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준 전도사가 1998년 4월의 중국 방문 기간에 가졌던 갑작스런 집회의 뜨거웠던 경험이
한국으로 돌아온 후 선교에 대한 간절한 소망으로 바뀌어진 것은
본 교회에서의 설교에 대한 성도들의 반응과 중국 성도들의 반응의 차이 때문이었다.
중국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모르겠으나 그 뜨거운 열기를 경험했던 터라
이전에는 어느 교회 못지 않게 좋은 분위기를 가진 교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기쁜교회의 예배는
그에 비해 너무나 처진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중국의 열기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1998년 4월이 지나는 동안 선교에 대한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다.
그 당시 교단적으로는 해외 선교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던 때였다.
선교 문제가 진행되면서 알게 된 일이지만 선교를 하고 있는 목사님들이 두 분 정도 있었으나
그분들이 선교를 하고 있다는 자신들도 밝힌 일이 없었기에
김희준 전도사가 선교에 대한 자문을 구할 수 있는 교단의 목회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결국 김희준 전도사 혼자 선교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마침 고모부인 윤구행 목사가 중국과 일본에 선교를 하면서
중국 현지에 지하교회의 신학교도 운영하고 있었기에 약간의 자문을 구할 수 있었으나
거의 혼자 선교에 대한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김희준 전도사는 4단계로 선교 계획을 수립하였다.
첫째는 단계적 선교 계획으로
1단계는 선교지 탐문의 기간으로 2~3년을 정하고
그 단계에서는 단기 비자를 신청하여 1년에 한두 번 중국을 방문하여 집회도 하면서
거점을 확보할 수 있는 선교장소에 적합한 곳을 물색하는 기간을 가지는 것이었고
2단계는 지도자 양성 기간으로
3:~4년 기간에 첫번째 단계와 같이 순회 집회를 좀더 자주 가지며 교회와 지도자들을 선별하는 것이었고
3단계는 지도자 양성 기간으로
3~4년 기간에 중국을 순회하며 알게 된 가정교회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하여 확고한 진리 위에 세워진 지도자들이 되도록 돕는 것이었고
4단계는 정착 선교기간으로
그때만 해도 중국 호적관리가 허술한 때였기에
중국 호적을 만들어 중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되기만 한다면
조선족이든 한족을 대상으로 자유롭게 교회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이고
적합한 곳에 교회를 개척하여 한국 선교사들의 선교 전진기지로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이 단계가 되면 한국에서의 사역은 사임하고 완전히 중국에 정착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네번재 단계의 실질적 추진은
중국어로 설교를 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에
10년이 지나서도 중국어가 능통해지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계획을 세웠다.
둘째는 선교자금 문제로
원할한 선교를 위해서는 선교자금이 있어야 하는데
기쁜교회의 형편으로는 선교의 막대한 비용을 지출할 형편은 되지 못했고
교단은 선교에 대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기에
선교비 전액이 개인적인 후원자를 모집할 수밖에 없으므로
1단계부터 선교의 시작점은 원만한 선교후원자가 모집된 이후에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셋째는 선교 원칙으로
선교의 절대 원칙은
금품이나 선물을 살포하고 사람을 모으는 집회는 절대 열지 않고
순수하게 복음만 전하고 온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말씀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것 같아도
노골적이나 혹은 은근히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과는 관계를 깨끗이 청산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세가지 전략을 세운 김희준 전도사는
1998년 5월 중국 선교에 대한 계획이 있음을 교단의 어른에게 말씀드렸다.
전략의 내용은 밝히지 않았으며 다만 선교에 뜻이 있음만을 보고 하였다.
이상한 행정
그런데 생각지 못한 일이 발생되었다.
김희준 전도사는 궁극적으로는 완전히 중국에 정착하는 선교를 한다고 할지라도
그 과정은 3단계의 기간을 거쳐야 하기에
국내교회의 시무를 완전히 끝내는 것은 적어도 10년이 지난 후부터 가능한 일이었고
또한 선교의 시작도 원만한 후원자를 모집한 후에 시작될 수 있음을 말했는데
교단 운영위원회가 열려 김희준 전도사는 기쁜교회를 사임하고
윤동혁 목사를 기쁜교회로 파송한다고 결정하였던 것이다.
그 당시 김명재 목사가 개인적으로 중국 선교를 하고 있엇지만
중국 선교를 위해 반드시 교회를 사임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다.
더우기 단 한 명의 후원자도 모집하지 못했고 후원자 모집 활동도 하지 않았으며
단지 이런 계획이 있다고 보고만 한 상태인데 시무하던 교회를 떠나라고 명령하고
후임을 결정한 교단의 행정은 상식 이하의 행정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희준 전도사는 아무리 불합리한 교단의 행정이라 할지라도
교단에 몸담고 있는 교역자인 이상 교단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순종하기로 하였다.
회의에서 돌아온 김희준 전도사는 다음 주일 예배 시간에
"저는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후임으로 윤동혁 목사가 오시게 되었다."고 광고 했다.
그러나 광고를 들은 성도들은 예배 후 회의를 통해 윤동혁 목사를 후임으로 받을 수 없다고 결정했고
누군지 알 수 없으나 이 사실을 교단에 통보하였다.
윤동혁 목사를 거부한다는 기쁜교회의 통보를 받은 교단에서는
운영위원회를 열었으나 이 사실을 김희준 전도사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어느날
권정숙 집사로부터 김희준 전도사에게 전화가 왔는데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으며 화를 내었다.
영문을 알지 못한 김희준 전도사가 "무슨 일로 그러시느냐?"고 물으니
권정숙 집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교단에서 류재룡 목사를 기쁜교회로 보내기로 했는데
류재룡 목사를 보내면 기쁜교회가 두쪼가리가 나기 때문에 안 된다고 반대를 했다는데
도대체 어떤 놈이 억하 심정이 있어서 그따위 소리를 했느냐?"며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김희준 전도사로서는 정말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희준 목사는 성도들이 반대한 윤동혁 목사의 후임으로 누구를 보내기 위해 운영위원회가 열렸는지도 몰랐고
또 김희준 전도사가 아는대로는 후임문제로 기쁜교회가 회의를 연 일도 없었으며
그런 회의를 김희준 전도사가 주재해보지도 않았는데
권정숙 집사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니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김희준 전도사가 "우리교회는 그런 의논을 해 본일도 없다"고 말하자
권정숙 집사는 씩씩거리며 "그러면 도대체 어떤 놈이 그따위 말을 했느냐?"고 따졌고
김희준 전도사는 "나나 우리 교회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답변하였으나
권정숙 집사는 거의 2시간을 씩씩거리며 호통을 쳐댔다.
그런데 권정숙 집사는 김희준 전도사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이미 윤계열 집사와 구영길 집사에게도 꼭같은 내용으로 전화를 걸었고
기쁜교회 성도들이 자기 사위를 무시했다고 울분을 토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당시 교단의 최고 어른인 총공회장은 김태희 목사였고
행정위원장은 배종일 목사였는데
교단의 행정 문제는 배종일 목사가 전권을 가지고 행정을 했었던 것 같다.
윤동혁 목사를 거부한 기쁜교회 문제를 놓고 운영위원회를 열어
류재룜 목사를 후임으로 보내는 문제가 거론되었으나
누군가 위와 같은 내용으로 발언하여 무산되고 김상곤 목사를 보내기로 결정하여
김상곤 목사가 후임으로 가게 되었다고 기쁜교회에 통보하였다.
다음 주 예배의 광고시간에 후임으로 김상곤 목사가 정해졌다고 광고를 했는데 또 다시 교회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김희준 목사는 그때 전도사였으므로 신년행사를 주재할 수 없었기에
그해 당회장으로 있던 김상곤 목사가 신년행사를 주재했었는데
그때 김상곤 목사가 성도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긴 것이 그 이유였던 것 같다.
결국 성도들은 김상곤 목사도 받을 수 없다고 결정하였고
누군가 행정위원장인 배종일 목사에게 그 내용을 통보했는데
아마도 그때 연락을 윤계열 집사가 맡았던 것 같다.
월요일인지 화요일 김희준 전도사에게 전화가 왔는데 배종일 목사였다.
그런데 전화의 내용이 뜻밖이었다.
"기쁜교회가 김상곤 목사를 후임으로 받지 않는다고 했다는데
그 이유로 과거 김상곤 목사님의 이런 저런 행적을 거론했다며?" 라고 하면서
"어떻게 성도가 목자회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라고 하는 것이었다.
교회가 김상곤 목사를 받지 않기로 결정한 일은 알지만
회의에서는 김상곤 목사의 사적인 문제를 거론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그런 말이 생기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김상곤 목사가 배종일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기쁜교회가 김상곤 목사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나온 말은
기쁜교회 성도가 김상곤 목사에게 한 말이 아니라
기쁜교회가 자신을 받지 않겠다고 통보했다는 말을 듣고
"내가 이렇게 이렇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냐? 하고 김상곤 목사가 이야기를 한 것이었고
윤계열 집사는 듣기만 했는데
김상곤 목사가 다시 배종일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기쁜교회가 그런 이유로 자기를 거부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지
교회의 성도 중에서는 그 누구에서도 그런 말은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김상곤 목사의 말을 들은 배종일 목사는
누가 그 말을 했는지 진원지를 알지도 못하면서
기쁜교회의 성도를 나쁘다고 몰아부치면서 교회는 교단의 행정에 순종하라는 요구만 했다.
목회자의 이동에 교단 행정위원장에게 전권이 있었다
따라서 당시 행정위원장이었던 대전 동북교회의 배종일 목사는 기쁜교회 후임 문제에 전권을 쥐고 있었다.
교단에서 결정한 목회자를 기쁜교회가 받지 않겠다고 통보하자
그 책임이 김희준 전도사에게 있는 것처럼 소문을 낸 것 같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김희준 전도사가 교회를 떠나지 않기 위해
교단에서 파송하는 목회자를 받지 않도록 성도들에게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기가찬 말이었다.
교단의 행정이 옳지 못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김희준 전도사는 교단에 소속한 교역자로서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교회를 떠난다는 공포를 하였고
1998년 6월 14일 주일예배 후
김희준 전도사는 기쁜교회 성도들에게 이별의 선물로 수건을
기쁜교회 성도들은 김희준 전도사 부부에게 금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고 받기까지 하며
교회를 떠날 것을 준비하였고,
김희준 전도사의 가족은 이사를 하기 위해 짐을 쌌고
김기종 집사를 통하여 이삿짐 센타에 차를 부탁하도록 하여
6월 23일 이삿짐 차를 부르하고 하였고
6월 23일 성도들이 이사를 위해 사택으로 모였다.
그러나 10시에 오기로 한 이삿짐차가 오지 않아
김기종 집사에게 언제 오는지 연락을 하라고 했더니 김기종 집사는 곧 온다고 했다고 기다려보라고 했으나
결국 저녁이 되도록 차는 오지 않았다.
김희준 전도사의 가족은 이삿짐을 옛 예배당으로 옮겨 놓았고
우선 입고 덮을 물건만 사택으로 들여 놓았다.
나중에야 눈치를 챈 것이지만
우리의 이동을 원치 않은 성도들이 이사를 하지 못하게 하려고
실제로는 이삿짐 센타에 연락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한편 교회에서는
권정숙 집사를 통해 알게 된 일이지만
류재룡 목사가 기쁜교회로 부임하면 교회가 둘로 갈라진다는 말은
기쁜교회에서 나온 말도 아니지만 교회의 일로 류재룡 목사에게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었으므로
김상곤 목사 대신 류재룡 목사를 보내 주시면 받겠다는 탄원서를 작성하여
교단에 발송하려는 절차를 밟고 있었는데
김희준 전도사가 교단의 목회자를 받지 못하도록 교인을 선동하고 있다는 말은 분명 거짓된 마귀의 역사였다.
그렇게
교단은 교단에서 파송하는 김상곤 목사를 받으라는 것과
교회는 류재룡 목사를 보내달라는 입장으로 대치되고 있을 때
배종일 목사는 김희준 전도사를 불러 교인들을 설득하여 교단에 순종하도록 하라고 요구하였고
김희준 전도사는 "밖에서 들리는 말로만 행정을 하지 말고 기쁜교회 성도들의 요구가 무엇인가를 수렴하고 일을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류재룡 목사가 가면 기쁜교회가 갈라진다고 하기에 보낼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도대체 교회에서는 나오지도 않은 말을 누가 한 것이냐 물었더니
최재진 목사가 운영위원회에서 그렇게 말을 했다고 했다.
김희준 전도사는 최재진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목사님께서 운영위원회에서 말씀하시기를
류재룡 목사가 기쁜교회에 가면 둘로 갈라진다고 하더라고 말씀하셨다는데
누가 그런 말을 목사님께 했습니까?"라고 물으니
최재진 목사는 누군가 그렇게 말을 했다고만 했다.
김희준 전도사는
"나는 개인적으로 교회에서 그런 의논을 해 본 일도 없고 들은 일도 없는데 누가 그러더냐?"고 따졌고
최재진 목사는 "기쁜교회 성도 중 한 명이 그런 말을 했다"고 했다.
김희준 전도사는 "기쁜교회 성도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없다."고 하자
최재진 목사는 "전도사님은 목사인 내가 거짓말 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말했고
김희준 전도사는 "목사님이 거짓말을 하셨다고 할 수도 없지만 나로서는 그런 의논을 교회가 하는 것을 보지를 못했으니
교회의 입장이 아닌 그런 말을 누가 교회의 입장인 것처럼 목사님에게 전했는지 그 사람을 알려 주면 나와 목사님과 그 사람이 삼자대면을 하도록 하겠다."고 하였고
최재진 목사는 "사실은 들은 말이 아니고 내 혼자 생각으로 한 말이라."고 실토하였다.
목회자 후임을 결정하는 중대한 회의에
하나님의 성령이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거짓된 마귀의 역사가 판을 치고 있었으니 후임의 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될리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희준 전도사는
최재진 목사의 거짓 행각에 대해서는 성도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도들은
권정숙 집사가 사위인 류재룡 목사의 일로 분개하여
윤계열 집사와 구영길 집사에게 전화를 했었으므로
기쁜교회의 의사와 상관없이 류재룡 목사에게 피해를 주게 되었다고 미안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류재룡 목사를 보내 주시기를 청원했던 것이다.)
배종일 목사는 김희준 목사에게 교인을 설득시키라고 명령하는 한편
윤계열 집사 등의 성도들에게 전화를 걸어 교단의 명령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는데
그 과정에서 성도들에게 상처가 될 말들을 함으로 후임 문제는 점점 얽혀지고 있었다.
김희준 전도사는 행정위원장에게 교회 성도의 의견을 수렴하고 일을 진행하시라고 부탁하였고
교회에서는 교단의 명령에 순종할 것을 부탁했지만
교회의 입장도 교단의 입장도 한결같았기에 후임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기쁜교회는 류재룡 목사를 보내달라는 탄원서 발송의 책임을 김성진 성도가 맡기로 하였다.
작성된 탄원서를 발송하려고 주소를 문의하기 위해
당시 총공회장이었던 김태희 목사에게 김성진 성도가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은 김태희 목사는 대뜸 "김희준 전도사는 아주 나쁜 놈이기 때문에 그놈 말을 듣지 말라"고 하면서
"김희준 전도사의 말을 들으면 저주를 받는다. 교단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다고 한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당혹스러운 말들을 종합해보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교역자들 사이에 김희준 전도사가 나쁜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는 것이 분명했다.
상식 이하의 행정이라도 거역하지 않고 오히려 순종하여
교회를 떠나려고 하고 있는 김희준 전도사에 대한 유언비어는 이 외에도 많이 만들어져 교단 내에 번지고 있었다.
해외 선교를 하는 모든 목회자들이
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교회를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니다.
완전히 선교지에 정착하는 선교사가 아니라
한주간씩 일년에 몇 번 다녀오는 정도의 선교는 교회를 시무하면서도 하고 있었고
총공회 내에서 이미 선교를 하고 있는 몇몇 목회자들도 교회를 시무하며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쁜교회를 시무하고 있는 김희준 전도사는
선교도 시작할 수 없는 상황인데 무조건 교회를 비우고 선교를 하라는 것은
동의해서도 안 되고 동의 할 수도 없는 비상식의 결정이요 명령이었지만
김희준 전도사는 그런 행정에도 순종하고 있었는데
후임을 결정하는 일에 주동적인 목사님들은
오히려 흑색선전으로 교역자들에게 나쁜 소문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10년의 세월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그때의 유언비어로 만들어졌던 소문을 그대로 믿고
김희준 목사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면
그때의 상황이 어떠했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주소를 묻기 위해 전화를 했던 김성진 성도는 김태희 목사의 말을 듣고 열이 올랐다.
전화를 끊은 김성진 성도는
"목사님들이 참 이상하시다.
김태희 목사님이 전도사님을 나쁜 놈이라고 하는데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
김태희 목사님이 다짜고짜 김희준 전도사 그 나쁜놈 말을 들으면 너희들 다 저주 받는다고 말한다."고 하였다.
한편
후임 문제로 회의를 하던 중
윤계열 집사가 그동안 배종일 목사와 통화한 내용들을 이야기하자
김기종 집사는 격분하여 "교단에서 우리 교회에 해 준 것이 무엇이 있는데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느냐?
그동안 우리 교회가 교단에 해야 할 만큼은 했는데 그렇게 교회를 무시하는 교단이라면 우리가 있을 필요가 없다.
이번 기회에 총공회에서 탈퇴하자!"라고 말하였고 분위기는 그렇게 흐를 수밖에 없었으나
김희준 전도사는 "교단에서 탈퇴한다는 그런 말은 함부로 할 것이 아니다"고 하면서
성도들을 진정지켰고 교단과 타협하기를 요청하였다.
총공회장이었던 김태희 목사에게 전화를 하기 전까지
기쁜교회는 류재룡 목사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으나
김태의 목사와 통화 후부터 기쁜교회 성도들의 입장은 수정되었다.
뜻하지 않게 좋지 않은 말을 들은 류재룡 목사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현재 시무하고 있는 김희준 전도사를 그대로 유임시키기로 결정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김희준 전도사는 교단에서 이동 명령을 내렸으므로 교회에 유임하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김희준 전도사와 성도들 간의 이견
교단과 교회와의 이견이 계속 대치되고 있는 상황에서
배종일 목사는 성도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말로 전화를 하는 한편
기쁜교회가 교단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김희준 전도사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니 빨리 이사를 하라고 하였다.
이전까지는 성도들을 설득하여 후임을 받도록 하라는 것이었으나
갑자기 이사를 하여 교회를 떠나라는 것으로 입장을 선회하여 부당한 요구를 하였던 것이다.
선교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동할 다른 교회도 정해 주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이사를 하라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터무니없는 명령이었지만
김희준 전도사는 이런 교단의 명령에도 순종하기로 하였다.
성도들에게 이사를 하겠다고 통보하였고
이사 날자를 잡아 김기종 집사로 하여금 이삿짐센타의 차를 연락해 놓으라고 하였고
예정된 이틀전부터 이삿짐을 정리하여 차를 기다렸다.
성도들은 사택으로 와서 이사를 도울 준비를 하면서
차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차가 오지 않아 김기종 집사에게 전화를 해라고 했더니
차가 곧 온다고 한다며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했는데 결국 저녁에 되어도 차가 오지 않았다.
그러나 김희준 전도사는 당장 먹을 거리를 준비할 가재도구와 입을 옷을 제외한 짐들을
사용하지 않고 있던 옛날 예배당으로 옮겨 놓았고
(그 당시 기쁜교회는 시내에 건물을 얻어 교회를 하고 있었고 두학의 옛건물은 비워둔 상태였다.)
언제라도 후임이 오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은
교단에 소속한 목회자는 교단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7월 교역자회의가 열렸고
김희준 전도사의 선교 문제를 의논하는 가운데
김명재 목사의
"중국 선교를 결심한 김희준 전도사가 개인적으로 후원자를 모집한다면 모금된 막대한 비용을 함부로 쓸 수 있으니
선교를 를 위한 모금은 창구를 단일화해서 교단에서 하고 김희준 전도사에게는 매월 60만원의 선교후원금을 주기로 하자"
는 의견이 동의와 재청을 통해 통과가 되었고
교단에서는 김희준 전도사의 일로 선교국을 개설하여 선교후원금의 관리와 지원을 선교국에서 책임지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런 결정과 상관없이 교회와 교단의 입장은 점점 벌어졌고
행정위원장이었던 배종일 목사는 일이 그렇게 된 모든 책임이 김희준 전도사에게 있다고 하였다.
김희준 전도사는 성도를 선동한 일도 없고
교회를 떠나지 않겠다고 한 일도 없고
교단에서 보내는 목회자를 받지 말라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마귀의 역사에 놀아난 교단의 옳지 못한 명령일지라도 순종함이 옳다고 생각하여
교인들에게 떠날 것을 선포하고 후임을 잘 섬기라고 교훈하고
이별의 선물을 주고 받으며 이사를 위한 짐도 정리해 놓은 상태에 있는데
교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모든 책임이 김희준 전도사에게 있다는 배종일 목사의 말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는 중
류재룡 목사와 최종원 목사 그리고 박경철 전도사가 제천으로 방문을 하였다.
단양 팔경 중 하나인 하선암으로 가서 대화를 하던 중
류재룡 목사가 "내 친구 목사 한 명이 선교를 하고 있는데 교단으로부터 매월 3백만원씩의 후원을 받고 있으니
전도사님도 선교를 하려면 교단에 합당한 선교 후원금을 요청하라"고 조언하였다.
류재룡 목사의 말을 들은 김희준 전도사는
3단계로 정하고 있던 선교계획의 단계에 따라 필요한 비용이 얼마인지
매월 지원되어야 할 항목과 1회 지원으로 끝날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등을 상세하게 표로 작성하여
행정위원장인 배종일 목사에게 제출을 하였으나 그에 대한 아무런 응답을 들을 수 없었다.
교회를 떠나겠다는 의사가 전혀 없었으나
진행이 그렇게 되었기에 순종하여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던 김희준 전도사는
후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교회를 떠날 수 없어 매 주일 설교를 계속하면서
기쁜교회에서 받던 사례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일 뿐 아니라
타 교단의 선교 후원금에 비교해도 상식 이하의 금액이었지만
월 60만원의 지원이 시작되면 선교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있었으나
8월에 접어들도록까지 교단은 한 푼의 선교후원금도 주지 않으면서 무조건 교회를 떠나라고만 요구하고 있었다.
결국 김희준 전도사는
교단으로부터 지원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사비로 선교비를 마련하여 1998년 8월 4일 중국으로 출국하였다.
1998년 8월 4일 심양에 도착한 김희준 전도사는
오상, 아성, 대경, 설안, 반금 등지를 돌며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정확하게 기억되지는 않지만 9월 10~12일 즈음 한국에 연락이 왔다고 했다.
당시 중국 현지 길 안내는
1995~1997년 한국에 체류할 때 기쁜교회에 출석했던 부부의 남편이 맡고 있었는데
그의 집에서 국내에 있던 사모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류재룡 목사님이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전화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류재룡 목사님이 배종일 목사님의 심부름으로 전화를 했다고 하면서
기쁜교회의 후임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데 그 책임이 나에게 있으므로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에게 입장 표명을 확실히 하라며 세 가지 제안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 세 가지는
첫째, 중국에서 선교를 한다면 선교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겠다.
둘째, 선교를 하기 어려워 국내에서 개척을 하겠다면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겠다.
셋째, 교역자회에서 사과를 하면 기쁜교회에서 시무를 계속하게 하겠다.
위 세 가지 중 한 가지로 입장을 표명하라는 것이었다.
중국으로 떠나기만 하면 기쁜교회 문제가 해결된다는
참으로 황당한 교단의 명령이었지만 그래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교단의 지원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사비로 선교비를 마련하여 중국으로 출국하여
1개월 넘게 활동을 하고 있던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한 것 역시 황당무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연락을 받은 나는 나머지 중국 일정을 취소하고 9월 15일 입국하였다.
그리고 배종일 목사에게 제안하신 것에 대한 답변을 드릴겸 한번 찾아 뵙겠다고 하고
세 가지 제안에 대한 나의 입장을 A4 용지에 출력하여 류재룡 목사와 함께 대전 동북교회로 방문하였다.
프린트물에는
교단의 명령에 순종하여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에게 교단에서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제안을 하셨습니다.
첫째, 중국에서 선교를 한다면 선교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겠다.
둘째, 선교를 하기 어려워 국내에서 개척을 하겠다면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겠다.
셋째, 교역자회에서 사과를 하면 기쁜교회에서 시무를 계속하게 하겠다.
위의 세 가지 제안에 대한 저의 입장을 표명하라 하셨기에 다음과 같이 답변합니다..
교단에서 원하는 대로 기쁜교회에서의 시무는 하지 않을 것이므로
첫째, 중국 선교를 하겠으니 약속대로 선교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 주실 것
둘째, 중국 선교를 위한 교단적인 지원이 어려우면 개인적으로 후원자를 모집해서 선교할 수 있도록 허락하실 것
셋째, 선교에 대한 지원이 어렵다면 국내 개척을 할 터이니 약속대로 지원을 해 주실 것
이렇게 세 가지로 입장을 정리한 프린트물을 만들었다.
아마도 9월 21일로 기억하고 있는데
류재룡 목사와 함께 동북교회 목양실로 찾아가 배종일 목사를 만났다.
그리고 답변을 출력한 종이를 배종일 목사와 류재룡 목사에게 각각 한부씩 나누며
"목사님이 류 목사님을 통하여 세 가지 제안을 하셨다고 하는데
거기에 대한 저의 입장을 정리하여 목사님께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을 이번 교역자회의 때 모든 교역자들께 돌리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후
가져간 프린트 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참을 읽은 배종일 목사는
"전도사님 제가 이번 일은 알아서 잘 처리할 터이니 저에게 맡기시고
프린트물을 교역자회에서 배포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하였고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배종일 목사는 "전도사님이 마음 고생이 많겠다"는 말을 듣고
류재룡 목사와 함께 동북교회를 떠나 제천으로 돌아왔다.
1998년 10월 언약 평화교회에서 교역자회가 열렸다.
운영위원회를 열고 있는 자리에 부른다는 전갈을 받고 참석했더니
운영위원들이 쭉 둘러 앉아 있었는데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모두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나를 자리에 앉으라고 한 배종일 목사는
"김희준 전도사님은 제가 묻는 질문에 '예' '아니오'로만 대답해 주세요."라고 하였고
배종일 목사와 나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주고 받아졌다.
"김희준 전도사님 교단에 세 가지 요구를 하셨죠?"
"네"
"그 세 가지 요구 조건을 내가 말할 테니 '예' '아니오'로 대답해 주세요.
"네"
"첫째, 중국 선교를 할 테니 교단에서 지원을 해 달라고 했지요?"
"네"
"둘째, 중국 선교를 교단에서 지원할 수 없다면 개인적으로 후원자를 모집해서 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했죠?"
"네"
"셋째, 선교 지원이 안 되면 국내 개척을 할 터이니 교단에서 지원해 달라고 했죠?"
"네"
그런데
정말 황당무개한 일이 이때 일어났다.
나와의 문답을 마친 배종일 목사는 운영위원들을 돌아보며
"김희준 전도사가 다음의 세 가지 요구를 했는데
첫째 제안은 우리 교단에 돈이 없어서 할 수 없고
셋째 제안은 선교 지원도 못하는데 돈이 더 많이 드는 국내 개척 지원을 더더욱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두번째 요구대로 개인적으로 후원자를 모집해서 선교를 하세요.
그리고 석 달치 사례를 줄 터이니 어디로든지 떠나시오."
분명 나의 세 가지 제안은
류재룡 목사를 통해서 전달받은 교단의 조건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렇다면, 선교 지원을 할 수 없는데 왜 그런 제안을 했으며
개척에 대한 지원은 더더욱 할 수 없는데 마치 세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반드시 해 줄 것처럼 제안을 했을까?
또한 류재룡 목사와 함께 대전 동북교회를 찾아 갔을 때
배종일 목사는 전도사님이 참으로 마음 고생이 많은데
자기에게 맡기면 잘 해결 되도록 알아서 할 터이니
프린트물을 배포하지 말라고 부탁한 대로 프린트물을 배포하지 않았고
운영위원회에서도
왜 그런 제안을 하게 되었는지 발언할 기회를 주지도 않고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라고 해 놓고는
마치 내가 교단에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고 있는 나쁜 사람인 것처럼 몰아가는
믿지 않는 자들도 하지 않아야 할 더러운 술수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운영위원회 자리에서 나온 나는 교역자회에서 발언권을 얻어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기쁜교회 후임문제와 관련되어 술수를 쓰고 있을지라도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가 있다는 생각으로 목회자 개개인의 이름을 직접 호명할 수 없어서
"목사님들은 거짓말로 일을 처리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라고 발언을 하고 있는데
정재완 목사가 고함을 지르며
"감히 전도사가 목사들을 거짓말쟁이로 몰고 있어!"라며 호통을 쳤다.
순간 나는 나에게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도록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가 퍼졌으면 저런 분이 저렇게 말씀을 하실까 라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회의 자리에서 나와 버렸다.
김명재 목사 등이 나와서
"우리가 전도사님을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니까
석 달 사례를 받고 어디로든지 떠나라"고 하였고
나는 "차라리 옷을 벗으라면 벗겠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알려 주지도 않으면서
어디로든지 떠나라면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말씀입니까?라고 반문하며 자리를 떠나 제천으로 돌아왔다.
1998년 10월 14일 수요일
배종일 목사, 김명재 목사, 김병춘 목사
세 사람이 수습위원으로 위촉을 받아 기쁜교회로 찾아와서
배종일 목사가 수요일 예배를 인도한 후
기쁜교회의 일을 수습하기 위한 회의를 열겠다고 회의를 소집하였다.
회의에 앞서 배종일 목사는
"우리는 기쁜교회의 입장은 듣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조건 교단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라는 말로 회의를 시작하였는데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나에게 대한 세 가지 험담을 했다.
그 중 두 가지는 지금도 기억하지만 한 가지는 무엇이었는지 기억되지 않는다.
기억 되는 두 가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김희준 전도사가 교단의 목사들이 거짓말쟁이며 거짓말로 행정을 하고 있다고 흑색 선전을 하고 있다."
"김희준 전도사가 중국 선교를 한답시고 한 달에 300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매월 지원해 달라고 교단에 요구했다."
세 분 목사님들의 말이 끝난 직후 나는 앞으로 나가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저는 교단의 목회자들에 대해 여러분들에게 흑색선전을 한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교단에 매월 300만원씩의 선교비를 지원해 달라고 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선교비 지원에 대한 보고서를 보면 알 수 있듯
단회 지원금, 몇 번에 걸친 지원금, 매월 지원금 등이 항목별로 표시되어 있는데
매월 지원해 달라고 한 선교 후원금은 100만원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답변을 하자
배종일 목사는
김희준 전도사가 있는 자리에서는 회의를 할 수 없으므로
김희준 전도사는 밖으로 나가 달라고 요청을 하였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고
세 분의 목사님들이 밖으로 내려왔는데
김명재 목사 다가와
"우리가 김전도사님을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니 순종하고 어디로든지 떠나라"
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교회로 올라갔더니
성도들이 "우리는 교단의 명령에 따를 수 없고 전도사님을 그대로 받겠다고 우리 입장을 정했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선교를 하게 되면 얼마나 걸릴 지 모르는 데 교회를 비울 수 없다고 하였더니
1년을 비워두던 2년을 비워두던 전도사님이 돌아오시면 다시 모시겠으니 더 이상 아무 말씀도 말라고 하였다.
그렇게 격랑의 1998년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첫댓글 허걱 .......................
어려움뒤에 하나님이계심을...목사님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