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날씨가 추울수록 따뜻한 아랫목이 있었던 옛 고향집이 생각난다.
지금은 헐어버리고 소마구 있었던 쪽으로 현대식 집을 지어서 그 형체가 사라졌지만 다행히도 20 여년전에 동영상으로 담아놓았던 모습이 있길래 캡쳐하여 포스팅하기로 한다.
우리가 태어난 고향집이 그리운 가족 형제들이여,
잠시 틈을 내어 다음 사진을 음미하면서 과거여행을 했으면 좋겠어요.
어느 추운 겨울 오후 햇살이 마당에 드리워진 고향 집의 모습이다. 아버지께서 어디 모실 가셨다가 '어험' 하고 들어오신다. 어린시절 저 따사로운 햇살을 쬐면서 마당에서 빠꿈살이와 구슬치기 자치기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지붕의 슬레트가 낡아서 군데군데 새것으로 때운 모습이 보인다. 새마을 운동때 억새집을 긁어내리고 슬레트로 바꿨으니 20년 이상 버텨온 슬레트가 고맙다. 슬레트를 바꾸기 위해서 지붕에 올라가면 몹시 조심스럽다. 오래된 스레트를 잘못 밟으면 깨지기 때문에... 억새집을 긁어내릴 때 굼벵이가 왜 그리도 많았던지...
지금은 현대식 가옥이 들어선 소마구와 변소가 있는 건물이 보인다. 아버지는 평생 단 하루도 소가 없이는 사실 수 가 없었으니 중간 정도 크기의 소 한마리가 보인다. 불도 없이 캄캄한 변소를 밤에 갈 때는 정말 무서웠다. 그래도 바로 옆에 소가 있어서 훨씬 마음이 편안했었다. 아랫방이 보이고 쇠죽 끓이는 가마솥이 보인다. 왼쪽에는 두엄도 많이 모아 놓으셨다. 봄이 되면 바작에 얹어서 밭으로 운반하셨으니 아버지의 그 고생을 어찌 말로 다 하리...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의 모습이다. 오늘도 아버지는 자식들 얼까 봐 겨울 땔감을 하러 지게를 지셨다.
부모님이 수도 없이 다니셨을 일터로 가는 주요 길목이다. 골목 너머로 멀리 보이는 산에 부모님의 일터가 있고 겨울 땔감이 있다.
밤새 눈이 내렸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니기 전에 싸리비로 쓸고 계시는 아버지, 혹시 자식들이 골목길에서 미끄러질까봐 동이트면 맨 먼저 눈부터 치우신다. 아버지는 한 겨울에도 양말과 장갑이 없이 사셨다. 그래도 오늘은 눈이 조금밖에 내리지 않아 다행..
쇠죽을 끓이시고 배가 고픈 소는 입맛을 다시고 있다. 저 아랫방에서 나는 오래 지낸 경험이 있다. 따로 떨어진 방이라 사생활이 보장되었지만 겨울엔 어떻게 외풍이 센지... 어머니하고 같이 도배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상수도 시설이 전무한 부엌(정제)에서 맨 먼저 물을 준비하고 계신다. 파란 통은 연탄으로 물을 데우는 온수기인것 같다. 아마 이 때 쯤에는 연탄 아궁이가 맨 오른 쪽에 하나 설치되었던 것 같다. 방쪽 벽 위에 그릇을 올려놓고 냄비도 하나 보인다. 어머니는 평생을 이런 열악한 주방(정제)에서 밥을 짓고 국과 반찬을 만들어 우리 식구들을 먹여 살리셨다. 재료도 없고 양식도 항상 부족했지만 우리들 영양실조도 없었고, 지금 성인병도 걸리지 않게 무공해 자연식품을 먹여 주셨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는 음식솜씨가 어찌나 좋으셨던지 지금은 그 맛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특히 담백한 김치와 고추장, 된장, 청국장 맛은 가히 우리나라 최고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 비법을 우리형제 자매중에서 누구 한 사람이라도 전수 받았어야만 했는데 참으로 애석하기 짝이 없다.... 다들 고향보다는 외지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으니 그 기술 배울 기회를 그만 놓쳐버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쇠죽물을 뜨러 가시고 어머니는 나무늘에 삭달가지를 가지러 가신다. 담쪽으로 기대어 세운 표고버섯 재배용 참나무 통나무가 보인다. 저기서 딴 버섯은 잘 말려 놓았다가 명절에 자식들이 오면 바리바리 싸 주셨다.
장작불을 때기전에 삭달가지를 가져다가 불씨를 피워야 하니 삭달가지를 준비하고 계신다.
소에게는 일급 영양제인 거친 쌀겨(딩기)를 쇠죽에 첨가하고 계신다.
이제 삭달가지로 불을 지피셨군요. 불이 붙으면 그 위에 장작을 올려 오래 타게 해야 한답니다.
장작을 가지러 오셨군요. 밤새 내린 눈이 나무등걸 위에 소복이 쌓여 있는데 속 깊이 숨은 잘 마른 장작을 고르고 계십니다.
쇠죽이 다 완성되었습니다. 날씨도 추운데 딩기를 섞은 뜨끈뜨끈한 아침식사가 이 소에게는 얼마나 고마울까요. 겨울에는 쇠죽을 끓여서 먹이고 봄에는 밭에서 풀을 캐서 먹이고, 여름에는 싱싱한 풀(소깔)을 베어 먹이는 이 소들은 얼마나 축복입니까? 평생 소를 길렀지만 쇠고기 한번 변변이 드시지 못하시고 고된 일로 날이 새고 저문 아버지의 삶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한번은 망태와 낫을 가지고 벌매기 근처 논두렁 풀을 깍다가 그만 뱀이 스르륵 지나가길래 망태고 낫이고 내동댕이 치고 집에 와서 아버지한테 가져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자식이 아무리 말썽을 부려도 싫은 소리 한번 안하시고 손찌검은 커녕 그 흔한 욕 한번도 하는 모습을 전혀 보거나 들은 기억이 없다. 나는 아버지에 비하면 아버지 신발끈만도 못한 변변치 못한 자식이다.
쇠죽을 다 끓이셨으니 다시 쇠죽솥에 쇠죽물(꾸중물)을 리필해야 한다. 이렇게 매일 아침 아버지는 쇠죽을 끓이시고 어머니는 밥을 지으셨다. 물론 우리들은 지금 따뜻한 아랫목을 짊어지고 꿈나라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시절 마루에 나와 마당을 향하여 오줌을 쏘아댔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싫은 기색 한번 안하시고 저쪽에서 흙을 파다가 그 오줌흔적을 메꾸곤 하셨다.
자, 오늘은 옛날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옛 고향집과 우리 부모님의 아주 단편적인 모습을 통하여 잠시나마 옛날을 생각해 보았다. 부모님 세대는 이렇게 고향이 있었고 고향집이 있었다. 왜냐하면 평생을 한 곳에 사시면서 인생의 희노애락을 보낸 곳이기에.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나의 고향집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거주하는 곳은 항상 임시 거쳐가는 곳으로 생각한다. 열심히 돈 벌어서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야겠다고 계획을 세우기 때문이다.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까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싫고 오래 머물고 싶은 편안한 나의 고향집과 같은 집이 그립다. 더 이상 이사도 안가고 말이다. 이런 집이 아직 없는 나는 항상 시골의 부모님 터전이 나의 고향집같은 생각이 난다. 그래서 지금도 고향을 그리는 노래를 듣거나 연로하신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 고향집과 부모님이 애틋하게 그리워진다.