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글 치고는 마음이 무거운 글이어서 죄송하네요. 언젠가 아프리카의 장례문화에 대해서 소개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처음 겪는 선교사 장례식
탄자니아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일은 그리 흔한 경우가 아닙니다. 한국에서 캐나다로 그리고 이 곳 탄자니아로 오면서 그 빈도수는 더욱 낮아지는 경향이 농후 하였습니다. 특별히 현지인의 장례식은 결혼식과 달리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함께 참석하기가 흔하지가 않습니다. 언젠가의 글에 한국인 장례식을 소개 한 적이 있었습니다. 작년, 이용준형제의 순교였고 처음 겪는 방문자(자신의 네번 째 방문이었고, 사실상 단기선교사의 신분으로 서)의 장례로써 타지에서의 장례를 의미있게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 저희는 남동쪽으로 약 7시간 거리인, 탕가(Tanga)라는 지역으로 어느 한 선교사님(박경순선교사님,향년 55세)의 장례식을 치르러 다녀 왔습니다. 현지식대로 치루었는데, 약 반나절(현지인의 경우는 하루종일!)이 소요가 되었답니다. 약 20년이란 연륜속에서 탄자니아에서는 처음 당하여 보는 동역선교사님의 순교라는 시점에서 모두들 특별한 의미를 두기도 하였습니다. 게다가 소천하신 선교사님으로 인하여 가장 많은(거의) 탄자니아 선교사님들이 모일 수 있어 저마다 신기(?)해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동안 부진하여 왔던 한인선교사의 모임을 본격적으로 추진을 하더군요(장례후에 곧바로 홈페이지를 구상하였음).
저희들과 박경순선교사님 그리고 남편되시는 박윤석선교사님과의 만남은 각각 한,두번 밖에 없었습니다. 아내 선교사님께서 폐암으로 투병중에 갑자기 큰 교통사고가 나시어서 아루샤에 머무는 중에 저희집에도 방문을 하였습니다. 물건이 귀한 탄자니아에서 교통사고로 다치신 후에,마땅히 팔보호대가 없었는데 다행히 아내가 소지하고 있던 팔보호대를 빌려(?) 드리면서 서로 알게 된 사이였습니다.
소천하신 박경순선교사님도 저희는 처음 뵈었는데 얼마나 체중이 줄어 들으셨는 지는 탕가의 학교사진에서 확인을 할 수 있었습니다. 몇달전부터 암투병과 몸의 회복을 위한 중보기도를 병행하여 오던 터라 전혀 모르는 상황은 아니었어도 막상 박경순선교사님을 위한 합심기도를 할 때에는 마음이 무척 어렵기도 하였습니다. 당신께서 여러 중보기도를 병행하여 오셨는데 한국과 보스턴의 김종필목사님과의 치유기도등은 당신의 마지막 인내하는 기간을 매우 은혜스럽고 담대하게 보내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탕가에서 옛 모습을 확인하였지만 수척하셨던 처음 만남은 천사와 같은 표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치유기도를 하더라도 더불어 확신에 찰 수 있었고 오히려 평안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냉면을 먹는 그 모습들은 아직도 너무도 선하게 떠 올려집니다. 돌아가시면서까지도 남편선교사님에게 조금도 걱정과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모습이 떠 올려집니다. 마루 한 구석에서 어느 영화에서나 보는 것처럼, 화장실 입구에서 조용히 머리를 숙이고 소천하셨던 겸손함이 더욱 주님 앞에 머리를 숙이게 하였습니다.
미국의 시민권을 소지하고 계시는 당신이 굳이 장성한 두 아들이 있는 미국으로 가지 않으시고 더위 등으로(약 3박4일을 머무르는 동안 너무나도 더웠습니다) 오히려 생명을 단축해야 하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자신의 생명의 시간이 줄어 들더라도 마지막을 남편곁에서 함께 하고픈 숭고함이 우리의 가슴을 벅차게 하였습니다. 특별히 가장 인상이 깊었던 기억은, 미국에서 중학교를 건축하면서 자신들의 아담한 집을 새로 지어야 했는데, 그것도 자신이 살아야 할 집이 아닌 것 같다고 하였던 겸손함이 여전히 저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천국의 집을 소망하고 선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남편되시는, 박윤석선교사님은 막상 아내 선교사님(박경순선교사님)이 돌아가시니 첫 날은 굳게 입을 다무시기까지 하였습니다. 두 아들과 현실을 받아 들이는 과정이 너무나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다음 달이면, 새로운 건축과 새로운 열매를 함께 보아야 하는 인간적인 아쉬움이 내심 절실하셨나 봅니다. 개인적으로 상고하여 보면, 당신은 어떠한 사역의 열매보다도 이제 천국의 면류관을 받게 되는 마지막 소망과 충만한 기쁨이 비길데가 없었나 봅니다(마치 성경에서, 예수님의 권세를 받은 70제자들에게 사역의 성공을 뒤로 하고, 오히려 세상의 어떠한 권세보다도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음을 더 기뻐하라고 하였던…). 끝까지 하늘나라의 이야기만을 하시려고 하였던 당신을 축복합니다.
문상중에 너무 감사하였던 것은, 지금이 소 우기철(11월~3월)이면서 대 우기철 못지 않게 비가 내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무더운 중에도 틈틈이 시원함이 감사하게 하였습니다.박경순선교사님에 대한 예수님의 은혜가 더욱 감사하게 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비록 아름다운 이별을 남기셨지만 모두에게 은혜의 단비와 함께 천국백성이란, 천국의 진정한 소망을 쏟아 내고 가셨습니다. 성령님과 함께 전달 받은 귀한 선포는 남아 있는 동역자에게 무한한 감사만을 남기고 가셨답니다. 이제 하늘나라에서 동역하시게 되는 박경순선교사님을 한 번 더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이땅과 하늘 천국의 예수님! 당신의 종을 받으시옵소서! -
(후기)
탕가(Tanga)의 박윤석선교사님을 위로하고 돌아 와서 선교사님의 굳센 마음을 아래와 같이 받았습니다. 짧은 답례속에 이번에 치뤄 진 모든 장례의 마음들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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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
주님의 평강이 탄자니아 한인 선교사회 모든 가족들께 넘치시길 축복합니다.
지난 몇 일 저의 삶은 마치 강력한 폭풍 속을 지나는 연약한 새처럼 힘겨운 시간들 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일어난 갑작스런 일은 마치 방향을 가늠 할 수 없는 회오리 바람속으로 저를 몰고 간 순간 같았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들의 사랑스런 위로의 물결이 저를 다시금 정신 차리게 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긍휼하신 인도하심과 은혜임을 믿어 감사를 드리며, 그 사랑을 실천으로 입증해 보여주신 선교사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와 아들들(영훈,영준) 그리고 아이들 이모 많이 힘이 들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그 여파는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힘든 고통이 많이 식어지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그리고 후원하는 우리 선교회에서도 한인선교사회에 깊은 감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선교사님들과 손님들이 떠나신 후 아이들과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서로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앞으로 더욱 주 안에서 하나 되어 최선의 삶을 살기로 했습니다.
저와 아이들 그리고 남은 가족들의 승리를 위하여 계속 기도 부탁 드립니다.
탄자니아에서 부끄러운 선교사가 아니라 강하고 확신 있는 선교사로 주님을 영화롭게 해드리고 탄자니아 한인 선교사회에 뿌듯함의 선물을 안겨드릴 선교사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기도 부탁 드립니다.
이제 곧 아이들과 집사람의 묘역에 꽃을 심어야겠습니다.
마음과 모습이 꽃처럼 아름다웠던 아내를 닮은 꽃을 구해야겠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 자랑스런 탄자니아 한인 선교사회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제가 그 한 일원이 된 것에 대하여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좀 시간이 지난 후 저의 안정되어가는 삶을 보고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선교사회 임원님들 그리고 회원님들 그리고 이웃 나라에서 참석해주신 선교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사랑합니다.
탕가에서 박윤석 선교사 가족 드림.
첫댓글 사진 속에 많은 현지인들을 보면서 선교사님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데 노력하고 그 결실들이 하나씩 돌아 온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