 맛은 역시 포근하고 부드러운 문장을 통하여 잘 빚어진다.
부드러운 문장이라 함은 미사여구나 수식어를 많이 사용한 이른바 '미문(美文)'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쓸데없는 수식어를 남용한 문장은 좋은 문장이 아니다. 글을 쓰는 순간의 마음을 부드럽게 가지면 문장도 부드러워진다. 간결한 표현 가운데 많은 함축이 담겨 있는 글이 좋은 글이다.
언어는 본래 의사 소통을 위해서 생긴 것이다. 말이든 글이든 의사 전달이 잘 되지 않는 것은 좋은 언어가 아니다. 난삽한 문장은 대체로 의사의 전달에 어려움이 있다. 겉멋을 부린 문장에도 의사 소통의 어려움이 따른다. 쉬운 말로 된 깨끗한 문장을 나는 좋게 본다.
그러나 글의 뜻을 소상히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이 지나쳐서 설명적인 말이 많은 글은 좋은 수필이 아니다. 독자의 독해력을 못 믿겠다는 듯이, 일일이 설명을 집어넣으면, 글의 밀도가 약해지면서 함축의 묘미가 달아난다. 필자 혼자서 모든 말을 하여 결론까지도 명백히 밝히는 것은 수필의 바람직한 수법이 아니며, 독자에게도 생각할 여지를 남겨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읽고 난 뒤에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글이 수필로서는 좋은 글이다.
논문을 쓸 경우에는 빈틈없이 따져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나, 수필에 있어서는 논리를 앞세우면 도리어 맛이 떨어질 경우가 많다. 수필에도 논리의 일관성은 있어야 하며, 앞과 뒤에 모순이 있거나 현실과 어긋나는 구절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논리의 연결을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글 전체의 구성과 문단(文段)의 길이, 그리고 대화의 삽입 등도 넓은 의미의 표현에 관한 문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는 하지만 수필에도 구성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수필에도 짜임새는 있는 편이 바람직하며, 짜임새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구성을 짤 필요가 있다. 그러나 꾸몄다는 인상이 짙을 정도로 빈틈없는 틀을 짜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수필은 어디까지나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문단의 길이는 어느 정도가 적당하냐 하는 물음에 대해서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상념(想念)의 연결의 원근을 따라서, 그리고 호흡(呼吸)의 흐름의 자연스러움을 따라서, 적절하게 잇고 끊으면 스스로 넘고 처짐이 없을 것이다.
과거에 주고받은 말을 정확하게 기억하기는 어려운 까닭에, 대화의 삽입에는 자연히 작위(作爲)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작가 마음대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어도 좋은 소설의 경우와 달라서, 수필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작위를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적절한 곳에 적절한 대화를 삽입함으로써 글의 묘미를 더할 수도 있다.
미화(美化)의 상한선
마음의 세계가 풍부한 사람이 반드시 문장력이 탁월하다고 보기 어려우며, 문필의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반드시 마음의 세계가 깊고 넓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글과 사람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문필가의 글재주가 그의 사람됨의 크기를 재는 척도가 될 수는 물론 없으나, 글 가운데 필자의 사람됨이 크게 반영되는 것도 사실이다.
성품이 솔직한 사람은 대개 자기의 모습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글을 쓰는 경향이 있고, 공격적 성향이 강한 사람은 글에서도 남을 공격하는 버릇이 나타난다. 재주는 놀라우나 인덕(人德)이 약한 사람은 재치 있는 글을 쓰기는 쉬우나 품위가 있는 글을 쓰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성품이 부드러운 사람은 대개 문장도 부드럽고, 성격이 날카로운 사람은 대개 문장도 날카롭다.
그러나 수필 전문가 가운데엔 문장 또는 표현의 기교가 탁월하여 자신의 본바탕을 감출 수 있는 필력을 가진 사람도 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 욕심이 없는 자화상을 그릴 수도 있고, 번뇌가 많으면서도 해탈의 경지에 이른 듯한 글을 쓸 수도 있다. 늙은 필자가 젊은이 같은 글을 쓸 수도 있고, 젊은 필자가 늙은이 같은 글을 쓸 수도 있다. 명배우가 되면 여러 가지 다른 가면을 쓸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사정이다.
배우나 탤런트의 경우에는 자기의 본색(本色)에서 먼 배역을 잘 해낼수록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수필에 있어서는 사정이 아주 다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늙은 사람을 대상으로 삼고 젊게 보이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뛰어난 화가가 아니듯이, 보잘것없는 사람을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붓장난을 하는 작가는 훌륭한 수필가가 아니다. 특히 수필의 경우에는 자기 자신을 그리는 것인 까닭에, 미화(美化)의 속임수는 더욱 큰 감점의 이유가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보여주는 글이 좋은 수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여자가 화장을 하고 싶듯이 수필가도 자기의 몸에 색동저고리를 입히고 싶어한다. 이 유혹을 뿌리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며, 전문적 수필가일수록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비법을 알고 있다. 전문가의 수필이 간혹 감탄과 역겨움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사유가 여기에 있으며, 정말 좋은 수필을 쓰기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평소의 자기보다 나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언제나 거짓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필자가 글을 쓰는 순간에는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게 마련이고, 따라서 글을 쓰는 동안의 정신 상태는 평소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이를 경우가 많다. 이 높은 경지에 이른 순간의 자신의 모습을 그리게 되면 평소의 자신보다 아름다운 자화상을 얻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높은 선과 낮은 선 사이를 왕래하며 부단히 방황한다. 한 사람의 마음의 상한선(上限線)은 그가 자신의 모습을 미화해서 그리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 상한선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필가는 자신이 늘 그 상한선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가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솔직함은 좋은 수필을 쓰기에 가장 긴요한 덕성이다.
높은 곳으로 향하는 마음이 간절하되 좀처럼 낮은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나 자신의 모습. 그것을 진솔하게 그리면 좋은 수필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게오르그 루카치 작성일시 - 2003년 01월 09일 목요일 오후 12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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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의 본질과 형식
게오르그 루카치
에세이가 도대체 무엇이고, 그것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이며, 또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서 그러한 표현을 하는가 하는 등의 본질적 문제는 아직도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에세이를 논하면서 우리는 에세이의 '잘 쓰여진 글의 상태'를 너무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그래서 에세이는 문체적인 면에서 하나의 문학작품과 동일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서 에세이와 문학작품 사이의 가치의 차이를 운위한다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 그러한 생각은 과히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에세이를 하나의 예술형식이라고 할 때 나는 그것을 하나의 질서라는 이름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에세이가 하나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엄격한 법칙을 가지고 다른 예술형식과는 구분된다는 느낌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나는 에세이를 지금부터 일단 예술형식이라고 규정함으로써, 다른 예술형식으로부터 그것을 가능한 한 분리시키고자 한다.
우리가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교훈을 주기 때문에 읽기도 하지만, 이와는 전혀 다른 무엇인가에 이끌려서 읽는 사람들도 있다. 학문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내용이라면 예술에서는 형식이다. 학문은 우리에게 실증적 사실과 그것의 상관관계를 제시하지만, 예술은 영혼과 운명을 제시한다. 바로 여기에 학문과 예술이 맞바꿀 수 있는 분기점이 있다. 예술과 학문 사이에는 양자를 서로 맞바꿀 수 있는 대체물이나 양자 사이의 중간단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학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기질을 표현하는 전혀 다른 방식도 존재하게 되는데, 이러한 기질을 표현하는 수단이 대부분의 경우 예술이라는 대상을 두고 하는 글쓰기 방식이다. 위대한 에세이스트의 글이란 바로 이러한 성격을 띠고 있다. 플라톤의 대화, 신비주의자의 글, 몽테뉴의 에세이, 키에르케고르의 상상력에 가득 찬 일기와 노벨레 등이 바로 이러한 종류의 글들이다. 그리고 하우프트만의 대화에서 보는 미카엘 크라머의 마지막 장면이나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나오는 대목인 '아름다운 영혼의 고백' 혹은 단테나 반얀을 한번 생각해 보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영혼이라는 현실적 실제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 하나는 삶이라는 보편적인 현실이고 다른 하나는 살아감이라는 그 체계적인 현실이다.
이러한 이원성은 표현수단마저도 둘로 갈라놓았다. 그래서 한쪽은 이미지(Bild)로서, 다른 한쪽은 의미(Bedeutung)로 갈라서 생각함으로써 이 양자 사이에 대립이 생겨나게 하였다. 이로써 한쪽의 원칙은 이미지를 창출하는 원칙이 되고 다른 한쪽은 의미를 설정하는 원칙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단지 개별적 사물만이 존재한다며 다른 한쪽에서는 이러한 사물들의 사상관계, 즉 개념과 가치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문학 그 자체는 사물의 피안에 놓여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문학에서 모든 사물 하나하나가 진지한 것이고 유일무이한 것이고 또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문학이 의문을 알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소크라테스는 ≪파이드로스≫에서 시인이란 영혼의 진정한 삶을 한번도 제대로 노래 부르지 못했고 앞으로도 부르지 못하게 될 위인들이라고 비웃고 경멸하는 투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영혼의 불멸의 부분이 한때 삶을 영위하였던 위대한 존재는 이제 아무런 색깔이나 형상도 없게 되어 파악할 수 없는 것이 되었고, 오로지 영혼의 길잡이인 정신만이 그러한 위대한 존재를 바라다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물을 배열하고 정리하는 행위 없이는 문학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마츄 아놀드는 언젠가 문학을 '삶의 비평'이라고 부른 바 있다. 문학은 인간과 운명 및 세계 사이의 궁극적 상관관계를 나타내고 또 문학은 그러한 상관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태도로부터(그것의 근원을 잘 알지 못하면서도) 생겨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이미지와 의미는 그것들의 적나라한 순수성에서 보면 인간적 느낌의 두 극단을 말해 주는 추상에 불과하다. 이미지를 가장 단호하게 거부하고 그러면서도 또 가장 열정적으로 이미지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을 파악하려고 하는 글이 곧 비평가나 플라톤주의자, 그리고 신비주의자들이 쓰는 글이다.
지금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것은 형식 상호간을 갈라놓는 기본원칙이고, 전체가 구축되고 있는 질료이며, 전체 작품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입장과 세계관이다. 위에서 거론한 것을 간단히 줄여서 말해 보자. 문학의 여러 상이한 형식을 프리즘을 통해 굴절되는 태양 광선과 비교해서 말한다면 에세이스트가 쓰는 글은 자외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에세이는 조용하면서도 당당하게 자체의 단편적인 성격을 학문적 정확성의 사소한 완결성과 인상주의적인 신선함에 대립시킨다. 그렇지만 에세이의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실현과 가장 강력한 도달마저도 위대한 미학이 도래하면 무력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에세이가 형상화한 모든 것은 마지막에 가서는 부인할 수 없게 되어 버린 미학적 기준의 적용에 지나지 않게 되고, 에세이 자체는 잠정적이고 우연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에세이의 결과는 미학이라는 체계의 가능성 앞에서 더 이상 자기 내부에서 정당성을 끌어내지 못한다. 바로 이 점에서 에세이는 진정으로 또 완전히 단순한 선행자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럼으로써 에세이는 어떠한 독립적 가치도 창조해 내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치와 형식, 척도와 질서 및 목표를 향한 이러한 동경은 도달되어져야만 할 하나의 목표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제야 비로소 우리는 서두에서 말한 말을 다시 쓸 수 있겠다. 에세이는 하나의 예술형식이고 하나의 독자적이고 완전한 삶에 대해 독자적이고도 완벽한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에세이를 예술작품이라고 불러도 모순이 되거나 이중적이거나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에세이가 예술과 구별되는 점을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차이란 곧 에세이 역시 예술작품과 마찬가지로 삶에 대해 동일한 몸짓을 하지만, 삶에 대한 태도의 독립성과 그 몸짓만이 예술작품과 동일할 따름이다. 그밖에는 에세이와 예술작품 사이에는 아무런 접합점이 없다. (1910)
헝가리 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1885∼1971)의 명저 ≪영혼과 형식≫(1911)의 권두를 장식한 이 글은 블로호 또 아도르노로 이어지는 20세기의 일대 수필 논쟁의 발단이고 또 그 백미이다.(반성완·심희섭 번역의 尋雪堂 간행 1988년 한글판에서 발췌)
이정림 ( ) 작성일시 - 2003년 01월 09일 목요일 오후 12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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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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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곧 사람이다"(뷔퐁, 프랑스의 박물학자, 계몽사상가)라는 말이 있다. 또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쓴 글은 똑같다"(루이제 린저, 독일의 소설가)라는 말도 있다. 이 인용문들은 모두 작가와 글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음을 뜻한다. 글 속에 담긴 주제와 그것을 표현해 내는 문장, 그것은 곧 작가 자신의 사상과 철학이요 인격과 품위의 구현물(具現物)이기 때문이다.
수필은 특히 허구의 문학이 아닌 만큼, 어느 장르보다 작가의 개성이 글 속에 그대로 투영되게 마련이다. 개성의 다양함은 작품의 성격을 다양하게 하고, 그 다양성은 수필 형식의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수필의 성격을 크게 둘로 나눈다면, 경수필(輕隨筆)과 중수필(重隨筆)로 나눌 수 있다. 경수필은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주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중수필은 작가의 체험을 배제한 객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이 그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 경수필(輕隨筆)
①서정 수필
작가의 개인적 신변에서 정서를 추출해 내는 수필로서, 문장은 부드럽고 표현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표현이란 분식(粉飾)에 치중하는 미문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신선한 의식 속에서 찾아낸 독창적인 표현을 말한다. 서정 수필에서는 시적(詩的)인 상징과 비유도 차용하나 지나치면 산문에서 멀어진다. 시적인 수사(修辭)는 수필을 문예화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되지만, 어디까지나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안 된다. 주제는 서정 속에 용해되어 드러나지 않는 경향이 있으나, 주제가 없는 서정은 미문이나 감상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서정의 과잉은 유치한 미감으로서 경계해야 하고, 서정 수필일수록 문장은 담담해야 한다.
<예문>
찰 밥
尹五榮
찰밥을 싸서 손에 들고 새벽에 문을 나선다. 오늘 친구들과 소풍을 가기로 약속을 하고 점심 준비로 찰밥을 마련한 것이다.
내가 소학교 때 원족을 가게 되면 여러 아이들은 과자, 과실, 사이다 등 여러 가지 먹을 것을 견대에 뿌듯하게 넣어서 어깨에 둘러메고 모여들었지만, 나는 항상 그렇지가 못했다. 견대조차 만들지 못하고 찰밥을 책보에 싸서 어깨에 둘러메고 따라가야 했다. 어머니는 새벽같이 숯불을 피워가며 찰밥을 지어 싸주시고 과자나 사과 하나 못 사주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하셨다.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에 다른 여축은 못해도, 내 원족 때를 생각하고 고사 쌀에서 찹쌀을 떠 두시는 것은 잊지 아 니하셨다. 나는 이 어머니의 애틋한 심정을 아는 까닭에, 과자나 사과 같은 것은 아예 넘겨다보지도 아니했고, 오직 어머니의 정성어린 찰밥이 소중했었다. 이것을 메고 문을 나설 때 장래에 대한 자부와 남다른 야망에 부풀어, 새벽 하늘을 우러러보며 씩씩하게 걸었다. 말하자면 이 어머니의 애정의 선물이 어린 나에게 커다 란 격려와 힘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소풍 혹은 등산을 하려면 으레 찰밥을 마련하는 것이 한 전례가 되고 습성이 된 셈이다.
오늘도 친구들과 야유를 약속한 까닭에 예와 같이 이 찰밥을 싸서 손에 들고 나선 것이다. 밥을 들고 퇴를 내려서며 문득 부엌문 쪽을 둘러봤다. 새벽에 숯불을 피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다가는 안개처럼 사라져버린다. 슬픈 일이다. 손에 밥은 들려 있건만 그 어머니가 없다.
어머니는 새벽녘에 손수 숯불을 불어가며 찰밥을 싸주고 기대하며 기르시던 그 아들에게서 과연 무엇을 얻으셨던가? 그는 매일매일 그래도 당신 아들만이 무엇인 가 남다른 출세를 하리라고 믿고 그의 구차한 여생을 한 줄기 희망으로 살아왔건만 그의 아들은 좀체로 출세하지 않았다.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걷고만 있지 아니했 던가. 어머니는 운명하시는 순간에도 그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먼 길을 떠나던 그 순간에도 아들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고 웃음을 보이려 했다. "나는 너의 성 공하는 것을 못 보고 가지만 너는 이담에 꼭 크게 성공해야 한다." 그는 무엇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지 나는 모른다. 생각하면 슬픈 일이다. 끝끝내 아들의 성공을 믿으려던 그. 그 아들도 그때는 막연하게나마 감격에 어린 눈으로 대답했었다. 사실 그는 야망에 차 있던 청년이기도 했다. 환상에 사로잡히어 멍하니 섰던 나는 갑자기 시계를 들여다본다. 아침 여섯 시 반, 일곱 시 사십 분까지 불광동 종점으로 모이기로 된 약속이다. 여명의 하늘은 훤히 밝아오고 서글서글한 바람이 옷깃 으로 기어든다. 나는 문을 나서며 먼 하늘을 한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백수(白首) 오십에 성취한 바 없이 열한 살 때 메고 가던 그 밥을 손에 들고 소년 시 대의 기분으로 문을 나서는 사나이.
어머니! 야망에 찼던 어머니의 아들은 이제 찰밥을 안고 흰 터럭을 바람에 날리며, 손등으로 굵은 눈물을 닦습니다.
②철학 수필
서정 수필이 주정(主情) 수필이라면 철학 수필은 주지(主知) 수필이다. 감정보다는 지성이 주가 되는 수필이고, 정서의 아름다움에 탐닉하기보다 주제의 철학성을 더 중시하는 수필이다. 서정 수필이 정서의 아름다움에 비중을 두는 섬세한 글이라면, 철학 수필은 사유(思惟)의 깊이에 더 비중을 두는 무게 있는 글이다. 사유는 철학을 바탕으로 하며, 철학은 문학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철학을 문예화했을 때, 비로소 철학 수필은 생겨나는 것이다. 주제는 지나치게 강조하려기보다 생각의 여운을 던져 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좋다. 여운은 때로 명료한 결론보다 사유의 파장이 길기 때문이다. 독자를 가르치려 하지 말고, 깨닫게 해주는 것이 좋은 수법이다.
<예문>
이끼의 연륜(年輪)
趙演鉉
뒷마당에 끼여 있는 이끼로 유명한 일본의 어느 절을 구경한 일이 있다. 그 절은 이끼로 인해서 중요한 관광 대상이 되어 있었다. 5·60평 되는 뒷마당이 비단을 깔아 놓은 것과 같은 아름다운 이끼로 덮여 있는 모습은 참 황홀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이끼를 좋아하게 되었다.
화분이나 수반에 이끼를 깔아 놓으면 그 속의 화초(花草)가 훨씬 더 생생한 인상을 줄 뿐만 아니라 이끼 그 자체가 독특한 미감(美感)을 자아내 주기도 한다. 그러 나 그렇게 인위적(人爲的)으로 옮겨다 붙인 이끼의 생명은 길지 않다. 아무리 열심히 물을 주고, 그늘에 놓아 두어도 이끼가 자랐던 산 속의 환경과는 달라 그런지 곧 시들고 만다.
이끼가 자라는 데에는 적당한 습기와 그늘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습기와 그늘을 아무리 조성(造成)한다 해도 이끼가 생성되는 데에는 일정한 세월이 필요하다. 아무리 이끼가 생성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도 이끼는 별안간에 생겨나지 않는다. 이끼가 생성되는 데에는 오랜 세월이 가장 중요한 여건이 된다.
이끼의 아름다움을 볼 때마다 나는 그 이끼의 연륜(年輪)을 생각하게 된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그 이끼를 만들었을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 그 이끼는 더욱 아름 다워 보인다.
아무리 작은 이끼라도 그 이끼가 생성되는 데에는 실로 많은 연륜이 걸린다. 그리고 그 많은 연륜은 조용하고 남 모르는 인내 시간이다. 이 세상의 어떠한 일에 있어서도 이끼가 생성되는 것과 같은 남 모르는 조용한 인내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어느 방면에서이든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업적 속에는 누구에게나 그와 같은 이끼의 연륜과 같은 인내 세월이 있는 것은 아닐까.
③서사 수필
서사 수필(敍事 隨筆)이란 사실(사건)에 충실한 글로서, 일종의 콩트 같은 성격을 지닌다. 서정 수필과 철학 수필이 자기의 느낌과 사상을 중심으로 한다면, 서사 수필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 이 형식은 지문으로 풀어 나가는 수필과는 달리 소설처럼 대화체를 많이 사용함으로써 사건에 실감을 주기도 한다. 또 그 사건을 의미화하고 일반화시키기보다 사건 그 자체를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에서 그치는 예가 많다. 서사 수필과 성격이 반대인 글이라 한다면 관념적인 수필이 될 것이다. 관념적인 수필에는 구체적인 예시, 즉 이야기가 없으며, 일인칭인 작가가 서정이나 철학으로만 풀어 나가는 것이 그 특징이다.
<예문>
구 두
桂鎔默
구두 수선을 주었더니 뒤축에다가 어지간히는 큰 징을 한 개씩 박아 놓았다. 보기가 흉해서 빼어 버리라고 하였더니, 그런 징이라야 한동안 신게 되구, 무엇이 어 쩌구 하여 수다를 피는 소리가 듣기 싫어 그대로 신기는 신었으나, 점잖지 못하게 저벅저벅 그 징이 땅바닥에 부딪치는 금속성 소리가 심히 귀맛에 역했다. 더욱이 그것이 시멘트 포도(鋪道)의 딴딴한 바닥에 부딪쳐 낼 때에 그 음향이란 정말 질색이었다. 또그락또그락. 이건 흡사 사람이 아닌 말발굽 소리다.
어느 날 초어스름이었다. 좀 바쁜 일이 있어 창경원 곁 담을 끼고 걸어 내려오느라니까, 앞에서 걸어가던 20 내외의 어떤 한 젊은 여자가 이 이상히 또그락거리는 구두 소리에 안심이 되지 않는 모양으로 슬쩍 고개를 돌려 또그닥 소리의 주인공을 물색하고 나더니, 별안간 걸음이 빨라진다.
그러는 걸 나는 그저 그러는가 보다 하고 내가 걸어야 할 길만 그대로 걷고 있었더니 얼마쯤 가다가 이 여자는 또 한번 힐끗 돌아다본다. 그리고 자기와 나와 거 리가 불과 지척 사이임을 알고는 빨라지는 걸음이 보통이 아니었다.
뛰다 싶은 걸음으로 치맛귀가 웅어하게 내닫는다. 나의 그 또그닥거리는 구두 소리는 분명 자기를 위협하느라고 일부러 그렇게 따악 딱 땅바닥을 박아 내어 걷는 줄로만 아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여자더러 내 구두 소리는 그건 자연이요, 고의가 아니니 안심하라고 일러 드릴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어서 가야 할 길을 아니 갈 수도 없는 일이고 해서 나는 그 순간 좀더 걸음을 빨리 하여 이 여자를 뒤로 떨어뜨림으로써 공포에의 안심을 주려고 한층 더 걸음에 박차를 가했더니, 그럴 게 아니었다. 도리어 이것이 이 여자로 하여금 위협이 되는 것이었다. 내 구두 소리가 또그닥또그닥, 좀더 재여지자 이에 호응하여 또각또각, 굽 높은 뒤축이 어쩔 바를 모르고 걸음과 싸우며 유난히도 몸을 일어 내는 그 분주함이란 있는 마력(馬力)은 다 내보는 동작에 틀림없었다. 그리하여 또그닥또그닥, 또각또각 한참 석양 노을이 내려 비치기 시작하는 인적 드문 포도 위에서 이 두 음향의 속 모르는 싸움은 자못 그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나는 이 여자의 뒤를 거의 다 따랐던 것이다. 2, 3보만 더 내어 디디면 앞으로 나서게 될 그럴 계제였다. 그러나 이 여자 역시 힘을 다하는 걸음이었다. 그 2, 3보라는 것도 그리 용이하게 따라지지 않았다. 한참 내 발부리에도 풍진(風塵)이 일었는데, 거기서 이 여자는 뚫어진 옆 골목으로 살짝 빠져 들어선다. 다행한 일이었다. 한숨이 나간다. 이 여자도 한숨이 나갔을 것이다. 기웃해 보니 기다랗게 내뚫린 골목으로 이 여자는 휭하니 내닫는다. 이 골목 안이 저의 집인지, 혹은 나를 피하느라고 빠져 들어갔는지 그것은 알 바 없으나 나로선 이 여자가 나 를 불량배로 영원히 알고 있을 것임이 서글픈 일이다.
여자는 왜 그리 남자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여자를 대하자면 남자는 구두 소리에까지도 세심한 주의를 가져야 점잖다는 우대를 받게 되는 것이라면 이건 여성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생각을 하며 나는 그 다음으로 그 구두 징을 뽑아 버렸거니와 살아가노라면 별한 데다가 다 신경을 써 가며 살아야 되는 것이 사람임을 알았 다.
④사회 수필
사회 수필이란 글 속에 시사성(時事性)을 담는 수필을 말한다. 그러나 그 시사성은 어디까지나 문예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문예성이 약하면 글은 사회비평적인 컬럼이 되고 만다. 컬럼은 처음부터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지만, 사회 수필은 그 문제를 상징적으로 접근한다. 주제 역시 상징적인 수법으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주제를 직설적으로 다루게 되면 논설문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사회 수필은 분명하고도 예리한 사회의식을 기초로 한다. 그러나 그것은 보편적인 공감성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그 예리함도 문예적으로 감싸야 한다. 부드러움 속의 날카로움, 촌철살인적인 상징성, 그것은 매우 큰 힘과 울림을 지니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사회 수필의 저력인 것이다.
<예문>
조와(弔蛙)
金敎臣
작년 늦가을 이래로 새로운 기도터가 생겼었다. 층암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가느다란 폭포 밑에 작은 담(潭)을 형성한 곳에 평탄한 반석 하나가 담 속에 솟아나서 한 사람이 꿇어앉아서 기도하기에는 천성(天成)의 성전(聖殿)이다.
이 반석에서 혹은 가늘게 혹은 크게 기구(祈求)하며 또한 찬송하고 보면 전후좌우로 엉금엉금 기어오는 것은 담(潭) 속에서 암색(岩色)에 적응하여 보호색을 이룬 개구리들이다. 산중(山中)에 대변사나 생겼다는 표정으로 신래(新來)의 객(客)에 접근하는 친구 와(蛙) 군(君)들, 때로는 5, 6마리, 때로는 7, 8마리.
늦은 가을도 지나서 담상(潭上)에 엷은 얼음이 붙기 시작함에 따라서 와군들의 기동이 일부일(日復日) 완만하여지다가, 나중에 두꺼운 얼음이 투명을 가리운 후로 는 기도와 찬송의 음파가 저들의 이막(耳膜)에 닿는지 안 닿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렇게 격조(隔阻)하기 무릇 수개월여!
봄비 쏟아지던 날 새벽, 이 바위틈의 빙괴(氷塊)도 드디어 풀리는 날이 왔다. 오래간만에 친구 와 군들의 안부를 살피고자 담(潭) 속을 구부려 찾았더니 오호라, 개구리의 시체 두세 마리 담 꼬리에 부유(浮遊)하고 있지 않은가!
짐작컨대 지난 겨울의 비상한 혹한(酷寒)에 작은 담수(潭水)의 밑바닥까지 얼어서 이 참사가 생긴 모양이다. 예년에는 얼지 않았던 데까지 얼어붙은 까닭인 듯. 동사 (凍死)한 개구리 시체를 모아 매장하여 주고 보니 담저(潭底)에 아직 두어 마리 기어다닌다. 아, 전멸(全滅)은 면했나 보다!
(이 글은 1942년 종교지인 《聖書朝鮮》 권두언에 실렸던 수필인데, 이 글로 인해 잡지는 폐간되고 필자는 옥고를 치르게 됨. 이른바 《聖書朝鮮》 필화 사건이 된 이 글에는 매우 함축적인 주제가 숨겨져 있는데,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심해도 우리 민족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적인 수법으로 보여주고 있음. 따라서 사회 수필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그 글이 발표된 사회 배경을 먼저 알아야 함.)
⑤ 해학 수필
해학 수필은 유머와 위트를 모두 수용한다. 그러나 유머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므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반면에, 위트는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지적이요 날카롭다. 이런 유머와 위트를 모두 아우르는 해학 수필은, 그러나 쓰기가 만만치 않다. 그것은 사회 수필이 예리한 사회의식을 밑바탕으로 해야 하듯이, 해학 수필은 격(格)이 받쳐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격을 갖추지 못한 해학 수필은 저급한 익살이요 속문(俗文)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해학 수필에서는 더욱 문장의 품위가 요구되는 것이다. 때로는 해학 수필에서 유머가 페이소스를 동반하고, 위트가 풍자(諷刺)를 동반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는데, 이것은 모두 해학 수필이 포용하는 다양성일 뿐이다.
<예문>
사깃니
李章圭
어려서 이를 갈 때 어머님은 으레 흔들리는 내 이에 실을 감고 잡아당기셨다.
신통하게도 잘 빠졌던 이, 어머님은 아랫니는 앞마당 지붕 위로, 윗니는 뒷마당 지붕 위로 내던지시면서 내 이가 빨리 그리고 곱게 새로 나길 빌으셨다.
그 간절한 소원도 보람없이 새로 나온 이는 얼마 안 가서 망가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깍두기만 있으면 밥을 먹던 나였지만 어느새 깍두기와는 인연이 멀어지고 말 았다. 그나마 깍두기는 아예 구경도 할 수 없는 외국에 갈 때마다 이는 심통을 부리는 것이었다.
뉴욕에서는 수프로, 모나코에서는 오트밀만으로 삼시 세 끼를 때웠다.
친구인 치과대학장에게 진찰을 받았더니 대뜸 하는 말이
“엉망이군. 학생 실습감으로 십상이다….”
관비(官費) 환자가 된 나는 대여섯 명 학생들에 둘러싸여 치료를 받게 되었다. “아야”를 연발하면서 식은땀을 주르르 흘리고 있는 나를 그들은 마치 사자에 물려 뜯기는 순교자를 보는 로마 사람들처럼 지켜보고 있었다.
치료가 끝나 내 입천장에 철판대기가 하나 끼워지자 올챙이 치과 의사들은 좋은 구경이나 했다는 듯 자리를 뜨면서 “선생님 엄살 대단하신데요.” 하는 것이었다.
월요일 아침에 휘파람을 부는 월급쟁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나의 우울한 월요일은 입천장에 그 철판대기를 끼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토요일이 즐거운 것은 월급 쟁이의 통성, 내 토요일이 즐거운 것은 그 철판대기를 내팽개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였던가, 낚시터에서 그 철판대기가 역겨워 호주머니 속에 뽑아 넣었던 것이 잘못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그놈은 다시는 내 입천장에 달라붙질 않았다. 아마 릴 낚싯대를 연거푸 던지는 동안 어딘가가 좀 찌그러졌던 모양이다.
‘차라리 잘 되었구나’ 싶었다. 이 얼마나 시원한 노릇이냐!
별로 웃을 일도 없는 세상, 웃지만 않으면 될 게 아닌가. 보기 흉하다고 아내는 성화였지만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치과에 가는 것은 질색이다. 더더군다나 학생 실습감이 되는 것은 질색이다. 고주파를 쓰기 때문에 조금도 아프지 않다고 치과 의사는 꼬시지만 고주파고 저주파고 간에 뇌수에다 착암기를 들이대는 그 잔인성, 치과의 치료대가 형틀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이가 좋은 것은 오복의 하나라고 했다. 무엇이 오복인지 잘 모르지만 어차피 오 복을 누리긴 이미 틀린 몸, 붉은 입술 흰 이〔丹脣皓齒〕의 미인이 이제 나에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두뇌 노동자다.
이런 생각과는 달리 만나는 사람마다 성가시도록 “늙으셨네요” 하는 것이다. 뿐인가, 얼마 전 국제회의에 참석했을 때, 오랜만에 만난 캐나다 친구가 내 얼굴을 한참 살피더니 “치약이 덜 들어 좋겠군….” 하는 것이다.
그것까지는 좋았다. 어느 날 내 수필집을 사 가지고 사인을 청하러 온 한 예쁜 아가씨가 나를 보더니 별안간 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전, 선생님이 그렇게 이 빠진 분인 줄 몰랐어요!”
치과 의사 C박사는 어지간히 무뚝뚝했다.
“형편없군. 아스완 댐 공사만큼이나 힘들겠는걸….”
아니나다를까, 난공사였다. 자유자재로 그 고주파라는 걸 구사하면서 C박사는 세 시간의 난공사 끝에 내 이를 원숭이 이빨같이 갈아 놓고 말았다. 코끼리 발만한 그의 손이 들락날락하는 바람에 내 입술은 터져 선혈이 낭자하게 흘러내렸다.
예쁜 간호원 아가씨가 꼭 쥐어 주는 그 따뜻한 손길만 없었더라면 아마 틀림없이 기절했을 것이다. 간호원 아가씨의 손길은 실오라기 하나로 내 아픈 이를 뽑아 주 셨던 어머니의 그것과 상통하는 것이었다.
그 날부터 나는 꼬박 사흘을 수프나 오트밀보다 못한 죽물만으로 살았다. 그것이 또 탈이었던지 심한 변비에 걸려 출산에 비길 만한 고역을 치르기도 했고―.
며칠 후 내 입천장에는 한동안 잊었던 그 지긋지긋한 철판대기가 또다시 붙었다.
“게리 쿠퍼같이 되었군….”
자못 만족스러운 듯 C박사는 웃었지만 나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거울에 비친 새하얀 사깃니! 게리 쿠퍼는 좋았으나 그것은 마치 짐승의 이빨을 연상케 하는 것 이었다.
이어 C박사는 씹어 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잘 되질 않았다.
"허, 씹는 것도 잊었군."
무슨 핀잔이 또 나올까 두려워 나는 열심히 씹는 연습을 했다.
사흘 후 내 입천장이 그 철판대기에 익숙해졌을 무렵 나는 조심스레 깍두기 하나를 씹어 보았다. 와삭. 또 씹어 보았다. 와사삭. 실로 몇 년만이었던가! 그 소리는 연인의 속삭임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이젠 치약도 듬뿍 들 것이다. 이젠 사인을 받으러 온 아가씨를 실망시키지 않아도 될 것이고 그리고 또 이젠 그 형틀에 다시는 올라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⑥ 기행 수필
한때, 세계 여행가들이 쓴 기행문이 베스트 셀러가 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미지의 나라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기행문은 더 이상 특출한 여행가들만이 쓰는 글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기에 기행문을 쓰기가 어렵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전의 그 안이한 자세에서 벗어나려 들지 않는다. 즉 세세한 여행 일정, 친절한 길 안내, 안내 책자에 살붙인 것 같은 관광지 소개, 백과사전에 다 있는 지식의 나열…. 기행문의 세 요소는 체험·감상·여정(旅程)이다. 그러나 기행문이 기행 수필이 되려면 여행지에서 자기만이 체험하고 느낀 것을 주제로 끌어내야 한다. 남들은 느끼지 못한 나만의 철학 여행, 기행 수필은 눈으로 쓰는 글이 아니라 마음으로 쓰는 글이다.
<예문>
모자
鄭惠玉
긴 여행을 계획한 우리는 이틀 전에 취리히를 떠나 제네바에 도착했다.
뤼쩨른·몬테럭스 등의 호반 도시며 인터라켄·스핏스 등의 산간 도시 등은 알프스의 산과 함께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여행 도중 잠시 머물렀던 뤼쩨른에서 유명한 카펠 목교(木橋)를 건너가기 전 어떤 상점에서 모자를 한 개 샀다.
금빛의 둥근 챙에는 자주색 리본과 장미꽃 조화 한 송이가 매달려 있는 화려한 여름 모자이다. 나는 그때 호숫가에서 앞으로 몇 주일을 두고 계속할 여행을 위해 사치한 치장을 하고 싶은 욕망이 문득 일어났었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거리, 나의 연령을 짐작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녀처럼 머리 위에 꽃모자를 쓰고 마지막 여행을 아름답게 꾸미리라 했다.
일상에 부딪쳐 오는 생활의 그늘 같은 것은 잠시 멀리 둔 여행길. 감동적인 이국 풍경과 미지의 땅에 대한 기대에 들떠서 산간 열차로 알프스의 산록을 지나올 때 도, 건초가 쌓인 산촌의 가스트 하우스에서 잠시 쉴 때도 나는 그 모자를 쓰고 있었다.
어느 이름 모를 소읍(小邑), 거친 돌로 지어진 고풍(古風)한 성당에서 마침 거행되고 있던 혼례 미사에서도 초대받은 손님처럼 그 모자를 쓰고 회당의 앞자리에서 신부(新婦)보다 더 가슴을 울렁이며 앉아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착각이며 향기로운 회상의 잔치이기도 했다.
우리는 다음 여행지인 몽블랑 산정에 오르기 위해 샤모니로 가는 열차를 타러 갔 었다. 개찰원이 없는 이곳은 승객이 스스로 목적하는 차를 타야 한다. 역에는 이미 열차가 들어와 있었다. 등산복 차림의 승객들이 모두 몽블랑으로 가는 관광객들이라 믿고 우리도 바삐 차에 올랐다. 프랑스어·독일어·영어 등이 뒤섞인 승객들 사이에서 자리를 잡고 모자를 벗어 선반 위에 얌전히 얹어 두었다.
이윽고 열차가 움직이는 기척에 창 밖을 내다보니 차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황급히 짐을 들고 뛰어내렸다. 어떤 사람이 그 열차는 파리 경유 덴마크의 코펜하겐까지 간다는 것이다. 이미 열차는 멀리 평원 위로 모습을 감추었다. 한 차례 바람이 불었다. 머리카락이 흩어진다. 나는 그때 알았다. 나의 머리 위에 모자가 없음을. 어찌 그리 허둥대었을까. 그 모자는 나의 의식 속에 익숙지 못한 손님으로만 존재했던 것일까. 나의 건망증을 스스로 탓하며 아깝고 억 울한 생각에 어쩔 줄 몰랐다.
스물 여덟 시간의 짧은 인연으로 끝나 버린 아름다웠던 나의 모자. 나의 생애에 서 귀하게 얻은 열망의 시간에 그 모자는 하루 낮과 밤 동안 나의 머리 위에서 나 를 오만하고 호사스런 여왕으로 꾸며 주고 몽상적인 사랑을 일으켜 충일한 기쁨에 젖게 하고 남아 있는 여행길을 더욱 확고한 동경으로 이끌어 주더니 이제 낯선 빈 역두에 나만 짐짝처럼 내려 두고 갔다. 인연의 줄은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 버렸다.
누가 나를 기억하여 줄 것인가. 지난날의 모습을. 그날의 모양새는 몇 장의 사진 속에 남아 있을 것이고 그 모자는 나비의 날개처럼 파닥이며 나의 머리 위에 얹혀 있을 것이다.
이제 일몰(日沒)의 시간. 멀리 낮은 땅에는 낯선 바람이 불어오고 나를 다른 방향 으로 이끌고 갈 열차를 기다리며 멍청히 서 있었다. 그 모습은 꿈을 깨고 난 신데 렐라처럼 초라했었다.
별리(別離)의 아픔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이런 사물에 대해서도 애착이라든가 소유에 대한 욕망 때문에 더 아픈 상처를 받기도 하고, 영 원히 나의 것이라고만 믿던 젊음이라든가 명성이라든가 사랑 같은 것이 얼마나 순식간에 우리 곁을 빠져나가 버리는가를 알게 한다.
많은 것들 중에서 선택되어 인연을 맺고 사랑과 미움의 정이 생성(生成)하고 마침내 서로 떠나고, 이러한 만남과 헤어지는 순서는 우리 삶의 도처에 깔려 있어 우리를 환희롭게도 하고 또 슬프게도 한다.
후일 나의 집에서 안주(安住)할 때 오늘의 기억은 바람처럼 잠잠하여질 것이고 우리의 모습도 점점 변하여 갈 것이다. 그러나, 북구(北歐)의 황량한 땅을 향하여 흔들리며 가 버린 모자의 기억은 언제나 남아 있을 것이다.
작게 접은 푸른 지도를 들고 기웃거리던 이국의 거리며 강이며 산이며 그리고 얼굴들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그 모자는 지난날의 한 부분으로 살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꿈을 꿀 것이다. 그 모자가 나의 깃발이 되고 바람이 되고 또 한 마리 나의 새가 되어 내가 가 보지 못한 이 세상 구석구석을 홀로 돌고 있을 영원한 나의 꿈을 꿀 것이다.
2. 중수필(重隨筆)
경수필이 작가의 신변적인 체험에서 소재를 찾는 수필이라면, 중수필은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문제에서 소재를 찾는 수필이다. 그러므로 경수필은 주관적이고 중수필은 객관적이다. 중수필에서는 작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작가의 철학과 사상만이 있을 뿐이다. 개인의 감정과 문예적 미감을 수용하지 않는 중수필이 소논문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이 심오할수록 문장은 쉽게 쓰는 것이 좋다. 내용이 어려운데 문장까지 어려우면 뜻의 전달성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구체성이 배제된 중수필, 그 위치는 문학과 철학의 중간이다.
<예문>①
미모(美貌)의 사상(思想)
趙演鉉
이 지상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것은 확실히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원천이 된다.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 우거진 삼림, 눈부신 각종의 꽃들, 그리고 여러 가지 형태의 이해와 애정! 만일 이러한 것들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쓸쓸하고 허전할 것인가. 사람의 미모도 그러한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의 하나 다.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이상한 충격을 느낀다. 황홀한 즐거움 같기도 하고, 외로운 슬픔 같기도 한 감정의 물결이 인다. 흡사 감동적인 예술을 대했을 때와 같이―이것은 미모도 하나의 예술적인 현상임을 말하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누구의 창작도 아닌 신의 우연한 은총일 뿐이다.
사람의 육체 중에서 얼굴은 가장 귀중한 부분에 속한다. 그것은 얼굴이 그 사람의 육체 전체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그 정신까지도 반영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의 관상학은 사람의 얼굴이 그대로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해 준 것으로 해석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육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남보다 아름답게 타고난 미모의 사람들은, 그만큼 신의 은총을 많이 받은 것이 된다.
미모에는 일정한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그것은 언제나 미모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주관에 근거된다. 단테에게는 베아트리체가 최상의 미모로서 보였을 것이요, 에 드워드 8세에겐 심프슨 부인이 지상의 유일한 미모로서 비췄을 것이다. 아무리 코나 입이 비뚤어져도 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얼굴이 미모로 보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사랑의 의식과 완전히 떠난 미모의 의식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모의 의식과 사랑의 의식은 어쩌면 동일한 감정의 두 개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을 것인지도 모른다.
미인을 선발하는 풍습이 있다.
<미스 코리아>니 <미스 아메리카>니 하는 것이 그것이다.
다수의 투표에 의해서 미인이 결정된다. 미인의 객관성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인을 정말 미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다수의 의사가 미인이라고 결정한 것이니까 미인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미인을 미인이라고 믿지 않는다. 이런 경우의 미인이란 정말 미인이 아니라 미인의 유형일 뿐이다. 미 그 자체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미의식을 조절한 미의 개념일 뿐이다. 미는 감동의 대상이지만, 미의 개념은 감동의 대상이 안 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미스 아메리카 나 미스 코리아도 자기의 애인이 주는 몇 만 분지 일의 감동도 주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것은, 미모란 객관적인 개념이 아니라, 주관적인 실감인 것을 의미 한다.
우리는 그전까지 아름답게 보여지던 얼굴이 별안간에 밉게 보이고 지금까지 밉게 보아 온 얼굴이 어떤 순간부터 별안간에 아름답게 느껴진 여러 가지 경험을 가지 고 있다. 어떠한 우발적인 사건에서 혹은 어떤 경우의 표정 하나로서, 우리는 그전까지 전혀 몰랐던 아름다움이나 미움을 새로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발견 된 미모의 의식이 그 사람의 용모에 대한 우리의 감정적 본질을 결정한다. 이것은, 사람의 얼굴에 대한 미모의 의식은, 그 외형적 조건만으로서 독립된 것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그 외형적 조건 이외의 다른 요소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 사람의 내면적인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얼굴이 인간의 생명의 상징이라면 생명의 구체적인 기질인 그 사람의 정신적 인격, 내면적인 조건은 그 사람과의 특수한 교섭이나 경험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미모가 주관적인 실감이라 는 본뜻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된다.
우리는 전차나 버스 속에서 혹은 노상에서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을 퍽 아름답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러한 미모는 곧 기억에서 사라지고 만다. 곧 기억에서 사라지는 미모란 정말 미모가 아니다. 미모는 그것이 하나의 감동이요, 충격이기 때문에 오래 잊혀지지 않는 곳에 그 생명과 가치가 있다. 일생에 두 번밖에 보지 못한 베아트리체를 단테는 일생동안 잊지 못했다. 그와 같은 작용력이 없으면 미모는 아니다. 이와 같은 작용력은 미모의 내면적 조건이 그 외형적 조건으로 표상됨으로서만 가능해진다.
어떠한 미모도 화장을 잘못하거나 그것을 게을리 하면, 그 아름다움은 거세(去勢) 된다. 화장은 부족의 보충이요 무질서한 것의 통일이기 때문에 불완전한 자연적인 미를 완전한 창작적인 미로 개변시킨다. 잠자는 사람의 얼굴이 아름답지 못한 것은 방심에서 오는 의지의 불통일 때문이다. 화장에 의해서 미모가 한층 더 확실해 질 수 있다는 것은, 미모는 자연적 현상이기보다는 의지적 형상임을 말한다. 아무리 못난 얼굴도 화장에 의해서 어느 정도 예뻐질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불미한 정신의 소유자라도 의지의 힘으로 그것을 고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미모는 하나의 신의 우연한 은총이기보다는 오히려 그 자신의 창조적인 노력에 의한 산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은, 특히 미모에 예민한 여성들은 스스로 자기가 미모이기를 원한다. 호수에 비친 자기 얼굴의 아름다움에 스스로 도취되었던 <희랍> 신화의 나르시스 처럼 자기도 미모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특히 여성들은 자기가 얼마만큼 미모가 될 수 있는가를 모르고 있다. 그러나 자기가 나르시스인 것을 알려 주는 사람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 사람을 찾아내느냐 못 찾아내느냐 하는 것만이 자기의 미모를 알게 되는 열쇠가 된다. 자기가 나르시스임을 알려주는 사람을 얻 게 된다는 것은, 자기의 인생을 완성시킨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 그렇다면 옳은 미모는 자기 인생의 스스로의 완성 위에 있는 것인가?
<예문>②
고독이라는 것
金秉圭
카뮈는 <요나>라는 단편소설에서 우리에게 하나의 물음을 제출하고 있다. 한 사람의 화가가 경제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부러울 것이 없으며, 작품에서도 성공했 지만 살아갈 희망을 잃고 끝내 넘어지고 만다. 화가가 남긴 캔버스에 조그만 글자가 쓰여져 있었는데, 그것은 '솔리테르'(고독한)로 읽어야 할지 '솔리데르'(연대의) 라고 읽어야 할지 명확하지 않았다고 한다(프랑스말 '테 t’와 '데 d'의 차이로, 뜻은 반대다).
우리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하여는 연대가 필요한지, 그렇지 않고 고독이 필요한지, 도대체 고독이나 연대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에겐 잘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에 서로서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그가 숨기고 있는 무엇을 어떤 기회에 발견하게 되면서 놀라는 수가 있다. 인간이란 각자가 개성 을 가진 독자의 존재이므로 우리는 스스로의 '자기'를 깨닫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여느 '자기' 즉, 다른 사람들로부터 밀려 나왔다고 여기게 된다.
이러한 것은 무엇을 똑똑하게 보았다든가 깊이 생각한 사람에게는 들어맞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이란 배는 이미 항구를 떠나오고 말았으며, 우리는 지금 가 령 무엇을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이젠 벌써 너무나 많은 일에 연관을 가지면서 살 기 시작하고 만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고독한 존재이면서 그와 동시에 어떤 형태든 다른 사람과의 연대로부터도 자유롭지 않은 어떤 존재이다. 오히려 '고독'은 모든 사람들의 일 상성에서 각자의 삶의 바닥에, 말하자면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고독이라는 것은 결코 공소한 사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 기의 문제로서 일상생활 안에서 반성해야 할 근원적으로 실존적인 물음의 제출인 것이다.
아마 고독을 여태까지 한번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인간의 실존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두세 살 난 어린아이도 자기 기분을 알아주지 않는다든가 무시되었을 때의 슬픔이나 괴로움을 잘 알고 있다. 누구나 직접 겪는 고독이란 다른 사람, 더욱이 그에 게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의사의 전달이나 교환이 되지 않고 따라서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는 일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 예컨대 적막감 같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랑을 받는다든가 소중하게 여겨진다는 것은 고독으로부터 해방되는 데 있어서는 2차적인 가치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의 사의 전달이나 교환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먼저 있고 다음에 사랑이 소중하게 여겨진다고 하는 것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알고 있듯이 다른 사람에게 의사의 전달이나 교환이 이루어져 따라서 이해되지도 않으면서 사랑을 받는다든가 소중히 다루어진다는 것은 되레 적막감을 더하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고독의 객관적인 형태는 의사의 전달도 교환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좀더 다듬어서 말하자면 커뮤니케이션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독에는 두 개의 층이 있는데 깊은 층은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없는 것이며 얕은 층은 사랑받거나 소중히 여겨진다는 것으로 대표되는 정서적 반응의 교환 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고독의 깊은 층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사랑받는다든가 하는 것은 깊은 층이 있고 난 뒤의 2차적인 관심이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역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어떤 역할이든 그것을 연출하는 것이 기대되어 있는 사람은 연기자로서의 그와 '진실한' 그와의 사이에 다소간 간격을 느끼는 것이 보통이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전자는 '내밀의 자아'인 것이다. 이 두 개의 자아는 역할과 자기와의 갈등으로 나타난다.
통렬한 전쟁 체험을 겪은 사람일수록 그 체험을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는 귀환 병사라는 역할과 '내밀의 자아'와의 사이의 간격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에게는 성서를 읽고있다는 것은 천진한 소냐에게조차 겨우 털어놓은 자기의 비밀이었다. 그리스도 교 도라는 역할과 현실의 자기와의 사이에는 너무나 깊은 단절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수상록>의 몽테뉴는 고독을 좋아했다. 그가 말한 고독은 '육체와 정신의 평정을 방해하는 정렬에서 도피하여 자기의 기질에 가장 걸맞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며 좋은 의미에서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몽테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사람들한테서 떨어져 본들 충분한 것이 안 된다. 또한 장소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우리들 자신의 안에 있는 모든 비속한 생활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곧 자기 자신을 격리하여 자기 자신을 되돌려 찾지 않으면 안 된다.'
혼자 있다든가 모두 함께 있다든가 하는 것만으로 고민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 모자라는 사람이다. 자기가 되며 자기에게 돌아가면서 다른 사람과 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커뮤니케이션의 결여 속에서는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없다. 고독의 깊은 층은 우 리가 몸을 두고 있는 밖의 세계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 속의, 또한 자 기 속의 세계가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자기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2001)
柳炳奭( ) 작성일시 - 2003년 01월 10일 금요일 오전 0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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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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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생활
柳 炳 奭
모든 문학이 생활의 반영 아닌 것이 없지만 특히 생활과 가장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장르는 수필이다. 시·소설·드라마도 생활의 반영이요 표현이다.
그러나 그 반영의 방식과 표현 양식에 있어서 이것들은 수필과 다르다.
소설은 작가가 자기의 생활을 직접적으로 표현·전달하지 않는다. 허생원이라는 기구한 장돌뱅이의 생활을 나타낸 것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다. 우리 독자는 거기에서 허생원의 생활에 접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효석 자신의 생활은 아니다. 작자 이효석은 창조주처럼 작품의 뒤에 숨어 버리고 우리는 거기서 엉뚱한 허생원의 생활을 구경한다. 이효석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허생원을 조종할 뿐이다.
드라마도 이 점에서 소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햄릿'에서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생활을 구경할 수가 없다. 죽느냐 사느냐 고민하는 것은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그가 창조해 낸 '햄릿'이란 인물일 뿐이다. 우리 독자가 '햄릿'이란 드라마에 공감하고 감동하는 것은 '햄릿'이란 가공 인물의 기구한 운명 때문이다. 이미 부귀와 명성을 누리고 유유자적하는 셰익스피어 때문이 아니다.
시에는 소설이나 드라마처럼 작자의 생활이 직접 드러나지 않는 부류의 것과 시인 자신의 생활이 직접 드러나는 부류의 것이 있다.
첫째 부류의 시는 소설이나 드라마처럼 시인 자신은 모습을 감추어버리고 등장인물로 하여금 판을 벌이게 조종하는 것이다. 한 편의 작은 드라마와 같은 시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라고 말하는 인물은 시인 김소월이 아니다. 작중 인물일 뿐이다.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는' 행위의 주체가 헌헌장부인 김소월일 수 없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하면서 떠나는 임을 맘 놓고 원망조차 할 수 없었던 가냘픈 여인이 수백 년 후에 환생한 것 같은 그러한 한 많은 아낙네임에 틀림없다.
이런 의미에서 진달래꽃의 김소월은 이효석이나 셰익스피어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작중 인물을 조종하는 작가일 뿐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작자 아닌 작중 인물(가공 인물)의 생활에 접할 따름인 것이다.
둘째 부류의 시는 소설이나 드라마와 달리 직접적으로 시인의 생활이 드러나는 것이다. 시인은 자기 자신의 메시지를 직접 독자에게 전달하는 경향이 있다. 시인 자신의 생활이 직접 드러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기약하며 살아가는 것은 윤동주 자신이다. 우리는 거기에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던 나약한 식민지 지식인 윤동주를 목도한다. 윤동주가 창조해 낸 어떤 다른 작중 인물이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기약하는 것이 아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허구의 인물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독자는 바로 윤동주라는 자연인의 생활에 접하는 것이다.
수필은 어떠한가? 수필은 수필가 자신의 생활을 직접 그려 낸다. 둘째 부류의 시와 유사하다. 수필가가 그의 수필에 담는 것은 자기 자신의 생활이다.
작중 인물이 따로 있을 수가 없다. 수필을 일컬어 작자의 나상(裸像)이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수필처럼 작자가 직접 드러나는 글이 어디에 또 있는가?
소설이나 드라마에도 작자의 성격이 드러나긴 드러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체라든가 기법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흐릿하게 드러남에 그친다.
수필처럼 작자가 직접 자기의 생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필은 작자가 직접 나서서 말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독자를 직접 상대해서 말한다. 이 점에서 수필이 소설, 드라마, 첫째 부류의 시와 다르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시 중에서 수필에 가까운 둘째 부류의 시, 고백체 시(잠정 용어임)도 작가가 직접 나선다는 점에서는 수필과 유사하지만 독자를 대하는 태도는 판이하다. 수필은 수필가와 독자의 직접 대화다. 화자와 청자가 대면하여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고백체 시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시인이 자신의 소회(所懷)를 피력하긴 한다. 그러나 누구보고 들으라고 특정 대상을 상정한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시인은 허공에 대고 자기의 소회를 피력할 뿐이고 독자는 이 때에 시인의 독백을 뒤에서 엿듣는 존재와 같다. 시인이 시를 쓸 때 그는 수필가처럼 독자를 상정하지 않는다. 혼자의 독백을 허공에 띄워 놓고 그만두는 것이다. 그것을 엿듣는 존재가 시의 독자다.
이상에서 논술한 바를 요약하면, 수필은 수필가 자신의 생활을 자신의 육성으로 독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성격이 가장 뚜렷한 장르의 문학이다. 이 말은 곧 수필이 여타의 문학보다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장르라는 뜻이 된다. 실제로 우리의 경험이 이를 증명하고 남음이 있다. 김소운의 전부를 알기 위하여 우리는 그의 몇 권의 수필집을 읽으면 충분하다. 그러나 수십 편의 소설을 죄다 읽어도 우리는 작자 염상섭의 생활을 알 수는 없다. 염상섭 연구자는 그가 써 놓은 회고록이나 교우록 등속에―이것이 수필이 아니고 무엇인가―의존한다.
수필은 수필가의 생활이 곧 소재다. 수필가는 자기의 생활을 소재로 수필을 쓴다. 그러면 모든 생활이 다 수필이 되는가? 그럴 수는 없다. 아무거나 생활이면 다 수필이 될 수는 없다. 우리의 생활이라는 것이 그지없이 사소하고 하찮은 것 투성이가 아닌가? 특별한 생활이면 수필의 소재가 된다. 그러나 특별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만이 수필을 쓸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찮은 생활의 더미 속에서 값진 것을 발견해 내는 밝은 눈이 있으면 된다. 금괴가 그대로 굴러 있는 노천 금광은 그리 흔하지 않다. 대부분의 금광은 땅속 깊은 곳에 있다. 깊은 땅속을 뚫고 들어가 바위에 싸라기처럼 박힌 금싸라기를 쪼아 내게 되어 있다. 이런 뜻에서 세계적인 에세이스트 임어당(林語堂)이 그의 에세이집에 <생활의 발견>이라 표제를 붙인 것은 아주 잘된 일이다.
생활의 발견만으로 좋은 수필이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발견된 생활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의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이 따라야 좋은 수필이 된다. 이것이 잡문과 수필을 구획하는 경계선이다. 일반론적으로 말하면 생활의 발견은 소재 선택이요 그것의 가치 부여가 주제 설정이다.
소재 선택이 먼저 있고 주제 설정이 뒤에 따라오는가, 아니면 주제가 먼저 설정되어 거기에 걸맞는 소재가 나중에 선택되는가 하는 것은 그리 고심할 일이 아니다. 사실은 소재 선택과 주제 설정은 동시에 이루어지는 일이 흔하다. 잡다한 생활 속에서 소재가 선택될 때―생활이 발견될 때―이미 그 생활은 의미 부여가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하찮은 생활에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이 곧 생활이 발견되는 순간이요 수필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주제를 지팡이에, 소재를 막대기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팡이가 필요한 사람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적당한 막대기를 찾아 드는 수도 있다.
그저 지나치기 아까운 막대기를 우연히 주웠기 때문에 그것을 지팡이로 요긴히 쓰는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흔한 일은 적당한 막대기를 만나는 순간, '아, 이걸 지팡이로 쓰면 안성맞춤이겠구나!' 하고 탄성을 지르는 경우일 것이다. 지팡이의 용도를 모르는 사람에게, 지팡이의 필요성이 없는 사람에게, 지팡이와 막대기의 상호 연관성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막대기는 그대로 막대기로 남은 채 굴러 있게 될 것이다. 기성 상품의 지팡이어야만 지팡이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 수필가의 밝은 눈이다.
생활인이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 수필이고 생활인이면 누구에게나 읽히는 글이 수필이다. 수필은 밝은 눈에 보이는 생활의 모습이요 생활인의 눈을 밝게 하는 글이다. 생활을 발견하고 거기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여 전달하면 수필이 된다.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까 어떻게 기막히게 표현할까 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이며 그리 중요한 기본 문제도 아니다.
▲ 필자 소개
수필가(1936∼1995). 전 한양대 국어학과 교수. 수필집으로는 《왕빠깝빠》(유고집)가 있고, 저서로는 《염상섭 전반기 소설 연구》와 《20세기 한국문학의 이해》가 있음.
신변수필과 철학
신변수필과 철학
金時憲
한국에서 쓰이고 있는 수필은 대부분이 신변수필입니다. 주부들의 수필은 더욱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변수필이라 하지 않고 신변잡기라고 합니다.
수필과 잡기의 구별도 못하면서 잡기라고 하는 데는 신변수필을 격하시키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수필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수필은 체험을 중심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신변의 이야기를 떠날 수 없습니다. 운명적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도 신변수필을 많이 씁니다. 쓰면서도 자신에게 불만을 가집니다. 이래서는 안되는데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신변수필을 많이 쓰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수필에 대한 안이(安易) 때문입니다. 주제에 대한 고민, 소재의 선택, 철학의 부여 등에 안이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는 붓 가는 대로 쉽게 써내려 가는 것입니다.
독자의 불평도 있습니다. 어느 수필도 내용이 그게 그것 같더라는 것입니다. 읽을 흥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신변수필의 약점을 극복하느냐? 이 문제를 두고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의 방법은 가족과 가정의 이야기에서 떠나 보자는 것입니다. 가족과 가정 이야기는 이미 많이 써 보았습니다. 작가 자신도 싫증이 날 때가 되었습니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야겠습니다. 구름도 있고, 나무도 있고, 차바퀴에 깔린 비둘기 시체도 있습니다. 종교 이야기도 있고, 미(美)가 무엇이냐 하는 예술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체험의 범위가 넓지 않기 때문에 신변 이야기를 떠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체험의 범위와 체험의 소화와는 별개입니다. 작은 체험도 소화의 깊이에 따라 넓고 큰 소재로 확대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신변 이야기가 아닌 것은 다루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절실한 체험, 싸움을 벌인 체험이라야 쓸 이야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손쉬운 생활 주변의 이야기에만 매달려 있으니 말썽이 생깁니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신변수필을 쓰더라도 이왕이면 사상이 있는 수필을 쓰자는 것입니다. 사상이라고 하면 우선 대단한 것으로 생각되기 쉬운데, 문학이 뭐냐고 물었을 때 "사상과 감정을 문자로 표현한 것"이라고 흔히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수필에는 필수조건으로 사상이 들어가야 합니다. 만약 사상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것은 알맹이가 빠진 문학이 됩니다.
모든 예술은 '사상과 감정'의 표현이라고 했을 때 문학은 다른 어느 예술 분야보다 사상을 깊게 구체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모습이 분명합니다. 어떤 때는 설명을 통해서 직접 전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사실과 행위를 묘사하면서 간접적으로 전달하기도 합니다. 예술은 간접적인 표현에서 더 효과를 얻습니다. 직접적인 설명은 예술이 아니고, 철학이거나 과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필은 때로 사상을 직접 설명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문학은 다른 예술보다 사상을 문장 안에 깊게 묻고 있습니다. 그 사상이 빈약하거나 없을 때 독자는 수필에서 신문 기사와도 같은 껍데기만 얻습니다.
그러면 '사상이란 무엇이냐'에 이르게 됩니다. 사상과 철학은 어떻게 다르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만 그것은 우선 두고 생각해 봅시다. 민주주의 사상, 공산주의 사상, 실존사상 했을 때의 사상은 한 시대를 흔드는 세계적인 조류를 이야기합니다. '주의'가 붙으면 어느 기간 동안 사람들의 머리 속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이 가지는 사상은 누구에게나 있는 의지나 신념 같은 것입니다. 독서와 체험과 사색과 환경은 사상을 만드는 조건들입니다.
인생을 20년, 30년, 40년씩 살고 있으면 때로 어려운 문제와 부딪힙니다. 해결하기 위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다 보면 문제도 해결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내면에 신념 같은 것이 만들어집니다. 신앙과도 같은 사상이 생깁니다. 그것을 철학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하지만 철학보다는 더 힘이 있는 정신적인 어떤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유교 전통을 지키는 가정에서 자란 소년이 있었다고 합시다. 소년은 어른이 시키는 대로 예의바른 아이로 커 갈 것입니다. 삼강오륜의 도덕을 몸에 익힐 것입니다. 한문도 배울 것입니다. 어른을 만나면 공손히 인사를 하고 물을 마셔도 어른부터 먼저 마셔야 합니다. 어른이 방에 들어가면 소년은 앉았다가도 벌떡 일어나야 하고, 외출할 때는 갔다 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와서도 인사를 해야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소년은 유교 사상에 물들어 갑니다.
그러한 훈련을 받으면서 자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생깁니다. 유교 사상을 몸에 익힌 사람은 자신이 그 규율에 맞게 행동할 뿐 아니라, 사물을 보는 눈에도 그 사상의 색깔이 생깁니다.
예를 하나 더 들어봅시다. 두 남녀가 지극한 사랑을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주위의 악조건으로 결혼을 못하고 헤어졌습니다. 가슴 안에 사랑의 한(恨)을 품은 채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한 부부 사이가 행복하다면 그 한의 부피가 조금은 얇겠지만 그러나 옛 애인에 대한 생각이 때로 살아날 것입니다. 그때 사랑의 한은 더욱 가슴 깊은 속에서 고개를 들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은 생각을 만들고 낭만과 고뇌와 고독과 허무 같은 것을 동반할 것입니다. 그 고독과 고뇌와 허무를 통해서 그에게는 사상이 자라납니다.
사랑과 관계 있는 어떤 사물에 부딪히면 그에게 잠자고 있었던 사랑의 한이 눈을 뜹니다. 따라서 그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한이지만 그 눈 속에는 낭만도 고뇌도 허무도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그가 만약 글을 썼다고 합시다. 사랑과 관련되는 소재에 부딪혔을 때 어떤 철학이 그 소재에 부여되겠습니까? 신변수필에 사상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와 같은 철학이 없거나 빈곤한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상의 눈은 예민합니다. 그것이 문제의식이 되어 사물 위에 항상 그물을 칩니다. 독특한 자기 색깔로 대상을 관찰합니다. 그리하여 소재가 포착되면 다는 아니지만 대개는 사상의 빛깔로 의미화의 작업이 일어납니다.
이은상은 <무상>이라는 제목의 수필을 썼습니다. 그는 젊고 유능한 동생을 잃었습니다. 동생을 잃은 슬픔과 인생의 허무를 짙게 체험하고 그 수필을 썼을 것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죽음과 만나는 것인데 이은상이 <무상>이라는 수필까지 쓰게 된 데는 그 이전부터 인생무상의 사상을 내면에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상이 동생의 죽음을 만나자 고개를 높이 든 것입니다.
사상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인생의 부산물이기 때문에 없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자기 안에 있으면서도 숨어서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수필을 쓰는 사람은 소재를 만나서 의미를 부여해야 하기 때문에 사상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어떤 사상이 있느냐는 자기만이 아는 세계입니다. 금광은 땅을 파고 바위를 파서 깊게 들어가야 맥이 보입니다. 은광도 그렇고, 동광도 그럴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있는 사상도 금맥을 찾듯이 자기 안에 있는 사상의 맥을 찾아야 합니다.
찾아 들어가면 반드시 맥이 나옵니다. 묻어 둔 채로 놔두니까 먼지도 앉고 녹도 슬어서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갈고 닦고 키워서 활용해야 합니다. 보물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찾아보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문학과 관련이 없는 사람은 무관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창작을 하겠다는 사람은 그 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상을 새로 만든다기보다 숨어서 보이지 않는 것을 찾는 일입니다. 찾아서 수필 속에 깔아야 합니다.
최근에 나는 <작품 외적 작품>이라는 수필을 읽었습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의 단행본도 읽었습니다. <작품 외적 작품>은 도자기 굽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흙으로 빚은 도자기를 고열의 굴속에 넣어 구운 후에 꺼내면 어떤 때는 예상 외의 우수 작품이 나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수 작품이 곧 '작품 외적 작품'이란 것입니다. 사람의 힘이 아닌 다른 힘에 의해 만들어지는 우수 작품에 대한 감탄을 쓴 것입니다. 신비라고 할까, 신의 솜씨라고 할까. 그리하여 도자기뿐만 아니라 시도, 수필도 그럴 수 있고, 신의 작품이라고 하는 인간도 그렇게 태어날 수 있다는 일종의 예술론이었습니다.
그 수필은 소재도 신변을 좀 떠났지만 소재에 부여된 주제와 철학이 남다른 데가 있었습니다. 단행본을 읽고 비로소 그의 사상이 어느 광맥과 연결되어 있는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예술 예찬자였습니다. 평생을 예술과 더불어 살아왔고 그 속에서 인생의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었습니다. 수필의 대부분이 그의 예술론과 관련을 맺고 있었습니다. 사상은 그와 같이 인간성의 바탕을 이루기도 합니다. 무슨 일에 골몰해 본 사람은 어느덧 그 문제에 대한 사상을 마음속에 지니게 됩니다. 그래서 작가의 생애를 더듬는 일은 사상을 알아내는 열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인생을 30년, 40년 살면서 어떤 사건들과 만나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있겠습니까? 설사 무위도식을 해도 그 생활 속에서 생각하고 고뇌한 문제는 있을 것입니다. 그 생각하고 고뇌한 사실들이 용광로에서 쇠를 녹이듯이 가슴 안에서 한과 고독과 환희와 열락으로 승화가 되어 자기 사상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상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심각하고 진지한 인생 사건이 없었거나, 독서도 사색도 없었던 사람일 것입니다. 사상은 사색과 체험의 산물입니다. 그것은 한번 만들어지면 생명을 가집니다. 제2의 자기 역할을 합니다. 사람은 대개 자기가 믿는 대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수필을 쓸 때, 사상은 자기 빛깔을 어느덧 글 저변에 깔게 됩니다. 그것이 무의식적일 때도 있고, 의식적일 때도 있습니다. 사상이 없는 수필 또는 철학이 없는 수필을 우리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문학이 아닐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사상을 산만하게 흩어 놓고 정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없는 듯이 보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상이 있는 글을 쓰자면 먼저 자기 사상의 광맥을 찾아야 합니다. 먼지를 털고 녹을 닦아서 자기 사상이 어디에 숨어 있는가를 찾는 일입니다. 찾아지면 그 안경으로 사물을 보게 되고 의미화도 되어집니다. 그때 신변수필이든 신변수필이 아니든 뿌리가 있는 건실한 수필이 씌어질 것입니다.
▲필자 소개
수필가(1925∼). 경북 안동 출생. 호는 무원(無圓). 중·고교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음. 1965년 《現代文學》지에 <私談>을 발표하면서 등단. 수필집으로는 《멋을 아는 사람》, 《두만강 푸른 물에》, 《오후의 思索》, 《해질 무렵》, 《생각하는 사람》 등이 있고, 평론집으로는 《수필을 말한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