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천왕봉-제석봉-장터목-세석-백소령-연하천-삼도봉-노고단-성삼재
*참가자 : 이재근, 방재곤, 이인식, 박임숙, 옥영동, 조수연, 윤재희, 김경수, 한혜란 (9명)
*산행일시 : 2005년 5월 28일(토) ~ 29일(일)
백두대간의 제1구간 기점에 서다
오전 5시 40분 봉고편으로 부산을 출발한 일행은 문산휴게소에서 아침을 해결한다. 이번 산행은 여정이 길어 일찍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월 산행에서 시도했던 제1구간 산행을 다시 하는 날이다. 백두대간의 기점에 다시 서는 감회가 남다르며 대원들은 의지를 불태운다. 대진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지리산 톨게이트를 나선 차량은 점점 고도를 높이며 중산리로 향한다. 8시 10분 중산리 지리산 국립공원입구에 도착하여 공동 물품을 분배하고 공원 입구를 들어선다.
현재 시각은 8시 30분. 시원한 공기, 녹음 우거진 산자락은 여러 종류의 새소리, 다양한 식물들, 화음을 이루는 물소리가 일행의 걸음을 가볍게 해 준다. 중산리 법계사를 통해 천왕봉에 오르는 최단거리를 따라 등산로를 거슬러 오른다. 30여분쯤 걷다보니 칼바위가 우리 앞에 나타난다.
칼바위는 이성계가 한 도인의 말을 들으니 지리산에서 자신을 암살하기 위해 칼을 갈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 자객을 보내 그 사람을 베어버리라고 했다. 그래서 이 자객은 지리산에서 며칠 밤을 헤매다가 한 바위 아래서 책을 읽고 있는 선비를 발견하고는 칼로 내리쳤는데 그 칼이 뎅겅 부러지면서 날아와 꽂혔다는데 부러진 칼처럼 보인답니다.
칼바위를 지나 땀을 뻘뻘 흘리면서 너덜길을 따라, 때로는 가파른 비탈을, 수없이 많은 돌계단, 나무 계단을 지나기를 반복한다. 10시 30분 드디어 로타리산장에 도착하였다. 바로 위에는 법계사가 자리를 하고 있다. 지난 3월 이 산장에서 시린 손을 불어가며 점심을 먹고 하산을 해야했던 쓰라린 기억들이 스쳐간다.
하늘아래 첫 사찰 법계사에 이르다.
법계사는 544년 신라 진흥왕때 연기조사가 창건한 14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유서 깊은 절이다. 절 안내판에는 ‘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이 쇠하고, 일본이 흥하면 법계사가 쇠한다’고 씌어있다. 그래선지는 잘 몰라도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을 때마다 법계사를 불태웠다고 전해집니다. 고려말에도, 임진란 때도 일제치하에서도 법계사는 수난을 당했다고 한다. 물통에 다시 물을 가득 채우고 천왕봉을 향해 오른다. 이제부터는 바위와 큰 돌이 어우러진 까다로운 길이 이어진다.
11시 30분. 개선문을 통과하여 천왕봉 바로 아래에 선다. 정상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12시 20분 선두는 기어오르다 시피하여 정상에 도착하였다. 멀리 옅은 안개와 황사가 뿌옇게 흐려 있다. 정상 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려는 사람들이 바위 위에 위험하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이 도착하는 대로 바위에 몸을 기대어 촬영을 할 수 있었다. 표지석 앞면에는 ‘지리산 천왕봉 1915m’, 뒷면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가 적혀 있다.
정상을 벗어나 제석봉으로 가는 내리막 길 바위 위에서 도시락을 꺼내 점심을 해결하였다. 13시 에너지를 충전하고서 다시 출발하여 통천문을 지나 13시 50분 제석봉(1806m)에 다다랐다.
제석봉에는 고사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주변에는 가문비나무와 구상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등산로 위쪽에는 식생 복원지구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제석봉 아래 장터목산장이 보인다. 때늦은 지리산 철쭉들이 만개하고 있다. 14시 10분 장터목에 도착하였다. 대피소에는 늦은 점심을 먹거나 휴식을 취하는 등산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진행 방향에 보이는 촛대봉의 바위들이 웅장하다. 이제 촛대봉으로 향하는 오르막을 거슬러 올라야 한다. 등산로 주변에는 철쭉이 한창이고, 모시나무가 푸른 새싹을 올려 보내 온통 초록이다. 촛대봉으로 가는 길의 뒤편 사면에는 철쭉으로 수를 놓고 있다. 15시 20분 촛대봉을 거쳐 발 아래에 보이는 세석평전에 도착한 시각은 15시 40분이다. 벽소령 대피소에 숙박을 예약해 두었지만 7시 이후에는 자동 취소가 된다고 한다. 선두가 부지런히 걸으면 6시 30분경 벽소령에 도착할 것 같다. 세석 대피소에는 많은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걸어 내려온 뒤쪽 사면에는 연분홍 철쭉으로 평전 전체를 물들이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백무동으로 가는 길이다. 작은 고개를 올라서니 영신봉이다. 지금 시각이 16시이다. 갑자기 날씨가 어두워지고 멀리서 들리던 천둥소리가 점점 다가온다. 번개 불빛이 전달되고 잠시 후 우르르 꽝꽝거리는 천둥소리가 큰비를 예상하게 하는가 싶더니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한다. 오버트라우져를 꺼내 입고 배낭 커버를 씌운 뒤 빗속 산행을 계속한다. 빗물에 바위와 길 위의 나무 뿌리는 왜 이리도 미끄러운지, 등산화가 자꾸 미끄럽다.
16시 50분 칠선봉을 지나 내리막에 이르니 빗줄기는 가늘어지고 지열로 인하여 서린 김이 올라오면서 옅은 안개처럼 숲을 덮는다. 겉옷을 다시 벗어버리고 배낭을 정리하여 다시 걷는다. 17시 20분 선비샘에 당도하니 앞선 등산객들이 휴식중이다.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선비샘에서 생수를 가득 채우고 벽소령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빨라지고 있다. 18시 무렵 거친 길은 끝나고 평지 길에 다다른다. 벽소령까지는 1.2km이다. 내친 김에 편한 발길을 재촉하여 18시 10분 벽소령 대피소에 안착하였다.
사무실에 들려 뒤늦은 일행이 있음을 신고하고 예약을 하지 못한 사람에 대한 숙박을 신청하였다.
샘터에 내려가 수낭에 물을 채워 오고, 햇반을 데우고 후미를 기다렸다. 부회장과 박임숙 교감이 도착하고 잠시 후 미 예약자 숙소 배정을 위한 미팅이 있다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미리 도착해 있던 모든 등산객들은 사무실 안 마루에 줄을 맞춰 앉아 제한된 잠자리를 얻으려고 어린 아이처럼 눈망울을 말똥거리며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산장지기의 설명은 나름대로의 우선 순위가 있다. 국가 유공자, 어린아이 동반자, 여자, 노약자, 연령 순으로 남은 자리를 배정해 준다는 것이다. 일행은 부회장의 노력으로 다행히도 자리를 모두 배정받았다. 숙박비가 1인당 7천원, 모포 1장당 2천원이란다. 그리고 세면도 양치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산장지기의 안내와 함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전달한다. 야간산행도 스티커를 발부한다고 한다. 수많은 등산객으로부터 지리산을 보호하려는 강력한 자구책이라 협조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긴다.
반달이 희미하게 비추는 가운데 8시가 넘어서야 회장님이 도착했다. 저녁 식사 후 숙소에 들어가니 몸만 겨우 들어갈 수 있어 옆 사람과 몸을 붙여야 잠을 청할 수 있는 형편이다. 등산객들이 무척 피곤함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밤새도록 그치지 않는 코고는 소리라 할 수 있다. 전장의 탱크들이 내뿜는 포성과 다를 바 없는 소리이다.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한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다시피 새벽을 맞이한다.
벽소령의 새벽 찬 공기를 맞으며 어둠을 물리치다.
4시가 되기 전에 짐을 꾸리고 산장 밖에 나오니 산장의 기온이 매우 차다. 어제 내린 비가 미세한 먼지를 씻어 내린 탓일까? 서쪽으로 기우는 달과 함께 잔별들이 속삭이듯 한다. 산장 밖에는 잠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침낭에 몸을 숨기고 비닐을 덮은 채 곤히 자고 있었다.
4시 40분 찬 공기를 가르며 옷깃을 여미고 랜턴 불빛에 의지하여 연하천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시야가 좁아서 거칠은 등산로를 헤쳐나가기가 힘이 든다. 연하천까지 약 2시간 정도가 소요 예정이다. 이른 새벽에 출발하여 인적이 드물어서인지 예정보다 빨리 6시 20분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하였다. 선두는 아침을 준비하느라고 부산하다. 우리보다 더 일찍 당도하여 식사를 하는 팀이 있다. 식사 후 8시 10분 연하천을 출발하여 본격적인 산행을 서두른다. 오늘의 목적지인 성삼재에 4시 이전에 도착해야 한다.
9시 24분 토끼봉(1533m)에 이르니 철쭉들이 여기 저기 군락을 이루어 피어있다. 501개의 나무 계단을 올라 조금 걸으니 삼도봉에 도착했다. 삼도봉 아래로 불무장등이 우거진 숲을 이루고 있다. 영구 자연휴식년제가 시행되어 출입금지를 알리는 팻말이 보인다.
10시 50분 노루목을 거쳐 11시 30분에는 임걸령에 도착한다. 임걸령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서둘러 길을 재촉한다. 노고단 정상이 저 멀리 보인다. 12시 10분 넉넉한 구상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고갈된 에너지를 보충하고자 점심을 해결한다. 12시 50분 다시 힘을 충전한 일행은 13시 25분 노고단(1507m)에 이른다. 봉우리 정상은 식생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시간에만 입장을 허용하고 있어 하산을 하기로 하였다.
14시 10분 성삼재에 도착함으로써 1박 2일에 걸친 지리산 종주와 백두대간의 제1구간을 종료하게 되었다. 예정보다 이른 시각에 도착하여 차량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휴식을 취하고 15시 20분 일행의 후미가 도착하였다. 고리봉으로 향하는 입구까지 도로를 따라 걸어가서 지난 번 산행 기점에 연결을 하였다. 이제 천왕봉에서 덕유산 삿갓재까지 연결한 셈이다.
16시 구례에 도착하여 땀을 씻고 17시 40분 순천을 경유하여 20시 50분 부산에 도착하였다. 저녁은 이재근 명예회장님이 수고를 아끼지 않는 대원들을 격려하고자 제공하셨다. (광고 : 명예회장님의 따님이 구서동 롯데 캐슬 앞에 [페르마 수학학원]을 개원하였으니 주변에 입소문을 많이 내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산행에도 많은 회원이 참여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얼굴을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숭악사관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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